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갑자기 쓰러진 왕.
그리고 그 앞에서 술병을 쥔 채 굳어 있는 로건.
호위기사들과 시종들의 시선이 모두 로건에게 집중되자 일순간 방 안의 모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폐하!”
하지만 이내 왕을 향해 뛰어가는 클레오를 비롯한 관리들과.
“로, 로건 경을 잡아!”
스스로 소리를 지르면서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호위기사들이 그 침묵을 깨트렸다.
그런 와중에 멍하니 굳어 있던 로건의 눈빛이 빠르게 돌아왔다.
‘하, 이런…….’
너무나도 황당했다.
어쩌면 왕이 새로운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수까지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자해라니?
왕이?
‘빌어먹을.’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여기서 무력을 쓰면…….’
반역자로 확정될 것이다.
로건이 다가오는 호위기사들의 모습을 보며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당황한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건, 이게 대체…….”
“제가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로건은 놀란 스승의 시선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고는 다가오는 기사들의 검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에 긴장한 기사들이 포스를 끌어올리자.
“치워라. 내 발로 갈 테니.”
차가운 얼굴로 호위기사들의 검을 뿌리친 그가 다시금 쓰러진 왕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왕으로 만든, 총기 넘치던 어린 왕자였던 자의 얼굴을.
‘어찌 이렇게 변했을까.’
씁쓸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자해까지 할 정도로 내가 싫으셨소? 대체 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증오.
솟구쳐 오른 짜증과 분노는 자연히 쓰러진 왕의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관리에게로 향했다.
‘이것 역시 네 짓이냐, 클레오?’
지금 상황에서는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
로건은 치밀어 오르는 살기를 억누르며 애써 차분하게 돌아섰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
“그, 저…… 그게.”
“일단 지하 감옥으로 가셔야 합니다.”
“……안내해.”
로건은 자신을 둘러싼 기사들을 마치 호위처럼 거느리며 왕의 집무실을 나섰다.
* * * 로건 맥라인이 왕을 암살하려고 했다.
수도에 갑작스럽게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처음에는 헛소리로 취급되었다.
“그 로건 맥라인이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경을 치지 않으려면 헛소문 작작 지껄이쇼.”
하지만 로건 맥라인이 왕성의 지하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왕국의 귀족들 대다수가 패닉에 빠져든 그때.
이 사건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주요 귀족들의 행동은 두 가지로 갈렸다.
“이거 큰일이야. 어찌 이런 일이!”
로버츠 플로이드 백작은 초조한 걸음으로 거실을 오가며 고심을 거듭했다.
‘폐하와 사위의 갈등을 모르는 이는 없어. 정말 사위의 짓이건, 아니면 폐하의 짓이건 이건 절대 좋게 풀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이내 결심을 내린 로버츠가 집사를 향해 소리쳤다.
“맥라인에 통신을 연결해! 그리고 당장 수도를 뜰 준비를 해라!”
“예, 예?!”
“빨리! 서둘러!”
백작은 놀란 집사의 반문에도 아랑곳없이 빠르게 저택의 귀중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처럼 불길한 전운을 느낀 소수의 귀족은 수도 내에 깊숙한 곳으로 숨거나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고, 다른 귀족들은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인 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을 택했다.
상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긴 했어도 아직 이 나라의 실권은 로건과 검공 두 사람에게 달려 있었고, 그 둘은 사제지간이니 지금 이 상황이 더 크게 번지지는 않으리라 판단한 이들이 다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맥라인 영지의 반응은 그 다수보다 훨씬 극렬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자님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공자님이 뭐가 아쉬워서!”
소문을 들은 맥라인 영지의 영지민들 대부분은 오히려 국왕을 성토했고.
“절대 그냥 있어서는 안 돼! 수도, 아니 왕국을 뒤집어서라도 로건 공자를 해방시켜야 해!”
“물론입니다, 아가씨!”
로건의 약혼녀와 전담 시종은 분노에 찬 얼굴로 그들의 영주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 즉시, 맥라인의 가신 회의가 소집되었다.
쾅!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분노에 찬 패드릭 맥라인이 터트린 고함에 대전에 모여든 가신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곧 그들의 시선이 한군데로 몰리고, 가신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드웨인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일단 공자님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검공 각하께서 사정을 파악한 후 왕을 설득 중이니 우선 조금만 기다려 보라는 전갈을 보내셨습니다만…….”
“기다려? 뭘 기다려? 내 아들이 처형되기를 기다리라는 말인가?!”
드웨인의 긴장된 목소리를 단번에 뭉개는 분노 어린 외침.
상석에서부터 최상급기사의 살벌한 기세가 퍼지자 대전이 한층 싸늘해졌다.
하지만 저 상태의 패드릭을 말릴 수 있는 것도 드웨인뿐이라, 털보 행정관은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간신히 용기를 내 다시 입을 열었다.
“지, 진정하십시오, 영주님. 왕께서도 생각이 있다면 쉽게 대공자님을 어쩌지는 못할 겁니다. 솔직히 누가 봐도 너무 이상한 상황이기도 하구요.”
“당연히 이상하지! 초인인 내 아들이 왕을 죽이려고 했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쳤겠지, 독을 왜 쓰겠나!”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상식이라는 게 있는데…….”
“그래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병력을 전부 모아라! 전쟁을 준비한다!”
“영주님!!”
패드릭의 과격한 명령에 드웨인을 비롯한 모든 가신들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저희가 전쟁을 준비한다는 사실이 왕의 귀에 들어가면 대공자님이 더 위험해지실 수 있습니다!”
“아니! 설령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쉽게 당할 로건이 아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해!”
“영주님!!”
“이것은 왕에게 하는 경고다! 내 아들이 잘못되면 왕국을 뒤엎어 버리겠다는 경고!”
“예?!”
가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패드릭에게로 모여들었다.
특히나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드웨인과 헤인켈의 눈은 경악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커져 있었다.
명예와 기사도.
패드릭 맥라인이 그 가치를 평생을 추구해 왔다는 걸 잘 아는 이일수록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 말.
게다가 왕에 대한 충성이야말로 그 가치관의 근간에 깔려 있는 기본 이념이 아니던가.
하지만.
“왕이 내 아들을 공격한다면, 이제부터 내게 왕은 없다!!”
위기에 처한 자식을 본 아버지에게 다른 모든 것은 차선일 뿐이었다.
“전쟁을 준비하라!”
분노한 패드릭의 고함이 대전을 가득 메우고, 맥라인 영지의 병력이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 * * 중태에 빠졌던 왕은 주교들의 신성력 덕분에 금세 별 탈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소식은 오히려 세간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끌었다.
“그 영웅이 손을 썼는데?”
“너무 이상하지 않아?”
“대체 왕국에 무슨 일이 생기려고…….”
의식이 있는 자라면 이 일련의 과정이 수상쩍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왕은 그에 아랑곳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숙청을 지시했다.
– 역적 로건 맥라인과 관련된 이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왕의 명령에 왕실 근위대가 움직이고, 곧 수도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대신들의 대다수가 그대로 근위대에 잡혀 들어갔다.
물론 로건이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일찌감치 맥라인으로 피신한 플로이드 백작가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나머지 대신들은 모조리 감옥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즉결 처분을 당할 뻔한 걸 검공이 필사적으로 막아섰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이 중론.
왕성의 집무실에서 깨어난 왕의 고성과 그를 막아서는 검공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온다는 것은 어느덧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맥라인 영지의 병력들까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자, 왕국의 귀족들 모두가 이후의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 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 지금 맥라인이 반란군으로 돌아서면…….
– 최악의 내전이 벌어질 수 있다.
흉흉한 분위기가 왕국을 물들여 가던 그 시기.
정작 그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주인공은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널찍한 방, 은은한 향이 흘러나오는 환한 등.
비단 이불이 깔린 침대에 번듯한 책상과 식탁, 그리고 따로 용변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한쪽에 마련된 문이 달린 화장실까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과 그 모든 게 철창 안에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흡사 귀족 전용의 고급 숙소 같은 모습이었다.
‘뭐, 귀족 전용이긴 하지.’
로건은 헛웃음을 지으며 눈을 떴다.
밤새 명상을 하던 자세 그대로 몇 날 며칠이고 있을 자신은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깼느냐?”
“스승님이 오셨는데 어찌 계속 눈을 감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등잔불의 흐릿한 빛살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얼굴.
“어찌 된 일인지 짐작하겠느냐?”
그사이 부쩍 늘어난 흰머리와 주름이 눈에 띄는 스승의 얼굴에, 로건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짐작하는 것은 스승님과 비슷할 겁니다. 아니, 이 상황을 보면 대다수가 할 수 있는 추론이지요.”
“……폐하의 자해 말이냐.”
“역시 알고 계셨군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듯한 제자의 말에 검공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느냐.”
“맹목적인 신념은 때로는 시야를 완전히 가리기도 하지요. 그리고 스승님은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신념이 강한 분이시니까요.”
로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에둘러 표현했다.
어찌 왕국 최강의 오러유저 펠릭스 에스페란자가 바보일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가 간혹 답답하고 우둔해 보이는 것은 그의 신념이 스스로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왕과 왕실에 관련해서는 더욱 그런 경향이 강했으니, 로건은 스승이 어쩌면 상황을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가정도 하고 있었다.
그에 제자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 검공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로건. 본 사람이 워낙 많고 타이밍 역시 너무 좋지 않았어. 독도 그렇고.”
“……이번 기회에 작정하고 준비했겠죠.”
비꼬는 듯한 어조에 스승이 침음성을 흘렸다.
“폐하께서 지니신 지배자의 왕관의 마법을 뚫고 중상을 입힌 극독이다. 자칫했으면 폐하께서 돌아가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 돌아가셨죠. 제가 정말로 폐하를 시해하려 했다면 거기서 오러를 썼을 겁니다. 독이 아니라요.”
그리고 그 누구도 막지 못했겠지요.
스승님이 계셨어도 말입니다.
마지막 진심은 말로 나오지 않았지만, 스승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게 위험했던 만큼 폐하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네가 전에 말한 클레오라는 놈을 위시해서 말이다.”
“하……. 역시 그놈이…….”
“그리고 폐하께서 워낙 강경하게 너의 처벌을 주장하시고 계시다.”
“당연히 그렇겠죠. 그래서 저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합니까? 빨리 결론이 나야 저도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처벌이 아닌 결론.
왕이 처벌을 주장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의사 표시에 스승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내가 폐하를 설득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거라. 불편하더라도 참고.”
정말 설득할 수 있을까.
자해까지 해서 자신을 함정에 빠트린 왕이다.
그리고 만약 여기서 스승의 주장대로 처벌 없이 그를 석방해 준다 해도…….
‘제가 더는 참지 않을 겁니다, 스승님.’
가슴속에 울화가 들끓어 올랐지만, 며칠 사이 또 나이를 먹은 듯한 스승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부디…… 아니, 아니다. 나중에 또 오겠다.”
스승은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 말고 깊은 한숨과 함께 돌아섰다.
‘무슨 말을 하려 하셨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그 의문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먹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
우르르릉.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내지른 로건의 노기 어린 고함이 어두운 지하 감옥을 부술 듯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