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그래. 그놈은 잘 만나고 왔습니까?”
“……그렇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죄를 뉘우치고는 있던가요?”
없는 죄를 뉘우칠 리가 있겠습니까.
검공은 마음의 소리를 뱉어 내는 대신, 입을 다무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뜻이 전해졌는지, 왕은 코웃음을 치며 이를 갈았다.
“역시나 역적 놈답게 쉽게 인정을 하지 않는다? 하! 증거가 그리 뚜렷한데도 발뺌이라니!”
왕이 말하는 증거란 왕의 술잔에서 발견된 독과 그것을 로건이 사 갔다고 증언한 이름 모를 암살자 길드의 하수인, 그리고 상황 증거뿐이었다.
‘그리고 그 하수인도 자백을 한 뒤에 사망했지.’
이렇게 허술한 증거를 정말 진심으로 믿고 있는 걸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답답한 마음에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만, 폐하. 진정 로건이 폐하를 시해하려 했다면, 폐하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셨을 겁니다.”
“그대가 있지 않았소! 추가로 수작을 부리려던 것을 그대가 있으니 행하지 못한 거겠지!”
“로건은 얌전히 자기 발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는 저라도 로건을 막지 못합니다. 폐하, 부디 생각을 바꿔 주십시오.”
“그럼 뭡니까! 저잣거리에 떠도는 하찮은 놈들의 소문처럼, 정말 내가 자해라도 했단 말입니까?!”
벌겋게 달아오른 눈. 흔들리는 눈동자.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대체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아무런 진전 없이 며칠째 반복되는 대화에 검공은 답답한 가슴을 두드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로건은 생각지도 못한 이의 방문을 받았다.
끼이이익.
쇠로 된 철창이 조심스레 열리는 소리에 벽을 보며 명상을 하던 로건이 번개처럼 일어섰다.
이내 어둠 속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철창 안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로건 공. 좀 더 좋은 상황에서 독대하고 싶었습니다만…….”
“그대는……?”
로건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들어온 이가 그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내궁부장 클레오 리버만이라고 합니다. 먼발치에서나마 로건 공을 뵌 적이 있습니다.”
클레오.
로건이 그를 모를 리 없었다.
그저 상황이 수상하여 모른 척했을 뿐.
‘이놈이 왜……?’
스승에게 듣기로 자신을 처벌하자는 왕의 주장에 이놈이 앞장서서 동조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런가?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궁부장에게 범죄 용의자의 사면권이 있었던가?”
무슨 속셈이냐, 네놈?
그 뜻이 담긴 로건의 날카로운 시선이 열린 철창을 스치곤 다시 클레오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러자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놈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더니, 이내 묘한 미소와 함께 자그마한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경비대 몰래 열쇠를 빼 왔을 뿐입니다.”
구속구의 열쇠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한 모양에 은은한 푸른빛까지 띠는 열쇠.
하지만 그렇기에 로건은 그것이 진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열쇠가 지금 로건이 차고 있는 초인 전용 구속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아티팩트라는 것을.
하지만 로건은 쉽사리 동요하지 않았다.
전신에 자리한 포스를 억누르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아티팩트 족쇄는 적어도 로건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다른 포스유저나 초인들과는 달리 심장에 포스가 집중된 로건의 힘을 억누르기에는 너무나도 약한 아티팩트였으니까.
“월권을 했다? 날 위해서?”
그 담담한 표정이 의외였을까.
눈빛이 조금 흔들린 클레오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로건 공 같은 영웅이 이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 고작 그런 이유로 나를 도와준단 말인가?”
“저는 필부이오나, 그렇기에 더욱 로건 공 같은 영웅을 동경합니다. 폐하께서 마음을 독하게 먹으신 듯하니,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이 정도뿐인 듯합니다.”
“폐하께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니?”
“부족하오나 폐하를 곁에서 모시는 몸으로서 들은 것이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공의 처형을 언급하고 계시지요. 그러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요.”
네 놈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
피식.
“내가 탈옥을 원한다면 이깟 철창이 어찌 날 막을 수 있을까. 돌아가라. 마음만은 고맙게 받겠다.”
“……예?”
“나는 스승님을 믿는다. 굳이 네 제안을 받아들여 반역자가 될 생각은 없다.”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날아들자 핼쑥하게 질린 클레오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내 복잡한 표정의 놈이 다시금 허리를 굽혔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폐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급해져서 그만……. 하지만 정말 검공께서 폐하를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군주의 명령이라면 껌뻑 죽는 그분이요?”
“그만! 이간질을 할 셈이 아니라면 그만 돌아가라.”
무슨 속셈이든, 놈의 장단에 맞춰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니, 놈이 탈출을 원하니 오히려 더 이곳에 있어야겠다.
로건이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제국에서도 그리 높은 평가를 받으신 분이 정작 고국에선 이런 대접이라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혹시나 마음이 변하신다면 이것이라도 이용해 주십시오. 놓고 가겠습니다.”
흘깃 고개를 돌리자, 클레오가 바닥에 무언가를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아티팩트 구속구의 열쇠와 더불어 얇은 가죽 재질의 물건.
얼핏 보기에 무언가 그려진 그림 같았다.
“지하 감옥과 왕궁의 설계도입니다. 경비 일지도 첨부되어 있으니, 혹여나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참고해 주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돌아서는 놈을 보며 로건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탈출을 조장한다. 탈출하는 순간 반역자가 되는데? 내가 왕과 싸우길 바라는 건가? 왜지?’
말이 싸움이지, 솔직히 자신이 밀리는 것은 명분뿐이다.
현재 왕실과 맥라인 가문의 전력 차는 싸움이 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이 왕과 싸우길 원한다는 건, 사실상 왕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상치 못한 클레오의 방문은 그를 그저 흔한 간신으로 여기던 로건의 생각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왕의 곁에서 아부하며 권력을 누리려는 놈이 아니었나?’
놈의 정체가 더더욱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일까.
로건은 밤새도록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건 지금 움직여선 안 된다는 거야.’
적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전술의 기본.
속셈을 알 수 없는 적이 원하는 것이 탈옥이라면.
‘절대 응해 줄 수 없지.’
그렇게 마음을 다지는데.
로건의 그 다짐은 바로 다음 날 여지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발단은 식사를 가져다준 간수가 식기 밑에 넣어 준 쪽지 하나였다.
데미안과 미리 약속해 두었던 그란디아 해방전선의 암호로 적혀진 쪽지였다.
전쟁이라니?
그 아버지가?
놀란 로건이 눈썹을 찡그렸지만, 그 아래에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뭐!?’
경악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로건의 머릿속이 일순간에 복잡해졌다.
6서클 익스퍼트의 경지에 도달한 마도사의 추격을 뿌리친 전력이 하마르를 납치하려 했다?
쉽사리 믿을 수 없는 내용이 그의 정신을 멍하게 만든 것이다.
하물며 그게 끝도 아니었다.
그 얘기를 읽는 순간 로건은 확신할 수 있었다.
‘왕의 짓이다.’
지금 이 나라에 그만한 인재들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맥라인과 에스페란자, 그리고 병력의 절대적인 수는 부족하지만 명목상의 인재는 갖춘 왕실뿐이었으니까.
‘왕실 마탑도 있고.’
이어지는 내용은 추론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불끈.
‘나를 가두고 맥라인을 흔든다? 왕은 절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로건으로서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처형일 얘기까지 나왔다면, 스승님 또한 그냥 있을 리 없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대화를 해 본다.’
그런 각오로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데.
그날 밤.
예상대로 스승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스승님. 상황은 어찌 되고 있습니까? 처형일까지 나왔다고 하던데요?”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초췌한 안색의 스승이 고개를 저었다.
“누가 네게 그런 말을……. 끄응. 그래, 폐하의 의견이 너무 강경하시다. 하지만 내가 설득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다오.”
“스승님께서도 더 강경하게 나가시면 될 텐데요?”
“강경하게?”
“에스페란자 기사단만 동원하셔도…….”
“로건! 그건 선을 넘는 일이다. 그리하면 내가 폐하를 힘으로 윽박지르는 꼴이 된다. 신하의 도리가 아니야.”
오늘따라 유난히 답답하게 느껴지는 스승의 말에 로건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조금만 더 참아 보거라. 폐하를 설득 중이다. 좀 늦어진다 하더라도 네 안위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내 명예를 걸고 장담하마.”
그 말에 로건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랬다.
스승은 이런 사람이었다.
“……스승님이 생각하시기에 폐하께선 언제쯤 저를 놓아주실 것 같습니까.”
“……내가 설득을 잘하면 될 거다.”
“제가 죽기 전에는 놓아주실까요?”
“로건. 그건…….”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스승님. 말로만 폐하를 설득하려 하신다면, 폐하께선 절대 저를 놓아주지 않으실 겁니다!”
“그렇게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분은 아니시다, 로건.”
“아니요. 죄송하지만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계신 것은 스승님입니다.”
“로건!!”
분노한 스승의 목소리에 순간 움찔했지만, 그로서도 오늘만큼은 그냥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신념에 취하면 그 사실을 진리처럼 믿게 되지요. 진실이 어떻다고 주변에서 알려 준다 한들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종교가 그렇고, 또 사상이 그런 것이지요.”
“지금 나를 훈계하려는…….”
“스승님. 저는 이곳에서 풀려나는 즉시 폐하를 유폐시킬 겁니다. 그리고 다시는 정치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감시할 겁니다.”
“네 이놈!!!!”
– 악!
오러유저 상급의 기세가 고스란히 담긴 고함이 지하 감옥에 울려 퍼지자 철문 밖의 간수가 비명을 토했다.
하지만 그저 인상을 살짝 찌푸린 로건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스승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금 그게 신하로서……!”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겁니다!!”
이번에는 로건의 고함이 지하 감옥을 떨어 울렸다.
미약한 신음만을 남기고 기절한 간수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그들의 사정을 봐줄 때가 아니었다.
로건은 굳은 표정의 스승을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내뱉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것도 최소한의 보복이라 생각할 테지요. 상식적으로는 말입니다.”
“그 무슨 불경한…….”
“아니면 제가 더한 짓을 할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특히나 폐하께서는요.”
마음 같아서는 정말 그러고 싶고 말입니다.
마지막 한 마디를 생략했음에도 스승의 표정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너, 그 말은…….”
“예. 폐하께선 제가 풀려나면 본인은 끝장이 날 거라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절대로 절 풀어 주지 않으시겠죠.”
“내가…….”
“스승님.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스승님이 가진 이상의 고결함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게 있는 법이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스승의 얼굴은 한순간에 더욱 초췌해 보였다.
그 모습에 로건 역시 마음이 쓰라렸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저도 폐하께서 왜 그런 짓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물릴 수 없는 최후의 한 수를 두셨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로건…….”
“예. 노골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죽고 싶으신 게 아니라면 저를 놓아주실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실을 보십시오, 스승님!”
매섭게 다그치는 로건의 목소리에 검공의 안색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무탈하실 거라 믿습니다. 검공 각하와 왕의 대화가 길어지며 ……(중략)…… 가문은 현재 비상사태로, 여차하면 반란의 경우까지 생각하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렌과 맥라인 타운에서 심각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타렌 내부에서 하마르 공에 대한 납치 미수 사건이 있었고, 타운에서는 리베라티오 창고에 대한 습격 사건이 있었습니다.
클레이튼 님이 하마르 공의 부재를 빠르게 눈치챘는데도 성벽에 서 간신히 납치를 저지하는 데 그쳤다고 합니다. 도망친 복면인, 흉수의 정체는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리베라티오 백여 개가 강탈당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습격자들 중 일부는 처리했지만, 그중 소수는 최상급 경지의 기사들과 5서클 마법사들…….
공자님의 처형일이 결정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검공께서 반대하고 계시는데 왕이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