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사실 다른 방도가 있을 수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급하게 전개되지만 않았다면 로건도 얌전히 기다렸을지 모른다.
왕이 사실상 항복의 뜻을 전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를.
검공, 펠릭스 에스페란자의 고집이 오직 그의 제자를 향해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 고집불통의 스승은 아직 자신의 편을 들고 있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신념을 지닌 스승의 앞에서 왕의 아집은 언젠가 무너져 내릴 테니까.
‘물론 그랬다 한들 내가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시험해 볼 시간도 없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왕의 의지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했다.
그렇다면 그 역시 똑바로 부딪칠 뿐이다.
“영지에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폐하께서 맥라인을 흔들고 있단 말입니다! 제가 가 봐야 합니다. 당장!”
“……내가, 내가 해결해 주마.”
“스승님께서 자리를 비우시면, 폐하께서는 바로 절 죽이려 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저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거고요.”
“그럼 에스페란자의 정예를 보내서라도…….”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붉고 푸른 두 눈이 한참을 허공에서 부딪치고.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쉰 검공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쩌엉.
붉은 빛이 번뜩이는 순간 철창의 문이 열렸다.
오러로 철창을 잘라 낸 것이다.
“보내 주시는 겁니까?”
“……보내 주는 게 아니다.”
행동과 전혀 다른 대답에 로건이 멈칫하는데.
“네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선택이라뇨?”
“네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겠다. 하지만 신하가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내 입장도 포기할 수 없다.”
로건의 시선이 열린 문으로 향했다.
“나는 너를 풀어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가야겠다면, 가거라. 하지만 네가 이대로 나간다면 너는 정말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로건.”
무심한 듯, 괴로운 표정으로 돌아서는 스승.
그가 힘겹게 꺼낸 한마디가 로건만이 남은 감옥에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로건 역시 마음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습니다, 스승님.’
로건의 손에서 황금빛이 번뜩이는 순간.
그의 팔다리에 달린 족쇄들이 힘없이 끊어졌다.
* * *
– 로건 맥라인이 감옥을 탈출했다!
그 소식은 왕국 전역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설마설마하던 최악의 사태가 곧 벌어질 것임을 모두가 예감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로건 맥라인을 반역자로 선포하고 토벌을 명한다! 모든 귀족들은 왕성 앞으로 병력을 집합시켜라!”
분노에 찬 왕의 고함이 왕궁 대전에 울려 퍼졌다.
“예. 폐하!”
왕에 의해 강제로 등용된 새로운 대신들이 한목소리로 호응하며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듯했지만.
단 한 사람, 대답하지 않은 누군가로 인해 대전은 곧 침묵에 휩싸였다.
대전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반역자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검공에게로 향했다.
그에 왕 역시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대공. 충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반역자를 두고 보기만 할 것입니까?”
그 말에 검공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불미스러운 사건에는 아직 미심쩍은 점이 많습니다. 증좌도 부족하니 폐하께서 넓은 마음으로 로건을 용서하시면 반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복잡한 눈빛으로 망설이던 끝에 작은 한숨과 함께 흘러나온 말.
그에 왕은 담담한 눈으로 검공을 바라보았다.
“로건 맥라인은 사실상 왕명을 어기고 탈옥한 것으로, 그에 대한 의심을 풀 기회를 스스로 날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왕의 시선에 검공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럼에도 로건 맥라인을 두둔하시는 겁니까? 대공께서는 왕실의 권위보다 개인적인 연을 더 중요시하는 분이셨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폐하.”
검공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하자 왕이 기꺼운 미소를 지었다.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워야 할 시기입니다, 대공. 개인적인 인연보다는 왕국의 미래를 생각해 주십시오. 그대조차 내게서 등을 돌린다면 대체 이 자리가, 그란디아의 혈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그란디아의 적통을 잇는 정당한 군주이십니다. 그런 말씀은 받들기 어렵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자는 대공뿐입니다.”
왕은 그리 말하며 옥좌에서 내려와 검공의 앞으로 다가갔다.
마주 선 검공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왕은, 이내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폐, 폐하?”
“저런!?”
당황한 대신들이 웅성거리고, 검공의 눈빛조차 흔들릴 때.
“부탁드리겠습니다, 대공. 이 왕실의 권위가 아직 살아 있음을,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왕은 신하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로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폐하. 부디 고개를 드십시오.”
검공은 그 말과 함께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깊은 한숨과 함께 무언가를 끊어 내는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 선언하듯 말했다.
“왕명을 받들어 제 손으로 반역자를 토벌하겠습니다.”
대전의 귀족들이 숨을 죽이고.
왕의 굳은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 순간.
검공의 그 믿을 수 없는 결정은 바람보다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 * *
– 검공이 직접 맥라인 토벌을 결정했다.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웬 헛소리야!?”
“진짜라니까!”
그 소문을 들은 사람 모두가 두세 번씩은 되물었을 만큼 믿기 어려운 이야기.
내전을 넘긴 지 불과 2년 만에, 그 내전의 종식을 이끈 주역들이 다시금 새로운 내전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스승과 제자.
왕국의 영웅인 초인들이.
“이거, 이번엔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냐?”
“서, 설마!”
“나라가 어찌 되려고 해마다 전쟁인 건지…….”
소식을 들은 자들은 저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기 바빴고.
그 당사자들이 받은 충격은 당연히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파장은 수도에 있는 검공의 저택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각하. 이건 아닙니다! 정말 최악의 결정을 하신 겁니다!”
부관, 루이스가 좀처럼 짓지 않는 격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역시 그리 생각하느냐.”
“예! 그렇습니다. 제가 아니라 세상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초인인 로건 경이 뭐 하러 독으로 암살 시도를 하겠습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이건 명백히 누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걸 알고 계시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맥라인을 토벌하시겠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루이스.”
“어떻게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습니까!? 각하께서 반대하셨다면, 폐하는 절대 홀로 전쟁을 주장하시진 못했을 겁니다! 이건 나라를 망치는 결정입니다!”
나라를 망치는 결정.
그 아프디아픈 한마디가 검공의 마음에 쑤셔 박혔다.
그리고 그 말이 방아쇠가 된 듯, 이 사단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의 말이 머릿속에 연달아 떠올랐다.
– 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폐하께서 물릴 수 없는 최후의 한 수를 두셨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 지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로건. 네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어.’
단순히 군주의 강권으로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제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근거가 없었고.
제자는 그 근거 없는 논리를 위해 천 년간 지켜 온 왕과 왕실의 권위를 무시하고 훼손했다.
‘내가 그리도 기다려 달라 말했거늘.’
아프고 아픈 마음.
하지만 제자는 결국 자신의 길을 선택했고.
평생을 왕의 검으로 살아온 인생의 무게는 제자의 반대편을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러니.
“미래를 위해서라도, 왕국의 중심인 왕실의 권위를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것이 결국 나라를 위한 길일 것이야.”
“각하. 왕실이 왕국의 전부는 아닙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근본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근본을 지키려 하는 것이고.”
“나라는 왕실의 것이 아니라 백성의 것입니다, 각하!”
“왕실이 바로 서야 백성이 편안해진다!”
“각하…….”
답답한 마음에, 루이스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의 존경스러운 주군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도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설득을 시도하기도 힘들 정도로.
하지만.
‘이 말은 해야 해.’
숨을 크게 들이쉰 루이스가 평생을 모신 주군을 보며 무릎을 꿇었다.
“로건 맥라인 경은 누가 봐도 왕국의 영웅이고, 폐하께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 사람들 대다수의 생각입니다. 기사단 내부의 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제가 평생 각하를 따랐지만,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각하. 아니, 주군.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루이스는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 말을 뱉어 냈다.
재고를 청하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
에스페란자 가문이 공작가에 이른 이후 처음으로, 가주의 선택을 비난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절절한 요청에도 검공의 반응은 담담하기만 했다.
“역시 그러한가.”
“주군? 그럼?”
일말의 기대 속에 다시 올려다본 얼굴.
하지만 그의 주군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어쩔 수가 없구나. 평생을 왕의 검으로 살아온 몸이다. 더구나 내가 주도적으로 제위에 올린 폐하의 명을, 나는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구나.”
“주군!! 가문 내부에서도 반발이 클 것입니다!”
“그렇다면 떠나도 된다.”
“……예?”
“너뿐만 아니라 가신들 모두에게 전하는 말이다.”
루이스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길게 한숨을 내쉰 검공의 입에서는 그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내 뜻이 그르다고 여겨진다면, 떠나도 좋다. 맥라인이나 다른 곳으로 가도 좋다는 말이다.”
“각하! 그게 무슨……!?”
주군과 의견이 다르다고 한들 어찌 기사가 가문을 떠날까.
검공의 말은 반론을 아예 막아 버리는 선언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것뿐이다.”
고뇌에 찬 검공의 무거운 목소리가 울리고.
그 이상의 무거운 표정을 한 루이스는 자신의 주군을 뒤로 한 채 집무실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검공가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무렵.
로건은 이미 맥라인 타운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 * *
“대공자님이시다!!”
“대공자님이 돌아오셨다!”
“뭐, 뭐야!? 정말!?”
“문을 열어라!!”
타운의 동문을 지키는 기사와 병사들 사이에서부터 소란이 일어났고.
로건은 로건대로, 평상시보다 몇 배는 많은 경계 병력을 보며 긴급한 사태를 다시금 실감했다.
“공자님. 무사하셔서 다행…….”
“아버지는?”
“그, 관저에 계십니다. 지금 기별을 했으니…….”
“아니, 내가 간다.”
기사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로 말을 달린 로건이 막 타운의 관저에 도착했을 때.
“로건!”
“로건 공자!”
“대공자님!!”
그는 자신을 향해 번개처럼 뛰어나오는 부모님과 약혼녀, 시종과 기타 가신들로 이루어진 인간의 파도를 보며 급박한 상황도 잠시 잊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