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출진한다!”
뿌우우우우우우.
긴 나팔 소리와 더불어 성문이 열리고, 중갑으로 무장한 채 말을 탄 기사단을 앞세운 맥라인 가문의 병력이 성을 나섰다.
53명의 기사.
징집병이 아닌 정규병이자, 기사수련생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 550여 명의 기마병.
그리고 5천에 가까운 징집병들.
총병력 5천이 넘는 대군이었다.
선전포고 후 사흘, 그 기간 안에 맥라인 영지는 한계를 넘어서는 병력을 소집했다.
징집된 이들 중에는 아직도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소년들도 종종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징집병의 1/4은 제대로 된 장비조차 없이 죽창을 들고 얼기설기 만든 나무 보호대를 두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머릿수만 맞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다. 침략자가 운명을 걸었으니 우리도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
패드릭은 과한 징집을 억지로 정당화하며 애써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일반적인 기사들의 말보다 반 배는 더 큰 거대한 흑마를 타고 붉은 깃이 달린 투구를 쓴 그는 가장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와아아아!”
영지민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억지로 만들어 낸 환호성 아래 보이는 표정들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적은?”
“하루 거리 안쪽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반나절이면 마주치겠군.”
“예.”
패드릭과 헤인켈의 대화에는 긴장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속내와 달리 영지민을 돌아보는 그들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병력과 영지민의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한 가장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여유로운 표정은 성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사라졌다.
“로건은 어디로 간 거지?”
“……새벽녘에 먼저 용병들과 성문을 나섰습니다.”
“왜?”
“그건 저도 잘…….”
“뭐라?!”
헤인켈의 대답에 패드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막지 않았지?”
“용병들에 대한 통솔권은 공자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최근에 좀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는 거겠지?”
“…….”
“헤인켈, 자네도 좀 느슨해졌군.”
“죄송합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헤인켈을 보며 패드릭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거겠지.”
“예?”
갑작스러운 한탄에 헤인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를 탓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가 로건에게 괜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
“아무래도 도망친 거겠지. 녀석은 전력에서 제외하게.”
패드릭의 단호한 어투에 헤인켈이 고개를 확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훈련하면서 본 대공자는 결코 그럴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패드릭의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버럭 소리쳤다.
“그럴 리 없습니다!”
자신의 몸보다 약간 큰 듯한 중갑을 억지로 껴입은 소년.
열다섯 번째 생일도 지나기 전에 포스유저가 된 천재, 로니안이 붉은 눈동자를 부릅뜨며 항변하듯 소리를 지른 것이다.
“형님이 그러실 리가 없다구요!”
로니안은 얼마 전 수련 중에 그를 찾아왔던 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 아직, 아직은 아니구나. 아직 컨트롤이 안돼.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는 형의 모습에 까닭을 묻자, 형은 아직 미숙한 그가 봐도 놀라운 기술을 보여 주었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어떤 기사도 보여 주지 못한 비기(?技)였다.
– 너에게도 곧 가르쳐 주마. 우리 같이 가문을 살려 보자.
그때부터 형은 무언가 안 좋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형이 이렇게 가문을 버리고 도망갈 리 없었다.
“형님은 이미 전쟁을 예상하고 계셨습니다. 절대 그럴 리가…….”
로니안은 마치 제 일인 양 목소리를 높이며 로건을 두둔하고 나섰다.
하지만 패드릭은 그런 작은 아들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릴 뿐이었다.
“로니안. 로건을 두둔할 생각은 말거라. 어쨌건 녀석이 이 자리에 없는 것은 사실이니.”
“아닙니다! 형님이 그러실 리가, 도망치실 리가 없습니다!”
로니안은 로건의 편을 들려 한 것뿐이지만 그 커다란 목소리가 오히려 주변에 웅성거림을 더했다.
“대공자가 도망갔다고?”
“그 소문이 진짜였어?”
“영주 아들이?”
웅성웅성.
어수선해진 병사들의 분위기에 패드릭이 로니안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찌 되었건 녀석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가문의 운명이 걸린 전투에서 빠졌어! 그게 도망이 아니라면 뭐란 말이냐!”
“…….”
어떻게든 반박을 하려 해도 로니안에게는 반론할 근거가 없었다.
그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굳힐 뿐이었다.
패드릭은 그런 로니안을 보며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귀족은 귀족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진짜 귀족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 자는 귀족의 자격이 없어!”
귀족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외부의 위협에서 영지민을 지키는 것이다.
기사 가문인 맥라인 가에서는 그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렇게 단언한 패드릭이 로니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니 로니안, 네가 네 형의 역할까지 대신해야 한다. 절대 흔들리지 말고!”
자신과 닮은, 하지만 비교할 수도 없이 강렬한 힘이 담긴 아버지의 눈동자를 보며 로니안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을 보며 패드릭은 한숨과 함께 돌아섰다.
그 역시 아들 하나를 없는 자식 취급하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사기가 내려간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것을 보면 그런 감정은 사치였다.
‘차라리 그때 쫓아냈어야 했나.’
반성의 기미를 보였을 때, 아니 보인 ‘척’했을 때 괜한 기대를 한 것이 후회되었다.
죽은 전처의 얼굴이 아른거리더라도 독하게 마음먹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 암울한 전쟁에 앞서 병사들의 사기라도…….
“아니, 아니지.”
패드릭은 고개를 내저으며 나약한 생각을 날려 버렸다.
전쟁 직전의 기사라는 놈이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아득.
입술을 깨물자 비릿한 혈향이 입 안에 확 퍼지며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아들이 어떻고, 병력 차가 어떻고 하는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래서 가문을 지켜 내야 했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목적이었으니까.
의지는 투지가 되어 패드릭의 기세를 끝없이 드높였다.
깨문 입술에서 피를 흘리면서 승리를 다짐하는 영주.
“우리는 승리한다! 반드시!”
그 의지와 기세는 그대로 주변에 전달되었다.
“예!”
급속하게 투지가 퍼져 나가면서 조금은 변화하는 분위기를 읽은 패드릭이 기세를 가득 담아 우렁차게 외쳤다.
“전군 속보!”
* * * 둥. 둥. 둥.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적군.
아군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적군이 전열을 갖추고 있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게 했다.
게다가…….
“대공자도 도망갔다잖아.”
“쉿!”
“그런 소리 함부로 하다 큰일 나! 소문이야 소문!”
“소문은 무슨. 너도 찾아봐라. 그 붉은 머리 망나니 얼굴이 보이나.”
본의 아니게 로건에게 또 하나의 소문이 더해지며 사기를 더욱 깎아 먹었다.
하지만 소문을 믿지 않는, 오히려 눈에 불을 켜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닥쳐! 우리 공자님은 그럴 분이 아니야!”
“저놈 뭐야?”
“그 망나니 시종이래.”
“귀족 전담 시종이 여긴 왜?”
“한 손이라도 보태야지. 저 병력 차이 안 보여?”
씩씩대는 릭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군의 사기가 급속도로 추락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왜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살 수나 있을까…….”
불안한 공기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며 병사들의 웅성거림도 한층 커지고 있을 때.
패드릭이 칼을 들어 올리며 천둥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겁먹지 마라!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동시에 기사들이 칼을 들어 올리자 기사단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특히나 상급기사인 패드릭이 뿜어낸 기세는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는 눈으로 보일 정도로 뚜렷하게 형상화되고 있었다.
쩌릿쩌릿하게 퍼지는 무형의 힘.
그것이 겁먹은 병사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왠지 모를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내 맥라인 진영 여기저기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적군의 기세에 뒤지지 않는 함성이 서로를 고양해 주었다.
조금 전까지 불안감에 웅성거리던 모습은 확실히 줄어든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아.’
패드릭은 스스로 무력을 뽐냄으로써 아군의 사기를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도 적군이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희망적인 확신이 생겼다.
‘확실히 상급기사는 없는 거야.’
패드릭은 그렇게 스스로를 북돋우며 적들을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km도 되지 않을 거리를 앞두고 두 진영이 마주쳤다.
“맥라인 남작의 목을 베어 선조부님의 원한을 갚겠다! 죄인의 후손들은 목을 길게 늘이고 내 칼을 받아라!”
적 진영의 앞으로 나선 금발의 중년인, 하만 테스론이 호기롭게 외치며 칼을 뽑아 겨눴다.
그러자 맥라인 진영에서도 패드릭이 나섰다.
“좋다! 그 칼 내가 받아 보겠다! 기사 대 기사로서 역량을 겨뤄 보자!”
평원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외침.
그 안에 담긴 패기와 자신감이 아군의 사기를 다시 한번 높여 주었다.
홀로 진영의 앞으로 나선 패드릭과 달리 하만 테스론은 오히려 그들의 진영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내 100여 명에 이르는 중갑옷의 기사들이 말을 몰고 진영 앞으로 나섰다.
“내 기사들이 곧 내 칼이다. 한 번 받아 보거라, 패드릭 맥라인.”
적진의 후방에서 들려오는 하만 테스론의 목소리에 패드릭은 피식 웃으며 응답했다.
“홀로 나설 용기도 없느냐! 꽁무니를 빼고 숨는 꼬락서니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는구나!”
그 호통에 맥라인 진영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기세가 오르는 순간, 패드릭은 지체하지 않고 다시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겁쟁이 영주를 둔 오합지졸들을 박살 내자!”
그의 칼이 적진을 겨누고.
“전군 돌격!”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선봉부터 뚫는다!’
패드릭은 최전선의 첨봉이 되어 무섭게 말을 내달렸다.
병력의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하려면 그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그가 선봉을 뚫고 적의 기사단을 교란, 붕괴시켜야 승산이 생겼다.
그랬기에 그는 첫 충돌이 될 자신의 랜스 차징에 필생의 힘을 실었다.
첫 공격에 적어도 기사 두세 명은 완전히 박살을 내 버리겠다는 의지였다.
포스를 통해 강화된 패드릭의 애마가 속력을 더하고, 창에 실린 기운 역시 점차 강해지며 뚜렷한 붉은빛을 내뿜었다.
두두두두.
순식간에 적 진영 가까이에 다다르자, 아군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두꺼운 중갑을 차려입은 기사들과 그 앞으로 나선 적의 선두가 패드릭의 눈에 들어왔다.
‘음? 방패?’
주 무기를 무엇으로 쓰든 차징의 기본은 창, 랜스였다.
가속을 그대로 살려 파괴력을 일점에 집중시키기에는 랜스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떤 무기를 들건 그것으로 위력을 낼 수 있다면 굳이 랜스를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선두로 나온 자가 방패를 앞세운 채 자신의 랜스와 맞부딪혀 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내 차징을 버텨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감히?!’
차오르는 분노가 패드릭의 기세를 터질 듯이 증폭시켰다.
우우웅.
놈을 바로 박살 내 버리고 그대로 뒤따르는 기사까지 꿰뚫을 셈이었다.
꽈아아아아앙!
전장에 울려 퍼진 요란한 굉음.
하지만 그 결과는 패드릭의 생각과는 크게 달랐다.
“큭!”
욱신거리는 손목을 견디며 패드릭이 주춤주춤 말을 물렸다.
상급에 어울리는 포스컨트롤로 충격을 사방으로 분산시켰지만 짜릿한 통증이 랜스를 쥔 손 안 가득 퍼지고, 부딪힐 때의 충격이 말에게까지 전해졌다.
최대한 분산시키기는 했지만 충격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그의 튼튼한 애마도 다리가 꺾여 주저앉았을 터였다.
물론 상대방도 무사하진 않았다.
패드릭의 애마와는 달리 상대의 말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고, 선두로 나왔던 기사는 낙마하여 투구 밑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분명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지만, 패드릭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막았다고?!’
투구 밑으로 보이는 상대의 입가에는 흐르는 피에도 불구하고 진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쿨럭. 명불허전이오, 남작. 그렇게나 준비했는데 이 꼴이라니.”
놈의 개소리를 듣고 있자니 더욱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신이 여기서 멈춰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크윽! 젠장!”
“2인 1조로 상대해! 모조리 작살 내라!”
“당할 것 같으냐!”
그 때문에 진격이 멈춘 맥라인 기사들이 두 배에 달하는 머릿수를 앞세운 적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었다.
‘안 돼. 이래선 안 돼!’
이후에 이어질 불리한 전황이 눈에 그려지듯 상상되었다.
패드릭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놈을 참살하고 다시 기세를 가져와야 했다.
“죽여 주마! 이놈!”
이미 늦었다는 머릿속 외침을 애써 외면하며, 패드릭이 랜스를 놓고 검을 들었다.
히이이잉!
그를 태운 거대한 흑마가 단숨에 적군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패드릭의 검이 완연한 붉은빛을 뿌리며 휘둘러졌다.
콰아앙!
그러나, 패드릭의 검은 또다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새 나타난 두 명의 기사가 내세운 대검과 창이 폭음과 함께 그를 막아섰다.
“남작, 당신은 우리와 놀아 줘야겠소.”
게다가 처음에 선두에 나섰던 놈도 입가에 피를 훔치며 장검을 꺼내 들었다.
위기감이 들자 분노로 뜨거워진 머리에 찬바람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방패를 들었던 놈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 네놈들이라 이거지?”
싸늘하게 내려앉은 패드릭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찌, 마음에 드시오?”
변죽을 올리며 능글맞게 웃는 처음의 기사를 패드릭이 노려보았다.
자신의 랜스 차징을 막아 낸 것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상급기사. 설마 상급기사가 있었다니…….’
미숙하긴 해도 확실히 상급이었다.
그러니 자신을 막아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하만 테스론이 무엇을 믿고 그리 당당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그 시기가 너무나 늦어 버린 것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머지 네 놈도 최소한 중급기사.’
투구 속 패드릭의 얼굴에 암담한 기색이 어렸다.
‘내가 막히면 기사단이 막히고, 기사단이 막히면…….’
가뜩이나 수적으로 불리한 본진은 적의 병력에 압살당할 것이다.
아무리 기사단이 주력이라지만 그렇게 되면 승산이 없었다.
사방이 포위된 상황에서 몰이 사냥을 당하는 기사단의 모습, 최악의 경우가 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럴 수는 없다!”
절망감을 뚫고 나온 분노는 매서운 참격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콰아앙!
적은 만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