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더는 사고가 없었다고요?”
“그래. 네 탈옥, 흠흠, 탈출 소식 이후로는 드워프 장인들에 대한 습격도 창고 습격도 없었다. 물론 경계를 몇 배로 늘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역시…….”
“뭐?”
“아니, 아닙니다.”
아직은 생각을 좀 더 정리할 필요가 있었지만.
영지로 돌아오는 내내 지속했던 고민에 대한 해답은 거의 찾은 듯했다.
자신이 탈출하자마자 맥라인에서 발생하던 사고와 테러가 사라졌다?
‘역시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놈들이 있어.’
자연스레 떠오른 얼굴은 하나였다.
영웅을 흠모한다고 말하며 탈출을 권유하던 중년의 관리.
‘클레오. 그놈이 왕을 조종했거나, 그놈 뒤에 누가 있는 거야.’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달리 생각하기엔 왕의 행보가 너무 극단적이었으니까.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짓거리를 너무 태연하게 저질렀고, 자신과 맥라인을 과하게 압박했다.
그건 성군이니, 폭군이니 자질을 논하기 전에 앞뒤를 가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못 한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탈옥을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왕은 스승이 반대를 하건 말건 일을 저질렀을 테니까.
조금 더 시간을 끌었더라면, 왕궁에서부터 유혈 사태와 추격전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시금 속이 타올랐다.
‘빌어먹을. 어쩌다가 이런 일이…….’
제국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그렸던 큰 그림이, 그 근본에서부터 무너져 내린 것이다.
부글부글 들끓는 감정은 자연히 그 원흉이라 생각되는 자에게로 향했다.
‘클레오. 네놈과 네놈의 배후까지 모조리 박살을 내 주마.’
로건은 그 살기를 모두 담아 뿌득 이를 갈았다.
“더 이상 왕의 폭거를 참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왕위에 올린 왕을, 이제는 제 손으로 끌어내려야겠습니다.”
“그래. 그러자꾸나.”
두 부자의 붉은 눈에 흉흉한 살기가 떠오르던 그때.
‘그 소식’이 맥라인에도 들려왔다.
– 검공이 직접 맥라인의 토벌을 선언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로건을 제외한 다른 가문의 사람들에게는 실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 * *
“계속 연결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받지 않으십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 네가 이대로 나간다면 너는 정말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로건.
스승의 경고를 떠올린 로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는데.
주변의 생각은 그와 사뭇 달랐다.
“로건. 아무리 생각해도 검공 각하와 척을 지는 건 너무 간 듯하구나. 그분을 설득할 수 있다면 설득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아버지와.
“로건 공자. 공자는 검공 각하를 상대할 자신이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든 대화로 풀어 봐요. 희생이 너무 클 듯한데…….”
걱정스러운 안색의 에일렌.
“맞습니다. 대공가와의 전면전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지 않겠습니까? 큰 희생이 따를 겁니다. 저 역시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맞장구를 치는 헤인켈까지.
하지만 로건은 그 수많은 염려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번 결정한 일을 바꾸실 분이 아닙니다. 이미 싸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단언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검공 각하만 봉쇄할 수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거다. 네가 자신 없다면 기사단 차원에서 대책을 찾아야지.”
굳은 표정의 아버지가 바로 검공의 봉쇄책을 말했고.
“에스페란자 대공가라……. 부담스럽긴 합니다만, 못 싸울 것도 없지요. 병사들의 사기는 높습니다. 선배들이 연이어 포스유저로 각성하는 것을 보다 보니, 전쟁을 기다리는 놈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옛 기사단장도 병사들의 사기를 운운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군 역시 마찬가지예요. 천이백 명 모두, 가치를 증명할 기회라고 벼르고 있어요.”
시종 걱정스러운 표정이던 에일렌 역시 눈을 반짝이며 투지를 보였다.
왕국 최강이라는 에스페란자 기사단에 다른 귀족들까지 뭉쳐서 쳐들어온다는 말에도, 겁을 먹는 이는 없었다.
‘그럴 만도 하지.’
그들이 그렇게 자신할 정도로 현재 맥라인의 전력은 막강했다.
최근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리베라티오의 생산량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기사의 수도 천 명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기사단의 1/3 이상이 클레이튼이 개발한 아티팩트를 장비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과 루터, 그리고 클레이튼이라는 3명의 초인 전력이 검공과 위켄 칼리아에 비해 좀 부족해 보일 수 있었지만.
“외부의 시선과는 다르게 초인 전력에서는 저희가 우세합니다. 그것도 염두에 두세요.”
“그게 정말이냐?”
“예. 자신 있습니다.”
“……그래. 믿으마. 그럼 확실히 가능성이 더 크겠구나.”
루터 카일은 자신과의 대련을 반복하면서 십수 년간 정체되어 있던 벽을 깨어 가고 있었고.
클레이튼은 이제 과거의 후안 더글라스가 되돌아온다 해도 능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자신은 사실상 초인 중에서도 특별한 경우.
‘어쩌면 나 혼자서도 스승님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 덕에 로건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전력에 대한 걱정은 없다.
이제는 그저 스승을 상대한다는 심적인 부담감만이 남았을 뿐.
그리고.
‘이 충돌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인재가 죽어 나갈 것인가.’
그로 인해 벌어질 변수는 또 얼마나 클 것인가.
그 생각에 마음이 무거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서쪽 멀리에서 도사리고 있는 거인의 그림자를 떠올리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황제.
그를 떠올리면 어설프게 미적거리면서 상황을 길게 끌고 싶지가 않았다.
‘설령 대화가 가능하다 한들, 지금은 아니다.’
합의점을 찾아 한 번 물러서면 계속해서 물러서게 될 테니까.
그렇게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그러니.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확실히 합시다. 우리 맥라인이 얼마나 강한지, 세상에 그대로 보여 줍시다!”
“예!”
선언하듯 쏟아 낸 말에 모두의 투지가 끝도 없이 올라갔다.
그렇게 맥라인 전체가 정신없이 전투 준비에 열중하던 시기에, 로건은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우우웅.
“음?”
품속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마나의 파장에 로건의 미간이 좁혀졌다.
파동의 근원지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무언가 수작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가지고 있었던 작은 구슬 모양의 통신구.
2황자가 건네준, 제국의 통신 기술이 집대성된 그 일회용 통신구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가 그쪽에 연락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더니?’
얼핏 떠오르는 2황자의 잘생긴 얼굴에 다시금 불신감이 느껴져 표정을 구긴 로건이 꺼내 든 구슬에 포스를 살짝 불어넣었다.
그러자 구슬 위로 예상했던 얼굴이 떠올랐다.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로건 공.]“……오랜만에 뵙습니다, 황자 전하.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화기애애하게 덕담을 주고받을 상황도 아니었고, 나더러 연락하라고 줘 놓고는 왜 그쪽에서 통신을 걸어 온 거냐고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단도직입적인 물음에도 황자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로건 공이 곤란한 처지에 몰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통신을 드렸습니다. 타국에서 맥라인 가문의 직통 좌표를 구하기는 어려워서 말입니다.]곤란한 처지라…….
잘도 아는군.
여전히 왕국의 동향을 꿰고 있다는 황자의 말에 로건의 경계심이 한층 짙어졌다.
“조금 곤란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그게 황자 전하께서 제게 연락을 주신 이유가 되는지는 모르겠군요.”
말 돌리지 말고 본론을 얘기하라는 뜻.
[아. 제가 전에 이 통신구를 선물이라고 드렸지 않습니까.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연락을 주시라고 말씀드렸었지요.]“……그 말씀은?”
[혹시나 잊으신 것이 아닌가 해서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곤란한 처지가 은근슬쩍 어려운 상황으로 바뀐 가운데.
로건은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는 황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도움이라 하시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설마 제국의 병력을 파병하겠다는 뜻은 아니시겠지요?”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침략일 테니까.
‘아니, 그럼 정말 도움이 되려나?’
2황자가 그렇게 나온다면, 스승은 검을 돌려 다시 자신과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제국 전쟁은 조금 빨라질지 모르겠지만…….
피식.
‘쓸데없는 생각을…….’
2황자, 제국의 차기 황제가 될 자가 그렇게 멍청할 리는 없었다.
로건이 자신의 마음이 실로 복잡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때.
황자가 또 한 번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요. 원하시지도 않겠지만, 저도 국제적 분란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그러시다면?”
[모르시겠지만, 부족한 몸이나마 저를 돕는 인재들이 조금 있습니다. 그중에는 특출난 재주를 지닌 이들도 있지요. 혹시나 공께서 원하신다면, 검공은 몰라도 그 폭풍검이라는 초인 정도는 암살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암살’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는 황자도 목소리를 한껏 낮췄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로건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초인을 암살?’
물론 같은 초인을 암살자로 투입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초인의 자부심이 암살 같은 일에 응할지도 의문이거니와, 제국의 초인이 왕국 내에서 활동하다 발각되면 그 즉시 제국의 대병력이 직접 침입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그러니.
“초인을 죽일 수 있는 초인이 아닌 자들이 있다……는 뜻입니까?”
[하하. 그런 자가 어찌 흔하겠습니까. 그랬다면 황제 폐하께서도 로건 공에게 그리 큰 관심을 보이시진 않으셨겠죠.]“그럼?”
[로건 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럿 뭉치면 증거를 남기지 않고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인재들이 있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초인을 죽일 수 있는 암살자들이 있다는 뜻.
‘이놈이 자신을 가질 정도면, 정말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거겠지.’
절로 표정이 굳어지고,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전생에서도 소문으로만 들었던 어떤 집단이 그제야 떠올랐다.
새삼 느껴지는 제국의 저력에 소름이 돋았지만, 로건은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흠. 그렇게까지 해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하하하. 무슨 대가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 호의를 기억해 주시고, 앞으로도 계속 친분을 이어 나가면 충분합니다. 서로 돕고 살면 되는 것이지요.]황자의 그 말이 로건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 나중에 네 생각 이상의 대가를 받아 내겠다.
절로 차가워지는 표정.
게다가 대화가 길어지면서, 이 작은 통신구 속에 무언가 정체 모를 기능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로건의 감각에 일반적인 통신구와는 전혀 다른 마나 패턴이 느껴진 것이다.
대가 없는 호의에 이런 수상한 느낌까지 겹쳐지니, 그 기능이 무언지도 얼추 짐작되었다.
‘녹화……려나.’
자신이 제국의 인물에게 자국의 초인 암살을 의뢰하는 광경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이 공개된다면.
그 파급력은 어느 정도일까.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긍정적인 결과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흐음.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하지만 죄송하게도 거절해야겠습니다.”
[네? 흐음. 많이 어려운 상황이실 텐데요? 실리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아하하. 잘못 보셨군요. 제가 자존심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황제 폐하의 제안을 거절했겠습니까.”
[허……. 정말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거절하시겠다는 겁니까?]“자존심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봐 주시면 됩니다. 저와 제 가문의 힘만으로 헤쳐 나갈 자신이 있거든요.”
[으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필요 없다는 분께 억지로 도움을 드릴 수야 없지요.]그 표정에 담긴 아쉬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미끼에 걸리지 않은 물고기에 대한 아쉬움?
[하지만 저와 제국은 당신 같은 영웅이 이런 고난을 겪는 것에 정말 심각한 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도움을 원하지 않으신다니 저로선 상당히 아쉽지만, 이 마음만은 항상 기억해 주십시오.]“물론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그 자신감만큼 일이 잘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제국으로 오십시오. 폐하께서는 다시 한번 같은 제안을 하실 것이고, 저 역시 공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그래. 너도 우리 가문이 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보구나.
로건이 속으로 코웃음을 치는데, 문득 이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타이밍에 이런 연락이라니……?’
2황자의 얼굴 위로, 수상쩍게 굴던 클레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 같았다.
물론 정말 그가 2황자 측 인물이라고 한들 지금은 아무런 증거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지만.
‘……두고 보자.’
로건은 뜻밖의 순간에 드리워진 제국의 그림자에 다시금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동력 삼아 더욱 투지를 불태웠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건투를 빕니다.]피식.
더 이상 말을 길게 잇고 싶지 않았던 로건은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콰직.
잘게 부서진 통신구의 잔해와 함께 푸르스름한 마나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살기 넘치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건이 한옆에 서 있던 드웨인에게 말했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왕국 전역에 공표하라. 무도한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그란디아를 건설하겠다고. 폭군의 요청에 응하는 귀족은 후에 맥라인의 보복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두 번째 내전.
그 시작을 알리는 선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