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폭군을 징벌하겠다. 후환이 두렵다면 우리에게 붙거나 가만히 고개를 숙여라.
맥라인에서 왕국 전역의 귀족들에게 보낸 포고문은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직도 설마설마하고 있던 몇몇 귀족들조차 전쟁을 확신하게 되었고, 왕의 반역자 선포에 관성적으로 모여들던 중소 귀족들은 주춤하는 결과를 낳았으니까.
그리고 결국 왕이 최근에 임명한 대신들을 제외한 귀족들 대다수는 내전을 관망하는 모양새를 택했다.
– 여력이 되지 않아 송구합니다.
하나같이 비슷한 핑계를 대는 귀족들.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에, 도박판에 오르는 것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그 어정쩡한 태도를 왕도, 로건도 당장은 탓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전쟁의 주역은 에스페란자 가문과 맥라인 가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검공은 왕성 앞에 모든 병력이 집결하자마자 그대로 맥라인 타운까지의 진격을 선언했다.
어떤 속셈도, 계략도 보이지 않는 일직선의 진군.
그것이 본인의 성정이 반영된 것인지, 아니면 전쟁을 오래 끌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출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번의 회전으로 모든 것을 끝내자.
마법 통신이 발달한 이 시대에 굳이 사신을 통해 서신으로 전한 이 한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로건은 스승의 그 확고한 성정을 보여 주는 듯한 담백하고 곧은 필체를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전쟁을 길게 끌지 않는 것은 이쪽도 원하던바.
스승은 그 성정상 다른 수작을 부리지도 않을 것이다.
“응하겠다 전하라.”
“……알겠습니다.”
너무 쉽게 나온 대답이 의외였을까.
반 박자 느리게 나온 대답과 함께 사신은 고개를 숙이며 바로 돌아섰고, 로건은 바로 다음 날 출진을 공언했다.
그리고 그날 밤.
전쟁을 선언했을 때부터 아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패드릭이 로건의 방을 찾았다.
“로건. 안에 있느냐?”
– 예. 들어오십시오.
끼이익.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침대 위에서 일어서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옷 차림이긴 했지만, 눈빛이 형형한 것이 전혀 잠들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눈빛 속에서 패드릭은 새삼 아들의 고민을 느꼈다.
“……정말 괜찮겠느냐?”
밑도 끝도 없이 나온 말.
아들을 향한 염려에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나온 질문이었다.
그에 아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왕은 명백하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까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내일 싸워야 할 자는 왕이 아니라 네 스승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대책을 생각해 놨습니다.”
“나는 대책을 묻는 것이 아니다. 승패는 둘째 치고, 정말 네가 검공 각하를 보며 검을 들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거다.”
그 말에 아들이 멈칫하는 것을 보며 패드릭이 다시금 자신의 걱정을 확신하는데.
의외로 로건은 곧바로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예.”
살짝 늦은 대답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더 할 말도 없었다.
아들을 한참이나 걱정스레 바라보던 패드릭은 그저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믿겠다.”
끼이이.
나무문이 닫히는 소리가 귀를 날카롭게 파고들고, 이내 작은 한숨이 나왔다.
아버지가 떠나간 자리 앞에는 그보다 한발 앞서 자신의 방에 들른 에일렌이 놓고 간 찻잔이 있었다.
– 힘내요.
고마웠지만 그만큼 쓴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내가 이 중요한 시기에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있었구나.’
심적인 부담감이 겉으로 드러났으니 주변에서 이러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자신의 모습이 또 병사들의 사기에는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까.
바보 같은 일, 부족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가슴 한구석의 묵직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스승님…….’
내일.
거래로 시작된 인연을 보듬어 주고, 이끌어 주고, 항상 자신의 편이 되어 주었던 사람과 싸워야 한다.
‘이미 돌아갈 길은 없어.’
싸워야 한다.
그리고 이겨 내야 한다.
로건은 새삼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그래.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법이지.”
아무도 없는 방 안, 무겁게 흘러나온 음성이 로건의 마음을 대변했다.
* * * 뿌우우우우.
길게 이어진 나팔 소리와 함께 도열해 있던 병력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안감에 떨던 타운의 영지민들은 진군하는 맥라인 병력의 든든한 모습을 보며 그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물론 정작 그 병사들은 경직된 표정으로 불안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우, 우리 정말 왕성을 치는 거야?”
“그 왕국 최고의 검호라는 사람하고도 싸운다던데?”
“이, 이러다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냐?”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목소리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반박하는 목소리들이 섞여들었다.
“뭔 걱정이야? 대공자님이 하시는 일인데.”
“뭐?”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도 대공자님이 하시는 거면 다 성공했어. 이번에도 잘 될 거야.”
“그, 그렇긴 하지.”
근거 없는 장담.
엄밀히 따져 보면 희망에 기댄 헛소리일 뿐이었다.
그 말을 한 병사조차 전장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서 꺼낸 말이었겠지만.
그간 로건이 이뤄 온 수많은 성과는 그 헛소리조차 그럴듯하게 들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 목소리들을 들은 로건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심리적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뒤로 보이는, 든든한 가문의 전력이 남아 있던 일말의 불안감조차 없애 주고 있었다.
가장 앞에 초인인 자신과 루터 카일이 서고, 그 뒤를 아버지를 비롯한 무려 1,300여 명에 이르는 기사단이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뒤로는 빅토리아를 비롯한 마탑의 정예들이 클레이튼의 지휘에 따라 각자의 골렘으로 수백 대에 달하는 짐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 모두가 리베라티오를 실은 화력의 결정체들.
혹시나 모를 기습을 대비해 대열의 중앙에 자리한 수레들 주변엔 이제는 7천에 이르는 석궁기마대가 빈틈없이 배치되었고, 빛나는 갑옷을 챙겨 입은 1만 5천의 정병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다 네가 만들어 낸 가문의 힘이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아버지가 툭 치며 건넨 말이 마음에 조금 더 힘을 더했다.
‘더구나 이게 전부도 아니지.’
이 외에도 도합 6만에 이르는 자경단의 절반인 3만의 병사들이 진군 도중 합류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영지의 자체 치안을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겨 놓은, 그야말로 총력전.
“단 한 번에, 최대한 빨리 모든 것을 끝내야 합니다. 그게 희생을 줄이는 길입니다.”
로건의 말에 가문의 모든 이가 충실히 호응해 준 결과.
이제는 왕국 전역에 보편화되었다지만, 기사도 죽일 수 있는 무기인 연사 석궁을 일반 영지민들에게 들게 한 것도 모자라 훈련까지 해서 결성한 게 자경단이었다.
지난 내전에서 아이기스 성을 지키며 그 효용성을 넘치도록 증명한 자경단이었지만.
‘스승님도 그 제도를 받아들이는 데엔 난색을 보이셨지.’
영지의 가장 하층민들에게 신분제를 갈아엎을 수도 있는 무기를 쥐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이기스 성에서의 성과 역시 자경단이 아닌 연사 석궁의 승리라고 받아들여질 정도였으니, 그만큼 왕국 귀족들의 상식으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정 외의 전력이었다.
“그러니 반드시 동원해야지요.”
이제 곧 왕국의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기사와 마법사들 같은 능력자들의 전투가 핵심이 되던 전쟁의 기본적인 체계 그 자체가 변했다는 것을.
‘압도적인 힘으로 단번에 박살 내고 왕국의 전력 손실을 최소화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스승님을, 왕국 최강의 오러유저를 내가 꺾어야 한다.’
다시금 떠오른 난관에 로건의 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정말 어려운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승산은 확실히 있어.’
우우웅.
심장에서부터 퍼져 나가며 전신을 충실하게 채우는 힘.
초인으로 각성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는 벌써 오러유저 중급의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가 설계한 대로 개화한 특성이 이미 그 가치를 증명한 것이다.
이 힘과 자신의 특성, 거기에 새로운 신검 비전의 힘.
‘할 수 있다.’
전투를 앞두고 점점 무거워지는 주변의 분위기 속에서, 로건의 눈은 더욱 투지로 빛나고 있었다.
신 맥라인 평야를 넘고 아이기스 성을 지나 산맥을 앞둔 들판.
수백 미터의 거리를 두고 두 가문의 군대가 마주했다.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수는 400명이 채 안 돼. 하지만 기사단 선발 기준이 그대로라면 절대 무시할 수 없지. 다행히 병사 수는 2만이 채 되지 않는다.’
로건은 매의 눈으로 상대 진영의 전력을 빠르게 파악했다.
에스페란자의 병력에 왕의 새로운 측근들의 병력이 더해진 규모.
하지만 9할에 달하는 전력이 오롯하게 에스페란자군이었기에 예상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규모였다.
반면에.
“뭐, 뭐가 저렇게 많아.”
“듣던 거랑 다르잖아.”
“어떻게 된 거야?”
웅성웅성.
로건의 귀에나 간신히 들려오는 상대측 병사들의 목소리.
그들의 동요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맥라인군의 규모는 월등했다.
도중에 합류한 자경단 3만이 합쳐진 맥라인의 군대는 5만을 훌쩍 넘은 대군.
아무리 용감하다 한들 아군의 두 배 이상 되는 적군을 앞에 두고도 태연할 수 있는 병사는 드문 법이라.
‘징조가 좋아.’
벌써부터 적군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며 로건은 말을 몰아 대열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전장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리석은 왕을 쫓아 혼란을 야기하는 무리들은 들어라! 검을 버리고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는 베지 않을 것이다! 나라를 망치는 폭군을 징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데 동참하라!”
아군 병사들의 마음에는 자신감을 불어넣고, 불안해하는 적군의 가슴에는 일말의 불안감을 새겨 넣기 위한 선전포고였다.
그러자 적의 대열 앞으로 한 사람이 천천히 말을 몰아 나왔다.
언제나 든든한 아군으로만 봐 왔던 스승의 얼굴.
로건의 얼굴에 반가움과 안타까움의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데, 스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은 나라의 중심이고, 이 나라의 신하라면 마땅히 왕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뚜렷한 증거 없이 왕을 폭군이라 칭하는 것은 신하의 도리를 어기는 것. 나는 왕실의 검으로서 마땅히 폐하의 명을 따를 뿐이다.”
담담한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전장 구석구석으로 퍼지고.
“그란디아의 군주, 로저스 폰 그란디아 3세의 이름으로 반역자 맥라인을 토벌하겠다!”
스승이 들어 올린 칼끝에서 쏘아진 붉은 오러가 강렬한 빛살과 함께 하늘을 뚫어 버릴 듯 솟구쳤다.
“우와아아아!”
로건이 보기에는 그저 괜한 힘 낭비일 뿐이었지만, 그 화려한 퍼포먼스가 동요하던 적 병사들의 소란을 일순간에 잠재웠다.
그리고.
“전군 진격!”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