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역시 이렇게 되나.’
스승의 검에서 솟구친 오러를 보았을 때부터, 아니 이 전쟁이 정해졌을 때부터 각오는 했던바.
로건은 적들이 진격해 오는 즉시 마주 고함을 질렀다.
“전군 진격! 폭군의 앞잡이들을 박살 내라!!”
그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기사단의 뒤쪽에서 백여 개의 붉은 돌들이 적군을 향해 쏘아졌다.
꽈아아앙!
“아아악!”
이제는 양측 모두가 가지고 있는 연사 석궁의 사거리를 훨씬 넘어 떨어지기 시작한 붉은 폭탄들.
가장 앞에서 돌진해 오던 에스페란자 기사단에서도 조금씩 희생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이내 그 사이에서 전신에 은빛 바람을 휘감은 초인이 튀어나왔다.
“어림없다!”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앞쪽에서 좌우로 쏘아진 은빛 바람이 날아오는 리베라티오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틀어 버리자,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쏜살같이 튀어나온 3m가 넘는 거인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위켄! 오늘에야말로 끝장을 보자!”
루터 카일의 포효.
그와 함께 로건을 비롯한 맥라인 기사단도 적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죽어라!”
“너나 뒈져!!”
꽈아아앙!
챙. 챙!
쾅!
순식간에 가까워진 양 진영의 정예들이 강렬한 소음과 함께 피 보라를 일으켰다.
– 최대한 버티기만 하십시오.
‘오냐. 반드시.’
패드릭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 아들과 나눈 대화를 다시금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에스페란자 기사단을 반드시 쓰러트릴 필요는 없습니다.”
“뭐?”
“어차피 싸움은 저와 스승님의 대결로 끝이 날 것입니다. 왕의 목표는 저고, 그 구심점이 되는 사람이 스승님이니까요.”
로건과 검공, 둘 중 한 사람이 쓰러지면 전쟁이 끝난다.
그 단순한 논리는 이해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에스페란자 기사단을 최대한 빨리 박살 내야 하는 것 아니냐? 검공 각하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런 것으로 흔들리실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양 가문이 피 터지게 싸워 봤자 결국 왕국 전체의 손해일 뿐입니다.”
“……진심이냐? 지금 이 상황에 왕국의 손해를 운운하는 게?”
“무의미한 피해를 줄이자는 겁니다.”
“……몸을 사리다가 오히려 우리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패드릭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로건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기든 지든, 저와 스승님의 대결이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작정하고 버티기로 나선다면 끝장을 보려 싸우는 것보다는 희생이 적겠지요.”
“버티기라. 왕국 최고의 기사단을 상대로 말이지.”
“예. 믿겠습니다, 아버지”
“하아…….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불안하구나. 너, 정말 검공 각하를 이길 수 있겠느냐? 적어도 클레이튼 님이라도 가세해야…….”
로건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면 그 순간 에스페란자에서도 다른 사람이 끼어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또 난전이 되겠지요.”
“난전이 되더라도 승산이 높은 쪽이…….”
“아버지. 제국이 쳐들어온다고 한 말은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이번만 넘긴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가문의 전력을, 나라의 전력을 최대한 보전해야 결국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네가 죽게 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제가 진다면 그냥 바로 항복하시고 스승님께 투항하십시오. 저만 없어진다면 왕도 만족할 테니 저희 가문을 완전히 내치시지는 않을 겁니다.”
“너 지금 그게 무슨……!”
“물론 전 이길 겁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만약의 사태를 말하는 겁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서는 아들의 얼굴에는 분명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계획이 있다고 한들, 그 검공을 상대하는 일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얼굴을 떠올리니 가슴이 무겁기만 했다.
‘내가 못나서 아들한테 모든 짐을 떠넘겼구나.’
자신이 초인이 되었다면, 조금만 더 강했다면…….
두두두두.
“영주님!”
“그래. 보고 있다.”
후우우.
패드릭은 점차 가까워지는 에스페란자 기사단을 보며 긴 숨을 한 번 뱉고는 잡념을 떨쳐 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디그롬. 말한 대로 준비시켰겠지?”
“예! 물론입니다.”
갈색 머리의 기사단장, 디그롬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응대하고.
“호르헤 경. 내가 루이스 경을, 자네가 라이언 경을 막아 내야 하네. 자신 있겠지?”
“맡겨 주십시오, 영주님.”
영지의 두 번째 최상급기사 호르헤 역시 든든한 얼굴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빅토르, 핸더슨. 그쪽은?”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좋다. 절대 무너지지 마라. 오늘 왕국 최고의 기사단, 그 명예로운 이름의 주인을 바꾼다!”
“예!!”
이제는 천여 명에 달하는 여군을 통솔하기 위해 뒤로 빠진 며느리를 제외한 맥라인 최고의 기사들이 만전의 태세를 자랑했다.
여기에 집 나간 둘째 아들도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실없이 머리를 스쳤지만, 장기 의뢰로 남부 산맥에 들어선 녀석은 이미 소식이 끊긴 지 몇 달째였다.
불안하기만 했던 그 무소식이 이제는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만약 모든 것이 잘못되더라도 로니안은 살겠…… 아니, 약한 생각은 그만!’
패드릭은 순간 떠오른 불길한 상념을 황급히 머리를 저어 떨쳐 버렸다.
지금은 큰아들을 믿어야 할 때였다.
부정적인 생각은 아들이 쓰러진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 해도 절대 아들의 당부처럼 쉽게 항복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네가 쓰러지면 내겐 왕국이건 뭐건 의미가 없다. 그러니 꼭 해내거라, 로건.’
그렇게 다짐하며 앞을 직시하자, 어느새 자신의 목표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검공의 오른팔인 루이스 하이온이.
루이스는 다가오는 적 기사단을 보다가 자신과 함께 나란히 말을 달리는 최상급기사 라이언 헤밀을 바라보았다.
– 이 상황에서는 객관적으로 우리가 악인 겁니다. 왕국을 해치는 악이요.
양심을 찌르는 비수 같은 말.
그 말을 꺼낸 장본인.
출진 직전까지도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내에선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중 하나였던 라이언은 계속해서 이 전쟁을 반대했다.
물론 그 마음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라이언. 우리는 대공 각하의 검이다. 알고 있겠지?”
“그거야 당연한 말입니다.”
“그래, 주군의 뜻을 따라 우리의 적을 부순다. 그것만 생각해라!”
“예!”
주군에게 충언하는 것은 분명 기사의 도리.
하지만 그 충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칼을 거꾸로 든다면 그놈은 기사가 아니라 힘센 건달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아는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정예들은 모두가 진정한 기사였다.
‘운명이 이리 꼬인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소이다, 로건 공자.’
다가오는 불꽃 문양 갑옷을 입은 기사들에게 시선을 옮긴 루이스는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포스를 끌어 올렸다.
투구에서 시작해 발끝을 넘어 말까지 강화한 강렬한 포스가 새까맣게 날아오는 쿼렐의 비를 가볍게 튕겨 냈다.
에스페란자는 평기사도 포스유저 중급의 경지.
몰랐다면 모를까, 연사 석궁에 대비해 방패까지 준비한 에스페란자 기사단은 적어도 저 쿼렐의 비에는 꿈쩍도 하지 않으리라 로이스는 자신했다.
물론 문제점은 있었다.
꽈아아앙.
가볍게 쳐 낸 손길에도 터져 나가는 이 붉은 폭탄.
이 폭탄은 조금 위협적이었지만.
‘이제 더는 없다.’
이미 적 기사단과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아군까지 날려 버릴 생각이 아닌 바에야 저들도 더 이상은 폭탄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모든 잡념을 버린 채 오직 적을 부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거창!!”
루이스 하이온의 외침에 따라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선두가 일제히 랜스를 들어 올렸다.
수위기사들마저도 모조리 상급의 경지에 오른 왕국 최고의 기사단.
그 명성에 걸맞게 랜스의 끝에는 이글거리는 붉은 포스가 타오르고 있었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능력자들의 전투.
두 배나 차이 나는 병력을 앞에 두고도 맹렬히 돌진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걸리는 모든 것을 분쇄하고 뚫어 버릴 수 있는 최강의 창이었으니까.
그런데 랜스를 들어 올린 루이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랜스가 아니라 방패? 무슨?!’
의아함에 미간이 좁혀지는데, 그 의문을 따져 볼 겨를도 없이 충돌이 일어났다.
꽈아아아앙!
전장을 울리는 굉음.
두 기사단의 충돌은 전장의 모든 소음을 압도하는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결과.
누군가의 상상과는 조금 다르게, 또 누군가의 상상에는 완벽히 부합하게.
서로의 돌진이 멈추고 치열하게 대치하는 형국이 만들어졌다.
자신의 구겨진 랜스를 내던진 루이스가 저릿저릿한 손목을 풀며 검을 꺼내 들었다.
‘빌어먹을! 골렘이라고? 어떻게 골렘 따위가 내 창을…….’
양 진영이 충돌하기 직전.
지면에서 불쑥 솟아난 50여 개체의 전투 골렘들이 에스페란자 기사단 선두의 돌진을 일차로 막아 내고, 맥라인 기사단의 방패가 그 뒤를 이어 랜스와 충돌했다.
그로 인해 오히려 랜스를 든 에스페란자 기사단이 뒤로 밀려나며 진형이 무너질 뻔했다.
골렘들은 그 한 번의 충돌로 모조리 부서졌지만, 이미 단번에 적을 관통하려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간 뒤였다.
그리고 눈앞에는 아직도 두 배가 넘는 수의 적기사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명색이 기사가 되어서 랜스 차징이 아니라 꼼수만 연습하셨나 봅니다.”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지만, 적의 표정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다.
“에스페란자 기사단을 상대하는데 소홀할 수 있나. 철저히 연습했지.”
루이스를 약 올리듯 박살이 난 라운드 실드를 집어 던진 패드릭이 이제는 자신의 애검이 된 벨로치타스(Velocitas)를 꺼내 들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유감이네, 루이스 하이온 경.”
“저도 유감입니다, 후작 각하. 하지만 봐 드릴 수는 없겠군요.”
화르륵.
루이스의 검에서 불꽃 같은 포스블레이드가 솟구쳐 올랐다.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돌격이 막히고 대치하게 된 순간부터 전세가 기울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데 어찌 여유를 부리겠는가.
하지만 상대의 태도는 그와 정반대였다.
“굳이 우리끼리 열 낼 필요가 있겠는가?”
“타압!”
패드릭의 말을 무시한 루이스가 그대로 달려들었지만.
채애애앵!
그그그극.
검을 맞부딪치며 인상을 쓰는 와중에도 패드릭의 혀는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싸움의 결과는 다른 쪽에서 결정이 날 텐데 말이야.”
패드릭이 전장의 중심 부근을 흘긋 바라보며 말했지만.
“그 결정이 나기 전에 각하는 제 손에 죽을 겁니다.”
그그극.
쾅!
루이스의 투지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그에 혀를 찬 패드릭 역시 긴장한 눈빛으로 그를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
패드릭의 시선이 잠시 향했던 곳에서는 이번 전장의 주역들이 검을 꺼내 들고 있었다.
검은 말에서 내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스승의 모습을 보며,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중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스승의 모습이 그새 많이 변해 있었다.
윤기 나던 금발 머리는 절반 이상이 새하얗게 새어 있었고, 얼굴에도 깊은 주름이 뚜렷하게 보였다.
‘……스승님.’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인연으로 만나, 더 나은 미래를 얻고자 함께 노력해 왔는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게 되었을까.
‘하지만.’
꾸욱.
씁쓸한 마음과는 달리, 검을 쥔 손에는 오히려 힘이 들어갔다.
“해야만 한다.”
혹시나 마음이 약해질까, 소리 내어 각오를 다진 로건은 그대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그러자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스승의 굳은 표정이 확대되듯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스승의 검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