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황금빛과 붉은빛 서광이 충돌하며 터져 나온 그 찬란한 빛이 전장에 존재하는 모든 이의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그 결말을 알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아주 작았다.
콰직.
하지만 그 작은 파열음이 만들어 낸 결과를 목격한 이들은 하나같이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털썩.
“크흑.”
검공이 작은 신음과 함께 무릎을 꿇자.
푸슈슉.
그의 복부에 새겨진 자상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단순한 관통상이 아니었다.
오러 자체를 파괴하는 기이한 파장이 온몸에 퍼지고 있었고, 손끝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무력감이 그를 엄습했다.
쿨럭.
“크…… 이런…….”
털썩.
“스승님…….”
피를 토해 내며 쓰러지는 스승을 보며, 로건은 안타까운 마음에 입술을 짓씹었다.
전신을 난도질당한 듯 피로 뒤덮인 채 비틀거리는 로건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것은 특성을 해제하며 찾아온 탈력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친 몸에 더불어 스승에게 칼을 꽂았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영혼을 억누르는 느낌.
하지만 전장의 모든 시선이 제게로 몰린 지금, 로건은 그 죄책감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이를 악물고 몸을 똑바로 세운 로건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느새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해진 전장.
“전쟁은 끝났다.”
로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 침묵을 뚫고 전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쨍그랑.
루이스가 손에서 검을 떨어트린 것을 시작으로, 에스페란자 기사단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빌어먹을!”
그것은 루터에게 일방적으로 몰리던 위켄 칼리아 역시 마찬가지.
일말의 반발도 없는 그 거짓말 같은 광경에 지켜보던 맥라인군 모두가 놀라는데.
“주군의 뜻에 따라 맥라인에 항복한다! 모두 검을 버려라!”
무릎을 꿇은 루이스 하이온의 한마디가 전쟁의 끝을 알렸다.
“제가 주군을 모셔도 되겠습니까?”
붉어진 눈으로 쓰러진 검공을 바라보던 루이스가 조심스레 건넨 한 마디에 로건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자신을 위해 준비했던 최상급 포션을 꺼내 내밀었다.
“사제에게 치료를 받을 때까지 견뎌 내시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빨리 모시고 가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로건 경.”
루이스는 포션을 받아들자마자 절반은 복부의 상처에 뿌리고 나머지 반은 입에 물렸다.
하지만 조치를 했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스승의 얼굴을 보며, 로건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스승이 제때 신전에 도착하더라도 과연 살아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의 여력도 남길 수 없었던 결전.
여유를 두었다면 쓰러진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 마지막 순간이 마음에 걸렸다.
힘이 다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멈춘 것인지 알 수가 없던 스승의 그 마지막 검격이.
‘스승님…….’
그 안타까운 마음이 급히 스승을 부축해 돌아서는 루이스의 발걸음을 한 번 더 붙잡았다.
“왜 그렇게 쉽게 항복한 겁니까?”
루이스의 외침에 에스페란자 병력이 바로 항복하자, 비율상 얼마 되지 않은 왕실근위대나 다른 귀족들의 군대 또한 싸울 의지를 잃었다. 거의 약속한 것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진 항복 선언 덕분에 길어질 수도 있었던 전쟁이 최소한의 희생만으로 빠르게 마무리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역시.
“주군께서는 혹시나 자신이 패하면 곧바로 항복하고, 맥라인에 전폭적으로 협력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의미한 희생을 피하라고…….”
자신이 아버지에게 남긴 것과 같은 말.
비록 그 방향이 달라 충돌했을지언정, 사제의 생각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한숨이 나왔고, 그 안타깝고 복잡한 마음은 결국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어리석은 왕의 처세에 대한 원망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었다.
뿌드득.
“맥라인과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정예를 모아라! 바로 왕성으로 돌격한다!”
“로건?!”
“아버지, 전장의 뒷정리를 부탁드립니다.”
히이이잉.
“저는 왕을 잡아 이 전쟁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로건의 눈빛이 분노로 타올랐다.
곧 1,200명이 넘는 기사가 로건의 뒤를 따라 왕성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맥라인의 승리로 끝났다. 그에 굴복한 에스페란자 기사단이 맥라인과 연합하여 왕성으로 향하고 있다.
소문은 말보다 빨랐다.
사람들은 전쟁이 너무나도 쉽게 끝났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왕국을 양분하는 두 대가문의 전투가 큰 희생 없이 끝났다는 것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이들 모두가 한 가지 미래를 말하기 시작했다.
– 왕은 끝났다. 이제 맥라인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 짐작은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지 불과 3일 후.
로건이 기사단을 이끌고 왕성에 도착했을 때 분노에 찬 그를 맞이하는 것은 그저 겁에 질린 왕도의 주민들뿐이었다.
두두두두두.
“길을 비켜라!!”
“히이이익!”
“구, 군대다!”
“어, 엎드려!”
도망칠 생각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엎드리는 주민들.
로건은 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로 대로를 질주했다.
‘왔다!’
보기만 해도 찬사가 나오는 아름다운 왕성, 그랑피아.
그러나 그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모습도 로건의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화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 모습이 분노를 부채질하는 듯했다.
“흥!”
굳게 닫힌 성문을 향해 쏘아진 황금빛 오러가 누구나 찬사를 바치던 아름다운 성문을 그대로 강타했다.
꽈아아아앙!
산산히 부서져 흩날리는 성문.
그 앞에서 로건은 왕성 전체가 울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왕성을 점령하고 반항하는 자는 모조리 베어라! 왕과 클레오, 그리고 새로운 국무대신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예!”
로건의 고함과 함께 왕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기사들.
그 앞을 가로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결국엔 이리되는가…….”
왕궁의 첨탑 아래.
수도의 가장 높은 곳에 선 왕은 저 멀리 수도를 향해 달려오는 불꽃 모양의 깃발들을 보았다.
그 깃발 아래, 같은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선두를 달리고 독수리 문양의 갑옷을 두른 기사들이 그 뒤를 받쳤다.
“싸우라고 보냈더니 결국 하나가 되는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검공의 충성심을 믿고 한 도박은 결국 실패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셔야 합니다, 폐하. 로건 맥라인이…….”
옆에서 언제나 힘이 되어 주었던 신하 클레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어디로?”
왕, 로저스 1세의 목소리는 이미 힘을 잃은 채였다.
“예?”
“어디로 도망쳐서 무엇을 한단 말이냐.”
“후일을 도모하셔야지요. 왕실 마탑에 피난처가 있사오니…….”
“되었다. 그리 숨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검공이, 아니 검공의 충성심이 내가 걸 수 있는 마지막 패였다. 그 패가 틀어진 이상 내 운명은 끝난 것이야.”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클레오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조아리는데.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대까지 목숨을 걸 필요는 없으니, 이제라도 떠나라.”
“폐하! 제가 어찌…… 저랑 같이 가시지요. 말씀드린 왕실 마탑으로 가시면…….”
“아니. 되었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무얼 하겠느냐.”
왕은 더 이상 반문을 받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렇게 시선을 던진 곳에서는 성문이 박살이 나서 흩어지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이 꼭 자신의 미래를 보여 주는 것 같아 왕은 또 한 번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왕으로서 죽겠다. 그러니 그대는 따로 살길을 찾아라.”
“……폐하.”
“로건 맥라인은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남겨 두려 하지 않을 터. 죽기 싫다면 빨리 움직여라.”
마지막까지 곁에 남은 유일한 신하.
왕은 클레오를 그저 그렇게 기억하기로 했다.
그에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던 클레오가 몇 번이고 다시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그의 시선이 향한 것은 왕이 연신 홀짝이고 있는 술잔.
그것을 한참 지켜보던 클레오는 계단을 내려서는 왕의 뒷모습을 향해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는 이내 결심한 듯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졌다.
* * *
“별궁 구석부터 뒤져!”
“1조는 왕의 집무실과 침실로!”
“저기 새 국무대신이다!”
저벅저벅.
로건은 왕성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기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곧장 왕궁의 대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대전의 입구를 장식하는 거대하고 웅장한 문은 지키는 이 하나 없이 비스듬하게 열려 있었다. 그 방치된 듯한 모습은 로건의 가슴에 짙은 씁쓸함을 불러일으켰다.
전생의 경험이 가져다준 기시감 때문이었다.
‘망국의 마지막은 항상 이러한가…….’
전생에 제국군이 만들어 낸 참상을 지금 자신이 재현하는 느낌.
웅장하지만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대전의 문을 보며 로건은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니, 그 망국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애초에 계획했던 모든 계획은 이미 많이 틀어졌다.
하지만 자신이 이 나라의 실권을 완전히 틀어쥐고 다시 시작한다면, 이 정도의 변수는 오히려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리라.
로건은 그리 각오를 다지며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점검하며 다시금 생각을 정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했다.
‘다른 놈은 몰라도 클레오는 잡아야 해. 지하 감옥에서의 그 일, 그건 단순히 간신이 할 만한 일이 아니야. 왕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고, 그로 인해 벌어질 결과는…….’
자신과 왕의 대립뿐.
그리고 그 대립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 역시 분명했다.
‘제국.’
제국에서 황제가 보여 준 배포는 그가 힘으로 압박할지언정, 뒤에서 음모를 꾸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무의식에 심어 주었다.
하지만 일이 이 정도에까지 이른 상황에선 의심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모습도 수작일지 모르고, 어쩌면 황제가 아니라…… 2황자 그놈일 수도 있다.’
전쟁 직전에 2황자가 걸어 온 수상한 통신.
물론 그가 클레오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경우의 수가 없다면…….
‘아무리 황당한 결론이라도 그것이 진실이다.’
거기에 왕이 망가지기 시작한 시점이 상당히 공교로웠다.
클레오가 왕의 측근으로 등장한 시기와 일치했으니다.
‘스승님이 그리 칭찬하시던 왕재가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건 정상적인 변화라고 볼 수 없어. 분명히 놈이 무언가 수작을 부렸을 거야.’
전쟁 직전 데미안이 가져다준 정보를 다시금 떠올리며 로건은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도망쳤다 해도, 세상 끝까지 쫓아서라도 잡는다.”
뿌득.
또다시 분노가 치밀자 로건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최대한 빨리 왕성으로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3일의 시간이 흘렀다.
도망치기에는 충분한 시간.
물론 로건도 왕이나 클레오를 왕성에서 바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던 터였다.
기사들을 동원한 이 무력시위는 그저 왕성을 점령함으로써 이 나라의 실권이 이제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상징하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틀어쥐고 도망친 자들을 잡아들이겠다, 그런 생각이었는데.
그그그긍.
쾅!
억지로 밀어낸 대전의 문 사이에서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왔군, 로건 맥라인.”
대전의 상좌에서 울려 퍼지는 왕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