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두두두두.
1만이 넘는 기마가 들판을 질주하며 지축을 울리는 굉음을 만들어 내는 가운데.
선두에 선 붉은 머리, 붉은 눈의 중년인이 연신 목청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달려! 달려라!”
맥라인의 석궁기마대를 주축으로 한 총 1만에 다다르는 기마 병력.
전장을 수습한 후, 최대한 빨리 달릴 수 있는 정예들만 추려 구성한 병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예들에게도 최소한의 휴식만을 취하며 하루가 넘도록 계속해서 질주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결국.
히이이이잉!
대열의 후미에서 힘겹게 따라붙고 있던 말 하나가 힘없이 고꾸라졌다.
“젠슨!”
주변에 같이 달리던 동료들이 애타는 목소리로 동료의 이름을 불렀지만.
“낙오자는 버린다! 앞만 보고 달려라!”
총교관 카이솔론의 서슬 퍼런 고함에 석궁기마대의 시선은 다시 전면에 고정되었다.
이미 몇 번이고 일어났던 일.
이 중에 무리하고 있지 않은 이가 없었지만, 그들의 앞쪽에서 영주가 연신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절대 속도를 늦추지 마라! 휴식은 최소한으로만 취한다!”
전장을 정리하느라 지체된 사이 앞서간 로건과의 거리를 최대한 빨리 좁히겠다는 각오가 어린 외침.
영주가 벌건 눈으로 그렇게 솔선수범하니, 병사들 역시 이를 악물고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리한 질주를 이어 가는 가운데.
저 멀리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일단의 병력이 보였다.
“아머드 자작가의 깃발입니다!”
가문의 문장을 알아본 한 병사의 외침에 패드릭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갈 길이 급한데.’
으득.
보이는 것은 잘해야 50여 명의 기사와 그 열 배 정도 되는 수의 병사들.
기사단이 빠졌다고는 하나 맥라인의 석궁기마대도 정예 중의 정예.
그들의 연사 석궁만으로도 작은 기사단 하나 정돈 녹여 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만약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적대하는 얼간이들이라면 그냥 박살 내 버리면 된다.
“전군 전투 준비!”
패드릭의 살기 어린 외침에 질주하던 병사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석궁을 준비하고 칼과 창을 꺼내 드는 병사들.
숨 몇 번 몰아쉴 순간에 전투 준비가 끝났다.
그 단면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가 드러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무기를 휘두를 일은 없었다.
“후작 각하! 사무엘 아머드 자작입니다! 저희도 맥라인의 군대에 합류하겠습니다!”
가장 앞쪽으로 나서서 연신 깃발을 흔들어 대는 살집 있는 중년인의 모습.
실제로 그를 따르는 기사나 병사들은 전혀 전투를 대비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도 무기를 꺼내지 않았고, 특별한 움직임도 없었다. 심지어 혹시 오해할까 두려웠는지 고개까지 숙인 상태였다.
‘음?’
패드릭이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살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회전이 끝난 지 이틀이 되는 시점.
이제 맥라인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니 이쪽으로 붙는 이가 나올 수도 있음을, 아니 많이 나올 것임을 패드릭은 그제야 생각해 낸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처는 간단했다.
“그대로 질주한다!”
두두두두.
마치 자작의 외침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대로 내달리는 맥라인 군들.
그에 기세 좋게 소리를 질렀던 사무엘 아머드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자, 잠깐……!”
1만 군세의 돌진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건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지는 일이었으니까.
“아머드 자작! 길을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뚫고 지나가겠다!”
들판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패드릭의 음성에 자작과 그의 병력들이 화들짝 놀랐다.
“후, 후작 각하! 저는 지원차……!”
“시끄럽다! 지원하려거든 알아서 따라붙어!!”
두두두두.
일만의 기마는 그대로 들판을 질주했고, 대세에 편승하려 깃발을 높게 들어 올렸던 사무엘 아머드는 황급히 길을 비켜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당황스러운 일.
하지만 그가 이 자리에 왜 왔던가.
이미 회전에 승리하여 대세가 된 맥라인이다.
지금이라도 한 발을 걸치려면 다른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따라붙어!!”
그 역시 이를 악물며 그 후미를 따라붙을 수밖에.
히이이잉.
하지만 사무엘 아머드의 바람은 그리 쉽게 실현되진 않을 듯했다.
그 후로 이틀 동안, 그와 똑같이 맥라인의 후미에 달라붙은 중소 귀족의 군대만 해도 10개의 가문, 5천이 넘는 대병력이었으니까.
두두두두.
“저게 다 몇 명이야?”
“과연 맥라인…….”
“정말 세상이 바뀌려나.”
웅성웅성.
성문을 통과해 쏟아져 들어오는 병력들.
길거리에서, 혹은 집에 숨어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짙은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바로 직전에 천이 넘는 기사단이 왕성을 향해 내달리는 것을 본 마당이다. 한데 그 뒤를 이런 대군이 바로 잇는다니.
귀족들의 정치야 일반 시민들이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선 그들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외성에 들어선 패드릭의 외침은 그런 수도 시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1조에서 5조는 내성 동쪽, 5조에서 10조는 남쪽, 11조에서 15조는 북쪽, 나머지는 서쪽을 뒤져라! 귀족들을 전부 억류하여 왕성으로 끌고 와!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예!”
“후, 후작 각하! 저희는 뭘 하면 됩니까?”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바로 왕성으로 뛰쳐 들어가려던 패드릭이 살기 어린 눈으로 사무엘을 바라보았다.
히익.
그 살벌한 기세에 사무엘이 절로 움츠러드는데.
“지금부터 수도 전체에 계엄령을 펼친다! 너희는 외성 전체를 훑으며 혹시 도망친 귀족들이 보인다면 죄다 잡아 놓아라!”
다행히도 패드릭은 그들에게 수도를 점령하는 데 한 축이 될 수 있는 임무를 맡겼다.
“예!”
“알겠습니다!”
“충심으로 수행하겠습니다.”
맥라인의 뒤를 따라온 중소 귀족들이 저마다 큰 목소리로 답했지만,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패드릭은 이미 내성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 이보시오. 이 안에는 아무것도……!”
“비키시오! 반항은 용납하지 않소이다!”
“아니, 여긴 우리 집……!”
우당탕.
패드릭이 달려가는 중, 이미 곳곳에서 병사들에 의해 집들이 뒤집히는 것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귀족들의 저택은 거의 풍비박산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난장판이 되고 있었는데, 그 난리를 가속하는 것은 소수의 기사나 사병을 동원해 저택의 입구를 막고 있는 이들이었다.
“감히 반란군 주제에 귀족을 억압해?! 썩 물러서라!”
한 뚱뚱한 귀족의 말에 따라 그 휘하의 기사 둘이 병사들을 압박했다.
뽑아 든 검에서 아련하게 일렁이는 붉은 기운으로 보아 최소 중급의 기사들.
“아무리 무도한 반역자라도 귀족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병사들 꼴을 보니 맥라인의 수준을 잘 알겠다!”
귀족의 거센 반발에 주춤주춤 물러서는 병사들.
주변의 모든 시선을 끌어들이는 그 거친 저항에 패드릭이 직접 나섰다.
“비켜라!”
촤아아악!
버럭 소리치며 그 사이로 끼어든 패드릭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던 누군지 모를 귀족의 목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히, 히익!”
기겁하는 귀족의 부하들을 일견한 패드릭은 그 귀족 앞에서 멈칫했던 자신의 병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반항하면 죽여라! 수도 내에 세력이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은 모조리 잡아들이란 말이다! 머뭇거리면 너희들이 죽는다!”
“예, 옛!”
서슬 퍼런 살기가 아군의 병사들을 덮치자, 병사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빠릿빠릿하게 대답하고는 서둘러 수색을 재개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순간, 사병을 내세워 저항하려던 다른 귀족들의 목이 동시에 움츠러들었다.
그때부턴 일이 좀 더 쉬워졌다.
“예외는 없다! 귀족들은 모조리 잡아들여!”
그 강렬한 외침에 자극을 받은 걸까.
맥라인의 병사들은 더욱 과감하게 귀족들의 저택을 뒤지기, 아니 부수기 시작했다.
쾅!
“여기 숨어 있는 놈들이 있다!”
“끌어내서 묶어!”
“악! 이 미친놈들아!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퍼어억.
“끄……?”
털썩.
“빨리 묶어서 치워! 바로 다음 저택으로 간다!”
귀족들의 발악은 더 이상 맥라인의 병사들을 흔들지 못했다.
“서둘러!”
그랑의 내성 곳곳에서는 그처럼 험악한 광경이 연달아 벌어지는 가운데,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이는 귀족들도 있었다.
“히이익. 모, 목숨만 살려 주시오. 목숨만.”
병사들이 들이닥치자마자 엎드려 벌벌 떠는 겁쟁이도.
“저항하지 않겠다. 식솔들의 안전만 보장해 다오.”
스스로 무릎을 꿇는 귀족도 있었고.
“하하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사병들도 빌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플로이드 백작 각하의 사촌인데…….”
한술 더 떠 뒤늦게 맥라인 파임을 주장하며 오히려 돕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혼재했다.
그렇게 수도 그랑은 유례없는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 갔다.
‘다행이다. 귀족들은 얼추 정리되고 있어.’
내성을 한 바퀴 돌며 그런 아수라장을 만들어 내는 데 단단히 일조한 패드릭은 거침없이 내성의 가장 안쪽, 왕성을 향해 나아갔다.
“충! 영주님을 뵙습니다!”
왕성의 부서진 정문을 지키던 기사들이 패드릭을 보자마자 경례했다.
패드릭은 그에 대답하는 대신 그대로 날 듯이 말에서 뛰어내렸다.
“로건은?”
“안쪽의 대전 방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기사단 전체가 왕성 점령에 나섰고, 저희는 외부 경계조로 남아 혹시나 모를…….”
“알겠다. 수고해.”
대답을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할 말만 마치고 사라지는 패드릭.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당황하던 기사들은 이내 곧 자신들의 본분을 다시 떠올리며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온통 혼란스러운 거리.
패드릭이 처음 지시했던 것처럼 조사와 억류가 아닌, 마치 전쟁통이 된 듯한 내성의 풍경이었지만, 그들은 그저 담담하게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 혼란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들이 모시는 주군이었으니까.
– 이것은 반란이다. 완벽하게 제압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주군의 그 완벽한 논리에, 기사들은 요란하게 파괴된 거리의 모습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엇! 충! 외성 별궁 제압 완료했습니다.”
“헉! 영주님! 내성 3궁전 제압 완료했습니다.”
다급히 움직이는 패드릭의 발걸음 사이로 그를 알아본 기사들의 인사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패드릭은 그저 고개만 까딱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는 아들이 간 것으로 추정되는 길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왕성을 제압하고, 수도의 귀족들을 제압했다. 도망친 놈들이야 있겠지만, 대세가 될 순 없어.’
두근두근.
최악을 감수했던 내전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해서일까.
유난히 세게 뛰는 심장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쯤, 패드릭은 이미 열려 있는 대전의 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옥좌 위에 피를 토하고 쓰러진 왕의 시신이었으니까.
“으음…….”
각오하고 있었던 일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일순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시선은 그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아들에게로 옮겨 갔다.
이미 고여서 굳기 시작한 왕의 피.
그것을 보며 우두커니 생각에 잠긴 아들.
유난히 깨끗해 보이는 아들의 검이 잠깐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다.’
무거운 돌이 영혼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패드릭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그제야 시선을 돌린 아들과 눈이 마주친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