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수도 그랑의 5대 마탑.
그 기원은 그란디아를 세운 공신 중 다섯 대마도사가 각자의 영지 대신 세운 탑이었다.
각기 위자드, 불, 물, 바람, 땅의 학파를 상징하는 대마도사들이 그랑의 번영을 기원하며 수도의 중심과 동서남북에 각각 세운 마탑은 개국 초기만 하더라도 철저한 왕당파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흐르는 동안, 마탑은 왕권이 약해질 때는 귀족파에 붙었다가 왕권이 강해질 때는 다시 왕당파에 붙는 짓거리를 반복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외부 세력의 침공 같은 국난 상황이 아니고서야, 어느 곳의 통제도 따르지 않는 독자적인 이익 집단처럼 변모하였다.
지금과 같이 왕실이 뒤엎어지는 사태가 일어나도 왕실 마탑을 제외한 다른 4대 마탑은 그저 멀뚱히 지켜보고만 있을 정도.
하지만 그들이 그런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수 있었던 건 권력자의 압박이 들어오면 언제든 다른 세력을 택할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맥라인의 이름 아래 왕국의 모든 것이 통합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그들도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4대 마탑의 탑주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체이슨 리버필드 공은 역시 바로 굴복한 것인가?”
“왕궁 내부에 천 명이 넘는 기사들이 들어갔다 합니다. 왕실 마탑이 어찌 반항할 수 있겠습니까.”
불의 마탑 탑주, 프레이머 칼슨의 말에 바람의 마탑 탑주, 길버트 리모어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저 확인하는 것뿐이라 듣고 있던 다른 두 마탑주는 아예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느라 바쁜 것이리라.
그만큼 4대 마탑의 마탑주들이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무겁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대지의 마탑주 레디오스 크라테는 연신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그의 내심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과거에 대한 후회 때문에.
‘그때 맥라인에게 더 잘해 주고 확실히 연을 맺었어야 했나. 아니, 아니야. 그렇게까지 해 줬는데 뭘 더 잘해 줘. 문제라면 클레이튼인데…….’
맥라인과 좋다면 좋은 인연이 있는 대지의 마탑.
하지만 이제는 왕국 유일의 마도사로 이름 높은 클레이튼과 있었던 알력이 그를 근심하게 만든 것이다.
‘에버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보겠다고 너무 심하게 구박했어.’
과거의 라이벌이자 클레이튼의 스승을 떠올린 레디오스의 표정이 그답지 않게 처연하게 변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던 걸까.
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한 박자 늦게 인식했다.
“……레디오스 마탑주!”
“음? 아…… 프레이머 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지금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 거요? 이 상황에!”
불의 마탑주답게 성격이 불같은 프레이머의 호통에 레디오스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다 같은 마탑주면서도 마치 자신을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는 듯한 느낌.
실제로 이제 구순에 이른 프레이머는 마탑주들 중 최연장자로, 사실상 그의 스승과 같은 항렬의 마법사였다.
레디오스는 곧바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프레이머 님. 고민이 많은 터라…….”
“그래. 그 고민을 터놓고 길을 찾아보자고 모인 거 아니겠소! 그러니 레디오스 마탑주부터 생각을 얘기해 봅시다.”
새하얗게 센 눈썹 아래 형형한 주황빛 눈동자가 자신을 직시했다.
주름살 가득한 얼굴, 신경질적인 눈초리.
성격 더러운 고위 마법사의 표상과도 같은 얼굴의 프레이머가 자신을 노려보자 레디오스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흠…… 관례가 있는데 맥라인이 굳이 무리해서 우리 마탑들을 공격하려 하겠습니까? 우리가 뭉치…….”
쾅!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지금 장난하나? 관례를 존중하는 사람이 스승을 베고 왕을 죽였겠나!”
“아니, 제 말은…….”
“생각 없이 내뱉지 말고 확실한 대안을 말하란 말이야!”
90이 다 된 노인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졸지에 면박을 당한 레디오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프레이머의 말에 틀린 점은 없는 터.
그는 입술을 깨물며 혼란스러운 정신을 수습했다.
지금은 옛날 악연이나 떠올릴 때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생각 정리가 덜 끝났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신 레디오스가 자신을 바라보는 마탑주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우리 세력을 유지하려면 힘을 모아서 의사를 확실히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를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알리는 겁니다. 맥라인도 왕국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이 시기에 수도 내부에서 말썽이 일어나길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 이제야 좀 정신을 차린 것 같군.”
그 말을 듣고서야 프레이머의 얼굴이 조금 펴졌지만, 그 옆에 있는 물의 마탑주 레겐 피에타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러다가 맥라인이 먼저 우리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지금 수도에 모인 전력만 해도 우리 마탑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병력입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수를 쓸까요? 우리 마탑들도 어찌 보면 왕국의 중요 전력인데…….”
레디오스가 그 극단적인 생각에 이견을 말해 봤지만, 이미 레겐의 못마땅한 시선이 제게 쏟아지고 있었다.
프레이머처럼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지만,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
자신과 비슷한 나이임에도 10년은 젊어 보이는 잘생긴 얼굴이 레디오스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다.
하지만 욱하는 그의 표정을 본 바람의 마탑주 길버트 리모어가 책상을 치며 이목을 끌었다.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낙관적인 예상도 결국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너무 서두르는 것도 좋지 않지만, 맥라인의 반응을 보고 대책을 정하는 건 또 너무 늦겠지요.”
그래서 뭐 어쩌자고?
나머지 세 마탑주의 사나운 시선.
하지만 온화한 인상의 노인, 길모어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쩌면 맥라인은 우리 마탑들에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괜히 자극하는 것보다는 내부의 반응을 읽고 한 발자국만 먼저 움직이는 형태로 갔으면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내부에 확실한 정보원을 심어 둬야겠지요.”
“정보원을 어떻게 심느냐는 둘째 치고, 그러다 갑자기 뒤통수라도 맞으면?”
레디오스는 꽤 합리적인 의견이라 생각했지만, 성격 급한 불의 마법사의 마음에는 들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신경질적인 표정에도 길모어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걸 경계하면서 조심스레 움직이자 이거지요. 더구나 제가 알기로는 그 마도사, 골렘 마스터가 대지의 마탑 출신이라고…….”
길모어의 시선을 따라 모두의 눈길이 레디오스에게로 모여들었다.
올 것이 왔군.
가장 꺼내기 싫었던 주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레디오스의 마음속에 묵직한 짐이 얹어졌다.
애써 가슴 한편에 치워 두었던 이야기들이 다시금 머릿속을 괴롭히자, 그는 쓴웃음으로 그 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 네. 그렇긴 합니다만.”
“독립했다곤 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동문이었는데, 협력은 몰라도 사전에 정보 정도는 얻어 오실 수 있겠지요?”
마도사를 정보원으로 활용하자.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아…… 확실히 그 정도면.”
“좋은 생각이야.”
다른 이들의 눈빛에 떠오른 희망의 빛.
하지만 그 눈빛은 레디오스에게 답답함만을 안겨 주었다.
그게 될 리가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 그게…….”
이런 상황에서 멀리서 그림자만 보여도 돌아서 피해 가야 할 사이라고 고백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헛된 장담을 하는 것도 결국은 자충수임을 아는 레디오스가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입술만 씹고 있을 때였다.
– 로, 로건 맥라인 각하와 마도사 클레이튼 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외부의 목소리가 마탑주들의 인상을 확 굳어지게 만들었다.
* * * 끼이이.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이는 단 두 사람뿐이었다.
이 시국에 아무런 호위 병력도 없이 왕도 북쪽 끝에 있는 불의 마탑으로 당당히 찾아온 이들.
하지만 그런 둘을 무모하다 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러유저와 마도사.
설령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방문이 아니라 마탑이 작정하고 함정을 파 놨더라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초인이 그들이었으니까.
그것을 알기에 마탑주들은 두 사람이 아무런 기세도 풍기지 않음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을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걸어 들어온 로건은 그들이 회의 중이던 탁자 너머, 마탑주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들 모여 계셔서 다행입니다. 하나하나 따로 찾아갈 수고를 덜었군요.”
의미심장한 말과 그 뒤에 자연스레 시립한 클레이튼까지.
자연스레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에 마탑주들의 반응이 조금 늦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은 나라가 불안정한 상태요. 그래서 하루빨리 왕국을 안정화하기 위해 마탑들의 협조를 구하러 왔소.”
클레이튼의 말에 마탑주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여기 클레이튼 님을 중심으로 왕국 5대 마탑의 명령권을 일원화할 것입니다. 탑주 분들의 원활한 협조를 바랍니다.”
로건은 잠시의 여유도 두지 않고 선언하듯 말했다.
“예?!”
“아니, 그런!”
“마탑들은 언제나 중립을 지켜 왔습니다, 로건 공!”
“이건 관례를 무시한…….”
쾅.
마탑주들의 목소리는 책상 위에서 울린 소음 하나에 씻은 듯 사라졌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로건의 손에서 시작된 기묘한 기세가 마탑주들의 전신을 압박하고.
“국가적인 비상 상황이니 이견은 받지 않겠습니다. 따르던가, 아니면 반역자가 되어 토벌되던가 양자택일하시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
싸늘하게 이어진 목소리가 그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일그러지는 표정들.
마탑주들은 분노와 혼란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서 의견을 말하지는 못했다.
맨손의 로건이 뿜어낸 기세는 반대하는 순간 이 자리에서 목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으니까.
게다가 그 뒤에서 시립하고 있는 클레이튼에게서도 이질적인 기세가 치솟아 올랐다.
우우웅.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있는 클레이튼의 전신에서 황토색의 이질적인 기세가 흘러나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마나(Mana)를 다루는 마탑주들이었기에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마력(Mana Force).
이내 마탑주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게 진짜 마도사…….’
‘으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벌써 그 후안 더글라스가 떠오를 정도라니.’
‘대단하군.’
3인의 마탑주가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레디오스는 그런 클레이튼을 보며 아득한 좌절감을 느꼈다.
‘평생을 에버튼 놈의 그늘에 가려져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제자 놈이 마도사라니…….’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레디오스의 처절한 시선이 클레이튼에게 향했지만.
피식.
눈이 마주친 클레이튼의 얼굴에는 가벼운 조소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에 레디오스의 얼굴은 더욱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부르르.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거냐.’
어느새 꽉 쥐어진 주먹에 잡히는 것은 절망감뿐.
그렇기에 그는 질식할 듯한 분위기를 뚫고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지금 고작 둘이서 4대 마탑주를 협박하는 겁니까?! 더구나 여기는 불의 마탑이오! 안 그렇습니까, 프레이머 님!”
“말 잘했다, 레디오스! 로건 맥라인 공. 그대가 아무리 초인이라 해도 여기는 내 영지요.”
우우웅.
레디오스의 말에 프레이머 역시 얼굴을 붉히며 앞으로 나섰다.
우우우웅.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퍼지는 거센 마나의 힘이 로건과 클레이튼의 기세를 조금씩 밀어 내고.
그들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탑의 힘이 더욱 집중되며 이내 로건과 클레이튼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이자들은 이곳에 온 것이 실수다!’
프레이머는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쏟아지는 불의 마나는 비록 마력은 아니었지만, 긴 세월을 이어 온 마탑의 전력이 모인 힘이었다. 그런 만큼 5서클의 불의 마법사가 일시적으로나마 두 초인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마탑주를 우습게 본 대가를 치러라, 로건 맥라인!”
프레이머의 호통과 함께 그의 손짓을 따라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습게 볼 리가.”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황금빛이 번뜩이더니.
스각.
프레이머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가 미약한 소음과 함께 잘려 나갔다.
우우우웅.
이내 썰물처럼 방 안을 빠져나가는 마나들.
모든 이능을 끊어 내는 신검 비전, 불꽃 가르기의 일격이 마탑과 마탑주의 연결을 끊어 버린 것이었다.
“이, 이럴 리가. 아무리 아티팩트가 부서졌어도 일시적인 통제권은…….”
창백하게 질린 낯의 프레이머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자, 로건이 마탑주들의 얼굴을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자, 그럼 이제 마탑주 여러분들의 뜻을 다시 들을 차례로군요.”
부드러운 말과 대비되는 살벌한 기세.
클레이튼의 황톳빛 마력이 마탑주들의 마나를 흐트러트리고.
프레이머의 목에 겨눠진 황금빛 오러가 늙은 마법사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색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