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마침 딱 적절한 순간의 방문이었군요. 다 모여 있다니.”
불의 마탑을 돌아 나오는 로건의 감상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르는 클레이튼은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로건 님. 마법사들 중엔 자존심이 강하고 성격이 더러운 이들이 많습니다. 당장은 힘에 눌려 굴복했지만, 그렇기에 나중에 더 큰 반발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반발한다면 그만큼 대가를 치르게 해 주면 그만이죠. 당장은 저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나직이 흘러나온 목소리에 자연스레 더해진 살기.
그 섬찟한 느낌에 클레이튼이 굳어진 얼굴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로건의 기세는 내전 이후 더욱 강해졌다.
‘정확히는 검공 각하와의 대결 이후부터였던가.’
문제라면 종종 일반적인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점점 강해지는 그 기세가 살기가 되어 터져 나온다는 것.
그것은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 클레이튼은 내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로건 역시 이미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초인이다. 심지어 왕국을 내전에서 구하고, 또 한 번의 내전을 일으켜 왕실까지 뒤엎어 버린 시대의 영웅이었다.
나이가 어리다 한들 자신이 충고할 만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클레이튼은 그렇게 생각하며 염려 어린 시선을 거뒀다.
“알겠습니다. 제 선에서 전부 끝낼 수 있도록 완벽히 통제해 보이겠습니다.”
“예. 믿겠습니다.”
로건이 그렇게 수도 내의 변수를 또 하나 제거했을 무렵.
수도 남동쪽 영지에서도 변수 하나가 스러지고 있었다.
“마, 막아!”
“자작님, 너무 압도적인 전력입니다. 항복하셔야 합니다!”
“웃기지 마라! 신하의 도리를 어기고 왕을 죽인 무도한 놈들이다! 저놈들에게 항복하느니 이대로 죽음을 택하겠다!”
올란도 페르히 자작의 열렬한 외침에 보고하던 노기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충성심 때문에 가문의 모두를 포기하시는 겁니까.’
오랜 기간 몸담은 가문이 멸문으로 향하는 것이 뚜렷이 보였지만, 이 이상 그가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초토화된 자작령 너머로 번지는 불꽃을, 그리고 그 참상을 만들어 낸 불꽃의 깃발이 점차 기세를 넓히며 내성으로 다가오는 것을 망연하게 지켜볼 뿐.
“저주 받……!”
스각.
털썩.
뎅구르르.
패드릭은 자신이 잘라 낸 목을 무심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것으로 끝났다.’
죽은 왕이 임명했던 국무대신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올란도 페르히의 최후.
이제 노골적으로 맥라인에 반기를 들던 무리는 모두 사라졌다.
이어진 부하들의 보고 역시 그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외성은 완전히 정리했습니다. 내성 역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수고했다, 핸더슨. 끝나는 대로 수도로 귀환한다.”
“예!”
‘이제 급한 불은 껐다.’
타오르는 페르히 자작령을 바라보면서 그와 상충되는 표현을 떠올린 패드릭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 지었다.
그러고는 스스로 웃음이 나올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다시 한번 안도했다.
하지만 이내 떠오르는 생각에 그의 표정은 금세 다시 굳어졌다.
‘이제 로건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실상 왕국은 가문의 손에 들어왔다.
아들이 만들어 낸 변화가 가문을 급격하게 키워 가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어쩌면 앞으로 더욱 큰 변화를 가져올 이 커다란 분기점에서, 패드릭은 아들에게 해 줄 만한 조언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자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복잡한 문제구나, 아들아.’
적어도 그의 생각으론, 왕국을 장악한 것과 왕이 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였다.
그란디아 왕실의 방계 혈족을 옹립하여 실권만을 장악하는 것.
로건을 중심으로 하는 맥라인 왕조를 만드는 것.
그 두 가지는 전혀 다른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한평생 명예와 가문, 기사도를 생각하며 살아온 패드릭으로서는 그 어느 쪽도 선뜻 입에 올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고민은 비교적 태평해 보이는 부하의 한마디에 금방 결론이 내려졌다.
“예? 저야 로건 공자님이 정하는 대로 따라갈 뿐이죠. 어련히 알아서 하시지 않겠습니까? 여태껏 그래 왔듯이요.”
“……그래. 하, 그렇지.”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맥라인의 영주는 그였지만, 실제로 모든 기사와 영지민들이 따르는 주체는 아들이었다.
비겁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뭐든 네가 선택하거라, 로건. 대신 내 모든 것을 걸고 밀어주마.’
패드릭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고, 그 순간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바뀌었다.
“핸더슨, 복귀 경로를 튼다.”
“예?”
“수도 근방의 영지들을 순회하며 영주들을 만나 보겠다. 하루씩 정도면 괜찮겠지.”
“예. 알겠습니다.”
이미 맥라인에게 항복의 뜻을 전한 영지들.
하지만 혹여나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확실히 인상을 박아 주겠다.
반란군을 토벌한 맥라인 군대의 수도 인근 순회는 그렇게 결정되었다.
5대 마탑의 지지 선언과 빠른 국왕파 잔당 토벌.
거기에 이어진 영지 순회는 늦게나마 맥라인의 편에 한 발을 걸쳤던 이들에게는 바라 마지않던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제법 지위가 높다고 할 수 있는 수도 인근 후안 백작령의 주인, 자크 후안 백작은 그 시점에서 또 한 번 커다란 결심을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서 맥라인에 협력하라. 금전이든 병력이든, 원하는 모든 것을 내어 줘라! 아니 필요 없다고 해도 찾아가!”
“가, 각하.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투자한 것이 많을수록 돌아오는 것도 많을 것이다. 이제 맥라인이 왕국 그 자체가 된다. 지금 맥라인 가문에 하는 투자는 왕국 범위로 보답받게 될 거야! 무조건 해!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내전이 벌어졌을 때부터 병력을 보내는 건데.”
자크 후안은 뒤늦은 후회로 방방 뛰다가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급히 펜을 들었다.
이내 그가 써 내려 간 편지에는.
그의 부관이 자신도 모르게 질린 눈으로 쳐다봤을 정도로 아부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자크 후안에게는 불행하게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한 귀족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특히나 수도의 계엄령하에서 눈치를 보던 귀족들의 발버둥은 좀 더 노골적이었다.
“자, 잠깐이면 되네. 각하를 만나게 해 주게! 이게 정말 귀한…….”
“쫓아내.”
“예!”
늙은 귀족의 간절한 청은 에일렌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가볍게 외면당했다.
현재 로건이 기거하는 곳은 왕성이 아닌 수도 내 그의 저택.
임시 섭정의 위치를 지키려는 것이었지만, 자연히 수많은 귀족의 접근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임시 총관을 맡은 에일렌은 저택 밖에 바글거리는 귀족들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 칼만 휘둘러 온 기사들 중엔 임시 총관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맡게 된 자리.
‘나도 평생 칼질만 한 건 마찬가지인데.’
아마도 로건의 약혼녀라는 입장이 큰 역할을 했을 터였다.
물론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신경 쓰이는 일이 많을 뿐.
“중요한 시기다. 간사한 자들의 혀가 그분께 닿게 하지 마라. 모조리 접근을 차단하고 바로 돌려보내.”
“예!”
에일렌이 딱딱한 목소리로 명하자 기사들이 일제히 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담담히 돌아서던 에일렌의 표정은 이내 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에일렌! 애비다! 사위, 아니 각하께 드릴 선물을 가져왔다. 이게 남자한테 참 좋은 건데……. 하하. 뭐라 말은 못 하겠고, 이거 참.”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드는 아버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감싼 에일렌은 그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소리쳤다.
“절대 못 들어오게 막아! 최대한 빨리 돌려보내!”
“……예!”
“에일렌? 따, 딸?! 놔라, 이놈들아! 내가 저 왕국 최고 여기사, 에일렌 경의 아빠라니까?! 장차 왕비가 될……! 안 놔? 어어?”
으으, 아버지…….
뒤쪽에서 연신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녀의 얼굴이 점차 달아올랐다.
다행히도 기사들이 일을 잘 처리했는지 목소리는 곧 멀어졌고, 금방 마음을 다잡은 에일렌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부하에게 물었다.
“다른 문제는?”
“치안은 완벽하게 잡혀 가고 있습니다. 우호적인 귀족들의 민원이 조금 있긴 합니다만, 전에 말씀하신 대로 모두 처리했습니다.”
“그래. 공자님 갑옷은 수리했고?”
“예. 곧 다시 가져오실 겁니다.”
“감옥에 그분은?”
“그건 저도 잘…….”
“그래. 앞으로도 공자님이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 쓰실 필요 없도록 그런 이야기들은 뭐든 전부 내게 먼저 가져와. 알았지?”
“물론입니다, 에일렌 경.”
“좋아. 가 봐.”
부하가 돌아서자마자 에일렌은 다시 저택의 부엌으로 향한 에일렌은 하녀에게서 미리 준비된 차와 찻잔을 받아들고는 자신의 약혼자에게 향했다.
똑똑.
– 에일렌이에요.
익숙한 목소리에 굳어 있던 로건의 표정에 잠시나마 미소가 떠올랐다.
“들어오세요.”
눈앞에 놓인 몇 줄 되지 않는 보고서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던 찰나였기에 그녀가 더욱 반가웠다.
요즘 들어 그나마 웃을 수 있는 순간은 이 배려심 깊은 연인과의 시간뿐이었다.
끼익.
“공자를 만나고자 하는 귀족들은 일단 전부 돌려보냈습니다. 오늘 온 귀족 중에서 백작급 이상의 귀족은 로만 백작과 플로……이드 백작,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플로……? 장인어른도요?”
“네.”
장인어른이라는 단어에 에일렌의 얼굴에 미미한 홍조가 번졌다.
비록 얼굴을 보자마자 일 얘기부터 꺼내는, 꽉 막힌 구석이 있는 약혼녀였지만 이럴 때는 귀엽게 보이기만 했다.
“그래도 장인어른은 들여보내도 될 텐데…….”
“중요한 시기에 쓸데없는 만남으로 방해받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에일렌의 시선이 로건의 앞에 놓인 보고서를 훑었다.
어차피 측근들은 다 아는 일인 데다가 딱히 숨기고자 하는 일도 아닌지라, 로건은 보고서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보고서의 내용을 보았을 텐데도 에일렌은 그저 담담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가린 차에요. 정신을 맑게 하고 잡념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조금씩 마시세요.”
“……매번 고마워요.”
“뭘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요.”
“힘든 일은 없고요?”
“네.”
또르륵.
담담하게 단답형으로만 이어지던 대화는 그걸로 툭 끊겼다.
연인 사이의 대화라기엔 지나치리만치 담백했지만, 막상 마주 앉아 찻잔을 기울이는 두 사람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고민이 많은 시기.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이 시간만이 거의 유일한 휴식이었다. 로건의 고민을 아는 에일렌의 배려였고, 로건 역시 그 배려를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이 풀어진 탓일까.
“……이만 가 볼게요.”
잠시 후, 에일렌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돌아 나가는 순간.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멈칫하는 에일렌.
하지만 다행히 답변은 지체 없이 나왔다.
“나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해도 상관없어요.”
비록 로건이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내게 꿈을 이룰 기회를 주고, 그 이상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 당신이에요. 이제는 내가 당신을 도와줄게요.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건.”
충분히 힘이 되는 대답이었다.
무도한 폭군을 통쾌하게 몰아내신 각하의 용맹을 찬양하며……(중략)…… 멀리 영지에서나마 충심으로 각하의 건승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귀족들의 연판장이 거의 완성이 되어 갑니다.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