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그게…… 사실상 에스페란자 영지에서는 이 이상의 병력 증대는 무리입니다, 폐하.”
“맥라인 영지 역시 마찬가지다, 로건.”
패드릭의 어투를 들은 검공이 살짝 눈썹을 찌푸렸지만, 그는 굳이 거기까지 간섭하지는 않았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지금 말한 병력의 한계.
자경단을 빼고도 정규군만 2만 5천에 달하는 맥라인 영지와 자경단 없이 정규 병력만 1만 5천에 달하는 에스페란자 영지.
마법사나 기사 같은 특수 병과를 제외하더라도 두 영지의 병력은 이미 인구, 즉 생산성에 비해 과다한 숫자였다.
옆에서 검공과 패드릭의 말을 듣고 있던 드웨인도 말을 보탰다.
“두 영지의 병력을 지금보다 더 늘린다면 재정적인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다 일정 한계를 넘어서면 결국 영지가…….”
“파산한다?”
“예.”
“우리 영지에 ‘그게’ 있는데도 말이야?”
‘그것’이라는 말에 조심스레 검공의 눈치를 살피던 드웨인은 꿈쩍도 하지 않는 그를 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비효율적 낭비임이 분명합니다. 그조차도 한계가 있을 거구요.”
“그럼 다른 영지의 병력을 키워야 한다?”
“……그건 귀족들에게 힘을 과하게 실어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래서 곤란하단 말이지.”
기사단장 디그롬의 말에 로건이 한숨을 내쉬었고.
“그럼 아예 영지전을 걸어서 주변 영지를 흡수…… 죄송합니다.”
용기를 내 나선 핸더슨은 주변의 눈총을 맞으며 고개를 숙였다.
순간 대전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 위로 에일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왕실 직할령은 어떨까요?”
“음?”
“전전대 국왕이 죽은 시점에 있던 왕실 직할령의 병력은 사실상 1, 2왕자파들이 나눠 가졌습니다. 지금 궁에 남은 것은 지난 회전에서 사로잡힌 왕실근위대 일부뿐이지요. 직할령에는 병력을 키울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로건이 눈을 빛냈다.
“확실히…… 하지만 맥라인과 에스페란자가 왕국 전력의 3할이라면, 직할령에선 적어도 2할에 해당하는 군대를 키워 내야 내가 생각한 그림대로 될 텐데, 그게 가능할까? 그것도 단기간 내에.”
그 말에 측근들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까지 말입니까?”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인 영향력이……!”
“압도적인 영향력만으로는 안 돼. 아예 다른 귀족들이 반발할 생각도 못 할 정도의 병력이 필요해. 찍소리도 못하게 찍어 누를 수 있는.”
로건의 단언에 순간 장내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의 전력만으로 왕국 전체 전력의 절반을 넘어선다면, 그때는 왕국의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움직이게 될 거야.”
측근들의 우려 어린 표정에도 로건은 그렇게 부언했다.
‘굳이 왕이 되는 선택을 했으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효율을 내야지.’
로건은 제 머리가 왕국을 부강하게 만들 획기적인 정책을 짜낼 만한 수준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에겐 이미 청사진이 있었다.
제국이라는 본보기가 있었으니까.
‘앞으로 2할의 군사력만 더 내 손에 쥘 수 있다면 확실히 가능해.’
그래서 그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가능하면 1년 내로.”
“음…….”
그 말에 주변에서 연달아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무리한 주문이라는 것은 로건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전쟁이 터지는 시기가 같다는 가정하에 남은 시간은 고작 3년 몇 개월. 천천히 갈 여유가 없어.’
로건이 굳은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자, 헤인켈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한발 나섰다.
“그렇다면 결국 자금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봉급, 장비, 훈련장, 처소까지 단번에 해결할 만한 돈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왕국 전체 병력의 2할이라면 숫자상으로는 대략 4~5만의 정예 병사를 말하는 것이고, 주어진 시간이 1년이라면 사실상 한 번에 모집해서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왕실 재정으로 감당이 될까요?”
드웨인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헤인켈의 말에 호응했다.
하지만 로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자도 있었다.
“맥라인에서 보태고, 에스페란자에서도 재정을 돕는다면 어떤가?”
바로 검공이었다.
하나 그의 말에도 드웨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에스페란자와 맥라인의 영지 운영에 심각한 타격이 갈 겁니다. 새 병사를 만들자고 기존 전력을 깎아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으음…….”
“왕실의 보물을 파는 것은…….”
“쉽게 팔릴 만한 보물이 몇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물 몇 개 팔아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구요.”
용기 내어 내뱉은 두 번째 의견마저 무시당하는 순간, 핸더슨은 구석으로 찌그러졌다.
그렇게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로건은 할 수 없이 가장 단순한 방법을 꺼내 들었다.
“결국은 귀족들을 쥐어짜는 수밖에 없겠군요.”
“예?”
“왕실에 내는 세금을 두 배로 올리겠습니다. 곧 수확기이기도 하니.”
그 말에 방 안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그리고 이내.
“반발이 클 겁니다, 폐하!”
“우리를 지지하던 귀족들도 떨어져 나갈 텐데…….”
“무리수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왕국 전력의 3할이라지만, 나머지 7할이 반대할 겁니다.”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기에 로건은 화를 내는 대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건을 달면 됩니다. 어차피 단기간에 승부를 봐야 하니까요.”
어리둥절하던 측근들은 이어진 로건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다만, 걱정이 다 지워지지는 않은 표정들이었다.
* * * 수확기를 앞둔 왕궁의 대전.
새 왕조의 성립, 즉위식 이후 처음 치러지는 대전 회의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북적였다. 전국의 영주나 그 대리인들로 자리가 가득 메워진 것이다.
보통 지방의 중소 귀족들은 낮은 지위와 지리적 위치 등으로 인해 대행조차 보내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국왕이 직접 참석을 권유했기에 거의 모든 귀족이 회의에 참석한 탓이었다.
물론, 새 왕조의 시작이니만큼 무언가 특별한 정책이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예전과 비슷할까?”
“아무래도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이리 불러 모은 이유가 있겠지요.”
귀족들이 수군거리며 저마다의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 국왕 폐하 듭시오!
우렁찬 외침과 함께 대전의 문이 열리고, 로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대전 안으로 들어서는 그를 본 귀족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흔들렸다.
흔히들 왕이라 하면 떠올리는 비단 장포와 화려한 망토 대신, 은빛으로 빛나는 갑옷을 입고 검을 찬 젊은 기사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나마 왕의 복장으로 어울릴 만한 것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붉은 망토와 왕관뿐.
귀족들에게는 그 모습이 피로써 왕위에 오른 새 왕의 전투적인 측면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그 흔들리는 시선들 속에서 저벅저벅 걸음을 옮긴 로건은 복장에서 연상되는 느낌 그대로, 미사여구를 덧붙인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모두 오느라 수고 많았다. 긴 시간 끌 생각 없으니, 바로 가장 중요한 안건인 새 왕조의 첫 정책을 공표하겠다.”
너무나도 파격적인 회의 시작 선언에 귀족들의 눈동자가 또 한 번 흔들리는데.
“연이은 내전으로 고통받은 왕국을 안정화하기 위해, 왕실에서 귀족들에게 걷는 세금을 기존의 3할에서 6할로 인상하겠다!”
그 모두의 시선이 쏠린 상석.
로건은 맥라인 왕국의 역사적인 첫 대전 회의에서,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폭탄을 터트렸다.
순간 대전이 조용해졌지만 그도 잠시.
“마, 말도 안 됩니다!”
“단번에 두 배라니요!”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귀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새 왕의 파격적인 정책 발표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내전을 겪으며, 피와 함께 왕위에 오른 왕에 대한 두려움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쏟아 내는 목소리에 힘입어 사라졌다.
의도치 않게 그들 모두가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확인한 귀족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왕국의 모든 귀족이 반기를 들 것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재고하여 주십시오, 폐하!”
연달아 부복하며 외치는 귀족들.
어떤 말이든 따를 것처럼 굴던 귀족들이 한순간에 태도를 뒤집는 모습이었다.
하나하나로 보면 반항조차 못 할 약한 세력들. 게다가 그중 다수는 맥라인을 지지한다는, 이른바 ‘맥라인 파’에 속해 있던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귀족 전체’라는 입장으로 묶이자 한순간에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감히…….”
로건에게만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 근처에 시립해 있던 스승의 눈썹이 꿈틀거릴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건의 미간 역시 살짝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저런 자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왕국을 장악해야만 한다.’
그래야 계획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로건은 속으로 이를 갈며, 유난히 목소리가 큰 이들을 새겨 두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자는.
“국왕의 직권으로 오래된 관례와 법률을 무시하고 세금을 두 배로 올리신다면, 왕국이 안정화되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깐깐한 인상의 갈색 머리 장년인이었다.
“후안 백작님 말이 맞습니다.”
“왕국에 혼란이 올 것입니다.”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귀족들 다수가 그에 동조하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후안…… 아, 그 자크 후안 백작.’
내전의 말미에 뒤늦게 지지를 선언했지만, 병력과 자원들을 퍼 주며 직접적인 지원을 해 준 게 꽤 인상적이던 자였다.
게다가 아부가 잔뜩 섞인 편지까지 보내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태도는 간이라도 빼 줄 듯했던 편지 내용과는 달리 강건하기만 했다.
‘자신의 이득에 민감한 기회주의자라…….’
그런데도 귀족들이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나름의 수완은 있는 것 같았다.
로건은 그런 놈을 눈여겨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전의 소란을 일축할 만한 말을 꺼냈다.
“올해. 딱 1년뿐이다. 내년에는 세금을 정상화하고, 그 후 3년 동안은 오히려 2할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 어떤가? 장기적으로 보면 그대들에게 큰 손해는 없을 듯한데.”
로건의 말에 여기저기서 솟구치던 목소리들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1년? 1년이면…….”
“2년 뒤부터 2할?”
“그 정도면 나쁘지 않지 않아?”
귀족들이 전부 머리가 비어서 몇 년 뒤의 세율 인하를 당장의 두 배와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혈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왕조를 연 국왕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는데, 대놓고 다시 나서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이 다시금 서로의 눈치를 보는 순간.
자크 후안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왕국의 안정화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그 ‘제안’을 따르겠습니다.”
제안?
“왕의 말씀은 천금과도 같은 것이니,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 주실 것이라 믿겠습니다.”
하…….
로건의 입가가 미미하게 씰룩였다.
하지만 원하던 것을 얻은 마당에 여기서 어깃장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
“좋아. 그런데 자크 후안 백작만 동의하는 것인가?”
로건이 백작의 말을 수락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반문하는 순간.
“명을 따르겠습니다!”
“폐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여기저기서 요란한 대답이 터져 나오며 세금 개선안이 사실상 받아들여졌고, 새 왕조의 첫 번째 대전 회의는 그렇게 무사히 막을 내렸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
“자크 후안이라는 놈, 제가 한번 따로 만나 보겠습니다. 어떻게 벌써 파벌을 만들 생각을…….”
“아닙니다, 스승님. 그냥 두십시오.”
“예?”
“한군데 뭉치면 오히려 다루기 편한 것도 있으니까요.”
로건은 자크 후안의 깐깐한 인상을 떠올리며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