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왕실이 귀족들에게 거두는 세금을 올린다.
그러면 그다음에 귀족들이 할 일은?
“영지민들에게 거두는 세금을 올린다! 7할까지!”
왕국의 귀족들은 기존의 세금을 많게는 두 배 가까이 올렸다.
백성들에게선 자연히 앓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새 시대야! 새 지옥의 시대냐!”
“폭군이라더니, 진짜 폭군이었어.”
“빌어먹을. 이놈이나 저놈이나, 귀족 놈들은…….”
대부분 느긋한 일 처리로 악명 높은 귀족들이었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번개 같았다.
그리고 그 원성은 왕인 로건의 귀에도 고스란히 들어갔다.
“미친놈들…… 90%가 세금을 7할로 올렸다고?”
자신이 더 가져가는 만큼 영지민을 쥐어짤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 행태는 로건의 예상을 초월했다.
3, 4할의 세금을 받던 양심적인 귀족들까지도 당장 줄어드는 수입 앞에서 영지민을 쥐어짜는 폭군으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하긴, 이 사태를 유발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어찌하시겠습니까.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정책은…….”
“아니.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지금은 해야 할 신경을 쏟아야 할 때다.”
지금은 드웨인의 걱정에도 단호한 태도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민심에 대한 걱정은 잠시 미뤄 둔 채, 로건이 먼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자유기사들이나 지방 영지의 기사들 같은 경우는 나를 비롯한 오러유저들이 직접 통솔하며 가르침을 준다는 조건이면 충분히 모여들 거야. 왕은 군주의 군주이니 주군을 배신한 게 아니라는 명분도 생길 테고.”
그 말에 헤인켈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더했다.
“폐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병사들 훈련은 그보다 확실한 차별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차별화라면?”
“어차피 민심을 망가트리면서까지 동원한 자금입니다. 여기에 에스페란자와 맥라인의 지원까지 받으면, 실제로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아예 질적 수준을 훨씬 높여서 지원자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질적 수준을 높인다니?”
“기사는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기존과 비슷한 대우만 해 줘도 오러유저의 가르침이라는 미끼에 넘어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사들은 다르지요. 그들에게는 미래의 가능성보다는 당장의 대우가 중요합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쉽게들 고개를 끄덕였다.
“월봉을 높게 주자는 이야기군.”
돈에 민감한 드웨인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헤인켈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그리고 훈련 시설과 장비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도 필요합니다. 1년 동안 어떠한 임무도 맡지 않고 오롯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훈련을 통과하면, 어느 영지에서건 선임 병사 수준이 될 수 있을 만한 교육 과정 역시 사전에 만들어져야 합니다.”
“병사들을 뽑는데 군주가 오히려 사정하는 식의 모집이 되겠어. 허허,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군.”
가만히 있던 검공까지 입을 떼게 만든 헤인켈의 말.
하지만 듣고 있던 이들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많은 예산이 물처럼 빠져나가겠군요. 허흐흐.”
드웨인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움을 표했지만, 그에 호응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목표 병력을 5만으로 잡고 시작하면 장비를 만드는 것만 해도 천만금이 필요할 거야. 마도 공방을 총동원해서 새 병사들 무기부터 생산하도록 해야겠어. 그러면 원가를 조금은 낮출 수 있겠지?”
로건만이 재정담당관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었다.
“원가’만’으로 만들어야죠. 철저하게. 하마르 공과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흐흐.”
벌써 핏발이 선 드웨인의 눈이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헤인켈이 그 핏발 선 눈이 두 배로 커질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병사들의 목표 수준을 최소 맥라인의 석궁기마병까지는 잡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연사 석궁과…….”
“말도 안 돼! 절대! 그만한 수의 말을 단기간에 구하는 것도 불가능이고! 설령 방법이 있다 해도 말을 사는 그 즉시 파산……!”
“……당연히 거기까지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냥 훈련 수준을 말하는 거지요. 하하, 그만큼 석궁이나 무기술, 전술 훈련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아…… 헤, 헤인켈 경. 그런 말은 좀 빨리해 주십쇼. 후욱, 후욱. 아흐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심장을 움켜쥐며 시뻘건 얼굴로 가쁜 숨을 들이켜는 드웨인.
그 모습에 헤인켈은 적어도 우수한 병사 1할에게는 기마술 훈련도 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잠시 접어 두었다.
그리고.
“맥라인의 숙련된 병사들이 왕실 직할령 병사들의 훈련 교관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적어도 2, 3백 명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야 문제없지.”
“검술 훈련을 위해서라면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기사들도 교관으로 붙여 주지.”
“……병사 훈련에는 좀 과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훈련 성과는 확실해지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막막하긴 하군. 1년, 1년 안에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정예군 5만을 뽑아야 한다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는 단기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뽑아내야 하니까요. 그렇지요, 폐하?”
“물론이지. 스승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맥라인 기사들도 거들 것입니다.”
그것을 끝으로, 신규 병사들 검술 훈련에 에스페란자와 맥라인의 기사들을 동원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왕국 역사에 없던 후한 조건의 병사 모집 공고가 왕국 전역에 걸리기 시작했다.
즉, 기사이기만 하면 된다는 아주 관대한 기사 모집 조건과.
거의 아무나 지원하라는 식의 파격적인 병사 모집 조건.
그 공고는 일순간에 왕국 전역에서 가장 뜨거운 소문이 되어 왕국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수확기의 세금 인상 소식에 누구보다도 절망하던 젊은 평민 일꾼들의 귀에 화살처럼 박혀 들었다.
거기에.
이런 왕실의 포고령까지 더해지니.
“이대로 농사지어 봤자 어차피 전부 빼앗길 거, 병사로나 지원해야겠다.”
“아이고, 어머니! 여자도 된대요! 세금도 무서운데 집에 입이라도 하나 줄여야죠!”
남녀를 따지지 않고 지원 행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수도와 중부 지방 왕실 직할령에 사는 평민 젊은이들을 시작으로, 이내 구름처럼 많은 이들이 그랑으로 모여들었다.
“거기 발 밟지 마!!”
“뒤에서 밀지 좀 마!”
“악! 누구야 팔꿈치!”
그랑의 성문 앞을 가득 채운 인파.
새 왕조의 출범 이후 감돌던 살벌한 분위기에 유동인구가 계속 줄어들던 그랑이 모처럼 들끓어 올랐다.
반면 그런 그들의 앞에서 맥라인의 기준에 따라 시험을 봐야 하는 이들의 얼굴은 시시각각 죽어 가고 있었다.
“배, 백작님. 왜 우리가 이걸……?”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말 그대로 새까맣게 몰려드는 지원자들을 보는 전 왕실근위단장 프란시스코 로메로의 얼굴은 그야말로 잿빛이었다.
지난 내전 당시, 에스페란자의 원군으로 참여했다가 사로잡힌 그는 감옥에서 풀려난 뒤 왕실근위단장이라는 직함을 잃었다.
그와 함께 왕실근위기사였던 부하들 또한 새로이 창설될 왕국수호대의 기사로 발령만 받은, 사실상 대기 중인 상황.
그런데 그 첫 임무가 이런 것이었다.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정말 눈 밖에 나게 된다.’
최상급기사인 자신에게 이런 허드렛일을 맡긴 것은 확실히 길들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깃장을 놓았다가는 정말 목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프란시스코는 이를 악물며 지원자의 서류를 받고, 도장을 찍었다.
“저기, 저기 막사로 들어가! 남자는 반대쪽! 이 자식아! 어딜 감히……!”
때때로 여자 막사로 가려는 멍청이를 후려갈겨 반대편으로 집어 던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인 상황.
그는 그 모든 것을 통솔하기 위해 이를 바득바득 갈아 가며 어떻게든 장내를 정리하려 애썼다.
지원자를 받기로 한 기간만 한 달.
벌써 눈 밑이 거뭇거뭇해지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다 내 부하가 될 녀석들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은 숙여야 한다.
숙여야 살아남는다.
자존심을 포기한 프란시스코 로메로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일했다.
“현황은?”
“지금도 지원자가 넘쳐 나는 추세이고,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예정된 한 달이 아니라 그 절반 정도만 지나도 5만 명 이상이 몰릴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마냥 다행인 건 아닙니다.”
로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드웨인은 오히려 울상을 지었다.
“……지원자가 많다면서?”
“예. 예상을 훨씬 초월할 정도로 많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에 지원자들을 먹이고 재우는 데에 예상 이상의 지출이 나가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절대 좋은 게 아닙니다! 세금도 이제 막 징수하기 시작한 수준인데!”
“……그런가? 왜 그렇게까지 몰린 거지?”
“어느 폭군의 막무가내 정책 탓에 농사만 짓고 살기 힘들어졌거든요!”
예상외의 지출에 눈이 돌아간 재정대신의 직언에 폭군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뭐…… 모자란 것보다야 낫겠지.”
로건은 슬쩍 시선을 돌리며 책임 추궁을 회피했다.
그런 군주를 슬쩍 째려보던 드웨인은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멀리 지원자들이 몰려 있는 공간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다른 문제?”
“전 왕실근위기사들을 통째로 접객 임무에 보낸 것은 인력 낭비 아닐까요?”
드웨인의 말에 로건이 차갑게 대꾸했다.
“인력 낭비는 그냥 놀고먹는 게 인력 낭비지. 그놈들이 지금까지 뭘 했는데?”
로건이 가진 왕실근위대에 대한 인상은 무능, 무력, 무존재감.
딱 그 세 가지였다.
첫 번째 내전이 끝났을 무렵부터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중에 최상급기사인 프란시스코 로메로 백작도 있습니다.”
“음? 아…… 맞다, 그 콧수염.”
그놈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리고 프란시스코에게는 불행하게도, 로건은 그제서야 그를 기억해 냈다.
“예. 상급기사나 최상급기사가 저런 임무를 맡으면 모욕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드웨인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 넌 또 어디 가! 남자는 저쪽이라고 이 미친놈아!
말 그대로 펄쩍 뛰어오르며 질서를 잡는 ‘최상급기사’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일 잘하고 있는데?”
“그렇……네요.”
“그냥 내버려 둬.”
“……예. 알겠습니다.”
열정적인 모습이 오히려 고생을 자초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드웨인은 왠지 저 중년의 기사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병사 모집에만 지원자들이 몰린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새에 연달아 치러진 왕국의 내전은 주군을 잃은 기사를 수도 없이 만들어 냈다. 가장 마지막 내전은 그나마 짧게 끝나고 희생자도 적었지만, 죽은 왕의 편에 속했던 귀족들이 사실상 집안까지 끝장이 나면서 돌아갈 곳을 잃은 기사들이 수백이나 생겨난 것이다.
그들 중 다수가 준 귀족의 체면상 용병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자유기사라는 이름의 백수로 살아갔다. 그러던 중 내려진 왕실의 군대 모집 공고는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만한 것이었다.
오러유저의 가르침.
더구나 왕실 직속은 상당히 유혹적이었으니까.
공고에 솔깃한 것은 그들뿐만 아니었다.
“왕이면 우리 남작님의 군주잖아. 그럼 적을 옮겨도 배반은 아니지.”
자신의 대접에 만족하지 못하던 지방의 기사들 역시 왕실수호대 모집에 눈을 돌렸다.
그 결과, 기사급 300명을 예상했던 모집에 몰린 지원자만 540여 명에 달했다.
그런 그들의 지원 서류를 받아 든 검공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모두 합격.”
“예? 하지만 각하, 이들 중에는 주군을 버리고 온 자들도…….”
“사람이 아닌 놈들은 사람이 되게 만들면 된다. 도저히 안 될 놈은 훈련으로 걸러 내면 되고.”
왕실수호대 기사들의 총 교관직을 맡은 검공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왕실 직할령의 움직임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역시나 귀족들이었다.
국왕 폐하의 명령만을 받는 직속 군대 창설을 위한 지원자를 모집한다!
[기사]검공을 비롯한 왕국의 초인들이 직접 이끌며 지도하는, 그들의 뒤를 받쳐 줄 충직하고 실력 있는 기사들은 즉시 지원하라!
[병사]성별과 무관하게 18~25세의 청년들을 모집한다.
완전 수료 시 어느 영지에서도 선임 병사 수준의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1년간 다른 임무 없이 훈련에만 집중할 것이며, 모든 숙식과 장비를 지원한다. 월봉은 타 영지의 선임 병사 수준에 준한다!
왕국 전역에서 지원자를 받으며, 이를 위한 영지민의 이동을 왕명으로 허락한다.
거처가 일정하지 않은 유민이나 화전민도 강력범만 아니라면 과거를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넘길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새 왕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민심을 다독여야 하지 않을까요?”
“가뜩이나 힘든 백성들을 이리 쥐어짜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국가 생산력 자체가 떨어질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폐하.”
헤인켈과 드웨인이 연달아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로건의 태도는 강경했다.
“지금 민심을 위한 정책을 펼치다가 다 같이 죽을 수는 없어. 걱정되는 건 알지만, 일단은 최우선적인 목표에 집중해 줬으면 한다. 결코 오래가지 않아. 1년, 1년이면 된다.”
그 단호한 말에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서로 걱정스러운 눈빛을 교환했지만, 이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 모두 로건의 막무가내 고집을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니었으니까.
– 아무리 억지로 보일지라도, 로건 맥라인이 억지를 부리면 반드시 성과가 따라왔다.
그 경험이 이 무모해 보이는 정책을 따르게 해 주었다.
“폐하의 뜻이 그러시다면 지금은 원래 계획대로 직할령에 모집할 병력의 훈련과 편제에 관한 의논을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생각이 있으신 분은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어진 헤인켈의 말에 모두의 눈이 다시 로건에게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