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군대는 돈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 돈을 대체하는 것은 바로 식량이었다.
그렇기에 로건은 국방력 강화를 위해 군대를 키우면서도 농지의 생산력을 극대화할 방법도 같이 진행하려 했다.
다행히 그는 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효과는 확실한 방법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마정수 농법.
마정석을 물에 녹여 토지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그 농법은 적합한 양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더구나 예산 한 푼이 아까운 이 시기에는 말이야.’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맥라인의 댐과 타렌의 두 댐에서 실행하여 성과를 본 농법이지만, 단 세 번의 실험만으로 적정 수치를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었다.
세 댐 모두 그 수량과 규모가 제각각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왕실 직할령의 토지와 에스페란자의 토지에 마정수 농법을 시행하려면 마나가 녹아 들어간 정도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즉, 마나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마법도, 능력도 아닌 재능의 문제.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로건이 직접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 생각나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예? 이제 열일곱 살이 된 소녀를요? 아무리 클레이튼 님의 제자라고 해도 그건 좀…….”
드웨인이 곤란한 기색을 내비치며 로건의 눈치를 살폈다.
그에 로건은 웃으며 설명을 보탰다.
“책임자는 따로 붙이면 되지. 다만 그 아이의 능력이 꼭 필요한 일이라서 말이야.”
“정 그러시다면야, 당장 호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히려 로건의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
장장 3개월 동안 국토 이곳저곳을 떠돌며 외부에 극비인 중요 자원을 보호 및 사용해야 하는 임무.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고작 열일곱 살 여자아이에게는 꽤 힘든 일일 테니까.
하지만.
“할게요! 아니, 하게 해 주세요!”
빅토리아는 오히려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리아. 내 말 제대로 이해하기는 한 거냐?”
빅토리아는 나라에 마정석 광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살짝 눈이 커지기는 했지만, 그 후에는 아예 일말의 호기심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힘든 임무에만 관심을 보였다.
“예. 마정석이 물에 녹아들면 일정 비율로 토양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 토양은 거의 10년에 가까운 풍작을 보장한다. 제가 눈으로 마나가 녹어들어간 정도를 확인해서 그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 빠진 것 있나요?”
“……없다. 그래도 생각보다 힘들 텐데.”
“전혀요.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폐하.”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에 로건은 묘한 격세지감을 느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작디작았던 아이.
빅토르라는 희대의 천재를 얻기 위해 덤으로 데려온 느낌이었던 아이.
그랬던 아이가 이제 조금은 숙녀티가 나는 모습으로, 또한 네 개의 서클을 활용하는 마법사로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회귀 이후 수많은 사건을 겪어 왔지만, 로건은 왜인지 이 순간에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피식.
“그래, 알겠다. 하나 당연한 말이지만 너 혼자 가는 것은 아니다. 호위기사들과 주 책임자를 따로 둘 거야. 너는 거기서 마정석의 소모량을 확인하고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는 거고.”
“예. 명심하겠습니다.”
빅토리아는 속으로 소리 없는 만세를 부르며 집무실을 나섰고, 로건은 그녀가 왜 저렇게 즐거워 보일까 궁금해하면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나도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있어!’
빅토리아는 폐하의 명령이 너무나도 기뻤다.
자신도 이제는 어엿한 마법사, 그것도 사형들까지 따라잡은 4서클의 마법사였다. 그만큼 마탑에서는 나름대로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도무지 단독 임무가 내려오지 않았다.
– 넌 아직 어리니까.
– 보조만 해라. 할 수 있지?
– 재능 넘치는 거? 당연히 알지. 그러니까 더 아끼는 거야. 조심하는 거고.
주변의 배려가 슬슬 부담으로 다가오고, 자존심마저 상해 가고 있었는데.
– 아주 중요한 일,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폐하의 그 명령은 달콤하게까지 느껴졌다.
‘이 기회에 보여 주는 거야. 나도 이제 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빅토리아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시금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는데,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아! 왕성에 왔다는 말 들었다!”
“어? 오빠!”
“나도 오늘 근무는 끝났으니 얼른 집에 가서 같이 저녁 먹자!”
자신과 비슷하게 닮은 얼굴, 붉고 푸른 오드아이의 기사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밖에서는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얼음의 기사로 불린다는 오빠가 자신에게만 보여 주는 모습.
언제나 든든한 자신의 보호자이자, 자신을 과보호하는 주범.
하지만 그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그 날 이후, 오빠가 모든 것의 기준을 자신에게 맞추어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찌 그 마음을 탓할 수가 있을까.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바보같이, 이제 돈도 벌었으면 장가갈 생각이나 할 것이지.’
하지만 말을 해 봤자 듣지 않을 것을 알기에 빅토리아는 오늘도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래. 밥 먹으러 가자.”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새삼 결심했다.
‘말하지 말자.’
처음으로 마탑의 사형제가 아니라 마법사로서, 그것도 단독으로 맡게 된 임무였다.
폐하 역시 극비 수준의 임무라고 했으니, 굳이 오빠에게 말하지 않을 핑계도 충분했다.
‘보여 주는 거야. 이제 나도 어엿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임무를 위해 도착한 왕성에는.
“……오빠?”
빅토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폐하께 중요 임무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부터 이 오빠만 믿어라. 든든하게 호위해 줄 테니.”
“왜…….”
“폐하의 배려심에 감사해라. 그만큼 너를 아끼고 계신다는 뜻이니까. 물론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오빠의 그 웃음은 평상시처럼 밝았지만, 빅토리아는 그저 굳은 안색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리아?”
고개를 갸웃한 빅토르가 조용히 동생의 뒤를 따랐지만, 빅토리아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 임무에 투입된 인원은 5개 조 30명의 기사와 그들을 이끌 헤인켈, 그리고 빅토르와 빅토리아 남매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사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목적도, 그 내용도 몰랐다.
그러나 구성원이 전부 기사라는 것에서, 그리고 그 책임자가 국왕과 그 아버지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옛 기사단장 헤인켈이라는 점에서 임무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기사는 없었다.
다만 그들이 의문을 품은 점은 그 중요한 임무에 아무리 봐도 성인이 안 되어 보이는 여자 마법사 하나가 끼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출발한 지 채 반나절도 되지 않아 그녀의 존재 의의를 확실히 깨달았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가야 합니다. 이 초원을 지나면 다음 목적지까지 말들에게 풀을 먹일 곳이 없습니다.”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춰지고 있습니다. 속보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오늘 야영 목적지까지 예상 도착 시각 3시간 남았습니다.”
어디까지 숙지한 것인지 짐작도 안 갈 정도로 완벽한 길 안내도 모자라.
“서몬 골렘(Summon Golem)!”
첫 야영지에선 그 간단한 외침과 함께 일어난 네 개체의 골렘이 잡일을 처리하게 하는 한편.
“대지 알람 마법을 깔아 두었으니 사주 경계도 가능합니다. 불침번은 안 하셔도 좋고, 그래도 불안하시다면 최소로 잡으시면 됩니다.”
불침번까지 간단히 해결해 준 것이다.
“임무가 뭔지는 몰라도, 이 일행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저 아가씨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아가씨부터 지키자고.”
“그럼, 그럼.”
긴 여정이 한결 편해진 기사들은 그렇게 빅토리아를 칭찬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게다가.
“자네들. 농담 아니고 정말로 이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빅토리아니, 실제로 그녀를 지키는 걸 가장 우선시하게.”
헤인켈의 한마디까지 더해지면서 빅토리아는 실제로도, 그리고 형식적으로도 이 임무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서 대우받게 되었다.
다만 그 하루 내내 동생의 일을 거들어 주려고 노력하던, 그러나 철저히 무시당한 빅토르는 그런 동생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물건 인수 확인했습니다.”
“그래. 출발하자.”
히이잉.
헤인켈이 돌아서기 무섭게 짐 마차 30대가 따라붙었다.
거대한 마차들은 그 안에 든 물건을 절대로 노출하지 않겠다는 듯 검은 천으로 온통 가려져 있었고, 마차마다 한 명씩 따라붙은 드워프들도 미리 언질을 받은 바가 있는 듯 기사들과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행렬이 왕실 직할령에 해당하는 중앙 평야에 이른 뒤에야 합류한 드워프들의 책임자인 붉은 수염, 검마루가 입을 열었다.
“뿌려지는 양은 마법사님이 결정할 것이라 폐하께서 직접 지시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일행에 속한 모든 기사는 빅토리아를 새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곧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선 빅토리아는 손수 드워프들과 기사들을 지휘하며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빛나는 가루들이 물 위로 쏟아졌다.
지켜보는 눈이 없는 어두운 밤중, 지상에 별빛이 쏟아지는 것 같은 모습에 모두가 시선을 빼앗겼을 때.
빅토리아의 시선 역시 황홀하게 물들었다.
“멋져…….”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마정석 가루가 물에 녹아들면서 마나가 토양에 달라붙는 모습까지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빅토리아는 눈앞의 풍경이 더욱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밤하늘 아래의 땅 위에서 또 다른 은하수가 펼쳐진 모습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그 아름다움에 취해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거긴 충분해요. 좀 더 오른쪽으로, 열 걸음 더!”
“거기도 스탑! 왼쪽, 뒤로 열 걸음.”
빅토리아는 로건이 말한 마나의 뭉침 현상을 발견하는 즉시 마정석 가루를 쏟아 붓는 드워프들과 기사들의 움직임을 조정했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골렘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두 눈으로는 땅 위에 펼쳐진 은하수를 보며, 두 손으로는 수십 명의 사람을 지휘하는 빅토리아의 모습은 힘들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동생의 모습을 지켜보는 빅토르의 눈빛은 점점 복잡하게 변해 갔다.
“잘 컸다, 확실히. 너희 둘 다.”
“예?”
멍하니 상념에 잠겨 있던 그는 불쑥 어깨를 두드리는 헤인켈의 손길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물론 그럼에도 시선은 여전히 동생을 향해 있었고, 그 모습을 본 헤인켈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공자, 아니 폐하께서 처음 너희를 데려왔을 때는 그냥 특이한 외모의 아이들을 데려왔구나 싶었는데, 그 어린아이들이 벌써 영지를 대표하는 기사와 마법사라니……. 폐하의 선견지명도 놀랍지만, 너희도 참 놀라워.”
“……과찬이십니다.”
“아니, 과찬이라니. 사실인데.”
빅토르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지만.
‘둘 다……라…….’
그 사소한 한 마디가 그의 가슴속을 오래도록 맴돌았다.
그 말을 듣고서야 언제나 안고, 업고 보호할 대상이라 생각했던 동생이 어느새 많이 자랐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 무작정 끼고 도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언제고 들었던 주군의 말.
그 말을 곱씹는 빅토르의 눈빛은 어느새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었다.
“뭐가 그리 멋지더냐?”
모든 일이 끝난 뒤.
멍한 표정으로 마정수가 뿌려진 농토를 바라보던 빅토리아가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 오빠…….”
“이제야 웃네. 한동안 본체만체하더니.”
“……미안. 나는 그냥 오빠가 너무 어린애 취급을 하니까…….”
“……난 네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건데.”
“……그게 애 취급이라는 거야.”
또다시 토라진 듯한 눈빛.
그에 속으로 식겁한 빅토르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 알았어. 조심할게. 그런데 뭐가 그리 멋지다는 거야? 지금도 뭔가 보여?”
“아…… 그거야 당연하지. 예쁜 것도 예쁜 건데, 이게 마법적으로 얼마나 엄청난 발견이냐 하면…….”
빅토리아는 그 순간부터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골렘 마탑의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대지의 마법사이기도 한 자신에게 토양이 마나를 머금은 모습이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답게 보이는지, 그 마법적 가치와 가능성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열변을 토했다.
적절한 비율을 끝없이 계산하고, 마나가 스며든 흙의 성분도 따로 조사해 볼 생각에 들떠 이런저런 설명도 늘어놓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제 오라버니가 이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칫했다.
하지만.
“정말 다 컸네. 내 동생.”
왜인지 뿌듯하면서도 서글픈 듯, 복잡한 미소를 지은 빅토르는 동생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련한 기억 속,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빠의 모습이 이랬을까.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빅토리아는 괜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미 다 큰 지 오래거든요!”
“그래, 그런 것 같더라.”
그녀는 문득 지난 며칠간 오빠의 간섭이 확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후련하고 씁쓸한 듯한 그의 표정이 다시 보였다.
그리고 그게 왜인지 심술이 나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툭 쳐냈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오빠를 지켜 줄게! 내 골렘들 봤지?”
“……뭐?”
“여태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잖아. 그러니까 이젠 내가 오빠를 지켜 주겠다고!”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
거기에 쑥스러운 마음이 섞여 들어가 빅토리아는 생각과 달리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피식.
“흐, 흐흐흐. 하하하하!”
헛바람 소리로 시작된 빅토르의 웃음이 이내 요란하게 변하자, 그 모습을 보던 빅토리아 역시 따라서 크게 웃었다.
맥라인에 온 지 벌써 7년.
노예 출신의 오드아이 남매는 변한 세상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변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한 모든 것이 감사한 만큼.
‘이 모든 것. 반드시 지켜 낼 거야.’
남매는 서로를 바라보며 똑같은 각오를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