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왕실 직할령으로 보낸 부대는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고의 내용과 달리 드웨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일이 순조롭다는 것은 막대한 예산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으니까.
‘전쟁을 위한 준비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건 너무 빡빡한데.’
슬슬 맥라인 영지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삼켰다. 제 선에서 제어 가능한 일을 굳이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입을 다물고는 있지만,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쪽이 잘되고 있다면, 이제 슬슬 댐 공사도 시작해야지?”
부디 추가로 시행될 정책이 또 다른 원성을 만들지 않기를 바라며,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인부들도 충분한 임금을 주고 동원하겠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말씀하신 기간 내에 끝내려면 확실한 경험자가 필요한데…….”
“클레이튼을 비롯한 골렘 마탑의 정예들, 그리고 하마르와 댐 공사 경험이 있는 드워프들 전부 동원해. 겨울 내에 공사 끝낼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반 박자 느린 대답과 함께 돌아서는 드웨인의 등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내 줘. 1년만. 그러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거야.”
달래는 말 아래 깔린 짙은 초조함이 그의 마음에 더 큰 부담을 준다는 것을 짐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 *
“라랄라~”
요즘엔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날이 잦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은 이 나라의 왕이고, 나는 마도 공방의 왕이니까.’
하마르는 거울을 보며 단정히 머리를 빗어넘기고는 다시 콧노래를 시작했다.
자신의 잘생긴 이마를 한껏 드러낸 올백 머리는 비싸고 귀해 보이는 붉은 비단옷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 뒤, 뒷짐을 지고 천천히 방문을 나섰다.
그러자 고요하던 방과는 달리 쿵쾅거리는 거친 소음이 사정없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3번 라인 서둘러! 금속판 하나 펴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1번 라인 사고, 인간 장인 둘. 응급반 불러! 빨리!”
쿵쿵쿵. 콰앙.
드드드드.
“2번 라인 완성, 다음!”
난간 밑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는 드워프들과 인간 장인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소음이었지만, 그조차 하마르에게는 음악처럼 들렸다.
하마르는 방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따라붙은 테마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경과는?”
“주문량이 너무 많아서 적어도 몇 달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병사들 장비 때문이지?”
“예.”
“5만 벌이 장난도 아니고, 쩝. 그래도 하라면 해야지. 수고 좀 해줘. 장인들 좀 잘 다독이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간 기사들은?”
“떨어지는 대로 다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물량이 물량인 만큼, 앞으로 한 번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 좋아.”
모든 것은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옛날에 숨어 살던 마을의 몇 배나 되는 규모의 공방이 내 손짓에 따라 움직인다.’
손끝에서 시작된 짜릿한 감각이 머릿속을 기분 좋게 간질이는 느낌.
그는 이 좋은 기분을 더욱 크게 만드는 쉬운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맥주는?”
“여기 준비했습니다.”
“역시. 테마르 자넨 참 드워프답지 않게 눈치가 빨라.”
싱글벙글 웃으며 테마르의 어깨를 탁탁 두들긴 그가 갈고리 손에 걸린 맥주잔을 받아 들었다.
꿀꺽. 꿀꺽.
‘거참 잘도 마신다.’
어찌나 시원하게 마시는지, 저 미적지근한 맥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냉기 마법이 걸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캬아! 역시 이 맛이지!”
하마르가 그렇게 감탄을 내뱉을 때였다.
웨에에엥.
열린 방문 안쪽에서 붉은빛이 번뜩이며 요란한 소음을 토해 냈다.
하마르는 맥주를 마시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하, 하하. 갑자기 환청이 들리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하마르는 어색한 표정으로 테마르를 돌아보았다.
“……저도 들립니다만.”
“아니, 착각이야!”
쾅!
하마르는 집무실의 문을 거세게 닫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하마르, 5분 안에 안 튀어나오면 공방장에서 해임…….]집무실 안에서도 또렷하게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하마르는 참혹하게 구겨진 표정으로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통신구를 마주하는 순간에는 언제 인상을 구겼느냐는 듯 활짝 웃었다.
“와하하하! 일이 좀 바빠서. 주인, 오랜만!”
있는 힘껏 올린 입꼬리에 미세하게 경련이 일었지만, 바로 곁에서 보지 않는 이상에야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통신구 속 로건은 어떻게든 밝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하마르를 보며 싱긋 웃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하마르, 댐 공사 하나만 더 하자.]“아……하하하. 댐, 댐 공사라.”
어물거리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 그가 곁에 있던 테마르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데 요즘 제가 좀 바쁜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진행해 겨울 안에 끝내야 한다. 경험 있는 이들로만 추려서 그랑으로 와.]“그게, 저도 일정이라는 게 있어서…….”
[3일 준다.]“아니, 가는 데만 3일이라고 이 인간아! 양심 좀……!”
[그럼 4일.]“……어흑.”
[준비는 알아서 잘할 것으로 믿는다. 그럼 그때 보자.]통신구의 불이 꺼진 뒤에도 하마르는 하염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댐 공사? 또? 아, 왕실 직할령에……? 그래. 폐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다.”
또다시 대규모 공사의 담당자로 임명되었지만, 클레이튼의 반응은 하마르와는 사뭇 달랐다.
다만 그로서도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있었다.
“시기가 좀 아쉽군. 이 문제를 몇 개월간 또 미루는 것은 좋지 않은데…….”
“뭐라고 보고드릴까요?”
“아니, 내가 직접 폐하를 뵙고 말씀드리지. 알현 요청해.”
“예, 스승님.”
지시를 받은 그릭이 나가자 클레이튼은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자료를 정리하며 즉시 알현을 준비했다.
그가 보기에는 이 문제 역시 댐 공사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마탑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면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됩니다. 왕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마탑을 만드는 거죠.”
“새로운 마탑이라니요?”
클레이튼의 말에 로건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예. 기존의 왕실 마탑은 사실상 말만 왕실 마탑이지, 위자드 학파의 단일 마탑이나 다름없습니다. 건국 초기의 대현자 드루카일 님의 영향이었죠.”
“그렇지요.”
“모든 학파를 포용해 마법의 다양성을 존중하자던 애초의 취지는 빛바랜 지 오래입니다. 학파 간의 알력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위자드 학파를 제외하고는 다 마탑을 이탈해 버렸죠.”
“그러니까, 클레이튼 님 말씀은 이번에야말로 학파를 가리지 않는 새로운 왕실 마탑을 만들어 마법사들을 끌어모으자? 이 말씀이신가요?”
로건의 정리에 클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마법사들은 학파가 다르면 뭉치지 않는다면서요?”
“그래서 1차 계획을 세웠습니다. 예전의 저처럼 마탑 내에서 비주류에 속해 소외당하는 실력자들을 우선 끌어들여서 저희 골렘 마탑을 중심으로 맥라인 마탑을 만들까 합니다.”
“맥라인 마탑이라…….”
로건이 턱을 쓸며 고민에 빠졌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에는 부끄럽습니다만, 현재 저를 중심으로 최고의 성세를 누리는 저희 학파에 각 마탑의 비주류들이 더해진다면, 그리고 나아가 하나로 합쳐진다면 점차 맥라인 마탑 아래 왕국의 모든 마탑이 하나로 뭉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흥미롭군요. 그런데 왜 지금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생각은 폐하께서 마탑들을 굴복시킬 때부터 했습니다. 다만 그간 마탑에 영입할 인재들의 자료를 모으느라 이제야 말씀드리게 된 것입니다. 아무래도 댐 공사를 시작하게 되면 몇 달간은 제가 자리를 비워야 할 테니까요.”
“왕실의 이름으로 이 인재들을 모아 달라?”
“예. 그편이 폐하께서 원하시는 그림을 그리시기에도 좋을 듯합니다. 단순히 마법사들을 모은 하나의 마탑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실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함께한 기간이 오래되었기 때문일까.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자신의 속마음을 읽은 듯한 말에 로건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하지요. 단, 인원에 제한은 두지 않겠습니다.”
“예?”
“클레이튼 공이 조사한 인재들 외에도 더 오겠다는 마법사들이 있다면 모조리 받겠다는 뜻입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구상에 가깝겠군요.”
* * *
“또 거절? 대체 왜?!”
“탑주님께서 최근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상심이 크셨습니다. 마탑의 미래를 위한 대책이 나올 때까지 당분간 모두의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개소리!!”
불의 마탑 소속 장로, 5서클의 마법사 맥스는 노발대발했다.
벼락같은 고함과 함께 터져 나온 살기에 탑주의 명령을 전달하러 온 마법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지만, 사과하거나 위로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가 특별히 성격이 더러워서는 아니었다.
단지 1년 넘게 요청한 예산이 또 거절당한 직후였고, 그 개 같은 소식을 들고 온 게 하필 프레이머 탑주의 셋째 제자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당장 꺼져라, 페논. 그리고 탑주에게 전해. 내 연구비를 지원해 주지 않는다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마탑을 떠나 버리겠다고!”
“저,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셔 봐야…….”
“닥치고 전하라면 전해!”
“예, 예. 아, 알겠습니다!”
페논이 후다닥 연구실 밖으로 도망치자, 맥스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긴 한숨을 토했다.
“이렇게까지 날 견제한다 이거지? 탑주…… 정말 노망이 들었나.”
구순에 가까운 프레이머 탑주의 뒤를 이을 인재.
20년 전 5서클을 달성하며 들었던 그 말은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그를 괴롭혔다.
그나마 처음에는 은근한 따돌림에 불과했지만, 5년 전 그가 5서클 마법 플레임 블래스트(Flame Blast)의 주문을 반으로 단축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뒤부터는 아예 노골적인 방해를 하기 시작했다.
연구비 누락 및 예산 편성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기본이요, 그가 무언가 하려고 하면 탑주나 장로회 차원에서 견제나 간섭이 들어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아무리 그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엿 같은 짓거리야. 고위 마법사라는 놈들이…….”
그렇게 한숨만 푹푹 내쉬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스승님!!”
그의 제자, 라펠이었다.
평소 불의 마법사답지 않게 침착한 면모를 보이던 제자의 흥분한 모습에 맥스는 화를 내는 대신 연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냐?”
“와, 왕실! 왕실에서 폐하와 골렘 마스터의 이름으로 스승님께 초청이 왔습니다!”
“초청?”
라펠은 스승의 반문에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서류를 꺼내 들고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왕국 마법사들의 중심이 될 맥라인 마탑의 창설을 위해, 학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들을 모집한다.”
꿀꺽.
말하면서도 믿기지 않는지 마른침을 삼키며 입술을 핥는 제자를 맥스는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짐은 마도사 클레이튼의 추천을 받아 불의 마탑의 맥스 장로를 영입 1순위로 뽑았다. 맥라인 마탑 소속이 된다면 전폭적인 지원은 물론, 그대를 따르는 모든 마법사 역시 같이 받아들이겠다. 의향이 있다면 바로 응하라. 맥라인의 이름으로 마탑을 나오는 마법사들에게 어떠한 피해도 가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콰직.
맥스가 쥐고 있던 나무 잔이 우그러지며 손잡이에서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불의 마나가 자연스레 발현된 결과였다.
“스승님!”
기겁한 라펠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가 잔에서 손을 떼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가야겠다.”
“스승님?”
“이 엿 같은 마탑 당장 때려치운다고!!”
라펠은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연구실 안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스승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날.
불의 마탑 장로 맥스와 그 제자들 16명이 마탑을 이탈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던 5대 마탑의 장로 6명 역시 자신들의 제자를 이끌고 마탑을 탈퇴, 맥라인 마탑에 합류할 것을 선언했다.
그 인원만 해도 150명이 넘었고, 그중에는 주 영입 대상이었던 7명의 5서클 마법사를 제외하고도 22명의 4서클 마법사, 70명의 3서클 마법사들이 끼어 있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한 개의 마탑에 해당하는 전력이었다.
거절을 감안하고 짠 명단 모두가 응한 것이었다.
게다가…….
“……다른 마법사들의 문의도 폭주하고 있습니다.”
“뭐?”
오랜 세월 굳어진 마탑의 문화에 불만을 가진 마법사들은 그들의 생각보다 더욱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