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마탑의 정예를 빼돌리는 수작은 마법사 사회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폭거. 정식으로 왕실에 항의하겠소이다.
– 불의 마탑주 프레이머 외 4대 마탑주피식.
“지들이 견제하고 찍어 누르니까 다 도망간 건데, 이렇게 나오겠다?”
클레이튼은 손안에 들린 공문을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자신이 독립한다 했을 때의 레디오스 마탑주 반응을 생각해 보면, 이 공문은 그저 구실일 뿐이었다.
“이걸 핑계 삼겠다 이거지?”
일시적으로 무력에 눌린 마탑주들은 이 기회를 핑계 삼아 왕실의 간섭을 조금이나마 떨치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게 그들 마음대로 될 리는 없겠지만.
욕심 많은 이 나라의 군주를 떠올린 클레이튼이 빙그레 미소를 지을 때였다.
똑똑.
“스승님. 말씀하신 대로 지원하신 마법사분들이 모였습니다.”
문 너머로 들리는 그릭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그래. 곧 나가마.”
이제는 새롭게 시작할 때였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도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테지.’
조금은 짓궂은 미소가 그의 입가에 스쳤다.
– 하나의 마탑도 좋지만, 나는 마탑보다는…….
이 나라의 군주가 떠올린 생각을 마법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기대되었다.
* * *
“마법사들은 전부 모였나?”
“예. 연회장에 있습니다. 지금 스승님께서 접대하고 계십니다.”
“좋아, 가지.”
로건은 그릭의 말을 들으며 저택으로 들어섰다.
한때는 더글라스 공작저였고, 한때는 그의 거처였다가 이제는 마법사들의 임시 거처가 된 저택의 입구 경계는 철저했다.
“충!”
“폐하를…….”
“됐다. 쉬어.”
수많은 기사를 뚫고 들어선 로건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연회장으로 향했다.
– 국왕 폐하 납시오!
각양각색의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일제히 좌우로 갈라져 허리를 숙였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로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천천히 그들 사이를 걸었다.
삼삼오오 같은 로브를 입은 자들끼리 뭉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것은 차차 해결하면 될 터.
지금은 자신이 이 사안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이들은 앞으로 ‘마법 병단’의 주축이 될 소중한 자원이니까.
“폐하,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 내일 뵙기로 하셨는데…….”
“아니, 아닙니다. 왕국의 미래가 될 인재들을 만나는데, 하루라도 빨리 보는 게 낫지요.”
날 듯이 달려 내려와 인사를 올리는 클레이튼의 어깨를 두드려 준 로건은 상석에 올라 조용한 장내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상석 주위에 모여든 마법사들이 강한 호기심과 미약한 불안이 어린 눈빛으로 그를 우러러보았다.
로건은 그중에서도 눈빛이 형형한 장년의 마법사를 가리켰다.
“여기까지 느껴지는 강렬한 불의 마나에 그런 기세라, 불의 마탑에서 온 맥스 장로가 맞으시오?”
“헙! 말씀을 낮춰 주십시오, 폐하. 받들기 어렵습니다.”
그의 부름에 바로 무릎을 꿇은 맥스.
하지만 그런 그의 입가에는 말과는 달리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국왕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눈앞에 밝은 미래가 펼쳐지는 것 같았으니까.
“불의 마탑의 탑주 후보라고 들었소. 그런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지요. 일국의 왕으로서 그런 안타까운 일을 두고 볼 수 없어 불렀소이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거기 계신 분은 왕실 마탑의 게랄드 장로 아니시오?”
“폐, 폐하!”
로건은 5서클 마법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가며 다독였다.
왕실 마탑의 게랄드와 로윈, 물의 마탑의 저스틴, 바람의 마탑의 에페스, 대지의 마탑에서 온 라곤과 에이먼까지.
재능이 있음에도 배척받았던 마탑의 장로들이 하나같이 감격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나는 여러분 같은 인재들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나라의 전력을 만들 생각이오. 그런 내 뜻에 부응해 주시겠소?”
“당연히 따르겠습니다! 폐하!”
“물론입니다! 폐하!”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 넘치는 모두의 대답에 분위기가 화끈하게 달아오른 연회장.
“자, 자. 오늘 하루는 마음껏 먹고 즐기시오. 그리고 내일부터 왕국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을 함께합시다!”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주도할 새로운 마탑의 출범을 기다리며 눈을 빛냈고, 그날의 모임은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며 마무리되었다.
* * *
“마법사들 눈빛이 초롱초롱하더군요.”
연회가 끝난 후, 클레이튼이 로건과 단둘이 남은 자리에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렇지요. 앞으로도 그럴 만한 대우를 해 줄 테고요.”
“그런데 폐하, 가장 중요한 말씀은 안 하셨던 것 같은데요. 마탑이 아니라 마법 병단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습니까.”
싱긋 웃고 마는 로건과 다르게 클레이튼은 살짝 두통이 왔다.
“……그럼 그 말은 제가 해야 하는 거군요.”
“그래야겠지요?”
매끄럽게 웃는 얼굴이 얄밉기 짝이 없었다. 클레이튼은 저도 모르게 끙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모를 리가 없는 양반이…….’
– 우리는 연구자지, 전투 병기가 아니다!
지랄 발광을 해 댈 고위마법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애초에 그 반발의 수습은 자신에게 모두 떠넘길 요량이었으리라.
클레이튼은 쓰게 웃으며 약간의 복수심을 담아 로건이 불편해할 만한 주제를 꺼내 들었다.
“폐하, 아무래도 요새 예산의 압박이 심하시지요?”
“……뭐, 공도 알다시피. 그런데 그건 왜……?”
“사실 저희가 초청한 마법사들 외에도 많은 마법사가 ‘맥라인 마탑’에 관한 문의를 해 왔습니다. 단순 숫자로만 보아서는 초청한 인원의 두 배는 넘을 듯한데……. 아무래도 배정된 예산이 모자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말에 흔들리는 로건의 눈빛을 보며 클레이튼은 작지만 강한 쾌감을 느꼈다.
“……두 배요?”
“예. 만약 받아 주신다면 그 이상의 숫자도 넘어올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 누적된 마탑의 적폐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한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면 단숨에 그들이 구상한 마법 병단이 실현되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무리를 하고 있는 왕실에서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는 마법사들을 예정된 인원의 두 배나 더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어렵겠지.’
클레이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막막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받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폐하께서 구상하시는 마법 병단은 몇 배나 늦춰질 겁니다. 어쩌면 영영…….”
클레이튼이 말끝을 흐렸지만, 로건은 대번에 그 속뜻을 알아들었다.
“……왕실이 사람 따라 차별을 한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오?”
“예. 마법사들은 생각보다 자존심이 센 인종들이니까요.”
“하아…….”
로건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마정수 농법, 댐 공사, 군대.
자신이 벌여 놓은 일만 해도 돈 들어갈 곳이 이미 잔뜩이다.
– 고향, 맥라인 영지민들까지 폐하께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드웨인의 무거운 경고에 로건은 긴 한숨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다 불러들이도록 하세요.”
“예?!”
“강력한 힘이 빨리 갖춰질수록 결국 미래에 닥칠 손해도 줄어들 것이오. 이왕 벌인 일, 최대한 빠르게 달려야겠습니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말에 클레이튼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5대 마탑 전체에서 맥라인 저택으로 200여 명의 마법사가 몸을 의탁하겠다 말하며 찾아왔다.
대부분이 3~4서클의 중견 마법사나 젊은 마법사들이었다.
클레이튼은 복잡한 심경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물론 지원한 마법사들 역시 그들이 그리던 것처럼 꽃길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1주일 뒤, 왕궁에 모인 마법사들은 그들이 가입하게 될 곳이 맥라인 마탑이 아닌, 맥라인 마법 병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1차 공황에 빠졌다.
“병단?”
“전투 집단을 말하는 거야?”
“우리가?”
불안하게 수군거리는 마법사들에게 그들의 고용주이자 왕이 결정타를 날렸다.
– 여러분은 맥라인 마탑이 아닌 맥라인 마법 병단 소속의 마법사가 될 것이다.
– 당연히 기본적인 군사 훈련을 이수해야 한다.
그 충격적인 이야기에 마법사들은 넋이 나갔다.
그 자리에 있는 마법사 중 마탑을 박차고 나올 때 욕 한 번 안 박고 나온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럼 바로 떠돌이 용병 마법사 신세가 확정되는 것이다.
결국 마법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법 병단의 훈련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예순에 가까운 노마법사들 역시 예외는 없었다.
그들이 흰 수염을 흩날리며 연병장을 도는 광경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되었고, 가입하지 않은 마법사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절망도 잠깐, 시간이 지날수록 마법 병단 소속 마법사들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기 시작했다.
전투 훈련을 통해 오랜 기간 저서클에 머물렀던 마법사들이 하나둘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 유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신체 단련.
그리고 그것을 위한 마법 사용.
이 시대의 마법사들이 평생 생각해 본 적 없는 분야의 개척은 꽉 막혀 있던 마법사들의 사고를 조금씩 열기 시작했고, 그것이 그들을 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까?”
“클레이튼 님이 직접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공사에 집중하고 모든 힘을 쏟다 보니 클레이튼 님도 제자들도 성장했다고.”
“그야 그렇습니다만…….”
로건은 클레이튼에게 공을 돌렸지만, 어느 정도는 그 효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마법 병단. 그 효율은 이미 제국이 증명했으니까.’
단순히 이능력자인 마법사들을 전투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 낸 제국의 전투 조직.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투 훈련을 거듭하고 전쟁을 거듭할수록 마법 병단 소속의 마법사들이 빠르게 경지를 높여 가는 현상이 일어났고, 제국 전쟁 10여 년 뒤에는 마법사들이 저마다 마법 병단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로건은 그 정확한 이유나 원리는 알지 못했다.
그저 제국과 같은 병과를 만들어 부족한 전력을 조금이라도 보충하려는 시도였을 뿐.
그것이 생각 이상의 성과를 거두니 더욱 기쁠 뿐이었다.
다만 부작용도 있었다.
“폐하. 예산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이제야 아시겠습니까?”
드웨인이 움푹 들어간 눈으로 음산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흉흉한 몰골의 가신을 보며 로건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일국의 왕에게 올려지는 식사라고 하기에는 심하게 초라한 수프와 빵만 올려져 있었으니까.
“앞으로 그 농법이랑 댐 공사 끝날 때까지 고기는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드웨인?”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지요!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습니까?!”
반쯤 돌아간 상태로 번뜩이는 눈동자.
한마디만 군소리를 더 한다면 당장 로건을 물어뜯을 기세였다.
“크흠.”
이 모든 게 다 자신이 초래한 일.
로건은 한숨을 내쉬며 멀건 수프를 꾸역꾸역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