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4)
24화
“곧 끝나겠군.”
하만 테스론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전장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압도적인 병력 차이에, 준비한 작전까지 하나하나 맞아떨어졌다.
그중에 백미는 역시나 패드릭 맥라인을 막아 낸 상급기사, 라울의 존재였다.
‘공표하지 않길 잘했어.’
상급기사가 존재하느냐, 혹은 몇이나 존재하느냐.
그것이 중급기사단과 상급기사단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이었다.
기사단의 숫자와 등급으로 귀족이 가진 무력을 판단하는 것이 현시대였다.
상급기사의 존재 여부는 귀족의 위신과도 직결되기에 보통의 영주들은 자랑을 하면 했지,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쓰려면 숨기는 게 더 좋지.’
그는 흐뭇한 눈으로 패드릭 맥라인을 몰아붙이는 기사들을 보았다.
그러다 보병들의 포위진이 형태를 갖추어 가고 기마대가 적의 뒤를 잡는 것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거기다 적의 보병은 아군 궁병들의 견제에 완전히 발목이 잡혔다.
“끝났다!”
하만 테스론은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제 패드릭을 박살 내고 맥라인 성을 정복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만 챙기면…… 흐흐, 다른 것 따윈 필요도 없지.’
그렇게 마음 편히 행복한 상상을 하던 순간.
후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
“후방에 기마대 출현! 삼백여 기의 기마 부대입니다!”
“기마병? 맥라인 가문의 정예가 더 남아 있었나?”
자작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시대의 기마병은 보통 기사 수련을 겸하는 정규 병사들이 차지하는 고급 병종이었다.
사실상 기사단이나 그보다 더 희귀한 마법사를 제외하면 최정예 병력이었다.
하지만…….
“철갑옷이 아닙니다. 창도 없습니다! 가죽 갑옷에 무기라고는 조그마한 석궁만 들었고, 웬 나무 상자만 가득 싣고 있습니다. 맥라인 정규 병력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석궁?”
그 사냥꾼이나 쓰는 무기 말인가?
그 말 한마디에 자작은 피식 웃으며 긴장감을 버렸다.
“후방 병력의 일부와 궁수부대에 명을 내려 떨궈라. 정예병력이 아니라 잡병이다.”
자작은 상식적인 지시를 했고, 부관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잠시 후, 자작은 자신의 상식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파바바박.
“으아아악!”
후방에 번지는 비명과 함께 수십, 아니 수백에 가까운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져 나가고 있었다.
“저, 저게 도대체 뭐야! 빌어먹을! 막아! 당장 저놈들을 막아라!”
이미 승패가 결정 났다고 생각한 전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 * * 쏜살같이 튀어 나가는 용병대.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들이 무언가 준비하는 것이 보였지만, 이미 거리는 충분히 가까워져 있었다.
‘죽여 주마! 개자식들.’
적의 후미와 용병대 사이의 거리는 400여 미터.
보통 궁수들이 가진 장궁으로는 최선의 발사각으로 곡사를 해도 닿지 않는 거리였다.
하지만 로건의 명령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들어!”
차차착.
용병대 전원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적군을 겨누었다.
“쏴!”
가장 먼저 쏘아진 로건의 석궁.
은은한 황금빛을 머금은 볼트가 최후방 병사의 머리를 꿰뚫었다.
뒤이어 폭풍처럼 쏟아진 수백 발의 볼트가 테스론 병사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으아아악!”
“뭐, 뭐야?”
“뭐가 날아온 거야?!”
“저 거리에서?”
느닷없이 날아온 무언가에 주위 동료들의 몸이 사정없이 꿰뚫린다.
용케 살아남은 병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마, 마법이다!”
정체 모를 공격에 당황한 누군가의 외침이 테스론 진영 후방에 더욱 혼란을 일으켰다.
“후방! 마법사의 기습이다!”
말도 안 되는 착오였지만 이어진 적들의 움직임은 그 착오를 더욱 키우기에 충분했다.
두두두두.
“횡렬 질주!”
히이이잉!
후방을 향해 들이박을 듯 돌진하던 용병대가 급속히 직각으로 방향을 돌려 북쪽으로 향했다.
“궁수부터!”
호령과 동시에 용병들이 자신의 왼편을 향해 석궁을 겨눴다.
처척.
314개의 연사 석궁이 나란히 각자의 목표를 겨눴다.
“죄다 죽여 버려!”
참고 참은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고, 분노를 담은 석궁은 사신의 비를 뿌리며 적들을 유린했다.
파파파팍.
“으아아악!”
“화살, 화살이다!”
“응사! 응사하라!”
“활을 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장궁병들이 허공을 향해 활을 쏘았지만, 제대로 겨냥도 하지 못하고 되는대로 쏘아 낸 그들의 화살은 아무도 없는 자리에 허망하게 꽂힐 뿐이었다.
그러나 설령 제대로 노렸다 해도 의미는 없었다.
로건의 용병대는 그들의 화살이 용을 써도 닿을 수 없는 300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며 전장을 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 연이어진 사격은 적들의 후방 병력을 그야말로 짚단처럼 쓰러트리고 있었다.
‘좋아. 생각대로!’
적의 공격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퍼붓기만 하는 공격이 계속되었다.
압도적인 신무기가 전장을 유린하며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테스론 자작가의 후방 병사들이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날아온 재앙에 놀라 앞다투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의미한 응사나마 반격을 가하던 궁수 부대는 쏟아지는 집중사격에 금세 궤멸 상태에 빠졌다.
‘이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 지금껏 참았다. 그러니 이제…… 모조리 죽여 주마.’
살벌한 미소를 지은 로건이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반전!”
“반전하라!”
로건의 선창에 카이의 복창이 이어지고, 용병대는 전장 북쪽으로 향하던 방향에서 완만히 오른쪽으로 말의 방향을 틀었다.
최대한 가속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회전 반경을 유지하며 다시 남쪽으로 기수를 튼 선두, 로건이 비스듬히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그러자 좀 전과 방향만 달리 한 채, 다시 한번 용병대가 일렬로 늘어서게 되었다.
“들어! 쏴!”
신호에 맞추어 용병대가 다시금 빛살들을 쏘아냈다.
“으아아아악!”
“반격, 반격하라! 우리도 활을 쏴!”
“너무 멀어!”
“저놈들은 뭐야!”
“도대체 어떻게!”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들로서는 장궁의 최대 사거리 바깥에서 내달리는 기마대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한 번의 집중사격으로 백여 명이 쓰러지는데, 로건의 용병대는 한 번의 질주에서 서너 번의 볼트 소나기를 퍼부었다.
로건의 용병대는 적군의 후방을 8자 모양으로 왕복하며 연이어 화살 비를 쏟아냈다.
카이의 훈련으로 그들은 적들의 사거리가 닿지 않는 거리를 능숙하게 상시 유지했다.
“도망쳐!”
“어디로?!”
“아, 앞으로 달려!”
“미친놈아! 이 앞은 전장이야!”
제대로 교전도 못 하고 일방적으로 죽어 나가는 데에는 훈련이고 뭐고 소용이 없었다.
극 후방에서부터 이탈하는 병사들이 생겨나며 전열이 붕괴되었고, 그것은 곧 전장을 관통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조차 분위기에 휩쓸려 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기마병! 기마병을 돌려! 놈들을 잡아라!”
저놈들을 잡지 못하면 끝이다.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에서 간신히 정신을 붙잡은 하만 테스론이 소리쳤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더라도 기사단을 뺄 수는 없었다.
포스유저 간의 싸움은 괜한 빈틈이 보이는 순간 단번에 끝장날 수도 있는 전투.
그러니 지금은 맥라인 진영의 후방을 공격하고 있는 기마병을 돌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의 옆에 있던 부관이 열심히 깃발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자 곧 적의 후방에 있던 기마대가 전열을 빠져나와 우회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반드시 놈들을 끝장내야 한다!”
부관은 그런 상세한 명령은 신호로 못 보낸다는 말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깃발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다급한 감정이나마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마대는 적어도 속도라는 측면에서는 그 기대에 훌륭히 부응했다.
“이랴!”
두두두두두.
테스론 기마병들이 바람처럼 돌진해 왔다.
번뜩이는 갑옷은 하나같이 화려했지만 기사의 중갑보다 얇고 가벼웠기에 그만큼 방어력은 떨어졌다.
하지만 그만큼 말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기에 기마돌격병에겐 최선의 무장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가벼운 무장의 이점을 테스론 기마대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맥라인 군의 최후방에서 보병들을 학살하던 그들이 전장을 우회하여 로건의 용병대를 치러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십여 분이었다.
그만큼 그들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하지만 엄청난 스피드로 그들을 향해 돌진해 오는 1천 명에 가까운 테스론 기마병을 보면서도 로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적들을 환영했다.
“알아서 찾아와 주는군.”
뿌득.
로건은 사전에 계획한 1차 목표들이 스스로 죽을 자리를 찾아 달려드는 것을 보며 이를 갈았다.
후방을 완전히 무너트리기도 전에 저 은빛 날파리들이 들러붙을까 봐 그들이 충분히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그사이에 죽어 간 영지민이 몇이던가.
로건은 그렇게 쌓인 분노를 놈들에게 몇 배로 폭발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 가자! 측면 기동!”
“측면 기동!”
복창과 동시에 용병대가 일제히 방향을 꺾었다.
전장을 향해 돌진하는 모양새가 된 용병대가 중앙을 우회하여 접근하는 적의 기마대를 향해 횡렬로 석궁을 겨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달려오던 기마병들이 말 등에서 일제히 방패를 꺼내 들었다.
‘방패라…….’
보통 기마병을 잡기 위해 동원하는 일반적인 전술은 궁수 부대였다.
그 궁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하는 표준 장비가 바로 사람의 팔뚝에 끼워 상반신의 절반 이상을 가릴 수 있는 저 카이트실드였다.
그들이 방패를 꺼내 앞에 세우고 상체를 살짝 숙이자 적어도 정면에서 사격해서는 제대로 각이 나오지 않는 방어태세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로건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역시나…….’
로건이 씨익 웃으며 용병대에게 외쳤다.
“조준 비스듬히 아래로!”
“아래로!”
“말을 노려라!”
어리둥절하면서도 로건의 지시를 따르던 용병들은 그 지시에 곧바로 의도를 파악하고 로건과 비슷하게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쏴!”
비웃음을 품은 로건의 지시와 동시에 석궁들이 쏘아졌다.
히이이잉!
한 번의 일제사격에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수십의 기마병이 그대로 낙마했다.
“으아악!”
그 뒤를 따르던 기마병들이 쓰러진 동료와 말에 걸려 허공을 날았다.
“흡……!”
그들의 방패는 석궁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할지 몰라도, 말에 쏘아진 화살까지 방어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리고 포스유저도 아닌 병사들이 전속력으로 달리던 말에서 낙마했다면 결과야 뻔했다.
우지끈.
떨어지는 즉시 목이 꺾이거나.
콰직!
뒤따라 돌진하던 말발굽에 무참히 뭉개질 뿐이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그 참상을 보며 로건은 차갑게 웃었다.
“병신들.”
기마병을 상대하는 궁수 부대는 보통 사거리를 최대로 늘리기 위해 곡사를 선택한다.
일반 장궁의 직사 유효사거리인 100m 정도의 범위에 기마병이 들어오면 제대로 활을 겨눠 보기도 전에 부대가 전멸할 것이 분명하니, 되도록 먼 거리에서 곡사를 쏘는 것이다.
자연히 화살을 방어하는 기마 부대의 전술도 위에서 내리꽂히는 화살을 막기 위해 머리 위로 비스듬히 방패를 들어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과 말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었다.
당연히 300m가 넘는 거리에서 직사로 적을 맞출 수 있는 화살 따위는 생각도 못 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로건이 그들의 사정을 봐줘야 할 이유는 없었다.
“계속 쏴라! 낙마해도 일어서는 놈들을 노려!”
개중에는 기사에 근접하게 강한 놈들도 있는지 질주하던 말 위에서 나뒹굴고 동료들에게 깔린 뒤에도 비틀비틀 일어서는 놈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런 근성을 칭찬하기 위해 다시금 볼트의 세례가 쏟아졌다.
“으아아악!”
선두의 기마병 백여 명이 일시에 고꾸라지고, 연달아 쏘아진 볼트에 후미까지 연신 박살이 나자 남은 병사들 역시 진열을 유지하지 못하고 갈라졌다.
지휘부가 선두에 몰려 있었는지 돌진하는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횡렬 질주!”
그런 적들을 응시하며 그들의 직각으로 방향을 튼 로건의 말이 거침없이 내달렸고, 삼백여 명의 용병대가 그대로 뒤를 따랐다.
“말을!”
“말을 보호해!”
간신히 새로운 선두가 전열을 수습한 테스론 기마대는 로건과 용병대를 향해 다시 일직선으로 달렸다.
어느새 아까와 비슷하게 벌어진 거리에 테스론 기마병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고개를 숙이면서 자신의 머리와 말의 머리를 비스듬히 가리며 방패를 들었다.
말의 시야를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기수와 기마 둘의 급소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로건은 거리낌 없이 명령을 내렸다.
“쏴!”
히이이잉!
“아아악!”
테스론 기마대의 대처에도 이전과 비슷한 광경이 반복되었다.
사람의 상반신을 가리는 크기의 방패는 말의 머리를 간신히 보호하는 수준에 그쳤다.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그 빈틈을 용병대의 화살이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진열이 흐트러지고 벌어진 만큼 피격 면적도 넓어진 탓에 이번에는 이백에 가까운 말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그리고 역시나 뒤를 따르던 비슷한 수의 기마대가 동료의 말에 걸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용병대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그들을 향해 끝없이 볼트가 쏟아졌다.
‘이러다 다 죽는다.’
살아남은 기마병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적을 발견하고 돌진하는 그 짧은 순간에 무려 절반에 달하는 병력이 사라진 것이다.
동료들의 어이없는 죽음이 계속되자 분노보다 공포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와 말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남은 기마병이 이를 악물고 용병대를 향해 돌진했지만,
“들어! 쏴!”
적들의 석궁은 놀라운 연사력으로 다시금 벼락같은 볼트들을 쏟아냈다.
“크아악!”
이번 공격으로 인해 테스론 기마병의 수가 용병대보다 더 줄어들었다.
그때부터 용병대는 더는 낙마한 이들을 노리지 않았다.
재차 화살을 쏘아대며 남은 말들을 노릴 뿐이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이 그제야 돌격을 멈추고 물러나며 허망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테스론 기마대는 와해된 뒤였다.
바람 같이 전장을 누비던 기마병들이 바람처럼 허무하게 스러진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로건 님! 낙마해도 일어서는 놈들은 꽤나 강한 놈들입니다. 그런 놈들을 남겨 두시면…….”
“그냥 두어라!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내 병사, 내 영지민들을 구하는 게 나아!”
로건의 생각은 확고했다.
* * *
“저, 저. 저게 뭐야! 대체 저놈들은 뭐냔 말이다!”
악을 쓰듯 소리를 지르는 자작의 고함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 전장의 공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이곳에 존재하는 모두가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진영의 주인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후방이 뚫리고 있습니다!”
“병사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저놈들이 기사들도…….”
“헛소리하지 마라!”
기사들이 석궁 따위에 당할 리 없다.
하만 테스론은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기사들을 돌려라! 적 기사들이 문제가 아니야. 저놈들부터 잡아야 해!”
뒤늦은 지시였다. 게다가 지시가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적 기사들이 순순히 놓아줄 리가 없었다.
그 자폭에 가까운 지시를 전달해야 하는 부관이 힘없이 깃발을 들려 하는 순간이었다.
“저, 저놈들이 이쪽으로 움직입니다!”
“뭐라?!”
부관의 비명 같은 외침에 마음이 다급해진 자작의 머릿속이 혼돈으로 물들었다.
‘기사단을 움직여서 놈들을…… 아니, 그 전에 내가 위험하면…….’
잠깐의 갈등 끝에 자작은 전략적으로는 최악의 수를 선택하고 말았다.
“깃발 내려! 병사들 사이로 숨는다. 퇴로를 확보해!”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 희망이 있다.
내가 곧 테스론이다.
전쟁을 사실상 포기하면서도 하만 테스론은 스스로를 합리화하기에 바빴다.
그때부터 테스론 진영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