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이걸 어찌 말씀드리지?’
로건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수련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이미 자리를 잡고 그를 기다리는 노년의 초인을 보고는 표정을 관리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늦었습니다, 스승님.”
“공사다망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폐하. 인사치레는 됐고 검을 드시지요.”
로건은 평소처럼 곧장 검을 뽑아 드는 대신, 조금 주저하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스승님, 죄송한 부탁을 드려야겠습니다.”
“……예?”
평상시와는 많이 다른 로건의 모습에 검공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로건이 망설이는 표정으로 섣불리 말을 잇지 못하자 그 역시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폐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게……. 에스페란자 영지에서 도움을 조금 더 받았으면 합니다.”
“……예?”
눈을 질끈 감고 내뱉는 말에 검공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그렇게까지 예산을 쥐어짜고 계셨던 겁니까?”
현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검공이 아연한 얼굴로 되물었다.
“예. 딱 1년, 1년이면 됩니다.”
로건 자신이 느끼기에도 사기꾼이 하는 말 같아 면구스러웠지만, 다행히 스승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페란자 역시 그리 부유하지는 않습니다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요. 최대한 재원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다만…….”
“감사합니다, 스승님.”
“……불가피하게 여론이 더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군요. 대책은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이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내년에 다시 수확기가 시작되는 순간, 지금의 여론은 확실히 반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우리는 왕국을 확실히 장악할 힘을 손에 넣을 것이고요.”
“……부디 말씀대로 되어야 할 텐데요.”
“그리 만들 것입니다, 반드시!”
이글거리는 제자의 눈빛을 본 검공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그의 뜻을 따르기로 맹세한 마당이다.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면 끝까지 믿고 지지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답답한 마음에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수련을 시작하시지요.”
“예.”
스릉.
로건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에스페란자에서 조금만 더 도와준다면 3개월은 버틸 수 있어. 그러면 숨통이 좀 트이겠지.’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
“조심!”
쾅!
예상을 초월하는 아찔한 검격에 숨이 턱 막혔다.
“스, 스승님?!”
“오늘부터 더욱 실전처럼 가겠습니다.”
그 말에 감정이 실린 것 같다는 기분은 착각일까.
로건은 창백한 얼굴로 황급히 전력을 끌어 올렸다.
즉위식 이후부터 쭉 이어진 스승과의 수련.
그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왕국의 전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초인 전력도 중요해. 초인의 수를 확실히 늘릴 수 없다면 내가 강해지는 수밖에.’
현 제국제일검, 아니 대륙제일검이라 불리는 트리스 혼스비가 보여준 그 일검이 아직 뇌리에 생생했다.
아무리 전생에서는 그자가 제국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다 하더라도 이제는 어찌 될지 모르는 노릇.
극단적으로 말해 그 일검을 이겨 낼 수 있다면 전생의 제국 전쟁 당시 왕국을 짓밟은 십여 명의 초인들은 자신의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 전에…….
“잡념이 많습니다!”
쾅!
주르륵.
눈앞의 스승부터 확실히 뛰어넘어야겠지만.
로건은 온몸을 짜릿짜릿하게 울리는 통증을 참아 가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일순 그의 몸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둘로 나뉘었다. 일전에 선보인 바 있는 잔영이었다.
각기 다른 경로로 검을 휘두르는 두 명의 로건을 상대하면서도, 검공은 침착했다.
쩌어엉.
“잔영은 같은 상대에게 여러 번 써먹을 만한 수법이 아닙니다!”
대번에 실체를 간파해 몰아치는 스승을 피해 연신 몸을 뒤로 물리며, 로건은 이를 악물었다.
‘역시…….’
새삼스레 느껴지는 스승의 무력.
지난 회전에서야 아티팩트들과 자신의 초인 특성, 그리고 생명 가르기의 비전으로 일발 역전을 노릴 수 있었지만, 대련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특별한 기술을 쓰지 않아도 일방적으로 그를 밀어붙이는 검에는 빈틈이 없었고, 그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배울 것은 여전히 많았다.
그리고 그 움직임에 조금 익숙해지나 싶었을 때.
챙!
크게 검을 떨쳐 낸 스승이 훌쩍 뒤로 물러섰다.
“몸이 어느 정도 풀렸으면 바로 특성을 써 보시지요.”
“알겠습니다.”
로건은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지금 상태에서는 전력을 다하더라도 회전에서와 같은 기적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우우웅.
마음을 먹는 순간 심장의 포스 코어가 하나 더 튀어나오며 모든 능력을 두 배 이상으로 배가시키기 시작했다.
속도와 힘, 그리고 감각까지.
바로 직전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증폭된 전투력으로 로건은 스승을 미친 듯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스각. 챙!
쾅!
하지만 사방에서 번개처럼 몰아치는 검격도 차분하게 방어만 하는 검공의 견고한 수비를 뚫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푸른 눈으로 로건의 공세를 지켜보던 검공이 무심히 내뱉었다.
“그리고 그 기술도 써 보시지요.”
그 말에 순간 멈칫하는 로건.
“……괜찮으시겠습니까?”
쓰러트린 자가 오히려 정신적인 상처가 남은 듯한 대답에 검공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동안 생각해 놓은 바가 있습니다. 이제 보여 드리지요.”
그 자신 어린 미소에 마주 웃으며, 로건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을 꺼내 들었다.
‘생명 가르기.’
불꽃 가르기가 이능의 힘을 분쇄하는 것이라면, 생명 가르기는 생명의 본질 자체를 파괴하는 힘.
오러 정도 되는 힘을 버티게 해 주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그 근본을 파괴하는 수법이었고, 그것에 당한 검공이 주교급 사제의 보살핌을 3주나 받은 끝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정도의 악마적인 수법이었다.
그 때문에 이후에 이어진 수련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았지만, 스승이 저리 말한다면 분명한 자신이 있어서이리라.
‘사실 그때도……,’
엄밀히 말하면 자신이 진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으니, 로건은 다시 그 최강의 일격을 휘두름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전방을 잠식하듯 뻗어 나간 황금빛 빛줄기는 틈새를 기묘하게 파고드는 붉은빛 오러의 막을 끝내 뚫지 못하고 그 힘을 다하고 말았다.
“역시…….”
아직 가시지 않은 황금빛 속에서 터져 나온 가벼운 탄성.
이내 빛이 사그라들고, 붉은 오러가 생생한 스승의 모습이 눈에 드러났을 때.
로건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포스를 느끼며 휘청거리면서도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오러나 포스의 본질을 파괴하는 힘을……?”
로건의 의문을 검공은 환한 미소로 받았다.
“닿지 않았으니까요.”
“예?”
“제 앞의 공간을 차단하여 그 빛의 힘이 다가오는 것 자체를 막았습니다. 닿지 않았으니 파괴될 리도 없지요.”
공간을 차단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검공인지라, 로건은 그저 멍하니 스승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오랜 시간 막혀 있던 벽을 조금이나마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폐하.”
그 말에 담긴 의미를 한 박자 늦게 깨달은 로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승님, 설마…….”
“예. 이제야 비로소 왕국 최강의 초인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
오러유저 최상급.
전설로나 내려오는 오러마스터를 제외하면 포스를 익힌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스승이 도달했다는 것이니까.
아마도 트리스 혼스비가 도달해 있을 그 경지에.
“하하하, 하하하하! 이럴 수가!”
막연하게 자신이 극복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대륙제일검에게 대항할 패가 하나 더 생겼다.
그렇기에 로건은 두 팔을 벌리며 모처럼 속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검공은…….
스릉.
자신의 성취를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제자이자 군주를 보며 다시금 웃으며 검을 들었다.
“……스승님?”
“본디 무사란 한계 상황에서 얻는 것이 더 큰 법이지요. 저처럼 말입니다.”
“아, 그거야…….”
“검을 드시지요. 오늘부터는 그 특성을 사용한 뒤, 탈진 상태에서도 한계를 넘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온화하고 자애로운, 그래서 더욱 살벌한 미소.
‘이게 정말 예산 때문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 앞에서 로건은 입술에 경련을 일으키며 억지로 검을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후우우…….”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후우, 하셨습니다.”
연신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널브러진 로건의 앞에서 검공은 담담히 검을 수납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라면 그대로 돌아설 것이 분명했기에, 로건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마음을 물리치고 억지로 입을 열어 스승을 불러 세웠다.
“스승님! 혹시 제자를 더 키워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예?”
그게 무슨 소리냐.
슬쩍 구겨진 스승의 표정을 보면서도 로건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그간 속에만 담아 두었던 말을 쏟아 냈다.
“제대로 가르치고 수련만 한다면 초인이 될 수 있는 인재들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직접 가르치시면 그 확률은 더욱 높아지겠죠.”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일.
그러나 스승에게 실례가 될까 차마 하지 못했던 말.
하지만 이제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루터 카일과 위켄 칼리아는 스승으로서는 최악이야. 나 혼자도 한계가 있고.’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스승의 기분도 좋아 보이는 지금이 최적 같았다.
그러나.
“……아무나 다 초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폐하.”
막상 스승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나가 아닙니다, 스승님. 지금은 임무 수행 중이지만, 빅토르 그 녀석을 보면서도 감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 약혼녀인 에일렌 경도요.”
“……그들이라면 확실히 재능이 있지요. 폐하의 동생분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들은 굳이 제가 가르치지 않아도 언제고 빛을 발할 인재들입니다.”
스승의 극찬.
미래에 초인이 될 이들의 재능은 현실에서도 보는 이를 경탄하게 하고 있었다.
실제로 에일렌 역시 최근 최상급 기사가 되었고, 지금 임무 수행 중인 빅토르는 그보다 몇 주 빨랐으니까.
“그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스승님. 제가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을 봐 주고 있지만, 저는 그들이 더욱 빨리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계속되는 로건의 설득에 검공의 눈빛이 흔들렸다.
거기에.
“그리고 특이하게 궁수로서 최상급 경지에 오른 인재도 있습니다. 그런 인재라면 스승님께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부르델의 존재까지 더해지자, 검공이 흥미로운 기색을 보이며 태도를 바꾸었다.
“허? 활이요? 호오, 좋습니다. 일단 한번 다 만나 보지요. 그럼 모두 셋입니까?”
“예. 로니안 녀석이 돌아온다면 넷이 되겠죠.”
“그 정도면…… 흐음. 뭐, 새로 생긴 왕실 기사단은 루터와 위켄에게 맡기면 될 테니 폐하와의 수련 시간을 줄이지 않아도 되겠군요.”
“……네?”
설마 고민하신 이유가……?
“좋습니다. 데려와 보시지요. 한번 성심껏 가르쳐 보겠습니다. 물론 시간이 조금 줄어든 만큼 폐하의 수련은 좀 더 험해질 것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로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동생분께서는 아직……?”
이어진 스승의 말은 한동안 애써 잊고 있었던 동생을 떠올리게 했다.
수련을 위해서라며 남부산맥 심처로 들어갈 때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긴 지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잘못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동생아.’
– 네가 왕이잖니?! 군대라도 동원해서 동생을 찾아! 찾아 달라고!
영지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금 뇌리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제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이 상황에 몬스터들의 영역으로 소문난 남부산맥에 군대를 투입할 수도, 그 넓은 산맥에 소수의 정예를 파견해서 동생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건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스승을 바라보았다.
“로니안은 언제고 돌아올 겁니다. 무사한 모습으로, 예상치 못하게 성장해서요.”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동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전생의 다 망해 가는 가문에서 어떤 스승도 없이 대륙 최연소 오러유저가 되었던 동생의 재능을.
* * * 왕실에서는 치열한 수련이 이어지고, 마법 병단이 점차 그 형태를 갖춰 가고 있을 때.
수도와 왕실 직할령에는 또 한 번 왕실의 공고가 내걸렸다.
– 댐 공사를 위한 인부를 모집한다.
그 조건을 따져 보면 분명히 후한 조건이었고, 겨울철을 지나 농번기를 나야 할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수도 인근에서 퍼진 소문은…….
왕이 또 무리한 정책을 시행하여 백성들을 수탈하려 한다.
왕실의 정책을 비판하는 욕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