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내가 직접 라프탄으로 가겠다.
로건의 발언은 큰 파장을 낳았다.
신전에서는 그 즉시 주교 회의가 소집되어 기존 18명의 파견 사제를 포함한 120명의 사제단 파견을 결정했다.
그중에는 상급 사제 20명과 바다와 변화의 신, 아문다의 주교 일리아까지 포함되었다.
로건이 찾아가기 전과는 확 달라진 반응.
물론 그 과정에는 약속된 성금, 천만 골드의 가치가 크게 작용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직접 역병이 발생한 영지로 가겠다는 왕의 발언이 가장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왕실에서도 그야말로 난리가 났으니까.
“폐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역병이 난 영지로 가시겠다니요!”
눈이 뒤집힌 드웨인의 모습.
그가 성금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낼 줄 알았던 로건은 가신의 걱정이 고마워서 빙그레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초인인 나를 걱정해 주는 건가? 쓸데없는 염려야, 드웨인.”
“초인은 무슨 병이 피해 간답니까!? 역병에 관해서 제대로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역병에 걸려 죽은 초인도 없지.”
“그러니까, 최초가 되고 싶으신 거냐고요!”
“내가 직접 가면 귀족들도, 신전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일 처리도 분명히 빨라지겠지. 역병의 조기 진압을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야.”
신전에게 압력을 넣기 위해 욱해서 한 소리이긴 하지만, 로건은 말을 꺼낸 직후 이것이 최선임을 직감했다.
물론 주변의 생각은 달랐다.
“폐하. 꼭 직접 가셔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폐하 대신 제가 가겠습니다. 그럼 생각하신 효과도 비슷하게는…….”
스승도 오랜만에 목에 핏대를 세웠고.
[맥라인 영지의 여력을 모아 지원하겠다. 굳이 왕이 직접 갈 필요가 있겠느냐?]멀리 맥라인 영지의 아버지도 걱정스레 안부를 물었으며.
“왜 꼭…… 그렇다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자기도 함께 가겠다는 에일렌은 왕실 군대 훈련을 명목으로 간신히 떼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로건이 측근들을 다독이는 사이.
수도에서 출발할 역병 구제단의 준비가 순식간에 완료되었고, 그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정말 폐하가 직접……?”
“저기 봐, 진짜잖아.”
“어찌 귀한 분께서 그런 위험한 곳에…….”
와글와글.
국왕이 역병이 퍼진 영지에 직접 행차한다는 소문을 들은 수도의 주민들이 왕의 행렬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에이, 설마’하며 모여든 주민들은 이내 왕관을 쓴 국왕과 불꽃의 깃발을 높이 든 기사들이 등장하자 하나같이 숨을 죽이며 행렬을 지켜보았다.
그런 주민들의 시선을 받으며 행렬의 뒤를 돌아본 로건은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진 구제단의 규모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120명의 사제, 300여 명의 치료사, 200명의 기사와 천여 명의 병사들까지.
아직 왕실 수호대의 훈련이 제대로 끝나지도 않은 지금, 수도에 파견 나와 있던 맥라인과 에스페란자의 정예들이 왕을 수호하기 위해 달라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가져갈 막대한 규모의 식량과 생필품, 치유들이 가져온 약초들의 마차가 줄을 이으면서 내성 안에서 외성문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규모의 행렬이 되었다.
로건은 그 물량을 파악하며 각오를 다지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마중을 나온 드웨인을 향해 물었다.
“우리가 지금 상황에 이 정도 식량을 뺄 여력이 있었나?”
“준비된 군량에서 뺐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방 대체 가능할 겁니다. 여유가 조금 생긴 ‘그것’으로 필립에게 식량 구입을 지시했으니까요.”
며칠 사이 더욱 짙어진 드웨인의 눈 밑 그늘을 보며, 로건은 안쓰러운 미소로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출발하라!”
생각보다 커진 규모의 구호단은 빡빡한 일정으로 동남부의 라프탄 영지를 향해 출발했다.
* * * 유난히 흐린 날인지, 별빛도 많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 아래 들판.
화르륵.
길게 늘어선 행렬 여기저기서 모닥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행렬의 중심에서, 로건은 파도의 문양을 새긴 우아한 형식의 푸른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폐, 폐하?”
“일리아 주교 있나?”
“기별하겠습니다!”
신전 소속 병사가 후다닥 달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법복을 입은 은발의 여인이 마차 문을 열고 나왔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 언뜻 청년으로도 보이는 미모였지만, 머리에는 지역 교구의 장을 상징하는 법관을 쓰고 있었다.
“찾으셨습니까, 폐하.”
“반갑네, 일리아 주교. 낮에는 일정이 급해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
“한시가 급한 상황임을 알고 있는데 어찌 허례를 논하겠습니까. 이렇게 인사를 와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러 오신 것은 아닌 듯한데요?”
“사실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네.”
“폐하께서 직접 찾아오셨는데 어찌 거부하겠습니까. 편히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는 것이라면 뭐든 답해 드리겠습니다.”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는 일리아 주교를 보는 로건의 눈빛에 기대감이 어렸다.
‘이 사람이라면…….’
그녀는 그란디아, 아니 이제는 맥라인 교구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주교가 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신전의 교리에 박식하고, 신성력도 강하며, 지혜롭기까지 하다고 알려진 주교.
그리고.
‘유일하게 가끔 빈민가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주교.’
현재 맥라인에 있는 아홉 명의 주교 중 빈민가의 사람들이 유일하게 이름을 알고 있는 주교이며, 그들에게는 성녀라고도 불리는 이가 바로 눈앞의 일리아였다.
그런 그녀라면 지금 자신의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로건은 그런 기대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아니라면 지금 내 의문에 답을 해 줄 사람이 없는 것 같군.”
로건의 단언에 일리아가 푸른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폐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지요?”
“이번에 일어난 역병, 아니 이런 역병이 일어나는 원인에 관해서 묻고 싶다.”
전생에선 없었던 일.
그런데 하필 지금 시점에 일어난 일.
로건은 무엇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만병을 치유하는 신전, 그중에서도 주교라는 자리에 오른 이라면 그 원인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찾아온 길.
그런데 주교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아…….”
“곤란한 질문인가?”
“아니, 아닙니다, 폐하.”
말과는 달리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이 된 일리아는 이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을 향해 눈짓했다.
평상시에는 좀처럼 신전 밖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신전 기사들.
주교의 원행을 보좌하기 위해 따라붙은 신전의 정예들이 그녀의 눈짓 한 번에 순순히 마차 너머로 사라졌다.
“기사들은 왜……?”
“민감한 주제가 될 수 있어서 듣는 귀를 줄였습니다. 혹시 폐하께서 불편하시다면…….”
“아, 아닐세. 그냥 말하게”
같은 신을 모시는 사제라도 교리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으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조치라는 일리아의 설명에 로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신전에서 주류를 이루는 의견은 신들께서 내리신 시련이라는 쪽입니다, 폐하.”
그 후의 대답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시련?”
“예. 아시다시피 모든 질병은 신성력으로 치유가 됩니다. 그러니 불신자에게 시련을 내리고, 신의 기적으로 치유를 받으며 믿음을 공고히 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역병에 걸린 이들 중 대다수는 9대신의 신자들일 텐데?”
“그런 이들은 믿음이 부족한 이들이라는 것이 신전의 공식 입장입니다.”
로건도 한 번쯤은 들어 본 이야기.
하지만 납득이 가는 소리는 아니었던 터라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군.”
“예, 그렇습니다.”
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헛소리 같은 답변을 들려준 당사자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생각은 다르다는 건가?”
“……제 생각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것은 전적으로 저의 사견이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이 말이 제 입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저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할 것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폐하?”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전제를 까는 것인지 오히려 더 궁금해지는 소리였다.
“……물론이다.”
그 대답에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쉰 일리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민을 죽이는 신의 시련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일리아의 표정은 단호하기만 했고, 로건은 그제야 그녀가 신전 기사들을 물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대가 생각하는 역병의 발생 이유는 무엇인가?”
“각기 다 다릅니다. 역병이라고 모두 한 가지 병은 아니니까요. 다만 역대 신전의 자료를 조사해 본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듯합니다.”
“공통점이라 하면?”
“신전의 다른 주교들이야 코웃음을 치겠지만, 그 자료에 나온 근거로만 분석하자면 저기 치료사 길드원들의 의견과 거의 합치합니다.”
일리아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는 치료사들이 삼삼오오 몰려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의외야.’
일리아가 말한 신전 주류의 논리라는 것은 로건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 모든 질병은 신성력으로 극복 가능하니, 질병은 불신자들을 위한 시련이니라.
대부분은 돈독 오른 사제들의 헛소리로 여기는 말.
그 심정을 대변하여 사제들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 저 치료사들이었다.
– 모든 질병에는 원인이 있고, 원인만 알면 치료할 수 있다. 질병은 신이 내린 시련이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로 인해 신전은 공식적으로 치료사 길드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치유되는 속도도 신성력보다 한참 느리고 한계도 뚜렷한, 근거가 없는 민간요법을 쓰는 자들.
그것이 치료사 길드에 대한 신전의 공식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더 특이하게 생각되는 것이 이 눈앞의 일리아였다.
“주교씩이나 되는 사람이 치료사 길드를 인정하는 건가?”
“……사제들이 신전 안에서 호의호식할 때, 적은 돈으로나마 백성들을 치료하는 이들이 그들입니다. 올바른 신의 자식이라면 인정할 수밖에요.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백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들은 신전보다 저들입니다.”
주교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실로 파격적인 말.
“신전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다른 것으로 아는데.”
“그러니 제가 폐하에게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씁쓸하게 웃는 일리아의 모습은 상당히 의외였다.
‘이런 사제가 어떻게 주교의 자리까지 올랐을까? 소문 이상으로 대단한 능력이 있는 건가?’
하지만 로건은 특이한 사상을 가진 주교의 이력보다는, 역병의 진짜 원인에 대한 것이 더 궁금했다.
“그럼 치료사들과 그대가 생각하는 역병의 원인은 뭔가?”
“……역병이라 불릴 정도로 인류에게 큰 해악을 끼쳤던 질병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역병들 대부분이 발생할 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지요.”
신전의 해석과 반대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지 일리아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끊었고, 로건은 가만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바로 거의 모든 역병이 궁벽한 산골이나 대도시의 빈민가, 즉 먹고 살기 힘든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그 말은?”
“두 주요 발생 장소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굶주림이 만연하고 위생이 불량하다는 것이지요.”
“…….”
“한때 대륙 서부의 수많은 인명을 앗아 갔던 페스티안이라는 역병은 굶주린 백성이 쥐를 잡아먹으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지요. 대부분의 역병은 그렇게 극한으로 몰린 빈민들에게서 시작됩니다.”
그 말은 로건의 마음에 묵직한 짐을 남겼다.
특히나 굶주림이라는 단어가.
“……이번의 병은 과거의 레스타붐이라는 역병과 비슷하다고 했다. 확실한 치료 방법은 있나?”
“지금껏 신성력으로 치료되지 않은 질병은 없습니다. 약한 신성력에는 치료되지 않더라도, 더 강한 신성력이면 충분하지요. 그러니 신전에서는 따로 질병을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럼 치료사 길드에서는…….”
“신성력이 아닌 방법으로도 치료가 되었다면, 역병이라 불릴 리도 없겠지요.”
결국 확실한 대처법은 없다는 뜻.
“의문을 후련하게 해결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폐하.”
일리아의 씁쓸한 표정은 금세 로건의 얼굴에 전염되었다.
‘굶주림…… 굶주림으로 인한 쥐를 잡아먹다 생긴 역병.’
지금 왕국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고 하나, 일리아의 그 설명이 로건의 가슴을 점점 무겁게 파고들었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 무리하게 세금을 거둔 자신.
그로 인해 굶주리게 된 영지민들.
이게 전생에 없던 역병이 발생한 원인일까.
한 번 로건의 머릿속에 생긴 의심은 그의 가슴을 점점 아프게 찔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