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이런 미친놈이!!”
잠깐의 침묵을 깨고 터져 나온 로건의 천둥 같은 고함.
할 말을 잃은 일행 대다수가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전이면 아직 늦지 않았을 거다. 기사! 전령을 보내 학살을 멈춰라!”
“예!”
“병사들에게 내린 명령을 전부 바꾼다. 환자가 발생한 마을을 전면적으로 봉쇄하라. 그리고 환자들을 한곳으로 모아!”
“예! 알겠습니다!”
라프탄 내성에서 내려진 결정은 빨랐고, 일행 역시 신속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로건 일행이 환자들을 모아 놓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건 수십 구의 시체가 늘어져 있는 광경이었다.
“저주받아라! 이놈들!”
“천벌을 받을 것이다!”
울부짖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나도, 나도 죽여라. 이놈들아! 아이고오……!”
그리고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든 자식의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아낙네의 모습이 로건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 앞에 늘어서서 무거운 표정으로 방벽을 형성하고 있던 병사들은 다가오는 일행을 보며 황급히 좌우로 물러섰다.
“하멜 경. 뒤에 분들은……?”
“이, 이것들이! 멈추라고 전달하지 않았느냐!”
“명령을 받자마자 공격을 중지했습니다.”
선임 병사로 보이는 한 병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라프탄 영지 기사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뒤에서 왕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
기사 하멜은 무서운 표정으로 검을 꺼내 들었다.
스릉.
“명령 불복종은 중죄다, 게릭.”
“하, 하멜 경!”
“그만!!”
참상을 앞두고 보이는 촌극을 참지 못한 로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에 주춤하는 기사와 병사들.
하아.
로건이 한숨을 내쉬자 기사 하멜이 황급히 그 자리에 부복했다.
“죄, 죄송합니다! 폐하.”
“폐……하?”
“전부 무릎을 꿇어라! 국왕 폐하의 행차시다!”
그 고함 하나에 마을의 분위기는 또 한 번 뒤집혔다.
“전체 차렷!”
“추, 충!”
“충성!”
일제히 기립하며 어설프게나마 경례를 하는 기사와 병사들 너머.
“……왕?”
“왕이 왜 여기에……?”
“저 썩을 놈들이나 처벌해……!”
“이, 일단 엎드려 이 사람아!”
슬퍼하고 분노하는 와중에도 당황하며 엎드리는 백성들.
기사의 외침이 가뜩이나 보기 안 좋은 광경을 더욱 난장판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역병 때문인가,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로건은 더 이상 뭐라 화를 내기도 지쳐 그저 말없이 병사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 너머, 모아 놓은 시체 더미도 지나치자 통곡하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혐오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만 붉게 달아오른 이들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새빨갛게 변한 전신의 피부 사이로 툭툭 튀어나온 발진, 연신 콜록대던 환자가 피부를 긁적이자 갈라진 피부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뜨, 뜨거워, 가려워.”
더 큰 문제는 당사자가 그런 자각도 없는 듯, 혼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상처를 긁어 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그보다 더한 몰골로 이미 눈과 귀에서까지 피를 흘리며 거품을 문 채 의식을 잃은 사람도 보였다.
손톱에 긁혀 갈라진 피부에 염증이 내려앉은 듯 피부 곳곳에 누런 고름이 흐르는, 얼핏 보기에도 곧 죽을 것만 같은 몰골들이 마을 곳곳에 쓰러져 있는 처참한 광경.
“우, 우리 엄마, 엄마를 살려 주세요!”
눈치가 빠른 것인지, 전신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이가 로건을 보며 달려들었다.
“꼬마야, 멈춰!”
“사, 살려 주세요. 어르신, 제발!”
기사에게 제지를 당하면서도 연신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뒤쪽으로, 엄마로 보이는 아낙네가 힘겨운 얼굴로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말할 힘도 없는 듯한 그녀는 갈라진 피부 사이로 피와 고름이 흐르는 것을 보아 상태가 심상치 않은 듯했다.
“일리아 주교. 여기부터 부탁하네.”
“예, 폐하.”
로건의 말에 사제단이 마을 사람들 앞으로 나섰다.
“신전에서 나왔습니다. 병의 증세가 있으신 분부터 차례대로 저희 앞으로 나와 주세요.”
멍한 표정의 사람들이 새하얀 법복을 입은 일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들 대다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비슷했다.
‘이게 무슨……?’
시체가 만연한 마을 안.
역병이 발생한 것도 모자라 학살이 벌어진 직후였다.
연이어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에 뒤이어 이런 시골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제들까지 등장했으니, 마을 사람들로서는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일 터였다.
그 표정을 읽은 일리아는 다시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병사들이 공격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테니 안심하세요. 우리는 역병을 치유하러 왔습니다. 병의 증세가 있으신 분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일리아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느닷없는 참상을 겪은 마을 주민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우리도 가세!”
“아, 아니 길버트 님. 그래도 사제들이 한번 치료는 한 다음에…….”
“저, 저희는 길버트 님처럼 마법사도 아니란 말입니다.”
“어허. 폐하께서 지시하신 것 잊었나? 우리가 증세를 보이면 사제님들이 가장 먼저 치료해 주실 거야. 그러니 믿으라고! 우리 임무가 제일 중요해.”
“아흐흐…….”
내키지 않는 표정이 절반인 치료사들이 주춤주춤 마을로 들어섰다.
그들이 대략 알려진 증상을 세부적으로 모두 확인, 기록하면 사제들이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사들은 그 기록을 바탕으로, 증상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이 약초든, 뭐든 말이다.
라프탄에 도착하기 전부터 의논되었던 구호 방법이었다.
– 신성력은 분명 모든 것을 치료하나, 사제가 동원할 수 있는 신성력에는 한계가 있다.
신전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세를 자랑하던 고대에도 역병이 창궐했던 이유.
그렇기에 사제들과 함께하는 지금, 라프탄 영지 내에서 그 치료법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 길버트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로건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의 말대로만 된다면 이 사태를 확실히 막아 낼 수 있을 테니까.
“오늘부터 마을간 이동을 금지하라. 영지 전체를 마을 단위로 봉쇄하고 구호단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식량과 생필품은 구호단에서 지원할 것이니.”
“예!”
그렇게 명령을 내린 로건은 구호단의 최전선에 직접 나섰다.
아니, 나서려 했다.
“폐하. 굳이 폐하께서…….”
“저희가 하겠습니다.”
“이리, 이리 주십시오. 귀한 분이 어찌…….”
주변에 사람들이 죄다 손사래를 치며 말리지만 않았더라도 말이다.
“폐하. 폐하의 거룩한 마음은 알겠사오나, 폐하께서 직접 병자를 돌보시는 것은 오히려 주변의 모든 이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옵니다. 폐하께서는 그저 이곳에 있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길버트의 말은 로건의 생각에도 틀리지 않은 듯했다.
결국 그는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몇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구호 물품과 식량의 배급 정도를 지시하며 치료사들과 사제들의 협동 작업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좋지 않은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우리가 왜 이런 평민들을…….”
“제비뽑기 한 번 잘못해서. 제기랄.”
“대충해. 그냥 하는 척만 하자고. 기사나 귀족도 아니고 이런 잡것들에게 신성력 낭비할 필요는 없어.”
사제가 아닌 보통 사람이라고 해도 그 인간성을 의심할 만한 목소리들.
로건의 붉은 눈에 황금빛 불빛이 피어올랐다.
‘하. 저것들이……?!’
딴에는 들리지 않을 줄 알고 소곤거리는 것일 테지만, 안타깝게도 로건의 이목은 마을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저벅저벅.
“거기, 사제들. 지금 뭐라고 했지?”
서슴없이 움직인 로건의 손이 가리키는 곳.
패악스러운 귓속말을 주고받던 사제들이 동시에 움찔했다.
“영지민들을 어찌 치료할지 의논 중이었습니다, 폐하.”
“그, 그렇습니다, 폐하.”
변명하고는.
“그럼 좀 더 열심히 해야겠지?”
“예, 예. 물론입니다.”
“맡겨 주십시오!”
표정이 확 바뀐 사제들의 태도는 직전과는 달리 훨씬 재빨라졌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그 순간뿐이었고, 심지어 그들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후우. 다음.”
마을 사람을 향해 손을 뻗고는 한동안 눈을 감고 집중하던 사제, 테일이 이마의 땀을 슥 닦고는 돌아가라 손짓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마을 사람, 고열로 인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낙네는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사, 사제님.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
“시끄러워! 하찮은 것들이 뭘 안다고! 다음!”
정도 이상의 이적을 보이는 성법(聖法)이 아니라면, 본디 신성력은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사실 테일은 그것을 핑계로 태업을 하고 있었다.
‘회복도 느린 귀한 신성력을 이런 촌것들을 위해 쓸 수는 없지.’
기초 수도원에서 십수 년 동안 독하게 경전 공부를 하고 기도를 한 끝에 간신히 신성력을 각성하여 들어선 사제의 길.
하급사제인 테일도 귀족의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만든 신의 축복은 이런 하찮은 평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와 같은 하급사제는 소모된 신성력을 모두 회복하려면 3일간 금식 기도를 올려야 했으니까.
‘내가 왜 이것들을 위해 그런 수고를 해? 돈 많은 귀족들이라면 몰라도.’
그는 그냥 제비뽑기 한 번 잘못해서 끌려온 것뿐이다.
물론 그의 동료 중에는 이미 신성력을 모두 소모해 금식 기도에 들어간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냥 동정심이 없어서, 인성이 쓰레기라서 신성력을 아끼려고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신성력이 바닥나는 바람에 역병에 걸려 죽은 사제도 있어. 그 기록을 봤는데 내가 미쳤다고 이것들을 치료해? 나도 살아야지.’
그 동료도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사람들을 치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테일은 확신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안타깝게도 이곳에는 신성력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이가 있었고, 그는 왕이었다.
“네놈,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살기 어린 음성.
그에 테일이 식겁하여 고개를 돌리자 굳은 얼굴의 로건이 보였다.
“폐, 폐하. 저, 저는 백성들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치유? 내가 보기에는 손만 뻗고 연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시, 신성력은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안하지만 난 보인다.”
“……예? 그, 그런…….”
“다시 저 백성을 치료해라. 만약 또 성법을 쓰는 척만 한다면 그 쓸모없는 팔을 바로 잘라 버릴 것이다.”
오러유저가 뿜어내는 살기 가득한 음성에 테일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예, 예. 물론이죠!”
어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테일은 곧바로 정신을 집중해 돌아서려던 아낙네에게 성법을 사용했다.
우우웅.
직전과 달리 정말로 식은땀을 줄줄 흘려 대는 테일.
그와는 대조적으로, 아낙네의 표정은 좀 전과는 달리 확실히 편안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몸이 가뿐해졌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폐하.”
“자, 다음 차례.”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마을 사내를 보며 로건은 사제의 어깨를 툭 쳤다.
“지켜보고 있겠다.”
그 서슬퍼런 목소리에 사제 테일은 새파래진 안색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로건의 협박은 그것이 시작이었다.
치료 현장을 유심히 살펴보며 태업을 하는 사제를 찾아내 바로 닦달하는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사제들도 자신은 신성력을 볼 수 있다는 국왕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사제들의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어 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신전 소속의 사제들이라 해도 근본적으로는 이 왕국의 사람이니만큼, 자신이 속한 나라의 왕에게 밉보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폐하. 그런데 이리 핍박하시면 억울합니다.”
물과 농업의 신, 아이온의 상급사제 파비안.
투실투실한 비만 체형의 사제가 진정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로건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폐하시더라도 신전의 사제들에게 이렇게 불합리한 강요를 하실 수는 없습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있지만, 왜인지 그 숙인 고개 아래의 표정이 잘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보던 로건의 입가에 이내 싸늘한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