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불합리한 강요?”
로건의 말에 파비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제대로 설명을 해야 할 것이야, 파비안. 국왕을 모독한 죄로 태형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 말에 파비안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 사제는 신의 법으로 처벌받을지언정 인간의 법으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이제는 기록조차 없지만, 고대로부터 9대신의 신전이 대륙의 모든 왕조에 공언 받아 왔던 불문율을 깨겠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말씀이 문제라는 겁니다. 폐하께서는 저희 사제들을 강요하실 자격이 없습니다.”
피식.
로건이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신전에 거액의 기부금까지 내고 직접 나서서 요청한 인력이 눈앞에서 태업을 자행하는데, 간섭할 수 없다?”
“저희의 처신이 불만족스러우시면 신전에 직접 항의를 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정말 잘못한 것이라면, 신전에서 저희를 처벌할 것입니다. 신의 뜻에 따라.”
그리 말하는 파비안의 얼굴에는 어느새 자신감 어린 미소가 퍼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하는 말에 논리적인 허점은 없었으니까.
세상에 어떤 왕도 신전과 대립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신전, 아니 신과 대적하는 순간 왕국 국민 대다수와 귀족들이 왕에게서 등을 돌릴 테니까.
당연히.
“그래? 그럼 추후 신전에 뜻을 물어보기로 하지.”
저 살벌한 초인 국왕 역시 물러설 수밖에…….
스릉.
“……?”
번쩍.
“네놈을 죽인 다음에 말이야.”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황금빛 오러가 파비안의 살찐 목 아래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히이익!”
파비안의 주변에 있던 사제 둘이 털썩 주저앉아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쳤다. 두 사제는 오러가 주는 위압감에 아예 얼어붙어 버린 파비안을 대신해서 연신 비명을 질러 주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
사제들로서는 전혀 상상도 못 한 광경.
지켜보던 사제들 모두가 공황 상태에 빠져드는 가운데, 로건을 말린 것은 오히려 곁에 있던 기사들이었다.
“폐, 폐하. 진정하십시오!”
“폐하. 사제를, 더구나 상급사제를 죽이셨다가는 큰일 납니다!”
“큰일?”
하지만 로건은 기사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그저 코웃음을 치며 새하얀 얼굴로 굳어 버린 파비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럴 리가.”
“……예?”
기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로건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검 끝으로 파비안의 턱을 툭 건드렸다.
“상급사제 파비안. 네가 말해 보아라. 내가 너를 죽이면 어떤 문제가 생길 것 같나? 응?”
그 도발에 공포만이 가득하던 파비안의 눈빛이 달라졌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당혹감이 사라지자, 이성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까드득.
“신전에서는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폐하. 맥라인 왕국이 뿌리부터 무너질 것입니다!!”
공포가 물러난 자리에 차오르는 분노.
그 분노가 파비안에게 고함을 지를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그저 피식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군, 파비안.”
“사제에 대한 처벌권은 신전만이 가지고 있고, 지금 폐하께서는 그 선을 넘으려 하시는 겁니다!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는 말을 하면서 점점 더 기운을 차려 갔다.
그러나.
“그래. 작지 않겠지.”
“……?”
“상급사제면 한 천만 골드 되려나?”
“무슨……!”
“그리고 저 뒤에 같이 태업하던 중, 하급 사제들 열 몇 놈도 같이 처리하면 한 삼천만 골드 정도는 들겠군. 확실히 비싸. 쓰레기들 몸값으로는.”
“무슨 신성 모독을……!”
“파미엘 대주교가 과연 그 돈을 받고 입을 다물지, 아니면 자기한테는 한 푼 도움도 안 될 왕국의 정벌을 주장할지 나랑 내기할까?”
로건의 붉은 눈이 얼음장 같은 기운을 담고 파비안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한 파비안은 자신이 속한 종파의 주교이자 왕국의 대주교인 교단의 어른을 떠올리고는 다시 창백한 안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대주교 파미엘 게른하임의 물욕에 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소문이 나 있는 상태였고, 그를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파비안은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나도 괜한 돈 허비하긴 싫으니 제대로 일하라고, 사제님. 알겠지?”
영롱한 서기를 내뿜는 황금빛 오러가 파비안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말해. 나야 기부금 조금 더 내고 다른 사제들을 불러오면 되니까.”
로건은 부들부들 떠는 파비안을 차갑게 비웃으며 검을 거뒀다.
“자, 다들 빨리 자리로 돌아가! 환자를 치유하고 역병을 종식하는 것이 이 일을 가장 빨리 끝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특히 사제들, 태업은 용서하지 않는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 * *
“……그랬군요.”
일이 벌어진 직후, 환자들을 치유하고 바닥난 신성력을 충전하기 위한 기도를 끝낸 일리아는 신전의 기사들에게 사건의 전모를 전해 들었다.
“가만히 계실 겁니까?”
신전 소속 기사, 티모의 말에 일리아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이죠?”
“예?”
“사제를 협박하며 한 말이 태업하지 말라는 말이었다면서요?”
“아…….”
“저희는 위난에 처한 백성들을 돕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태업이라니……. 제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참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을 하는 일리아의 얼굴에는 분노마저 어려 있었다.
‘보기 드물게 깨끗하신 진짜 사제.’
티모는 자신이 모시는 이 주교야말로 진정 사제다운 사제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물론 그렇기에 더욱 주의해야 할 점을 상기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국왕이 신성력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아, 그렇지요. 그건 확실히 신기한 일이군요. 신의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인데 말이죠.”
“그런 만큼 교단에 꼭 보고해야 할 사항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망설이는 듯, 말끝을 흐리는 티모를 보며 일리아가 되물었다.
“……그리고? 뭐죠?”
“……이건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같은 동료인 러셀과 눈빛을 교환하자, 러셀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왕이 보인 오러가 사제의 몸을 건드리면서도 상처 하나 내지 않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그건…….”
파괴의 권능이라 불리는 오러가 사람의 신체와 접촉하면서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 오러를 완벽하게 컨트롤 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말인즉.
“……오러유저 중급 이상에서나 가능한 재주입니다.”
“예? 그분은 작년에 초인으로 각성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놀라운 거구요.”
“하…….”
일리아와 신전 기사들의 머릿속에 로건 맥라인의 존재감이 한층 더 강해지고 있던 그 순간.
마을 한쪽의 막사에서는 핸더슨이 로건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폐하.”
직전과는 다르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사제들을 보니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오만한 사제들을 통솔하는 주군의 행동에 진심으로 감복한 것이다.
그런데.
“어우, 다행이다. 거참, 왜 말로 하면 듣지를 않아.”
그리도 당당하게 사제들을 몰아붙이던 모습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군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폐, 폐하?”
“천만 골드라니, 지금은 먹고 죽으려도 없다. 휴, 저놈이 겁쟁이라서 다행이야. 어후.”
로건은 얼마 전 깨달음과 함께 얻게 된 ‘6개’의 포스코어가 맥동하며 주는 든든한 자신감보다, 돈에 의한 압박감이 훨씬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핸더슨, 어디 돈벼락 같은 거 떨어진다는 소식 들어 본 적 없어?”
“……”
핸더슨은 지금 들은 말은 무덤까지 갖고 가기로 굳게 다짐했다.
* * * 로건을 포함한 구호단 일행이 라프탄에 도착한 지 사흘째.
정신을 차린 사제단 덕분인지 한자리에 모인 라프탄의 발병자 중에서 새로운 사망자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사망자가 늘지 않았을 뿐, 신성력에 의한 적극적인 치료에도 완치자는 드물었다. 오히려 주변 마을의 새로운 발병자가 그들이 있는 마을로 수송되어 오면서, 환자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아직 치료법에 대한 감은 못 잡았는가?”
“……죄송합니다, 폐하.”
치료사 길드의 대표 길버트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발병 초기의 증상부터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은 해열제 이외의 처방은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조차도 들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예.”
그 말에 로건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제들은 제 몫을 하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자의가 아닌 강요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치료사들이 기대에 부응해 줘야 했다.
“그렇다면 아무런 성과도 없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그것은 아닙니다.”
“설명해 보게.”
“역병에 관해 확실하게 알려진 사실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 치료사 길드에서 지금의 역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다는 과거의 역병, 레스타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결과…….”
길버트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로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간단히.”
“……레스타붐은 증상자와 접촉한 지 일주일이 넘어 발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요.”
“아무런 증상이 없다?”
“예. 질병에는 잠복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감기 같은 것에서도 흔히…….”
“간단하게!”
“……병에 걸렸지만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시기가 있다는 겁니다. 그게 레스타붐은 일주일이었습니다.”
“이건 다르다는 거군.”
“예. 3일 정도로 추정됩니다.”
“3일? 그만큼 더 위험하다는 뜻이겠군.”
“아, 그건 아닙니다.”
“……아니다?”
“잠복기가 짧다는 것은 병에 걸린 후 증상이 발현되기까지의 날짜가 짧다는 것이지요. 걸린 사람들에게는 시급한 상황이겠지만, 역병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잘만 단속하면 넓게 퍼지는 것을 쉽게 막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어렵군.”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아니, 됐네. 그래서 대책은?”
“3일 이내에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 모두를 잠정적 발병자라 보고, 환자처럼 단속해야 합니다. 그리한다면 확산을 금방 멈출 수 있을 겁니다.”
길버트의 말에는 확실한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대한 첫 반응은 차가운 냉소였다.
“역시 사이비들…….”
막사 안, 기도를 올리며 신성력을 회복하고 있던 사제들 사이에서 조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질적인 표정의 중년 사제. 일전에 로건과 트러블을 만든 적 있던 그 인간이었다.
“파비안!”
일리아 주교가 그를 말리려 나서는데.
“또 잠복기라는 그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질병은 신이 내린 장대한 시련이지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비겁한 습격자 같은 게 아닙니다!”
파비안이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댔지만, 길버트는 곧바로 반박했다.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사제님도 사제가 되기 전에 감기에 걸려 보셨을 거 아닙니까. 감기 같은 것만 봐도…….”
“사제는 감기 안 걸립니다.”
“아니…….”
길버트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중년의 사제를 바라보고.
“파비안 형제님. 백성들을 돕기 위해 온 동료분들입니다. 괜한 시비는 삼가세요.”
일리아의 말에 파비안은 쯧 혀를 차고는 고개를 저으며 물러섰다.
주교의 말에도 여전히 예의 없는 반응이었지만, 파비안은 엄밀히 말해 물과 농업의 신 아이온의 사제.
종파가 다른 일리아가 항명을 한 것도 아닌지라, 명령을 받은 후의 태도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 일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길버트에게 말했다.
“하시던 말씀 계속하시죠.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저희 사제들은 치료를 계속할 테니, 저희가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반드시 다른 방법을 찾아 주십시오.”
일리아의 말에 여러 사제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파비안과는 달리 속내를 밖으로 내뱉는 이는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길버트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미 역병으로 죽은 사람들 말입니다…….”
“음?”
“그 시체를 매장할 것이 아니라 태워 버렸으면 합니다.”
그 말에 막사 안의 시선이 다시 길버트에게로 몰렸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치료사 길드는 전 세계적으로 협력해서 자료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갑작스레 이상 증상을 일으키는 질병들의 원인을 ‘균(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균이 가장 퍼지기 쉬운 근원지를 바로 그 균으로 인해 사망한 시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
그 말을 들은 다수가 인상을 찡그리는 것과는 달리, 로건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