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5)
25화쾅!
“큭!”
대검과의 충돌로 인한 반동으로 손아귀가 찢어질 듯 아파 왔다.
하지만 로니안은 통증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곧바로 몸을 움직여 앞으로 굴렀다.
후웅.
바로 직전까지 로니안이 서 있던 곳의 허공을 세차게 가로지른 대검의 주인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잘도 피하는구나, 꼬맹이!”
보통 사람의 반만 한 대검이 마치 장검처럼 보이게 만드는 육중한 덩치의 기사가 눈을 부라리며 다시 대검을 겨눴다.
“그릴! 여유 부릴 틈 없어! 전황이 이상하다!”
그때, 옆에서 동료와의 협공을 통해 맥라인 기사 하나를 몰아붙이던 테스론 기사가 소리를 질렀다.
“뭐? 내가 장난하는 것 같냐? 이 꼬마 장난 아니라고!”
“농담 아냐! 뒤를 보라고!”
“뭐라는 거야?”
후욱. 후욱.
‘무슨 소리지?’
적의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로니안은 잠시 공세가 멈춘 틈을 타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저 덩치 큰 기사를 만나 정신없이 도망치기 바빴던 그는 자신이 천재 기사가 아니라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송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질 수는 없어! 여기서 무너져서는 안 돼!’
– 네가 네 형 역할까지 대신해야 한다.
로니안은 전쟁 직전 들었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뜩이나 불리한 전장이었으니 자신이 기사 한 사람 몫은 해내야 그나마 희망이 있었다.
손아귀의 아릿한 통증을 억지로 무시하며 로니안은 그릴이라는 덩치를 주시했다.
‘어?’
등을 보이고 돌아선 적, 느닷없이 뒤를 향해 휘두르는 대검.
놈과의 전투를 개시한 이래 가장 큰 허점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다면 함정이라 의심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내 수세에 몰리던 로니안은 단 한 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촤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조차 없이 상대의 목이 떠올랐다.
검을 휘두른 당사자가 정작 얼떨떨해하는 가운데, 억울한 표정으로 땅을 구르는 그릴의 목이 사라진 신체에 무언가가 연달아 날아와 꽂혔다.
파바박.
“……화살?”
유난히 짧은 화살을 로니안이 인식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주변의 기사들에게도 그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이이익!”
“뭐야 이게!”
“다들 뒤를 조심해!”
그것도 오직 테스론의 기사들에게만.
비록 로니안처럼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 낸 이는 더 없었지만, 일방적으로 밀리던 맥라인 기사들이 하나같이 한숨을 돌렸다.
암운만이 드리웠던 맥라인 진영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반전되었다.
이 모든 것이 멀리서 아득하게 보이는 기마 부대 덕분이라는 것을 로니안은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서 부대를 이끄는 익숙한 이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혀, 형님?!”
놀라움과 반가움, 의아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다급한 외침이 로니안을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작은 공자! 정신 차리세요! 합세합시다!”
여전히 뒤에서는 적군과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었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사나운 고함이 이곳은 전장 한가운데임을 알렸다.
“예, 옙!”
검을 다시 고쳐 쥐자 결국 찢어져 버린 손에서 쓰라림이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그리 아프지가 않았다.
* * *
“씁. 역시나 이 정도가 한계인가.”
로건이 아쉬운 마음이 담긴 숨을 들이켜며 자신의 석궁을 바라보았다.
2성 코어를 통해 더욱 강력하게 진화한 포스.
이전과 달리 무기의 탄성을 증폭시키는 것도 가능해진 그는 석궁의 사정거리와 위력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그래서 혹시나 기사에게도 통할까 했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던 적의 기사들은 곧바로 쉽게 볼트를 쳐냈다.
압도적인 물량이 아니라면 원거리 투사체 무기로 기사를 어찌할 수는 없다는 사실만 재차 확인했다.
‘그나마 로니안을 도와서 다행이야.’
로건이 로니안을 보호하듯 움직이는 기사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다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로니안만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직접 간다.’
번뜩이는 눈으로 전장의 가장 중심부를 바라보던 로건이 뒤를 향해 소리쳤다.
“카이! 지휘를 맡아!”
“예?!”
아직도 한창 전투가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카이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지만, 그에 대한 답도 없이 로건은 홀로 전방을 향해 질주했다.
“이랴!”
“로건 님!”
로건의 돌발 행동에 카이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적의 사정거리 밖에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것이 지금 용병대의 전략이었다.
그런데 그 대장이라는 작자가 전략과 정반대로 적에게 뛰어들고 있었다.
카이의 눈에는 승리가 코앞에 다가온 순간 갑자기 자살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젠장! 왜?!”
자신의 고용주가 포스유저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 나이를 생각할 때 아무래도 강력한 기사를 상대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수습은 그의 몫이었다.
“모두 로건 님을 엄호해라!”
‘승기는 가져왔어.’
용병대의 활약은 완벽했고, 모든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아버지!’
전생에 폐인이 되어 쓰러졌던 아버지를 구해야 했다.
자신이 회귀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가문을, 좀 더 정확히는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전쟁에서 이기고 가족이 죽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일이었다.
‘좀 더 빨리!’
로건의 의지를 담아, 포스로 강화된 말이 바람처럼 전장을 내달렸다.
적진에 급속도로 가까워지자 갑작스러운 로건의 돌격에 당황하는 적군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용병대의 석궁에 의해 진영이 와해되는 와중에도 악에 받친 이들은 있었다.
“저놈이 대장이다!”
“놈이라도 잡자!”
용병대의 석궁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다가 그중 한 놈이 제 발로 사정거리 안에 뛰어들었다.
독기 어린 테스론의 궁수들이 일제히 로건을 노려 활을 쏘기 시작했다.
“하!”
그 모습을 본 로건이 힘찬 기합과 동시에 검을 휘두르자 그의 주위로 포스가 흐릿하게 뿜어져 나왔다.
포스를 응용해 얇게나마 보호막을 만든 것이었다.
전생에 경험해 보았던 2서클 마법사의 실드만도 못했지만, 적어도 일반 궁병들이 쏘아 보내는 화살은 어느 정도 튕겨 낼 수준의 방어막은 되었다.
로건은 그것을 뚫고 들어온 소수의 화살만 쳐내며 거침없이 질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적진 앞에 도달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으아아악!”
단숨에 목이 날아간 네 명의 병사를 대신해 주변의 놈들이 비명을 질렀다.
“싹 다 죽여 주마!”
로건의 외침에 응답하듯 두려움으로 가득 찬 합창이 빠르게 전장 중앙으로 번졌다.
“괴, 괴물이다!”
“다들 피해!”
“으아아악!”
이미 용병대의 석궁으로 혼돈에 빠진 테스론 진영에 또 다른 사신이 강림했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조금 더!’
“으아아악!”
병사들을 짚단처럼 베어 내며 역주하는 로건의 앞에, 드디어 기사들의 격전지가 나타났다.
쾅! 꽈아앙! 쾅!
요란한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번개 같은 움직임의 기사들이 서로 뒤얽히며 검을 휘둘렀다.
전쟁의 초기, 서로를 향해 돌진하며 랜스차징으로 적을 노리던 기사들은 대부분 말을 버린 채 지상에서 전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복잡한 전장 가운데 벌어지는 기사들의 결투에서 말은 사실상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움직임에 제약을 받아 약점이 되는 일도 있었다.
포스유저인 기사는 단거리에서는 말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여전히 압도적인 숫자의 테스론 기사들을 보며 로건은 이를 악물었다.
‘간다!’
2성의 코어가 얼마만 한 힘을 낼 수 있는지 제대로 확인해 볼 시간은 없었다.
다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다.
그랬기에 로건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하!”
히이이잉!
로건이 조금 더 진해진 황금빛 포스와 함께 달리던 말 위에서 날 듯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격전을 벌이던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적 기사 네 명이 맥라인 기사 두 명을 몰아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 울음소리에 가장 가까이 있던 테스론 기사가 즉각 반응하며 돌아섰다.
“웬 놈이…….”
퓨슉.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기사의 머리가 날아갔다.
잘린 목에서 솟구치는 피 사이로 놀람으로 가득 찬 아군 기사의 표정이 보였다.
“뒤…….”
“무, 무슨?!”
이변을 느낀 적군 둘이 동시에 반응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휘둘러진 황금빛 대검이 둘을 한꺼번에 베어 갈랐다.
쩌어어어억.
푸화악.
한 기사의 비스듬히 절단된 상반신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가슴께를 심장까지 깊이 베인 다른 한 기사의 입에서도 피가 뿜어졌다.
“누, 누구……?”
피를 내뿜은 기사의 눈에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눈은 끝내 답을 듣지 못하고 빛을 잃었다.
오히려 그 틈에 남은 테스론 기사 한 명 역시 허무하게 심장이 꿰뚫렸다.
그리고 로건이 만들어 낸 광경에 굳어 버린 것은 적의 기사만이 아니었다.
“대, 대공자님?”
“어떻게…….”
웬만한 중급기사도 보여 줄 수 없는 압도적인 위력의 참격과 움직임이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얼어붙은 듯 경직되어 버린 몸은 전장의 기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로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섬찟한 로건의 기세가 그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제야 기사들이 다시 검을 들어 올리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두 사람이 조금 전의 자신들처럼 위기에 몰린 동료들을 발견하고 합류하려는 순간, 로건은 이미 전장의 중앙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컥!”
“끄윽!”
“뒤를 조심……!”
처음처럼 확실하게 목숨을 빼앗을 필요도 없었다.
2성의 포스 코어가 가진 힘이 보통의 중급기사를 확실히 뛰어넘는다는 것은 확인했다.
자신의 무력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순간, 로건은 적의 목숨을 확실히 뺏는 것보다 운신의 속도를 높이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도 그가 지나치며 운신에 지장을 주는 상처를 입히는 것만으로도 맥라인의 기사들은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대, 대공자님?”
어찌나 하나같은 반응인지 이제는 반응하기도 지친 로건은 그렇게 위태위태한 아군기사들만 구해가며 꾸준히 한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가 향하는 전장의 중심에는 가장 처음 전투를 시작했으면서도 여전히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쉴 새 없이 공방을 주고받는 여섯 명의 기사가 있었다.
그곳은 주변의 그 누구도 감히 다가서지 못하는,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로건이 그들과 가까워지는 순간.
황금빛으로 빛나는 로건의 몸이 더욱 빠르게 공간을 단축했다.
* * * 로건이 나타나는 것은 보았지만, 계속 후방에 신경 쓰고 있을 정신은 없었다.
눈앞의 상급기사 하나와 중급기사 넷의 합공은 패드릭에게도 버거운 일이었으니까.
그랬기에 그는 갑자기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는 적들의 공세가 의아하기만 했다.
“서둘러!”
안색이 확 변한 테스론 상급기사의 외침과 동시에 적들의 공격이 과감해졌다.
승기를 가져온 상황에서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고 패드릭을 제압하려 하던 이들이, 어느 순간 다소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끝을 보겠다는 식으로 나왔다.
‘젠장!’
패드릭의 움직임이 더욱 다급해졌다.
챙!
패드릭의 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좌우로 쇄도하던 단창과 대검을 비스듬히 두드렸다.
최소한의 힘으로 방향을 바꾸고 그 반동을 이용해 또 하나의 장검까지 쳐내는 과정은 역시 원숙한 상급기사의 경지다웠다.
거기에 더해 고개를 비틀어 장창의 공격까지 피한 것은 운이 8할이긴 해도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곡예와 같은 회피도 거기까지였다.
스각!
팔뚝을 스치고 지나가는 또 하나의 장검이 얕지만 기다란 상처를 만들었다.
패드릭이 움찔하는 사이에 적들이 한 발짝 더 다가섰고 그는 본능적으로 최대한의 포스를 담아 검격을 뿌렸다.
꽈아앙!
“흡!”
간신히 힘으로 떨쳐 낸 적들이 주춤 물러섰다.
무리한 일격이었지만 시간은 벌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윽!?’
입가에 피를 흘리는 한 놈이 억지로 품 안에 파고들었다.
처음부터 패드릭을 괴롭히던 적의 상급기사, 그놈이었다.
놈 역시 무리한 움직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실시간으로 파리해지는 얼굴이 눈에 뚜렷이 보였다.
“타!”
“하!”
동시에 뱉어진 짧은 기합, 엇갈린 검은 서로 비슷한 위치를 찔러 들어갔다.
푸우욱.
“이, 이 미친!”
“쿨럭. 흐흐.”
서로의 왼쪽 옆구리를 관통한 검.
하지만 한 사람의 얼굴은 구겨지고, 한 사람은 웃었다.
‘왜 이렇게까지?!’
그리고 구겨진 인상의 패드릭 옆으로 대검과 장창이 날아들었다.
“이익!”
푸화학!
채챙!
옆구리를 관통한 검을 뽑아내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그 사이에 테스론 상급기사도 검을 움직였다.
서걱.
“끄윽!”
패드릭이 쫙 갈라진 옆구리를 틀어쥐고 비틀거리는 순간 장검과 단창이 뒤를 노렸다.
“흡!”
전투가 시작된 이래 최악의 위기였다.
이를 악물고 휘두른 검이 후방의 공격을 튕겨내는 사이, 머리 위로 뛰어오른 또 다른 기사가 호쾌하게 대검을 들어 올렸다.
게다가 몸을 낮추며 파고든 남은 한 놈은 한껏 뒤로 뺀 두 손으로 장창을 꼬나 쥐고 있었다.
바로 그 뒤에서는 상급기사가 피를 토해 내면서도 돌진해 오는 것이 보였다.
온몸의 허점이 다 보이는 공격들. 뒤를 생각하지 않은 듯한 모양새였다.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서 동료의 생명을 걸어 가면서까지 모험 수를 두다니.
패드릭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그가 하얗게 굳은 얼굴로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는데.
교차하는 여섯 명의 기사 사이로 황금빛 광채가 끼어들었다.
꽈아아아앙!
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 폭음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