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귀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왕의 폭거에 항의하겠다!
자크 후안을 비롯한 세 백작은 대전 회의 직후 영지로 돌아가 각자 병력을 모았다. 그렇게 모인 병력만 해도 몇 년 전 1차 내전 당시의 변경백 하나 수준은 훌쩍 뛰어넘었다.
거기에 근방의 중소 귀족들 역시 그들을 따라 병력을 모으니,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후안 백작령은 천 명이 넘는 기사와 2만이 넘는 대병력이 주둔하는 요새로 변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왕실의 병력만 5만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기사 수가 적다고는 해도 맥라인과 에스페란자의 병력까지 더해지면…….”
“우리의 병력은 계속 늘어날 거요. 어리석은 왕이 모든 귀족을 적으로 돌렸으니 맥라인과 에스페란자를 제외한 모두가 우리 편이라 봐도 무방하외다.”
“그래도…….”
“허허.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더구나 왕실은 군대를 운용할 식량도 없어. 다 따로 조사해 봤을 텐데?”
자크는 괜한 걱정을 하는 귀족들을 다독이며 내내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쪽에서는 봉기했고, 수도에서는 세력이 없는 귀족들이 연신 탄원서를 내고 있다. 왕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왕이 잠정적인 항복을 선언한 이후의 미래를 상상하는 자크의 눈빛은 오히려 들떠 있었다.
하지만.
– 왕실의 명령을 거역하고 무력 봉기를 감행한 무도한 귀족들을 직접 징벌하겠다!
며칠 지나지 않아 들려온 왕실의 선전 포고엔, 그의 여유로운 미소도 싹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백작!”
“왕실은 전쟁 못 한다며!”
“이게 무슨……!”
“조용! 조용!”
쾅. 쾅.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귀족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자크의 고함에 장내의 소란이 일순간 잠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함이 잔뜩 어린 눈빛들을 보며, 자크는 이를 갈며 다시 소리쳤다.
“설령 맥라인과 에스페란자를 쥐어 짜내서 보급을 한다 해도 며칠 가지도 못해! 굶어서 힘도 못 쓰는 군대가 그리도 두려운가!”
“그래도……!”
“나는 이 또한 기회라고 본다!”
자크 후안은 반론을 제기하려던 마이크 테로다의 목소리를 더 큰 목소리로 억누르고는 다시 눈을 부릅뜨며 의아해하는 귀족들의 얼굴을 훑었다.
“무력으로 왕실군을 제압하면, 왕은 이제 우리의 어떤 요구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 군대를 한계까지 끌어모아라! 버티기만 하면 이기는 전쟁이다!”
근본부터 잘못된 가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상,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주장이었다.
다만 그렇게 다른 귀족들을 설득했음에도, 그 자신의 마음만은 완전히 속일 수가 없었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아냐, 아니야. 왕의 허세일 거야. 그래야 해…….’
질끈 깨문 입술에서 자신도 모르게 핏물이 배어 나왔지만, 자크는 그 사실을 느끼지도 못했다.
야망의 실현이라는 단꿈에 취해 발밑을 내려다보지 못하는 그였지만, 그럼에도 본능적인 불안감은 감출 수가 없던 탓이었다.
* * * 뿌우우우우!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대규모 병력이 그랑의 성문을 나섰다.
쿵. 쿵.
일정한 보폭으로 걸음을 내디디는 소리가 성을 울리고, 그 대열의 선두엔 여느 때처럼 갑옷을 장비한 로건이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도의 시민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
비록 지금은 군대의 사기 고취를 위해 강제로 동원한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병사들에겐 힘이 날 만한 광경이었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든다.’
들어 올린 손을 내려 주먹을 불끈 쥔 채 결심을 다진 로건이 시선을 돌려 왕실근위군이라 이름 붙인 자신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새것같이 빛나는 갑옷과 창, 거기에 연사 석궁까지 장비한 보병이 무려 4만8천여 명이었다. 그 앞에는 경갑옷 차림으로 늠름한 준마에 올라탄 3천 기의 석궁기마대가 오연한 표정으로 행진하고 있었고, 최선두에선 500이 넘는 기사단과 300이 넘는 마법 병단이 불꽃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있었다.
단 1년 만에 만들어 낸 군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군세였다.
거기에 자신의 좌우로 반거인 루터 카일과 폭풍검 위켄 칼리아까지 더해졌으니, 어찌 든든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뒤쪽으로는 귀족들이 전혀 상상치도 못한 막대한 물량의 보급 부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단숨에 끝내야지.’
수도 그랑의 치안조차 스승과 에스페란자 대공가에 일임한 출진.
단단히 준비한 만큼, 이제는 왕실근위대의 힘을 왕국 전체에 각인시켜야 할 때였다.
로건은 가슴에 차오르는 호기를 가득 실어 성 전체에 울리는 고함을 내질렀다.
“전군 출진하라!”
– 충!!!
5만의 군세가 내뱉는 우렁찬 외침과 함께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쉼 없이 진격한 군대는 불과 사흘 만에 후안 백작성을 눈앞에 두었다.
쾅!
“저, 저게 다 몇 명이야!?”
“안 된다더니! 여력이 없다더니! 이게 대체……!”
“자크 백작!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지평선 너머에서 왕실근위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설마설마하던 후안 성의 귀족들은 단체로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단기간에 모은 그들의 병력 역시 3만에 달했고 기사 수는 오히려 몇 배나 많았지만, 애초에 진심으로 전쟁을 각오하고 모인 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자는 누가 뭐래도 자크 후안 본인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것들이! 나를 속였다고!!”
지금 그가 분노하는 대상은 왕실에 관한 정보를 의뢰했던 정보 길드들이었다. 녹스를 비롯한, 아레나, 보이드 등 유명 정보 길드들이 가져온 정보가 모두 틀렸다는 게 드러났기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정보 길드들 또한 막대한 자금과 권력을 등에 업은 왕실 정보 조직의 존재를 이제야 깨닫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중이었지만, 그가 알 리는 만무했다.
‘그 천한 것들이 감히 날 속여!?’
하지만 위약금을 요구하든, 놈들을 박살 내든 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 뒤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싸워 이긴들 우리 전력은 박살이 날 거요! 백작. 항복해야 하오!”
“전쟁이 안 날 거라며! 어떻게 책임질 거야!?”
그의 귓전을 요란스레 두드리는 말들.
하지만 자크 후안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버틸 수 있을까? 기사 수는 우리가 두 배는 많다. 연사 석궁도 있고, 성벽의 이점도 있으니 어쩌면 될 것도 같은데…….’
머릿속에 자꾸만 미련이 맴돌았다.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설령 이기지 못하더라도 버티기만 하면 왕이 휴전을 말하지 않을까?
눈앞에 환상처럼 다가왔던 화려한 미래가 다시 환상처럼 스러지는 것을 그는 쉽게 용납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영민하게 돌아가던 머리가 욕심과 이성의 충돌 속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자꾸만 머뭇거리던 순간이었다.
“그, 그냥 진군해 옵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선전 포고도 어, 없습니다!!”
밖에서 소리치는 기사들의 외침의 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협상은 필요 없다. 그냥 짓밟는다.”
“예!”
진군하던 중 나온 로건의 말에 주변의 깃발들이 어지럽게 휘날렸다. ‘즉각 전투 속행’이라는 왕의 뜻을 군대의 후방까지 전하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진군하던 군대에 삼엄한 기세가 깃들었다.
“폐하. 제게 선두를 허락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폐하. 제가 직접 성문을 부숴 버리겠습니다!”
위켄 칼리아와 루터 카일은 앞다투어 자신을 선봉에 세워 달라 청했다.
“적들도 연사 석궁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반 투사체에 관련해서는 무적입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위켄의 말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타당했고.
“이전의 저와는 다르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확실한 결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루터의 자신감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로건은 둘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위켄 공은 왼쪽, 루터 공은 오른쪽으로 가시오. 그리고…….”
살벌한 기세를 퍼트리며 씨익 웃은 로건이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정면은 내가 맡겠소.”
그 말에 선봉을 자처하던 두 초인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고, 세 명의 초인은 그 순간부터 조금씩 가속하며 성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오, 온다!”
“초인이다!”
“쏴!”
“쏴라! 모두 쏟아부어!”
성벽을 향해 돌진해 오는 세 기마, 아니 두 기마와 한 거인을 발견한 후안 성벽에서 비명 같은 고함들이 터져 나왔다.
그 고함 속에 담긴 공포를 읽은 로건은 기세를 더욱 강하게 피워 올렸다.
파바바박.
번쩍.
타다다당!
하늘을 뒤덮을 듯 쏟아진 새까만 쿼렐의 비가 로건의 몸에서 솟구쳐 오른 황금빛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포스블레이드의 응용기, 말의 전면까지 감싸는 황금빛 보호막은 이제 오러유저 중급에 이른 로건에게는 조금의 부담도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거대한 황금빛 덩어리가 되어 성벽까지 돌진한 로건은 성문 근처에 이르자마자 그대로 검을 치켜올렸다.
‘반항할 엄두도 나지 않게 압도적으로.’
의지가 일어나는 순간 심장에 자리한 6개의 포스코어 속에서 또 하나의 포스코어가 튀어나왔다.
우우웅.
그와 함께 일순간 상승하는 경지. 폭증된 힘을 느끼며 로건은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기를 꺼내 들었다.
신검 비전의 6식.
‘근원 가르기(根源斬, 근원참), 광범위 전개, 변식(萬象崩壞, 만상붕괴)!’
쿠웅.
그 순간 로건의 검 끝에서 시작된 작은 황금빛 구슬이 성문을 강타하고, 그 타격점을 중심으로 반경 수십 미터에 황금빛 파장이 퍼져 나갔다.
우우우우웅.
그그그그그그.
우르르르르릉!
황금빛 파장에 감싸인 후안 성의 서쪽 성문과 성벽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통째로 무너져내렸다.
“아아아악!”
“마, 마법!?”
“마, 말도 안 돼!”
콰아아앙!
추락하며 그나마 놀라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은 기사들뿐.
성벽 위에서 석궁을 쏘아 대던 병사들 대부분은 한순간에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검공이 지금은 그 맥이 끊긴 대마법과 견줄 만하다며, 마법이 부여되지 않은 성은 절대 버티지 못할 거라 혀를 내둘렀던 비기의 위용이었다.
“푸하하하! 역시 대단하십니다, 폐하! 과연 초인왕!”
로건의 왼쪽에서 붉은빛 오러를 갑옷처럼 감싼 거인이 감탄사와 함께 무너진 성벽 안으로 뛰어들었다.
“모두 목을 내밀어라!”
은빛 폭풍 역시 그에 질세라 성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 박자 늦게, 성벽의 안쪽으로 수십, 수백 개의 리베라티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꽈아아아아앙!
꽝!
콰아앙!
“아아아악!”
“사, 살려 줘!”
쏟아지는 공세에 이미 대열이 붕괴된 적 병력의 앞으로, 전신에 붉고, 노랗고, 파랗고, 하얀 빛을 둘러친 500기의 기사들이 그대로 돌진해 들어왔다.
300여 명의 마법 병단이 부여한 온갖 마법을 갑옷처럼 두른 왕실기사단이었다.
“반역자를 처단하라!”
“폐하의 뜻을 받들어라!”
“맥라인에 영광을!”
숫자상 두 배에 달하는 귀족 연합군의 기사들도 초인들의 돌진과 이어진 공세에 이미 사기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 막강한 전력이 반파시키며 지나간 자리에, 반 박자 뒤에 달려온 왕실근위대가 새까맣게 쏟아지는 쿼렐의 비를 퍼부었다.
“끄아아악!”
“도, 도망쳐!”
“살려……!”
완벽하게 초토화되는 귀족 연합군.
그 압도적인 광경 속에서 생각보다 늦게 특성 발현의 후유증을 수습한 로건이 다시금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난장판인 전장을 뚫고 성안을 가득 메우는 우렁찬 외침이 순식간에 판가름 난 전쟁의 승패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