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폐하. 전국의 기사들을 전부 왕실에 끌어모아서 뭘 하시려는 겁니까? 필요할 때 동원령을 내리면 될 텐데 왜……?”
사실상 왕국의 전권을 장악한 로건의 면전에서 이렇게 따지고 들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 몇 되지 않는 사람 중 하나인 드웨인을 바라보며 로건은 피식 웃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돈 때문이겠지. 마정석을 또 엉뚱한 데에 쓰는 것도 걸릴 테고.”
드웨인은 순간 뜨끔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는 신하로서 당연한 의문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언제건 폐하께서 명령 한마디만 하면 동원할 수 있는 기사들을 굳이 대가까지 치러 가며 데려오신 이유를 모르겠으니까요.”
“왕국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기 위함이야.”
“……예?”
“나라를 싹 바꿔야겠는데, 그렇다고 귀족들을 모조리 때려잡아 버릴 수는 없잖아.”
다 박살 내 버리면 다시 기강을 세우는 데 오래 걸릴 테니까.
그 소름 끼치는 대답에 얼어붙어 버린 드웨인은 뒤에 이어진 말은 듣지도 못했다. 단순히 돈 문제로 의문을 제기했는데 너무나도 살벌한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뭐, 뭐, 대체 무슨 짓을 하시려고요!?”
“말했잖아. 왕국의 체질을 바꿀 거라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왕국의 모든 무력을 내 손에 집결시킬 거야. 우선은 귀족의 뜻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할 기사단부터 손에 넣어야지.”
“그 귀족들만 움직여도 전부 움직이는 거잖습니까! 지금 폐하께서는 그만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계십니다!”
“아니. 아니지. 명령이 두 번 내려가는 거잖아. 나, 귀족, 그리고 병력. 난 그 가운데 과정을 없애려는 거야.”
“그게 이번 건이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과정 하나 없앤다고 뭐가 달라지는데요!?”
“그 과정 하나 없앤 결과로 중부 대륙의 수많은 왕국 중 하나였던 나라가 대륙 유일의 제국이 되었다.”
“……예?!”
이내 그 말뜻을 알아들은 드웨인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로건은 그 굳은 얼굴에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
“군주의 뜻이 국가 정책에 오롯이 반영되고, 그 누구도 반발하지 못하는 나라. 위난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나라. 그렇게 체질을 바꾸는 게 지금 내 1차 목표야.”
“그렇다고 제국의 방식을…….”
“왕위에 올랐을 때부터 생각해 온 거야. 내가 왕이 된 이상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이 가장 빠를 것 같거든.”
제국을 막기 위해 제국의 제도를 차용하겠다.
뜻은 알겠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폐하…….”
드웨인의 얼굴에 미미한 경련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폐하께서 말씀만 하시면 그게 가능하지 않습니까?”
“공포가 만들어 낸 일시적인 현상이지.”
“……죄송한 말씀이지만, 시간이 지나더라도 귀족들이 폐하께 반항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과한 걱정 같습니다.”
“아니, 제도로 확실히 정착시키는 것이 나아. 무엇보다 왕국의 모든 병력을 가능한 큰 얼개로 묶어 함께 훈련하는 게 전투력 상승에 더 효과적일 테니까.”
가능한 큰 얼개.
그 말에 드웨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제야 로건의 뜻을 확실히 이해한 것이다.
“제국의 군단…….”
“그래. 그거야말로 군주가 병권을 틀어쥐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는 걸 이미 역사가 증명했어.”
“그 제국도 제도를 악용한 폭군의 등장에 몇 번이고 망할 뻔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최강의 나라로 성장했지. 지금은 그 위험성보다는 효율적인 면만 염두에 두고 싶어. 드웨인. 설마 내가 폭군이라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미 그렇게 불리고 계시는데요.
드웨인은 목구멍까지 솟아오른 진실의 소리를 꿀꺽 삼켰다.
‘어쨌건 이제 백성들은 폐하를 칭송하고 있어.’
이미 분명한 결과가 있으니 쉽게 반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얘기하고 나니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
영지의 문제아에서 후계자로, 그리고 이제는 완전한 주군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젊은 청년의 생각이.
“……폐하. 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음?”
“말씀하신 제국의 위협이 없다면…… 아니, 극복하고 나면 어쩌실 겁니까?”
“뭘 어떻게 해? 쉬어야지.”
“……예?”
“푹 쉴 거야. 지겨워서 더 쉬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 때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튀어나온 대답은 엉뚱하기 짝이 없었고, 이어진 말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오랜 시간을 그것만 보고 달려왔으니까.”
“아……? 예. 그……?”
드웬인은 당황스러웠던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 * *
“흐어……!”
이게 몇 번째일까.
달탄 영지의 기사 갈란은 또다시 체면도 잊은 채 입이 벌어질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그를 흉보는 이는 없었다.
왕실기사단과 맥라인,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합동 훈련을 지켜보며 ‘견학’ 중인 동료기사 대다수가 그와 비슷한 표정이었으니까.
각기 다른 세 기사단 소속의, 2천명이 훌쩍 넘는 기사단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놀라웠지만, 그보다는 훈련의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미쳤어. 미친놈들이야.’
이미 며칠 간의 경험으로 왕실 기사단의 훈련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왕실의 외성벽을 탈진할 때까지 달리는 무한 달리기.
성벽 훈련을 대신한다지만 실제 전투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바위 매달고 절벽 점령하기.
이게 실전인지 연습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난폭한 철검 대련.
그래도 여기까진 보통 기사단의 훈련을 더욱 강도 높게 바꾼 것이라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광경만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사람이 말을 들고 뛰는 건데?
“저게 무슨……?”
훈련이 아니라 학대 아닌가?
갈란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를 안내한 총교관 헤인켈이 작은 한숨과 함께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리 맥라인, 흠. 흠. 맥라인과 왕실기사단의 승마 훈련은 말이 사람을 탄다. 그리고 그 목적은…….”
“뭔 개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갈란의 목소리는 살벌하게 째려보는 교관의 눈초리에 쑥 들어갔다.
– 넌 그 반골 같은 태도가 문제야. 언젠가 그거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를 거다. 제 명대로 살고 싶으면 성격 좀 고쳐.
이제는 은퇴한 기사단장의 말이 얼핏 뇌리에 떠올랐지만, 갈란은 그 불길한 목소리를 고개를 흔들어 털어 버렸다.
‘팔과 함께 포스를 잃었다더니, 눈빛만큼은 여전히 최상급기사 같네. 씁.’
한참이나 갈란을 노려보던 헤인켈은 그가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에서야 다시 전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훈련의 목적은 체력을 기르기 위함도 있지만, 애마와의 유대감을 길러 말이 포스를 더욱 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다. 그렇게 되면 평기사도 중급의 경지에나 가능한 승마 스킬을 일부나마 사용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기사의 경지 역시 같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
숨 쉴 틈도 없이 이어진 헤인켈의 말.
“이상. 질문은 받지 않는다.”
후우우.
길게 숨을 내쉬는 것을 보니, 그간 이 말도 안 되는 훈련에 관해서 수없이 질문을 받아 온 티가 역력했다.
다만 그럼에도 갈란은 묻고 싶었다.
“대체 이 미친 훈련을 고안한 사람이 어떤 새…….”
“나다.”
“……훌륭한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상. 질문 없습니다.”
스스로 칭찬하고 싶을 만큼 훌륭한 태세 전환이었지만, 이미 늦은 듯 헤인켈의 번득이는 눈동자는 또다시 갈란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살벌한 시선을 못 본 척하며 갈란은 희망적인 말을 떠올렸다.
– 3년. 딱 3년만 파견 갔다 온다고 생각해라. 그 후에는 내가 더욱 후하게 대우해 주마.
그의 주군, 트레보 달탄 남작의 말을.
‘그래. 까짓 훈련이야 죽었다, 생각하고 받으면 그만이지. 깡 하면 이 갈란 님이라고.’
다들 시골이라 무시하는 달탄 영지였지만, 갈란은 그 한가롭고 할 일 없는 동네가 좋았다.
딱히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갈란에게 있어 달탄 영지의 기사란, 별다른 일 없이 월봉만 챙기면 되는 꿀보직.
가끔 몸이 달거나 마음이 답답해지면 휴가를 내서 대도시에서 놀다 오면 그만인 것이다. 그로서는 다른 동료들이 왜 그렇게 달탄 영지를 답답해하는지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이곳에서도 기대가 되는 것은 있었다.
‘뭐, 그 철혈검이라는 건 확실히 대단했지.’
같은 평기사들이 휘두르는 놀랍도록 살벌한 검격.
갈란은 달탄의 기사단장인 중급기사 롬멜이 그 평기사를 이길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갈란에게서 눈을 돌린 헤인켈이 놀랄 만한 말을 내뱉었다.
“지금의 폐하께서도 초인이 되기 전에 이 훈련을 받으셨다. 그리고 엄청나게 효과적인 훈련이라고 감탄하셨지.”
망나니를 떨궈 내기 위해 억지로 고안한 훈련이 초인을 만들어낸 비전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지만, 스스로 미화한 추억으로 무장된 헤인켈의 눈빛은 그 야바위를 진실로 둔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말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기사들 대부분의 눈빛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보며 헤인켈은 내심 흐뭇하게 웃었다.
‘폐하의 위명을 들었다면 절대 무시할 수 없지.’
지금 왕국 내에선 믿기지 않는 업적을 쌓은 로건에게 수많은 전설이 따라붙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기사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불과 5~6년 만에 초인이 되었다는, 그 믿을 수 없는 성장 속도였다.
증인이 워낙 많은 탓에 이미 사실로 여겨지는 전설.
그런 로건이 했던 훈련이라니, 기사라면 저리 반응하는 것도 당연했다.
“에이. 뻥 아닙니까?”
웬 망둥이 한 놈 빼고는.
빠직.
“경, 아니, 너. 나와.”
헤인켈의 인내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에구구구. 허리, 다리, 아우…….”
연신 신음을 흘리는 갈란이었지만, 그것을 불쌍하게 보는 기사들은 없었다. 뇌를 거치지 않는 발언을 일삼다가 결국 전체 기합까지 받게 만든 고문관이었으니까.
왕실기사단의 부단장이라는 프란시스코 로메로 경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것도 결국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갈란의 주둥이는 쉬지 않았다.
“치사하게 최상급기사가 직접 때리냐. 정정당당하게 평기사를 내보내지.”
근거 없는 헛소리였다.
물론 그런다고 갈란이 이겼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문제는 이 갈란이라는 놈이 듣는 이가 없어도 말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소싯적에는…….”
“우리 영지에서 내가…….”
“아씨, 컨디션만 좋았어도 그 검을 슉슉 피해서…….”
이미 취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시시각각 살벌해지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인지 갈란의 주둥이는 좀처럼 쉬지를 않았다.
‘내가 입 막을게.’
‘내가 손 묶고.’
‘우리가 팬다.’
결국 주변의 동료들이 이를 갈며 손을 움찔거리는 순간.
“전체 주목!!”
갈란의 목숨줄을 연장시킨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덜컥 열린 문 사이로 헤인켈이 들어왔다.
갈란을 보자마자 살짝 인상을 찡그린 것도 잠시.
이내 여유로운 눈빛이 된 헤인켈은 자신의 뒤쪽, 기사들이 가져온 거대한 마차를 가리켰다.
“으음. 이 조가 처음이군. 영광으로 생각해라.”
영광?
의아함이 담긴 시선들이 그에게로 몰렸다.
“알다시피 견학은 오늘로 끝이다. 그런 고로,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게 될 제군들을 위해 장비를 가져왔다.”
그 말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기사들의 눈빛이 풀어졌다.
장비?
고작?
그것 때문에 이 시간에?
그 모든 눈빛들을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은 헤인켈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한 명씩 나와서 본인이 원하는 ‘아티팩트’를 선택해라. 1서클 아티팩트지만 꽤 도움이 될 것이다.”
한순간 막사 안에 정적이 흘렀다.
기사들의 눈에 흐르는 불신의 빛.
하지만 헤인켈이 마차 안에서 푸른 빛이 흐르는 건틀릿을 하나 꺼내는 순간.
“우와아악!”
유난스럽게 괴성을 지르는 갈란을 포함한 모든 기사들이 당장이라도 마차를 향해 돌진할 듯 형형하게 눈을 빛냈다. 헤인켈의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프란시스코가 아니었다면 몇 명은 행동으로 옮겼을 것 같은 기세였다.
그 모습을 보며, 헤인켈은 자신의 주군이 한 말을 되새겼다.
– 3년? 의미 없지. 철혈검과 아티팩트. 그 두 가지를 거절하고 돌아갈 기사가 있을까?
자신의 주군은 그들이 섬기는 귀족의 주군.
기사들이 왕실에 남을 명분 또한 충분하다.
‘그런데 아티팩트를 대량 생산하는 게 정말 가능했을 줄이야.’
빛나는 기사들의 눈빛만큼 왕국의 미래 또한 빛나는 것 같아, 헤인켈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