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6)
26화충돌의 중심에서 퍼진 충격파가 땅거죽을 뒤집고 흙먼지를 일으켰다.
“으웨에엑.”
전면에서 덤벼들던 대검을 든 기사와 장창의 기사가 비슷한 모양새로 나뒹굴며 피를 토했다.
그 앞에서는 창백해진 안색의 테스론 상급기사가 안색을 굳히고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고, 패드릭의 등 뒤로 달려든 단창과 장검의 기사들 역시 주르륵 뒤로 밀려난 채 숨을 몰아쉬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은 맞췄군요.”
“……로건.”
피를 토해 내며 주저앉아 있던 패드릭이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큰아들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용병대를 이끌고 후방에 나타난 것은 보았지만, 전장의 중심인 이곳에서 로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후방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자연히 패드릭의 고개가 돌아가고, 얼핏 보이는 시야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보였다.
괴수가 돌진한 듯 일직선으로 뚫려 있는 적의 후방, 그 좌우로 널브러진 시체들.
시체는 병사들의 것뿐만 아니라 테스론 기사들의 것 또한 많았다.
그 주위에 남은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로건을 향하고 있었다.
아군의 시선에는 경이가, 적군의 시선에는 공포가 여실히 느껴졌다.
전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것을 패드릭은 그제야 느꼈다.
아들이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결코 운이라던가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니, 그가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던가. 자신을 노리는 공격을 로건이 막아 냈다는 것을.
“언제 이렇게 강……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패드릭이 신음을 참아 내며 몸을 일으켰다.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다만…….”
파리하게 질린 안색으로 일어선 패드릭이 로건의 어깨를 잡았다.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유리하다는 뜻이겠지?”
그것은 냉철한 상황 판단 보다는 염원에 가까운 말이었다.
다행히 로건은 그 강렬한 눈빛이 원하는 답을 해 줄 수 있었다.
“예.”
“……그래. 잘했다.”
툭툭 어깨를 두드리는 아버지의 손길.
로건은 그 어색한 말과 행동이 이상하게 기분 좋게 와닿았다.
* * * 테스론의 상급기사 라울은 충격을 받아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애써 태연함을 연기했다.
패드릭의 랜스 차징을 막았을 때부터 생긴 내상과 옆구리의 부상이 조금씩 심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릭스, 트롬벨. 빨리 자세 잡아.”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입가에서 피를 흘리는 두 부하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패드릭 맥라인은 이제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그는 누적된 부상과 지금의 충돌로 자신보다 상태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니까.
“시간이 없다! 너희 넷이 저놈을 맡아라. 내가 남작을 맡을 테니.”
중요한 것은 패드릭의 등 뒤를 습격하던 파난과 램스턴의 공격을 일검에 튕겨 낸 적이었다.
더구나 그 적이 잘해야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놈이라는 것은 황당할 지경이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중급기사 둘의 공격을 동시에 튕겨 낸 놈이 스물 언저리라고?
자신이 저 나이 때에는…….
20여 년 전, 기사가 되기 위해 죽도록 구르던 시절을 떠올리던 그가 휘휘 머리를 흔들며 잡념을 털어버렸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저놈은 이 자리에서 죽을 테니.”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저열한 질투심이 살기가 되어 폭발했다.
그리고 그 살기는 적들의 투기를 자극했다.
“착각이 심하군.”
패드릭은 온몸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적을 비웃었다.
물론 자신의 부상은 가볍지 않았다.
왼쪽 옆구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숨을 쉴 때마다 아파 왔고, 중첩된 내상으로 입안에선 계속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그러나 저놈이 자신보다 부상이 가볍다 해도, 자신의 본 실력은 저놈보다 뛰어나다.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들은 중급기사를 훌쩍 뛰어넘는 무력을 보여 주었다.
어찌 짧은 기간에 이리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상급은 아닌 것 같지만, 일반 중급기사들은 로건을 감당 못 해.’
그것도 이미 극심한 치명상을 입은 둘을 포함한 중급기사 넷으로는 절대.
패드릭은 그렇게 확신하며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로건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생각은 아버지와 달랐다.
“저자는 제가 맡겠습니다.”
“안 돼. 무리다.”
패드릭은 단호한 목소리로 아들을 붙잡았다.
로건이 아무리 성장했다 한들, 그 능력의 한계가 패드릭의 눈에는 뚜렷이 보였다.
중급기사 중에서는 특출나 보이는 로건도 아직 상급의 경지는 아니었다.
아무리 놈이 상처를 입었더라도 적의 상급기사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상태의 아버지보단 나을 겁니다.”
꾸욱.
엉망이 된 패드릭의 옆구리를 로건이 슬쩍 눌렀다.
“커흑.”
느닷없는 기습에 패드릭이 체면을 잊고 신음을 흘렸다.
“이 상태라면 저는 아버지도 이깁니다. 믿고 맡기십시오.”
로건의 눈빛은 뜨거웠고,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알겠다.”
고집을 부려 논쟁할 때가 아니니 물러섰지만, 그 와중에도 패드릭은 빠르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떨거지라 해도 중급기사 넷, 하지만 그들 역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패드릭보다 부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해도 근본적인 수준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먼저 끝내고 로건을 돕는다.’
애초에 생각했던 방향과는 반대였지만 이것 역시 나쁘지 않은 방법 같았다.
“그래. 조심해라, 아들.”
“전쟁 끝날 때까지 자식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
“그러니 빨리 끝내죠, 영주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농담. 아니, 뒤끝을 보여 준 로건이 피식 웃으며 칼을 들었다.
그에 헛웃음을 지은 패드릭도 검을 들어 올리고 아들과 등을 맞댔다.
전쟁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든든한 느낌이 그의 등을 통해 전해졌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빨리 끝내자.”
부자의 검이 앞뒤의 적을 향해 휘둘러졌다.
‘애송이가 감히!’
라울은 전면으로 달려드는 적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예상외로 자신의 앞을 막아선 것은 남작이 아니라 그 어린 녀석이었다.
중급기사를 날려 버린 힘은 분명 쓸 만했지만,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다.
라울 역시 상급의 경지에 오른 기사, 기세만으로도 경지가 읽혔다.
‘그래봤자 포스유저 중급이다. 신체 능력은 뛰어난 것 같지만.’
아직 상급기사인 자신을 이기기에는 무리다.
그런데, 녀석의 황금빛 검과 자신의 붉은 빛 검이 교차하는 순간.
콰앙!
“컥!”
“큭!”
더 큰 충격을 받고 뒤로 밀려난 것은 그였다.
“무슨!”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지의 차이는 단순히 힘과 속도의 차이가 아니었다.
같은 힘이라도 훨씬 효율적으로, 훨씬 강력하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수준의 차이였다.
자신의 부상을 감안하더라도, 느껴지는 놈의 경지와 힘을 보았을 때 놈은 결코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놈이 무리를 했군.’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은 그뿐이었다. 라울은 검에 힘을 더하며 재차 상대와 검을 부딪쳤다.
콰아앙!
하지만, 검이 교차하는 순간 내장이 뒤집히는 충격과 함께 울컥 핏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러나 라울은 자신도 반발력에 밀려난 주제에 비릿하게 웃는 애송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다.
꿀꺽.
억지로 삼킨 피가 내상을 심화시켰지만 그것을 다스릴 시간은 없었다.
‘네놈이 무리한다면, 나도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경지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악문 라울이 뒤를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의 전력으로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챙!
스각.
튕겨 나간 놈의 검이 금세 궤도를 바꾸어 허벅지에 기다란 검상을 새겼을 때.
라울은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힘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 반면 상대는 오히려 점차 빠르고 강해지고 있었다.
“이익!”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함이 앞섰다. 부상만 아니었어도 이런 꼴은 안 당했을 텐데.
그렇다고 맥없이 당해 줄 수도 없는 라울이 움직임을 달리했다.
‘힘과 속도가 전부가 아니야!’
자신에게는 저 애송이가 살아온 나날들보다 오랜 기간 검을 휘둘러 온 경험이 있다.
라울은 그 검술의 격차만이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때부터 그는 철저하게 검을 부딪치는 것을 피했다.
상급기사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노련하게 상대의 빈틈을 유도했다.
챙!
휘익!
가벼운 흘림으로 칼의 방향을 바꾸고, 그 허점을 집요하게 노렸다.
하나 포스유저끼리의 싸움에서 충돌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기에 내상은 심해져 갔고, 그럴수록 점점 더 수세에 몰렸다.
그럼에도 라울은 최대한 몸을 사리며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노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비스듬히 교차하는 검로에 또다시 검날 흘리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놈의 검에 황금빛이 진해졌다.
강력한 힘으로 기술을 박살 내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라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것이 그가 기다리던 것이었다.
라울의 검을 감싸던 붉은빛이 일순간 진해졌다.
“윽?!”
라울은 포스를 사용해 놈의 검을 잡아당기며 앞으로 돌진했다.
잔뜩 배가시킨 상대의 힘을 그대로 이용해 균형을 무너트리자 적이 휘청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됐다!’
중심은 무너지고, 검은 앞으로 빠져 버렸다.
적의 상태를 완전히 파악한 상태에서 라울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스각!
깨끗한 절삭음. 하지만 라울의 표정은 암담하게 굳었다.
‘옷자락?!’
전투를 거치는 동안 자신의 몸은 생각보다 더욱 느려졌고, 상대적으로 적은 더욱 빨라졌다.
그 차이를 생각하지 못한 게 라울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던 적은 사납게 웃으며 다시 공세를 퍼부었다.
‘빌어먹을!!’
라울은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을 한탄했지만 절망하기엔 너무 일렀다.
다시금 검이 교차하고, 라울은 이를 악물며 같은 수법을 다시 한번 사용했다.
하지만 상대는 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뒈져라!”
사나운 미소와 함께 상대의 검에서 황금빛이 솟구치자, 위기감을 느낀 라울이 황급히 뒤로 몸을 뺐다.
그는 재빨리 검의 범위에서 벗어났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휘둘러진 적의 검에서 전방을 휩쓰는 네 겹의 황금빛 파도가 뿜어져 나와 라울의 몸을 그대로 덮쳤다.
“마, 말도 안…….”
콰아앙!
신검의 비전, 1식. 물결 가르기.
천여 년 만에 세상에 등장한 고대의 비기는 유감없이 그 위력을 뽐냈다.
“상급기사가 꼼수나 쓰고 말이야.”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다 퉤 하고 침을 뱉은 로건이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거의 으스러진 놈의 시체에서 머리를 잘라 검에 꽂았다.
“나 로건 맥라인이 적장을 죽였다!”
패드릭이 중급기사들과의 싸움을 끝내지도 못한 시점.
전장을 울리는 외침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
* * * 전장의 중심에서 로건의 외침이 울리는 순간.
악으로 버티던 테스론 최후의 병력들 사이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균열에는 심대한 착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작님이 죽었어?”
“설마!”
“말도 안 돼!”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깃발이 안 보여!”
전장이 불리해지는 순간 깃발을 내리고 숨어 버린 자작의 선택이 엉뚱한 대가로 돌아온 것이다.
상급기사의 머리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 로건의 행동이 뜻밖의 더 큰 효과를 불러왔다.
“하, 항복하자!”
“미쳤어?!”
“목숨이라도 건져야지!”
불리해진 전세에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뭉쳐서 싸우던 충성심 강한 병력도 그 충성심의 대상이 사라지자 혼란이 일어났다.
“하, 항복!”
“공격하지 마!”
삼천도 남지 않은 테스론 병력의 절반 이상이 그 자리에서 항복을 선언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은 것은 그들과 맞서 싸우던 맥라인 병사들이었다.
끈질기게 버티던 적들이 끝내 무기를 놔 버린 것이다.
전장이 만들어 낸 광기, 혹은 공포에 빠져 있던 이들조차 달라진 상황을 이제는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목소리가 큰 이가 바로 릭이었다.
“로건 공자님 만세! 대공자님 만만세!”
눈물까지 흘리며 소리를 지르는 릭의 태도는 분명히 지나친 바가 있었지만, 무사히 목숨을 보전했다는 기쁨에 안도의 한숨을 쉬던 이들 중 다수가 릭을 따라 소리를 질렀다.
“로건 맥라인 만세!”
“대공자님 만세!”
“전투 안 끝났어, 머저리들아!”
도중에 현실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남은 적의 병력조차 투지를 잃은 상태였다.
그저 무기를 놓게 되는 순간 죽게 될까 두려워 옆의 동료처럼 항복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다만 살아남은 소수의 강자들, 기사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