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도착한 기사들 전원 왕실기사단 훈련에 참여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티팩트 배급도 완료했습니다.”
“반응은?”
“사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는 헤인켈 단, 아니 교관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그래. 예상대로군.”
드웨인의 보고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로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공과 아버지를 비롯해 에일렌, 클레이튼, 헤인켈, 빅토르, 데미안 등 듬직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국에 있는 필립과 타렌에 있는 하마르를 제외하고, 로건이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측근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국의 모든 병력을 합하여 군단제를 시행하겠다는 로건의 생각이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해 보고자 모두 모여든 것이다.
거기에 새롭게 합류한 자가 한 명 있었다.
“제 연기가 이렇게 도움이 되었다니 참으로 뿌듯합니다, 폐하.”
왕국의 재상, 로버츠 플로이드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로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전에 대전에서 로건의 의견에 반대를 표했던 것이 실은 자크 후안을 비롯한 귀족들의 반발을 부추기기 위해 미리 의논된 연극이었던 것이다.
왕실의 중요 인물들이 모두 모인 자리이니만큼, 로버츠는 자신의 작은 공을 부러 상기시켰다.
“이제 시작입니다, 재상.”
“물론 그거야 저도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폐하께서 직접 주도하시는 일이니, 당연히 잘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스스로 공치사에 과한 아부까지.
곁에 서 있던 에일렌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로버츠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그는 왜 그러냐는 듯 멀뚱히 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 에일렌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부녀의 모습을 본 로건은 피식 웃었다.
민망함을 홀로 감내하던 에일렌이 화제를 돌리려는 듯 입을 열었다.
“기사들은 모두 끌어모았지만, 병사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병사들도 빼 와야지요. 군단에 기사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럼 각 영지의 치안은 어찌…….”
헤인켈이 기다렸다는 듯이 의문을 표했지만 로건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통합 훈련이 끝나는 대로 병력을 다시 배치할 겁니다. 물론 소수 인원을 파견하는 형식일 테고, 그 역시 기본 훈련이 끝난 뒤 군단의 편성까지 완료된 후에나 가능하겠지만요.”
“그동안은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왕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고가 터질 수도 있습니다.”
헤인켈의 의문은 당연했지만, 그 역시 로건이 미리 생각해 둔 바 그대로였다.
“물론 그 전에 대체 병력을 만들어 놔야지요.”
“대체 병력이라 하시면……?”
“이제 곧 수확기가 끝날 테니, 농한기인 겨울에는 백성들도 훈련을 받을 수 있겠군요.”
“훈련이요?”
“맥라인 영지에서처럼 마을별로 자경단을 만들어야지요. 연사 석궁을 중심으로 말이죠.”
로건은 생각해 놓았던 방안을 말했다.
정규 병력만으로 제국과 싸우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자경단의 조직은 필수라고 봐야 했다.
그에 측근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평민에게 기사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쥐여 준다니, 충분히 민란을 걱정할 만한 일인데도 그다지 걱정이 안 되니 신기하군요.”
민란이라는 말은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에게 생소했다.
완전 무장을 한 포스유저, 즉 기사는 훈련받지 않은 민간인 수백도 거뜬히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수만의 평민들이 뭉쳐서 반란을 일으킨다고 한들, 기사단이 한 번 쓸고 지나가면 끝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손에 기사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들려진다면?
더군다나 지금처럼 각 영지의 기사단들이 중앙에 집중된 상황이라면, 병사들만으로는 절대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로건은 걱정하지 않았다.
“민란의 대상이 될 만한, 정말 욕심 많은 악독한 귀족들은 이미 내 손에 전부 죽었습니다. 설령 나서지 않은 겁쟁이 악당이 남아 있다 한들, 그 정도야 당연한 인과응보로 받아들여야지요. 왕실에서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폐하에 대한 칭송이 하늘을 찌르고 있지요. 저희가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로버츠 플로이드가 또다시 아부를 하며 끼어들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로건 역시 스스로 하기엔 다소 머쓱했을 자화자찬을 대신 말해 준 백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 그렇지요. 그러니 그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겨울에 자경단 훈련이 끝나는 대로 영지의 병사들도 소집하겠습니다. 그리고 봄에는 왕국의 병력 제도를 모조리 군단제로 바꾸겠습니다.”
“폐하의 계획대로 된다면 5개의 군단과 수십만 명의 자경단이 생기겠군요.”
검공의 정리에 모두가 헛숨을 삼켰다.
상상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병력이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군단 하나하나가 모두 과거 1, 2왕자의 파벌군에 필적할 만한 전투력을 보유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모두 조금만 더 힘내 주십시오.”
“예!”
기분 좋은 미소가 모두에게 번져 나가는데, 드웨인이 소심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저기, 그런데 폐하. 자경단 훈련과 연사 석궁 보급의 비용은 어떻게……? 귀족들은 다 사정이 안 좋을 텐데요?”
“이번에 숙청된 귀족들의 영지가 전부 왕실 직할령이 되지 않았나. 그 정도라면 전부 감당 가능해. 연사 석궁이야 우리가 만드는 것이니 원가에 제작할 수 있을 테고.”
“……그래도 수십만 개는 될 텐데요?”
“그렇지. 충분히 가능해.”
아.
‘그래. 원가라면 계산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해…….’
타렌에 있는 어떤 드워프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지만, 드웨인은 오랜 동료의 앞에 예견된 비극을 재정관으로서의 의무감으로 상큼하게 외면했다.
하지만 이어진 데미안의 목소리엔 동료의 명복을 빌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폐하께서 말씀하신 댐 공사로 개발될 수 있는 황무지가 세 곳이 더 있습니다. 먼저 ……(중략)……, ‘전문 시공팀’을 한시라도 빨리 투입하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세 곳이나…….”
‘하마르 공. 막아 드리지 못해 미안하오이다.’
마도사인 클레이튼의 안색도 살짝 질릴 정도였으나, 드웨인의 양심의 소리는 결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할 공염불에 불과했다.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드웨인이 죄책감을 잊기 위해 얼른 다른 화제를 꺼냈다.
“치유사 길드에서 전하길, 왕국 각지에 지부를 세울 준비를 모두 끝냈다고 합니다. 왕실과 각 영주들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왔습니다.”
“오, 그래? 허가야 쉽지. 지원금 요청은?”
“다행히도 300만 골드 정도의 약소한 금액을 요구했습니다. 길버트 길드장이 참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더군요.”
드웨인의 기준으로, 돈을 적게 요구하는 자는 착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왕실 전역, 80여 개 영지에 길드 지부를 설치하는데 고작 300만 골드를 요구한 사람이면 최상급 호구, 아니 천사였다.
“공문을 내려서 아픈 자들은 치유사 길드에서 치료받는 것을 권장하도록 하게. 어차피 신전을 찾아갈 여력이 있는 평민은 거의 없을 테니.”
“그리 시행하겠습니다.”
치유사 길드의 왕국 전역 확대.
전생에서는 왕국이 제국의 그란디아령이 된 이후로도 10여 년이 지나서야 이뤄진 일이기에, 로건으로서도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는 기분이 확실하게 들었다.
더불어 역병을 처리하고 헤어질 당시, 길버트가 했던 말도 다시 떠올랐다.
– 굳이 역병만이 아닙니다. 저희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위생 상태만 개선되어도 모든 질병의 발병률이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그 말은 로건이 어차피 하려고 했던 일에 박차를 가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하수도 개수 작업은 어찌 됐지?”
“왕실 직할령과 에스페란자 영지에선 작업이 거의 끝나 갑니다. 농한기에 이르면 동원할 인부도 더 많아지니, 각 영지에서도 빠르게 적용 가능할 겁니다.”
생활 하수를 밭으로 흘려보내는 하수도 시설만 완전히 구비되어도 성이나 도시들의 위생 상태가 훨씬 개선될 것이다.
‘도시에 들어설 때마다 나던 악취나 길가에 널린 오물들도 많이 사라지겠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환경 개선 작업에 질병 발생 방지라는 목적이 하나 더 더해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자신이 몰랐을 뿐, 전생에 제국이 만들어 낸 이 시스템에는 그런 목적 또한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제국을 보고 배워, 놈들을 막는다.’
스스로 선택한 방법이지만 그 아이러니에 새삼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성과만은 분명할 터였다. 그리고 그중 가장 기대되는 건 제국 역시 그란디아를 정벌한 후 십수 년 뒤에나 사고로 발견하게 된 이것이었다.
“마정수 농법의 진행 상황은?”
그란디아 해방 전선이 제국에 안겨 준 예기치 않은 선물이었다.
“마법사 빅토리아가 마정석의 비율을 확정한 이후, 처음보다는 작업 속도가 훨씬 빨라졌습니다. 아마 늦어도 내년 봄이면 왕국의 모든 땅이 10년간 풍작을 보장하는 옥토로 바뀔 것입니다.”
드웨인의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확 펴졌다.
“정말 믿기지 않는 비법이야. 정말…….”
검공조차 드물게 환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흘릴 정도였다.
로건이 피식 웃으며 말을 보탰다.
“이미 에스페란자에서도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아,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믿기지 않는 거지요. 기적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만큼 비싼 대가도 필요합니다만.”
“결과에 비하면 푼돈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방 안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정수 농법은 그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만큼 세상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이곳에 있는 이들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 연사 석궁이니, 리베라티오니, 아티팩트니 다 필요 없다. 이게 세상에 알려지면 그걸로 낙원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야말로 황홀한 가능성이었다.
인류사에 새겨진 전쟁의 근본은 욕심이고, 그 욕심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만약 인류의 모두가 풍족하게 먹고도 남을 식량이 있다면 대다수의 전쟁은 그 의미를 잃을 것이다.
물론.
‘그럼 마정석 가격은 더욱 미친 듯이 오를 테고, 그 소수의 광산은 권력자들이 독점하겠지.’
그것이 의미 없는 이상론이라는 것 또한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나온 얘기대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왕국이 정비되면, 제가 누누이 말해 온 제국의 위협조차 견뎌 낼 수 있는 막강한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 젊은 국왕이 있는 한, 적어도 그란디아 왕국에선 그 이상론에 가까운 일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드웨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의 저력을 두려워한 제국이 전쟁을 일으키려던 계획조차 멈출지도 모르지요.”
이 젊은 왕이 붉은 눈을 빛내며 꺼낸 말은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물론 어림없는 생각이겠지요. 하지만 그 가능성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이 저는 너무나도 뿌듯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웃으며 말을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도…….”
하지만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상식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온 주군이라면.
“……무모한 제 행동과 생각을 받쳐 준 여러분들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서든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이 한 마디뿐이군요.”
드웨인이 그런 막연한 기대감을 담아 왕을 바라보는데, 방 안의 모두와 시선을 하나하나 맞춘 로건이 불현듯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갑작스레 고개를 숙인 왕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던 신하들의 눈빛은 한순간 같은 뜻을 담아 반짝였다.
‘그래.’
왕국의 정점에 서서 이렇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저 젊은이라면.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는 반드시 약속드리겠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
“저는 여러분을, 그리고 이 왕국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그 붉은 눈에 차오른 자신감이 언젠가부터는 자신의 가슴속에도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드웨인은 고개 숙인 어린 주군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불쑥 소리를 질렀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고함에 부끄러워할 틈은 없었다. 주변에서도 연이어 비슷하게 격앙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왕국을 위해!”
“맥라인에 영광을!”
“끝까지 가 봅시다!”
긴 시간 고난을 뚫고 비로소 희망의 한 조각을 맛본 사람들.
그들이 삼킨 조각들이 하나의 희망이 되어 방 안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