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콜록. 콜록.
“짐. 감기에 걸렸으면 좀 쉬는 게 어때?”
집에서 훈련장까지 같이 온 이웃, 잭이 연신 콜록거리는 짐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당사자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소리야? 이깟 감기 따위 좀 움직이면 나아. 겨울에 돈도 벌 수 있는데 쉬긴 왜 쉬어.”
“이 사람아. 농사도 풍년이었는데 건강이나 챙기지.”
“어림없는 소리 마. 내년에도 풍년이라는 보장이 어딨어!”
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감기가 옮을까 싶어 찜찜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잭이 다른 말을 꺼냈다.
“짐. 성에 치유사 길드라는 게 생겼다는데 훈련 끝나고 거기라도 가 봐.”
“치유사 길드?”
“그래. 무슨 약초 같은 걸로 병을 낫게 해 준대. 다쳐도 치료해 주고.”
“약초? ……거기 사이비 아냐?”
“아니야. 옆 마을 게논도 거기서 약을 받아다 먹고 지독한 감기가 씻은 듯이 나았다던데? 약간의 돈만 내면…….”
“돈? 그럼 안 가. 감기 따위로 무슨!”
“1실버라던데?”
“……뭐?”
그 말에 짐의 표정이 흔들렸다.
백여 년 전, 대륙 통화 정책이 바뀌면서 이전과 달리 소량의 금만 포함된 금화가 대륙 전역에 유통되었다. 그 이후 은화의 가치는 확 떨어지고 말았다.
평민이라도 1실버 정도면 한 끼만 거르면 되는 수준.
구두쇠인 짐으로서도 흔들릴 만한 이야기였다.
“그 말 진짜지?”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아, 진짜야! 가 봐!”
그 역시 바보는 아니었으니, 가족들에게 감기를 옮길까 봐 걱정하던 차였다.
사실 그게 두려워서 훈련을 받으러 나온 것이기도 했다.
‘치유사 길드라, 한번 가 봐야겠어.’
짐은 그렇게 결심하고는 다시 전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앞에는 사냥꾼들에게서나 가끔 보았던 석궁(모양은 좀 다르지만)을 들고 시범을 보이는 병사들이 있었다.
이번 겨울부터 시작된 자경단 훈련.
그 강제 부역을 연상케 하는 생소한 이름에 처음에는 대다수가 거부감을 보였지만, 훈련 시간만큼 소정의 보수를 준다는 말에는 모두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농사를 짓지 않는 20~40대의 청장년층이 모조리 모여들었고, 그중에는 여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아 좀! 군사 훈련이라는데 여편네가 왜 따라와!”
“돈 준다잖아요, 이 양반아! 당신이 그 돈 벌어다 줄 거야!? 아니면 입 다물어요!”
“……거, 거참.”
“그리고 왕실에서도 여군을 키운다는데, 당신이 뭐라고 반대야 반대는!”
“아, 알았다고. 아으, 여편네. 하여간 드세 가지고……. 확실히 내가 장가를 잘못…….”
“뭐 인마!?”
“……장가 잘 들었다고. 역시 든든해. 암.”
더구나 이삼일에 한 번 있는 자경단 훈련 외에도, 하수도 공사에 인부로 지원할 수 있었다. 비록 백성들 대다수가 그 목적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생활이 불안했던 그들로선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강제로 일 안 시키고 돈 준다는 게 어디야! 역시 국왕 폐하!”
“만세지, 만세야!”
“하하하하.”
맥라인과 에스페란자의 영지민들을 중심으로, 왕실 직할령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얼굴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풍년이 온 영지가 아니더라도 세금 인하 정책 덕에 창고에 곡식을 가득 쌓아 둘 수 있었기에, 농민들은 겨울철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고스란히 왕실로 전해졌다.
“치유사들이 돈을 그렇게나 조금 받는다고?”
데미안의 보고에 로건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반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1실버로는 약초값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길버트 길드장의 말로는, 민중들에게 인정받을 때까지 염가 봉사를 할 것이라 합니다. 물론 나중에 치료비를 올리더라도 평민들에게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닐 거라 장담했습니다.”
“……그래. 본인들이 자청해서 하는 것이라면 말릴 필요는 없겠지. 마정수 작업이나 자경단 훈련도 잘 진행되는 것 같고.”
“예. 전반적으로 왕국 전역이 안정된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소한 사고들을 제외하고는 별일 없습니다.”
“그래도 추세와 여론을 살피는 일은 게을리하지 마. 문제가 생기는 즉시 내가 알아야 하니까.”
“예.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혹시 제국 쪽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나?”
“예. 필립의 맥라인 상단과 연동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크게 달라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흐음. 그래?”
이게 좋은 일일까?
로건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 생각해도 왕국의 변화는 무척이나 급진적인바. 제국의 침략을 기정사실이라 본다면 지금쯤 무슨 반응이 있는 게 맞을 듯했다.
“흠. 황실 쪽엔 정보원을 심지 못했지?”
“……예. 신원 검열이 너무 엄격합니다. 황실에 정보원을 심자면 적어도 십 년 단위로 공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명하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시행해 보겠습니다.”
“아니, 그럴 시간은 없어. 거기에 투자할 노력은 다른 데에 써.”
“제국의 고위 귀족들에게 지속적으로 접근 중입니다. 황실의 정보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이들과 연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좋아.”
아쉽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최선일 것 같았다.
그래도 지울 수 없는 찜찜한 마음에 로건이 작게 한숨을 내쉬는데, 데미안이 잠시 망설이다가 불쑥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폐하. 패드릭 맥라인 대공 각하께서 저에게 따로 부탁하신 일이 있습니다.”
“뭐?”
데미안과 그 정보 조직은 로건이 직접 통제하고 있었다. 제국과의 전쟁을 대비하여 빠른 정보 수급을 위해 그 자신 외에는 명령권자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을 잘 아는 아버지가 그 선을 넘었다?
로건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지만, 이어지는 데미안의 말에 그는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로니안 공자님의 행방을 알아봐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이셨습니다. 폐하께는 비밀로 해 달라고 하셨지만 말씀드리는 것이 맞는 듯하여…….”
“로니안…….”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는 지금,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동생의 행방이었다. 남부 산맥 심처로 들어섰다는 연락 이후로 소식이 끊긴 지도 벌써 연 단위가 넘은 것이다.
‘아무리 본인이 원했어도 차라리 영지에 남겨서 수련을 시키는 것이 나았을까.’
스승과의 수련을 통해 최상급 경지에서도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빅토르와 에일렌, 그리고 경지를 넘어서기 직전인 부르델의 상황을 알고 있으니 더욱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다른 게 없었다.
“남부 산맥이 동네 뒷산도 아니고 아무나 들여보낼 수는 없어. 희생을 줄이려면 최소한 흔적이라도 알아야 할 텐데…….”
새삼 로니안의 얘기를 듣고 나니 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었으니, 동생을 믿는다는 마음 하나로는 그 자신에게도 변명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데미안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확실치는 않지만, 남부 산맥 끝자락에 자리한 한 마을에서 붉은 머리 청년이 식량을 구입하고 사라졌다는 보고가 오늘 들어왔습니다. 눈동자도 같은 붉은 색이라 마을 사람들이 특이하다며 기억을 했다고 합니다.”
“뭐?!”
“죄송합니다. 폐하의 동생분이라 선조치를 했습니다.”
“아니, 잘했다. 흐음, 살아 있었구나. 그래. 믿고 있었어.”
말은 그리하지만 내심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녀석이라면 왕국의 변화를 듣고 돌아올 법도 한데? 그냥 착각한 것 아닌가?”
친가가 왕족이 된 상황이다.
한 번이라도 소문을 들었다면 돌아왔어야 했다.
“얘기를 나눌 틈도 없이 식량만 사서 바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을부터 추적해 들어가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남부 산맥이 좀 위험해서…….”
“……적임자가 있어.”
“예?”
“남부 산맥과 비견되는 마경, 북부의 마수림에서 사냥꾼 노릇을 하던 강자가 있다.”
로건은 몇 년 전, 아버지가 데려온 미래의 초인을 떠올렸다.
대륙에서도 흔치 않은 최상급 포스유저 궁수.
그리고 곧 오러의 경지를 터득할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인재이자 전직 마수 사냥꾼, 부르델.
“부르델 경에게 맡기지. 그 마을에서부터 행적을 조사해서 로니안을 찾아 데려오라고 하게. 기한은 1년. 못 찾으면 그냥 돌아와도 된다고 전하게나.”
“제가 직접 전합니까?”
“그 마을에 관한 자료도 전달해야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좋아.”
가슴속 근심거리 하나가 조금은 해결된 느낌에 로건의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때, 집무실의 바깥에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폐하. 패드릭 맥라인 대공과 로버츠 플로이드 백작께서 알현을 청하셨습니다.
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예고되지 않은 방문 소식에 로건의 입가에 실소가 떠올랐다.
“들어오시라 하라.”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와 장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데미안이 로건과 아버지를 향해 연달아 고개를 숙이며 빠져나가는데, 그와 교차하며 다가오는 아버지의 표정이 묘해 보였다.
조금은 상기된, 그러면서 무언가 단호한 결심을 한 얼굴.
짐작되는 바가 있어 로건은 먼저 선수를 쳤다.
“로니안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찾았습니다.”
과연 그 말 한마디에 아버지의 표정이 확 살아났다.
“예!? 하하하. 한시름 놨습니다. 다행이군요. 다행이야.”
다만 아버지의 말투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존대를 하십니까? 어색하게.”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일국의 군주께 함부로 말을 놔서야 되겠습니까. 앞으로는 제대로 예의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과 내용이라, 눈매가 가늘어진 로건이 슬쩍 물었다.
“스승님이 눈치를 주시던가요?”
순간 뜨끔한 표정을 지은 아버지가 이내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닙니다. 그저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자는 것이지요.”
하아.
부모에게까지 존대를 받는다니, 로건으로서는 그게 더 어색했지만 굳이 말릴 수는 없었다.
“뭐,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로건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데, 한결 인상이 펴진 아버지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은 소식을 들으니 더 기분이 좋군요. 나라도 슬슬 안정화되고 있고, 이참에 더 좋은 일을 해 봐야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사돈?”
더 좋은 일?
사돈?
……로니안 일 때문에 오신 게 아니었나?
찜찜한 예감에, 로건의 시선이 아버지의 뒤로 향했다.
“그렇습니다, 대공 각하.”
미소가 만연한 얼굴로 맞장구를 치는 재상의 모습이 불안감을 더했다.
“폐하께서도 벌써 스물여섯이시니, 더 늦기 전에 성혼을 서두르는 것이 좋겠지요.”
그 불안감은 직접적인 언어가 되어 로건의 마음을 푹 찔렀다.
“……성혼이요?”
잊고 있었던 것이 로니안뿐만이 아니라는 자각이 로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가 당황하든 말든, 아버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왕의 성혼은 중대한 국사이기도 합니다. 이유도 없이 계속 미루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아…….
그, 그건 그렇긴 한데.
“폐하께서 말씀이 없으시니, 요즘은 제 여식이 소박을 맞은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아비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뜨끔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그 모습을 본 아버지와 장인의 얼굴에 미묘한 웃음이 번졌다.
아차 하는 생각에 로건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는데, 기다렸다는 듯 두 집안 어른들의 말이 이어졌다.
“폐하의 마음이 굳건하신 듯하니 바로 진행하면 되겠군요.”
“날짜는 언제가 좋을까요, 폐하?”
매사를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진행해 온 로건이었지만, 이 일만큼은 그렇게 반응할 수가 없었다.
‘결혼이라니…….’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 겪는 일.
좋고 싫음을 떠나, 그런 일이 자신에게 생길 것이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누가 그의 마음을 안다면 약혼까지 한 남자가 비겁한 변명을 한다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로건의 온전한 진심이었다.
애초에 에일렌과의 약혼은 전략적 차원의 영입을 위해 이뤄진 것. 그리고 그것은 틀리지 않은 결정이었다.
단순히 초인이 될 재능을 넘어, 맥라인 왕국 여군의 상징적인 리더가 된 그녀는 전술?전략적 가치에서도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인재였다.
하지만 로건 개인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녀가 없으면 안 돼.’
지난 몇 년, 그 긴 고난의 시간 동안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녀가 옆에 있어 주었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꺾이려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녀가 없는 미래는 더 이상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결혼이라.
‘항상 칼끝에 서 있는 인생이라 생각하며 살았어. 이런 내가 결혼을 해도 될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이것은 그냥…….
“……겁이 나는 것뿐인가.”
피식.
한심하군.
“예?”
스스로의 진심을 깨달은 로건이 헛웃음을 짓자 그 앞에선 집안 어른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보며, 로건은 스스로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다만 에일렌에게는 제가 직접 말하겠습니다.”
그 말에 패드릭과 로버츠의 얼굴에도 비로소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