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로건 맥라인……, 로건 맥라인……. 거참……. 이상할 정도로 예상을 벗어난단 말이야.”
중얼거리는 2황자의 목소리에 그 옆에 시립해 있던 레오스의 무표정하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졋다.
맥라인 왕국과 관련하여 자신 있게 한 조언이 전부 틀어졌으니, 황자의 넋두리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들린 탓이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하.”
사실 황위 계승전 관련 각 황자에게 파견된 기록관은 공식적으로는 중립. 그저 황자의 능력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황제에게 전달하는 역할일 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새로이 등극한 황제가 경쟁자였던 형제들은 물론, 그들의 기록관까지 말살하거나 유폐해 버리는 것이 전통처럼 굳어졌다. 즉, 기록관들은 자신이 담당한 황자의 승리를 전력으로 지원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자연히 레오스 역시 2황자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황자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황위 계승전의 누적 점수는 아직 그가 우위.
더구나 최근 마무리한 소왕국 연합에 대한 ‘작업’도 레오스의 계략 덕분에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아니, 아니야. 자네가 부족하다면 누가 부족하지 않을까. 그저 그자가 이상한 거지…….”
2황자는 짧게 혀를 찼다.
“이전에는 그렇다 치고, 이번 사태를 예측 못 한 가장 큰 이유가 뭐지?”
그 물음에 레오스가 지체 없이 답했다.
“로건 맥라인, 그자의 행태가 상식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맥라인 왕국에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자금원, 그것도 꽤나 큰 자금원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그 활용법이 이상했습니다.”
“이상하다니?”
“그만한 자금원이 있었다면, 굳이 부작용을 감수해 가며 급속하게 군대를 키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추정되는 자금원의 규모를 본다면, 적어도 5년이면 여유 있게 만들 수 있는 군대였으니까요.”
“그런데 1년 만에 키우기 위해 그 부작용을 감수했다, 이거지? 자국의 귀족들을 정리하려는 계략은 아니었을까?”
“그것도 군대가 만들어진 이후에 그냥 찍어 누르면 되었을 일입니다. 그전에도 강력한 왕권을 쥐고 있었으니 적법한 행사만 했어도 반항할 귀족은 없었겠죠.”
“그럼 그자는 굳이 왜 그랬을까?”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자의 성격이 그 시간을 참지 못할 정도로 급하다는 것…….”
“그건 아니야.”
2황자의 단언에 레오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황제 앞에서 보인 행동과 언변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남은 한 가지뿐입니다.”
레오스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자가 우리 제국의 ‘대계’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을 뱉은 레오스 본인도, 들은 2황자도 안색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러면 말이 되지.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말이 안 되고.”
2황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황제와 그 직속 기록관들, 그리고 황위 계승전에 참가한 황자들만이 아는 계획을 소국의 왕이 안다?
20년간 움츠리며 내실을 다져 온 황제의 계획을?
황실의 보안 정책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레오스 역시 자신의 관자놀이에 새겨진 작은 마법 문신을 문지르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짐작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짐작만으로 국정을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가는 바보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럼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짐작도 가는 게 없나?”
“……예.”
“그래. 그렇단 말이지. 거참, 곤란한 자야…….”
팔 받침대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던 2황자가 재차 물었다.
“지금 확인 가능한 것은?”
“놈들의 자금원에 대한 추적은 한두 달 내로 끝날 것 같습니다.”
“예상되는 바는?”
“희귀 광물 광산 또는 고대의 유적지 발견. 둘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운 좋게 대박이 터졌다는 거군. 우리로서는 좋지 않고……. 그런데 광석이건 유물이건, 그쪽에서 유통되었다면 미리 알았을 텐데?”
“맥라인 왕국과 저희 제국과의 거래 품목은 곡물밖에 없었습니다.”
“하면?”
“소왕국 연합에 대한 작업을 하던 중, 막대한 자금이 맥라인으로 흘러 들어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곡물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 거래 내역을 조사 중입니다.”
“소왕국 연합에만? 우리 쪽은 곡물뿐이고?”
“예.”
“……확실히 대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레오스는 2황자의 중얼거림에 동의하면서도 굳이 답을 하지 않았다.
조언은 할 수 있지만, 결론은 오롯이 황자의 몫.
그런 생각으로 결정을 기다리는데, 2황자의 입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가 봐야겠어.”
“……예?”
“마침 초대장도 왔으니 내가 직접 간다. ‘귀신’들을 준비해.”
“전하!! 굳이 그러실 필요가……!?”
보기 드물게 놀란 표정의 레오스를 보며 황자는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황제 폐하께선 이런 사소한 일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어찌 대계에 대해 알았다 한들 그 작은 왕국은 결코 제국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난 아니야. 예감이 좋지 않단 말이지.’
2황자, 바로스 반 아레스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 * * 맥라인 왕국의 국혼 선포 이후.
어느덧 한 달이 지나, 한 해의 끝이 다가오는 겨울.
맥라인 왕국의 동쪽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국경을 넘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대충 봐도 천 명은 넘을 듯한 대규모 행렬이 이어졌다.
수레와 사람을 줄줄이 거느린 행렬의 앞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통 결혼은, 특히 국혼 정도면 봄에 하지 않습니까? 무슨 한겨울에…….”
“그거야 그들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에나 집중해, 로이.”
“예. 알고 있습니다. 그냥 날씨가 너무 춥다 보니…….”
라곤은 투덜거리는 젊은 부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명색이 중급기사가 이 정도 칼바람에 정말 추위를 느낀 것은 아닐 테니까.
‘날씨가 아니라 마음이 추운 거겠지.’
그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그들의 조국 트리아 왕국은 대륙 동부 끝 소왕국 연합 7개의 나라 중 가장 힘이 센 나라로, 연합이 처음 결성되던 시점부터 수장의 자리를 공고히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여름, 이름만 공국이지 맥라인 왕국의 대영지 하나 수준인 타히티 공국이 갑작스레 연합의 의결권에 대한 재논의를 요구해 왔다.
보통이라면 가뿐히 무시하고 말았을 텐데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을 포함한 4개의 나라가 일제히 호응하며 연합의 수장 자리가 바뀌고 말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였지만, 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았을 때는 그리 큰 변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 입지가 낮아진 트리아 왕국은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새로운 연합의 의결에 따라 국경 경비를 줄이고, 상인들에 대한 세금도 낮춰야 했기 때문이었다.
소왕국 연합의 중심에 자리한 국가로서, 왕국 간 무역에 대한 세금이 가장 큰 수입을 차지하던 트리아 왕국이었기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이라도 연합을 탈퇴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살길을 찾을 수밖에.’
그래서 지금 그들은, 맥라인의 국혼을 빌미로 대규모의 상단과 함께 맥라인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단순히 무역의 중계가 아닌, 왕실 주도로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겠다는 시도. 즉, 직접적인 무역로 개척을 위한 여정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 장을 맡고 있는 라곤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부담감을 느끼는 건 나머지 수뇌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의 사절단은 국외의 새로운 풍경을 감상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잔뜩 긴장한 그들도 이내 맞닥뜨린 기묘한 광경에는 절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구 더글라스 공작령, 현 왕실 직할령 동부의 끝에 접어 들었을 때 수백 명의 사람들이 표적을 향해 석궁을 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날아가는 기세나 모양이 그들이 알고 있는 기존의 석궁과 전혀 다른 것은 둘째치고, 그것을 쏘고 있는 사람들의 복장이 이상했다.
“저, 저들은 뭡니까? 병사라고 하기엔…….”
복장이 너무 농민 같다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국경에서부터 사절단을 안내하던 맥라인의 기사, 타밀이 말을 받았다.
“아. 마을의 자경단 훈련입니다.”
“자경……단이요?”
“예. 폐하의 명에 따라 각 영지의 장정들이 자체적으로 치안을 유지할 수 있게 훈련하는 거지요.”
그 말을 들은 라곤은 딴지를 걸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석궁을 쏘는 이들 중엔 여자들도 허다했으며, 석궁을 과녁에 대고 쏘는 게 어찌 사냥 훈련이 아니라 치안 유지 훈련이 되는지도 의문이었다.
아니, 그에 앞서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조금 강력해 보이는 석궁입니다만, 저런 걸 평민들에게 보급하는 겁니까?”
“에이, 잠깐 훈련 때만 주는 거겠지요. 저런 걸 어떻게…….”
“사용도 안 할 거면 훈련을 왜 하겠습니까? 당연히 보급하는 것이지요. 물론 개인이 아니라 마을 단위입니다만.”
로이의 말을 끊고 들어온 단호한 답변에 두 사람의 얼굴이 멍해졌다.
“아……, 하하. 맥라인 기사들이 강하니 평민들에게도 저런 무기를 쥐여 줄 수 있는…… 거겠지요?”
“아, 연사 석궁은 기사들도 방심하면 다칩니다. 일반 갑옷은 쉽게 뚫어 버리니, 무기나 갑옷에 포스를 두르지 못하는 평기사에게는 꽤 위협적인 무기지요.”
“……예?!”
그게 어디 평기사에게만 위협적일까.
중급기사인 로이도 갑옷에 포스를 두른 채로 긴 시간 싸울 자신은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타밀의 그 말을 허풍이라 여겼다.
“에, 에이. 농담도 잘하십니다. 경이 우리가 연합의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모양인데…….”
“그럴 리가요. 폐하께서 중히 모시라는 사절단분들을 제가 어찌 무시하겠습니까.”
“그럼 지금 그 말이 사실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기사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발끈한 로이가 결국 해서는 안 될 말까지 꺼내 들었다.
“그럼 저 무기가 진짜 그리 위력적인지, 제가 시험해 봐도 되겠습니까?”
“로이!!”
라곤은 그런 부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나라의 상황 때문에 충성심 강한 근위기사인 로이의 신경이 곤두선 것은 이해하지만, 사절을 안내하는 기사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따지는 모양새가 국가 관계에서 좋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타밀은 로이의 말을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뭐, 그러십시오.”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그렇게 씩씩거리며 나선 로이는 팔뚝에 갑옷을 관통하고 꽂힌 쿼렐 한 발을 달고 나서야 침울한 얼굴로 돌아섰다.
사절단 전체를 충격에 빠트릴 만한 광경이었다.
– 기사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평민에게 나눠 준다고?
– 미친 거 아냐?
모두가 당황스러워하는데 그들이 놀랄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국경을 넘어 3일 만에 도착한 더글라스 시.
시장의 환대와 함께 도착한 성의 대로에선 실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자! 왕도에서 바로 건져 온 제국산 비단입니다. 한 필에 고작 10골드!!”
“남부 디센 지방의 사과 10개들이가 단돈 1골드! 떨이에요, 떨이!!”
“라프탄 영지에서 만들어진 역병 특효약 팝니다! 집안에 하나씩 챙겨 놓으십쇼!”
“타렌 지방에서 생산된 공예품입니다~! 드워프들의 도시 타렌의 공예품~! 와서 구경들 하시죠!”
겨울의 칼바람은 개나 주라는 듯, 거리가 온통 시끌벅적했다. 소왕국 연합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대규모의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반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루 만에 끝났다고 듣긴 했지만, 뭔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네요.”
멍한 얼굴을 한 라곤의 중얼거림을 비슷한 표정의 로이가 받았다.
“단순 무역만 할 거라면 굳이 그랑까지 갈 필요도 없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맥라인 왕실과 정식 계약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준비한 물량을 여기서 바로 풀어도 될 것 같았다.
거기다 눈을 사로잡는 이상한 광경도 있었다.
“저기, 성안에 수로는 왜 파는 겁니까?”
“왕실에서 직접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하수도라고, 생활 하수를 농지로 흘려보내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죠.”
더글라스 시의 시장이라는 탐슨 렌도발이라는 자가 라곤의 물음에 친절하게 응답했다.
“하수도?”
“예. 성뿐만 아니라 성 밖의 마을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은 시행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냄새는 좀 덜해졌죠.”
“그니까 그게…….”
“라곤 님. 그것은 제가…….”
아리송해하는 라곤의 표정에 사절단의 도시전문가가 다가와 귓속말로 설명해 주었다.
사절단 대표의 체면을 생각했는지 탐슨 시장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살짝 돌려 주었고, 설명을 들은 라곤은 새삼 감탄하며 성의 공사 현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간의 난리 때문에 상황이 안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4~5년간 내전만 세 번.
그 와중에 왕조까지 바뀐 나라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을 줄이야.
‘지방의 대도시가 이 정도라면 수도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라곤은 감탄하면서도 조금은 속이 쓰렸다.
내전은커녕, 고작 협정 하나 때문에 기울어 가는 조국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또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계약을 성사시킨다.’
앞서 보았던 연사 석궁이나 맥라인의 성세를 보았을 때, 제대로 무역로만 뚫어 놓는다면 지금 조국의 상황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우리보다 큰 규모로 온 사절단은 없을 거야. 왕과의 독대로 담판 짓는다.’
라곤은 그렇게 의지를 다졌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게 지나 수도 그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며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성안 가득 나부끼는 황금빛 드래곤의 깃발을 단 마차들과 함께 귀를 아프게 파고드는 소문 때문이었다.
제국의 2황자가 폐하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
왕과 독대를 하겠다던 라곤의 다짐이 무색하게, 맥라인의 왕성은 전혀 예기치 않은 손님맞이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