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제국의 2황자가 축하 사절로 온다.
그 소식에 놀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그중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은 로건이었다.
‘그놈이 왜?’
현생만 생각해 보자면, 사실 로건은 2황자에게 유감이 없어야 마땅했다. 오히려 왕과의 내전을 치를 당시에는 본의야 어쨌건 도움을 주겠다며 손을 내민 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로건으로선 자연히 2황자의 모든 행동을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선입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특정인의 행보를 추론할 때는 선입견 내지는 고정 관념이 가장 손쉬운 근거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 사람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로건은 2황자가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라고 확신했다.
“새 왕조가 들어섰으니, 관계도 새롭게 구축하려는 거 아닐까요?”
별다른 의구심이 섞이지 않은 데미안의 추측에 로건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 그럴 리 없어. 그럴 놈이 아니야. 고작 그런 이유였다면 사신만 보냈겠지.”
로건의 단언에 데미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목적이건 간에, 제국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황자가 직접 올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니까 더 이상한 거지.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고.”
다른 측근들, 특히나 드웨인을 비롯한 대신들과 가족들은 국혼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는 말은 꿀꺽 삼켰다.
로건의 기대 어린 눈빛을 받은 데미안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다른 의도가 있다면, 황자가 사절일 경우와 다른 사람이 사절일 경우의 차이를 이용하려는 거겠네요.”
“음? 차이라고 해 봐야 호위기사가 늘어나고 사절단 규모가 전체적으로…… 아!”
로건이 말을 하다 말고 눈을 빛내자 데미안이 그의 속내를 짐작한 듯 말을 보탰다.
“사절단에 섞여서 오는 자들 중 무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간자야 평상시에도 올 수 있으니, 아마 황자를 따라 왕성 안까지 들어올 수 있는 이들에게 뭔가 특이점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흐음. 그럴듯하군.”
“아니면 2황자가 폐하께 볼일이 있다던가요.”
“음?”
“소왕국들의 사절이라면 몰라도, 제국의 황자가 독대를 청하면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당장 제국과 적대하려는 것이 아닌 바에야 표면적으로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즉, 황자의 호위나 측근으로 오는 자들이 왕성 내에서 무언가 수작을 부리려는 속셈이거나 2황자에게 나를 직접 만나야 할 목적이 있다?”
“예. 그것 외에는 생각하기 어렵겠군요.”
“그래. 일리가 있어. 좋아. 일단은 제국의 사절단 중에서 신분이 높은 이들은 모조리 감시해. 호위기사들이나……. 아, 아니군. 뒤에서 감시하는 것보단 호위 명목으로 기사단을 붙이는 게 낫겠어.”
“그래도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감시 역시 붙이겠습니다.”
“그래, 좋아.”
이후로도 로건은 황자의 목적이 무엇일지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직접 만나기 전까진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식을 들은 지 한 달 뒤, 제국의 사절단이 수도 그랑에 입성했다.
둥둥둥둥.
고막을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행렬이 이어졌다.
황금빛 드래곤이 그려진 제국의 깃발을 든 기사가 가장 앞에서 일행을 이끌고, 그 뒤를 정확하게 98명의 기사가 따랐다.
전쟁을 위한 선봉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100명 미만의 기사들. 국제적 관례를 정확하게 한계까지 지킨 것이다.
하지만 맥라인의 기사 중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이들은 그 99명의 기사들 모두가 최소 상급이라는 걸 알 수 있었기에 절로 안색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황자의 곁에 서 있는 ‘외눈’의 기사는 그야말로 차원이 달라 보였다.
“제롬 디카이드…….”
제국의 황성에서 그자를 본 적이 있는 루터 카일이 신음처럼 그의 이름을 내뱉었다.
그는 제롬 디카이드가 로건과의 결전에서 보여 주었던 모습을 기억했다. 부끄럽지만, 그때의 모습만으로도 저 서른이 될까 말까 한 애송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야. 이젠 나도 경지가 올랐어.’
왠지 시선이 마주친 것 같아 루터는 괜스레 이를 악물고 등을 꼿꼿이 세웠다.
그렇게 루터를 비롯한 맥라인의 기사들이 제국 기사들의 위용에 안색을 굳힐 때.
일반인들은 그 뒤를 따르는 천 명의 병사들과 수백 명의 시종,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진 상단의 행렬을 보며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절단이라더니, 대체 몇 명이야?”
“만 명은 족히 되겠는데.”
“이 사람아, 뒤쪽은 거의 상인들이야. 공식 사절단이 아니라 그냥 한몫 잡으려고 붙은 거라고.”
“그래도 제국 일행인 건 마찬가지잖아.”
웅성웅성.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두의 기사가 왕성 앞에 멈춰 섰다.
“하늘 아래 유일한 지배자이신 황제 폐하의 적자, 바로스 반 아레스 전하의 행차요. 길을 여시오!”
깃발을 든 채 우렁차게 외치는 기사는 얼핏 보기에도 최상급의 경지에 오른 강자였다.
그가 숨기지 않고 드러낸 기세가 전면을 압박했다.
그러자 루터가 그저 피식 웃으며 그 기세를 찍어눌렀다.
“우선 말에서 내려 예의를 표하라. 이곳은 제국이 아니니 왕성에는 황자 전하와 그 호위만을 들일 수 있다.”
우우웅.
맹렬한 기세가 말 위에 탄 기사를 사정없이 압박하자, 그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그러나 말은 초인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했다.
히이이잉!
검은 털에 윤기가 흐르는 준마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꺾으려 하자, 뒤쪽에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흠. 필레스, 과하다! 우리는 축하 사절로 맥라인에 방문했음을 잊지 마라.”
그러자 끝까지 버틸 것 같았던 기사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고는, 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필레스의 어깨를 두드려 준 외눈의 기사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루터 공이셨던가요?”
오른쪽 눈에 씌운 안대조차 금빛으로 장식된 화려한 복장. 하지만 그 요란한 차림과는 다르게 루터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 푸른 눈 속에 뜬 은빛 달을 확인한 루터가 안색을 살짝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성에서 본 자신감만 넘치던 애송이가 이제는 제법 진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달라진 태도만큼 실력 역시 크게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오러 유저 중급. 빌어먹을.’
왕이 그의 잠재력을 꺾어 놓은 게 아니라 오히려 늘려 놓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확연히 달라진 적 초인의 모습에 루터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는 당장의 임무를 잊진 않았다.
“루터 카일이요. 황자 전하와 그분을 호위할 기사 열, 그리고 시종 백 명까지만 왕실에 들이는 것을 허가하겠소.”
“흐음. 알겠습니다. 궁전이 생각보다 더 크고 아름답군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팽팽하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자 그들의 대치를 지켜보던 이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머지 사절단 또한 내성 쪽에 자리를 마련할 테니, 편히 머무시길 바라겠소.”
물론 궁 안의 황자 일행과 내성에 머무는 사절단 모두는 왕실근위대의 엄중한 호위(?)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롬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 감사하오.”
그렇게 2황자 일행은 왕실로 들어섰고, 이내 곧바로 왕과의 독대를 요구했다.
* * *
“하. 바로?”
“예. 미루시겠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지. 만나 보자고.”
로건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독대의 자리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독대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호위기사는 밖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전하께서는 제국의 사절이지 이 나라의 신하가 아니다. 적어도 호위기사 하나 정도는 곁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보면 타당한 말이었지만 그 호위기사 하나가 초인이었다.
제롬 디카이드를 알고 있는 빅토르는 이를 갈며 그를 막아섰다.
전신을 엄습하는 은밀한 기세가 입조차 떼기 힘들 정도로 그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딜 감히!’
뿌드득.
“이곳은 제국이 아닙니다. 독대는 원칙적으로 혼자 들어가셔야 합니다!”
초인의 기세를 뿌리치다 보니 목소리가 고함처럼 튀어나왔다.
2황자의 안색이 찌푸려지고, 제롬의 하나뿐인 눈에 이채가 떠오를 때.
– 상관없다. 들여라.
집무실 안쪽에서 로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저벅저벅.
문이 열리자 황자가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그의 검은 눈이 태연하게 앉아 있는 로건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이거 오랜만입니다, 바로스 황자.”
황자.
그 말에 2황자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제국의 황자와 사방왕(四方王)들이 특수한 사정으로 외국에 나설 경우, 공식적으로는 일반 왕국의 왕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제국의 황자를 윗사람처럼 대우하곤 했다.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의 위엄이란 결코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하물며 지금의 2황자는 차기 황위에 가장 근접한 후보였다. 향후 그가 황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존대가 당연했다.
하지만 황자는 금세 표정을 관리하며 빙긋이 웃었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폐하가 아닌 전하.
제국에 속하지 않은, 오롯한 주권 국가인 맥라인 왕국의 왕을 황자나 제국의 속국으로 대우하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굳이 황자가 아니더라도, 제국의 사절들이 흔히 취하는 태도였기에 로건 또한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반 하대에도 웃음 짓는 놈을 보며 속으로 경각심을 더 높였을 뿐.
“공사가 다망하신 제국의 황자께서 주변 왕국의 국혼에 직접 축하 사절로 오시다니, 흔치 않은 경우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흔치 않은 경우일까.
제국의 역사를 모조리 뒤져도 몇 없을 것이라 로건은 확신했다.
하지만 황자는 그저 여전한 미소로 답했다.
“그것보다는 천년을 이어 온 왕조가 바뀐 일이 더 흔치 않은 일이지요. 즉위식 때 찾아뵙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역시 표정으로는 좀처럼 마음을 알 수 없는 놈이다.
새삼 그 생각을 떠올리며 마주 미소를 지은 로건이 황자의 뒤쪽으로 눈을 돌렸다.
“제롬 경도 오랜만입니다. 그때의 일은 저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기도를 보니 그나마 안심이 됩니다.”
그 말에 내내 여유로운 표정을 보이던 제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단순히 한쪽 눈을 빼앗아 간 원흉의 입에서 나온 겉치레 때문만은 아니었다.
방에 들어선 직후부터 은밀하게 뿌리고 있던 투기가 로건의 전면에 이르러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하나였다.
‘적어도 나 이상…….’
기사가 같은 경지에서도 실력 차가 나뉘듯이, 초인은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한 법.
하지만 과거의 패배 이후 이를 갈며 한 단계 올라선 그로선, 로건 또한 이미 그 경지에 올라와 있다는 게 암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자가 과거에 경지가 다소 부족할 때조차 자신을 쓰러트린 전적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여유롭던 마음에 조금씩 저열한 질투와 분노가 깃들었다.
하지만 이내 스승의 말이 떠올랐다.
– 네 절대 시야는 한두 단계의 경지 차이도 무시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특성이다. 활용만 잘한다면, 이전과 같은 패배는 없을 것이야.
제롬이 스승의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데, 문득 황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롬?”
그는 그제야 상념이 너무 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차린 제롬이 황자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약속된 신호 중에 하나.
그것을 본 황자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으며 로건을 바라보았다.
“제롬 경도 그때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시지요.”
“아, 네. 기도만 보아도 그것은 잘 알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런데 축하 인사를 하러 오셨다면서 이리 독대를 청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제롬의 표정이 굳어지는데, 황자는 오히려 더욱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하께서 왜 우리 제국을 적대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 말에 이번에는 로건의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