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왜 제국을 적대하냐니?
그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로건의 미소가 사라졌다.
‘……티가 난 게 있었나?’
순간적으로 그간의 행보를 되짚어 본 로건이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건 제 반응을 살피는 검은 눈을 의식한 뒤였다.
“흐음. 무서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제가 정말 제국을 적대했나 당황스러워 잠시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곤혹스러운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답변.
나름대로 잘 처신한 듯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최근에 제가 놀라운 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맥라인 왕국, 아니 정확히는 이전 맥라인 영지의 한 축에서 마정석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얘기였지요. 그것도 이미 상당량이 판매되었다더군요. 아, 우리 제국을 제외하고는요.”
“아…….”
결국 광산의 존재가 걸렸구나.
하지만 그것은 언젠가는 밝혀지리라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기에, 로건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태연하게 답했다.
“아하하. 아무래도 귀중한 자원이다 보니 영지와 나라의 입장을 고려해서 최대한 보안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한데 설마 그것 때문에 제국을 적대한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너무 과하지 않나 싶군요.”
배 째라.
그래서 어쩔 거냐.
맥라인의 이름이 한 영지에만 국한되었던 시절에 알았다면 모를까.
지금은 모든 시스템이 공고한 형태를 갖춰 가고 있는 만큼, 아무리 제국이라도 전쟁 이외의 수단으로는 간섭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로건의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도 황자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군사 제도를 바꾸고 연신 병력을 육성하는 것은 전쟁을 준비함이 아닙니까. 제국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전하께선 동부의 소왕국들을 정벌하시려는 것인지요?”
그 말에 로건이 대놓고 얼굴을 굳혔다.
“왕으로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는 정책의 일환일 뿐입니다. 지금 제국에서는 저희 왕국의 내정에 간섭하려 하시는 겁니까?”
황자의 말은 선을 넘었다.
제국의 황자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치도곤을 내려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로건은 그것을 빌미로 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지만, 황자는 스산하게 웃으며 황당한 말을 꺼내 놓았다.
“글쎄요. 저희로서는 황실에 세작을 심은 전하의 말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심고 싶어도 못 심었다.
그야말로 억울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황자의 고갯짓에 따라 제롬이 내내 들고 있던 자루를 던지듯 내려놓은 순간, 로건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벌어진 자루에서 굴러나온 건 분명 자신이 아는 자의 머리였으니까.
“클레오!?”
흔들리는 로건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황자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전 그란디아 왕국 출신의 관리로 밝혀진 황실의 세작입니다. 이것은 어찌 설명하시겠습니까?”
“하…….”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흔적도 찾지 못한 놈을 이렇게? 놈이 제국의 끄나풀이 아니었나?’
당황스러운 심정이었지만 이내 생각이 다른 곳으로 튀었다.
클레오가 원래 예상대로 2황자의 부하라면?
황자는 자기 부하를 죽여서 무엇을 노리는가.
그런 생각이 들자 자신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황자와 제롬의 모습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무슨 생각인 거지?
싸늘해진 안색의 로건이 황자의 검은 눈을 마주 노려보았다.
“흠,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클레오 리버만. 왕국의 수배범이오.”
“글쎄요. 수배범으로 처리한 뒤 간자로 쓰는 것도 흔한 방식이라…….”
“왕국의 전신인 그란디아에 망조를 들게 한 간신이지. 조금만 확인해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일 텐데요? 바로스 황자, 더 이상의 무례는 참지 않겠소.”
로건이 이를 갈며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자 제롬이 황급히 황자의 앞을 막아 섰다.
“전하, 진정해 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국가 간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중대한 의문을 풀고자 했을 뿐입니다.”
무언가 다른 반응을 기대했던 걸까.
황자의 눈빛이 왠지 아쉬워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또다시 미소를 머금은 황자가 자신의 앞을 막은 제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망국을 불러온 간신이라……. 아, 확실히 그런 자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급한 마음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 같군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국의 황자답지 않게 유연하게 굽혀진 허리.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당장 놈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건은 이를 갈며 짓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왕의 면전에 사람의 목을 던지며 시비를 걸다니, 황자가 국혼의 축하 사절인지 선전 포고를 위한 사신인지 헷갈리는구려. 그대가 아닌 다른 이가 사절이었다면, 아무리 제국의 신하라도 목이 달아났을 것이오.”
말속에 살기가 가득한 것을 알면서도 2황자는 부드럽게 웃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기에 제가 직접 온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번 무례를 사죄드리겠습니다.”
“됐소이다. 그만 돌아가 보시오.”
혼례식에서 보자거나 편히 지내라는 덕담조차 건네지 않은 축객령이었지만, 그 싸늘한 대우에도 2황자 일행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로건은 한참이나 바라봤다.
‘내가 제국을 적대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제국과 관련이 있을 거라 의심했던 클레오의 목을 던지고 내 반응을 살폈어…….’
팔걸이를 툭툭 건드리며 생각을 정리해 봐도, 놈이 어찌 그런 생각에 이르렀는지는 좀처럼 짐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결론은 내릴 수 있었다.
‘있지도 않은 첩자를 들먹이면서 반응을 살핀 건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떠보기 위함이었겠지.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야. 놈들의 침공 계획은 현생에도 변함없다는 것.’
적어도 아직까진 말이다.
회귀한 이후 가장 크게 경계했던 재앙이 코앞까지 다가온 게 새삼 느껴졌다.
로건은 왠지 서늘한 기분이 들어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날 경계한다면 앞으로는 내 움직임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 그렇다면…….’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 로건은 바로 호위기사를 불렀다.
“빅토르.”
“예! 폐하.”
“제국 사절단의 감시를 더욱 강화해라. 호위기사는 물론 시종까지. 데미안에게도 그리 전해.”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잠시간 망설이던 로건이 굳은 눈빛으로 말을 더했다.
“사절단 중 혹여나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는 이가 있다면, 기사건 시종이건 상관 말고 죽여라. 특히나 왕성에 들어선 이들은.”
“예!?”
좀처럼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빅토르가 경악했지만 로건은 담담하게 덧붙였다.
“뒷일은 걱정할 필요 없다. 먼저 무례를 저지른 것은 황자이니, 놈만 살아 있다면 제국은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못할 것이야.”
“……예, 알겠습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대라면, 아예 움직임 자체를 봉쇄해 버리면 된다.
다행히 빌미는 상대가 줬으니 문제가 될 일도 없다.
‘바로스 황자. 무엇을 원하건,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홀로 남은 로건이 살벌하게 미소 지었다.
한편 집무실 밖으로 나온 2황자는 시종의 안내를 따라 자신에게 제공된 숙소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제롬에게 물었다.
“어떤가?”
제롬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특성인 절대 시야는 단순히 전투에만 활용이 가능한 게 아니었다.
시야에 비치는 상대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게 주요 기능인 만큼, 상대의 속내를 파악하는 데도 무척 유용했다.
그런 제롬의 눈에, 클레오의 머리를 보며 놀란 로건의 반응과 그 후의 대처는 조금도 꾸밈이 없어 보였다.
그에 바로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첩자를 심지는 않았다는 건데, 그럼 대체 어찌 알았을까…….”
“그 목이 정말 첩자가 아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아. 자네는 더 알 필요 없네.”
질문을 묵살당한 제롬이 순간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황자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머지 계획이나 실행하게.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야.”
이내 손짓하는 2황자의 모습에, 제롬은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부터 황자의 호위는 다른 기사들이 맡을 것이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그렇게 제롬이 사절단에 돌아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왕궁이 떠들썩해질 만한 일이 벌어졌다.
– 양국의 우호 증진을 위해, 제국에서 결혼식을 돕겠다.
– ‘그란디아의 별’, 아니 ‘맥라인의 태양’을 위한 황제 폐하의 선물이다.
제국의 사절단에서 황제의 선물이라는 포장지를 두른 반강제적인 제안을 내민 것이다.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로건으로선 딱히 거절할 방도가 없었고, 그때부터 외부에 머물던 제국의 상인들 중 2천여 명이 온갖 자재를 들고 입궁하기 시작했다.
그중 30여 명 정도가 입궁과 동시에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 * * 국혼을 선언한 후, 그 행사를 준비하고 타국의 축하 사절이 모여드는 데만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새해의 첫날, 밝아 오는 태양과 함께 국혼이 시작되리라는 것이 공표된 이후, 왕궁은 그 마무리 작업으로 부산하기 그지없었다.
“거기, 조심해!”
“살살, 살살 움직이라고!”
“오케이!”
왕궁 전역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인부들은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면서도 그 규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황제의 선물인 일꾼들 때문에 결혼식의 규모가 갑자기 커진 탓이었다.
“이번 결혼식은 정말 성대한 잔치가 될 거야.”
“즉위식 때보다 더 화려한 거 같은데?”
“그게 다 저 사람들 때문이잖아. 제국…….”
인부들의 눈이 향한 곳엔 무려 제국의 2황자라는 사람이 웃는 낯으로 그의 시종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 신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벌써 보름째 이어진 광경에 이제는 인부들도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역시 황족은 다른 건가? 과거의 우리 왕족들하고는 천지 차이야…….”
“이 사람아.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 황제가 대놓고 맥라인의 태양이라고 칭송한 우리 폐하가 계시잖아.”
“칭송까지야……. 그냥 치하 정도지.”
“얼레? 이 인간 사대주의 보소?”
“국뽕보단 낫지. 그냥 칭찬 한마디 던져 준 걸 가지고 뭘.”
“뭐 인마!?”
물론 생소한 광경인 건 분명했기에 소소한 분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결혼식이 얼마나 성대하게 치러질지를 상상하며 작업을 이어 갈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 같은 평민들은 결혼식을 못 보겠지? 귀족들이나……”
“새삼스레 뭘. 그래도 축제를 한다잖아. 일 끝나면 시원하게 한잔할 수도 있고 돈도 넉넉한데 무슨 불평이야.”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후딱 끝내 버리고 오늘도 한잔 오케이?”
“오~케이!”
그렇게 시끌시끌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자! 다들 비키시오! 우리가 진짜 예술이 뭔지 보여 주겠어!”
땅딸막하지만 단단한 체구의 난쟁이들 100여 명이 나타난 것이다.
“드워프!?”
“타렌의 드워프들이다!”
“그럼 저기, 저자가 그 하마르 공?”
국왕 로건의 절대적인 조력자라 알려진 하마르의 등장으로 왕국 전역의 드워프들은 노예의 삶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라는 소문의 주인공까지 나타나자 소란은 한층 커졌다.
물론 실제로는 맥라인에서 드워프들을 사들여 타렌에 보낸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결과는 같으니 진실을 아는 자들도 그저 함구하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자! 주인, 아차차. 아니 폐하를 위해 최대한 솜씨를 발휘해 보자고!”
“예!”
하마르의 지휘하에 드워프들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뛰어들어 자신의 작품혼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떠들썩한 분위기가 이어진 끝에 어느덧 새해의 첫날, 국혼의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