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왕국의 모든 병력은 5개의 군단으로 재편될 것이며, 모든 영지는 그 지역 군단의 병력이 파견 형식으로 상주하며 자경단과 함께 치안을 유지할 것이다.”
– 중앙의 왕실 근위대를 비롯한 1군단.
– 서북부의 에스페란자 대공가를 중심으로 한 2군단.
– 서남부의 맥라인 영지를 중심으로 한 3군단.
– 동북부의 4군단.
– 동남부의 5군단.
각 군단은 1,500여 명의 기사와 4~5만 명의 정규 병사로 이루어지며 그 지휘권은 최종적으로 왕에게 있었다.
왕이 직접 지휘하는 1군단을 제외하고 2군단에서 5군단은 검공, 패드릭 맥라인 대공, 루터 카일, 위켄 칼리아가 각각 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1,000명에 가까워진 클레이튼의 마법 병단은 왕실 직속으로, 어떤 군단이건 지원할 수 있는 별동대로 구성되었다.
맥라인 왕국의 모든 병권이 확실하게 왕에게 집중되었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는 개혁이었지만 반발은 없었다.
자크 후안의 패거리가 숙청된 이후 사실상 절대 왕권 상태였고, 로건이 각 영주들을 잘 다독인 덕분이기도 했다.
물론 3년을 약속하고 왕실로 파견했던 기사들을 송두리째 뺏겨 버리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 죄송합니다, 영주님.
이미 파견 형식이 아닌 왕실 직속으로 소속을 바꾼 기사들이 한가득일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모든 영지의 상황이 동일했으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이유도 없었다.
– 영주는 병력을 유지하는 비용을 아끼고, 국가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다.
다만 다수의 눈에 이상하게 밟히는 것이 있었으니…….
“전력이 너무 서부에만 쏠린 것 아냐?”
“그러게.”
“제국이랑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이보게, 어디 큰일 날 소릴.”
“아, 에스페란자와 맥라인의 위치 때문이겠지. 우연이야 우연.”
그들은 서부의 1, 2군단에 쏠린 전력이 과중하다 느끼면서도 애써 우연으로 치부했다.
“제국에는 이런 군단이 15개나 있잖아.”
“그것도 황실의 중앙군은 빼고 말이지.”
“폐하께서 미치지 않고서야…….”
아무리 생각해도 왕국이 제국과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마침내 왕국의 모든 병권을 손에 쥐게 된 이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이제 최소한의 준비가 끝나 간다.”
보인다.
희망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로건은 짜릿한 기분을 만끽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5개의 군단은 이제부터 합동 훈련을 실시할 것이고, 2년 뒤에는 제국의 어느 군단에도 뒤지지 않는 정예병으로 거듭날 것이다.
‘아티팩트로 무장한 기사단은 제국의 기사들보다 질적으로 우수해진다.’
지금도 미친 듯이 생산하고 있는 연사 석궁은 부족한 병사 수를 메울 수십만의 자경단, 그들의 전투력을 끌어올려 줄 것이다.
‘각 군단에 리베라티오까지 꾸준히 보급하면, 그래, 비로소 최소한의 준비가 끝나는 거야.’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로건이 깊게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억지로 가라앉힐 때였다.
“폐하. 신전에서 공식 전언이 왔습니다.”
그를 정말로 안심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 * * [신전은 맥라인 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일과 우려스러운 왕실의 행태에 염려를 표합니다. 해서 왕국 전반에 걸친 조사를 위해 이단심문관들을 파견하고자 하오니, 허가를 요청합니다.]
이렇다 할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전해진 문장은, 그래서 더 보는 이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말이 허가 요청이지, 아마도 이단심문관들은 이미 왕국으로 오는 중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면 왕국 전체가 이단으로 낙인찍힐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때는 이단심문관뿐 아니라 대륙에 악명이 자자한 신전의 성전기사단이 직접 왕국을 공격하리라.
설령 신전의 공세를 이겨 낼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신전과 적대하는 것은 9대신의 신앙이 두터운 민중의 마음을 뒤흔드는 일이 될 테니까.
무엇보다도…….
‘역시나 전생에는 없었던 일이야. 이것 역시 내가 벌인 일에서 파생된 것일까.’
질끈 감은 두 눈, 복잡하게 돌아가는 머릿속.
하지만 당연하게도 짐작이 가는 사실은 없었다.
회귀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막연한 추론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상황으로 사건을 추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로건은 한숨을 지으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 그래, 그런 말을 들었었지. 그런데 그게 이단심문관들이 파견될 정도인가? 아니면 역병 때의 일 때문에?’
이단심문관.
9대신의 교리에 어긋나는 사교를 적발하고 즉결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제들로, 구마사제(驅魔司祭)라고도 불린다.
보통 상급 이상의 신성력과 악마를 쫓을 수 있다는 무력까지 모두 갖춘 전투 사제인 그들은 성스러운 역할과는 달리 전 대륙에 공포의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다.
사교도로 지정된 사람은 그 일가뿐 아니라 이웃, 친척까지 모조리 이단으로 몰아 사형을 시켰다.
이단이 꽃피운 마을이라며, 천 호에 이르는 마을 전체를 사람들과 함께 불태웠다.
더군다나 그들은 영주나 왕실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오직 그들만의 기준으로 정의를 실현하며, 그 정의를 실현하는 와중에 희생되는 인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중들에게는 오히려 악마보다 더한 괴물처럼 비쳤다.
거기에 백여 년 전, 이단심문관에 대한 이미지를 확실히 못 박은 사건이 있었다.
‘피의 악마(The Devil of Blood)’라는 흉악한 이명으로 불린 이단심문관 발라마.
종교적 이유가 아닌, 오직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못 박고 불태운 살인마.
중앙 신전에서 그 지나친 숫자에 위화감을 느끼며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이미 제국의 감찰관에게 적발되어 그 흉명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신전의 권위가 급속도로 추락한 덕분에 신전은 극단적인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대륙 전역에 파견되었던 이단심문관들을 모조리 중앙 신전에 불러 모았고, 사제 개인으로서 이단심문을 행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시켰다.
때문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영주나 왕국의 요청, 그리고 누가 봐도 수상한 사교의 흔적이 발견된 이후에만 이단심문관이 나섰다.
“그런데 왜……?”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신전의 입장을 모르는 이상 추측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일리아 주교를 만나 봐야겠다.”
“예. 기별하겠습니다.”
신전의 공문에 대한 전후 사정을 들어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의도는 시작부터 어긋났다.
“일리아 주교가 중앙 신전으로 소환되었다고 합니다.”
“뭐?”
“금기 위반에 대한 심문이라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쾅!
옥좌의 팔걸이가 로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설마, 역병 때 일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신전에는 그 특성상 정보원을 심기가 어려웠습니다. 죄송합니다.”
데미안의 대답에 로건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신전으로 가겠다. 대주교를 만나야겠어.”
결국 차선책으로 로건이 직접 대주교를 만나 듣게 된 대답은 더 어이가 없었다.
“성하께서 직접 내리신 지시인지라 제가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파미엘 게른하임.
물과 농업의 신의 대주교이자, 맥라인 교구의 장이기도 한 노사제가 난색을 표하며 거절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라도 해 주십시오. 저희도 준비는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교황님의 지시인지라…….”
어떻게 묻건 파미엘은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주름지고 볼품없는 얼굴에 떠오른 미안한 표정은 정말로 그것이 진심인 것처럼 보였지만, 로건의 눈에는 그 이면에 있는 욕심이 고스란히 보였다.
새 왕조의 성립을 인정받고 즉위식에 초청할 때 받아먹은 돈만 해도 이가 갈릴 지경이었지만, 지금 그 기분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아이온의 신전에 천만 골드를 기부하겠습니다. 지혜를 빌려주십시오.”
“오, 감사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게 전부입니다.”
……이자가 이럴 리가 없는데?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로건은 이내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말을 정정했다.
“아, 대주교님의 지혜를 빌리려는 것이니 신전이 아니라 대주교님께 ‘직접’ 기부를 해야겠군요. 그러면 되겠습니까?”
“허, 허허. 그렇게까지 간곡히 부탁을 하시니, 이 노구가 폐하의 뜻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허허허.”
로건은 실로 간만에 사람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다행히 내색하지는 않았다.
“일단 이 상황에 이른 이유부터 알고 싶습니다. 일리아 주교는 또 어찌 된 겁니까?”
“아아, 안타까운 일이지요. 일단 일리아 주교의 일 이전에, 이 왕국에 일어난 이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변?”
“수년 전부터 이 땅에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그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제가 축성했던 검공 각하의 여식도 그러했습니다만.”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은 아이 스텔라.
이제는 제법 또렷한 발음으로 ‘삼촌 폐하’라고 부르며 꺄르륵 웃는 아이의 얼굴이 로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자식을 낳으면 딱 그렇게만 자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귀여운 아이.
“본래는 굉장히 희귀한 경우라, 교단에서도 정식으로 초청하여 이런저런 연구를…….”
까득.
“이전에 들은 바가 있습니다, 대주교. 저는 역사보다 현재가 더 궁금하군요.”
기어이 로건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이 갈리는 소리가 나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 연구라는 단어가 제국에서 들었을 때보다 더욱 섬뜩하게만 들렸다.
로건의 눈에 담긴 살기를 느꼈을까. 파미엘은 헛기침과 함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본디 몇백 년에 한 명 정도 발견되던 체질이 이곳 그란디아, 아니 맥라인에서는 다수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교구에서 직접 확인한 ‘아이’만 최근 천 명이 넘었지요.”
“천 명……이나요? 아니, 그보다 아이? 아이만 그렇습니까?”
“예. 실제로는 그 몇 배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최근 6~7년간 태어난 아이들이었습니다.”
“허…….”
6~7년. 왜인지 굉장히 찜찜하게 마음에 와닿는 숫자였지만, 지금은 그 정체 모를 찜찜함의 이유를 찾는 것보다는 당면한 난관이 먼저였다.
“그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체질이라는 게 이단심문하고는 무슨 상관입니까?”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체질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는…….”
“대주교님. 저는 신학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낮게 깔린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는 파미엘의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오러 유저의 기세가 실려 있었다.
“으음……. 이런…….”
“제발 ‘간단히!’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체질과 지금 이단심문과의 연관성을 묻고 있습니다.”
“허허…….”
“좀 더 노골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중앙 신전의 의도가 궁금하다는 말입니다.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그 직설적인 물음에 파미엘은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허, 허허. 예, 그러지요. 폐하께서 바라시는 대로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신전은, 아니 교황께서는 지금 이 왕국의 땅이 ‘신에게서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고 계십니다.”
그 말은 로건이 상상했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