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로건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신이 버린 땅이라니.
그런 끔찍한 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말이 새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이 불안에 떨 게 분명했다.
“아…… 어디까지나 의, 의심입니다. 그것도 신전의 총의가 아니라 교황님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요. 그래서 조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진정하시지요, 폐하.”
파미엘이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했지만, 로건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맥라인에서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으니 신이 버린 땅이라는 헛소리를 교황 그놈…… 그분이 주장하고 계신다는 말입니까?”
분노에 찬 오러유저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은 파미엘은 로건의 실언을 지적할 생각도 못 한 채 연신 손을 내저었다.
“그, 그분도 그저 의문을 제기하신 것뿐입니다! 조사 결과가 좋게 나오면 의견을 거두실 겁니다. 예, 분명합니다. 허허.”
“좋게 나오지 않는다면요?”
“그, 그럴 리가요. 신이 버린 땅이라니, 남부 산맥이나 마수림에나 붙는 지칭 아닙니까. 멀쩡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두고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있겠지.
억지웃음을 짓는 대주교를 보고 있자니, 로건의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기록을 보니 순 미친놈들이더만.’
신전으로 오는 길에 찾아본 자료에 의하면, 현재의 이단심문관들 역시 타락 사제 발라마와 별다를 게 없었다. 단지 그 대상이 다수의 무고한 일반인이냐, 진짜 사교도이냐의 차이일 뿐.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물과 농업의 신 아이온에게 저주를 퍼붓다가 화형을 당한 농부의 이야기 같은 것은 흔하다 못해 넘쳐흐를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 타락 사제도 자기 기준의 사교도를 죽였을 뿐일지도.’
현세의 교단이 들었다면 그야말로 경기를 일으킬 생각을 하며 로건은 이를 갈았다.
보초를 서다가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숲에서 볼일을 본 병사를 처벌한다면, 상식적으로는 경고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탈영으로 규정하고 추살 명령을 내리는 것이 이단심문관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없는 죄도 만들어 내고, 있는 죄는 수백 배로 부풀리는 게 바로 그들인 것이다.
그러니 그저 가만히 앉아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가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확률이 높았다.
“이단심문관들을 설득할 만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제 말은 어디까지나 합법적, 아니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선 안에서 말입니다.”
뇌물이 먹히겠냐.
“허허. 글쎄요. 중앙 신전의 이단심문관들은 저처럼 융통성이 있는 사제들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거참…….”
파미엘이 슬쩍 로건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돌렸다.
어려울 거라는 말.
“……그럼 이단심문관들을 대할 때 달리 주의해야 할 점이 있겠습니까?”
다른 방법은 없냐?
“죄송하지만 폐하, 제겐 심문단에 간섭할 권한이…….”
“대주교님.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만 계속돼서야 제가 기부를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파미엘이 발을 빼려는 기색을 보이자 로건이 바로 극약을 처방했다. 움찔한 파미엘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단심문관들은 강도 높은 정신 교육을 받습니다. 융통성을 발휘하면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 생각할 겁니다.”
뇌물은 죄가 맞지.
“하지만 그들을 지휘하면서 오는 에셀 추기경은 그렇지 않지요. 저처럼 융통성이 있는 사제입니다.”
“호오…….”
하지만 우리 편이면 선물이고.
“융통성이 있는 추기경이라는 겁니까?”
그놈도 뇌물을 좋아한다는 거지?
“제가 그란디아, 흠. 흠. 죄송합니다, 버릇이 돼서……. 맥라인 교구로 오기 전에 십여 년을 함께한 친우였지요.”
당신만큼 타락한 사제라.
그나마 안심이 되는 이야기에 로건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흐음. 그럼 그분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대주교께서도 잘 아시겠군요?”
“아……, 하하. 그게…….”
자꾸만 시선을 피하는 것이 어째 영 불안해 보여 로건이 살짝 찌푸린 눈으로 무언의 추궁을 하자, 파미엘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렸다는 사실이 새어 나가서는 곤란합니다. 아무래도 그 친우의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물론입니다.”
그 확답에도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파미엘은 이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에셀 추기경은 돈도 좋아하지만, 그…… 여신도를 더 좋아합니다.”
“……예?”
로건의 눈빛이 살짝 굳어졌다.
“그것도…… 흠. 좀 어린 여신도를 좋아하지요. 그, 십 대 초중반의……”
파미엘의 부언에 로건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추기경이요?”
아무리 교단이 타락했다 한들, 대주교와 동급의 지위에 차기 교황 선거권까지 가진 추기경이란 자가 여색을 밝혀? 그것도 어린 애들을?
내가 똑바로 들은 게 맞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파미엘을 바라보니 그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폐하. 절대, 절대 제가 말씀드렸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제 안위를 걱정하는 파미엘의 태도는 그 말에 진실성을 더했다.
하아…….
“X발…….”
한 나라의 국왕이 대주교 앞에서 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한 언사였지만, 파미엘은 차마 따지고 들지 못했다.
대주교와의 면담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로건의 표정은 매우 좋지 못했다.
거기에 더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하는 빅토르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을 전했다.
“명하신 대로, 신전 내부에 일리아 주교의 소식을 물어서 일부 확인한 사실이 있습니다.”
“말해.”
“일리아 주교가 중앙 신전으로 송환된 것은 사실이나 외부에 알려진 표현이 상당히 순화된 것 같습니다. 사실상 죄수가 되어 끌려가는 모양새였다고 합니다.”
그 말에 무심코 걸음을 옮기던 로건이 순간적으로 멈춰 섰다.
“허…….”
밀려드는 답답함에 고개를 들자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맑은 푸른색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신전…….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나직한 목소리에서 깊은 분노가 배어 나왔다.
일리아 주교가 좋은 일로 불려 갔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소환 사유부터 금기와 심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본인이 주교로 있는 교구에서부터 죄수 취급이라니?
애초에 변명할 여지도 주지 않고 처벌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자신이 아는 유일한 사제다운 사제를 떠올리니, 가뜩이나 답답한 마음이 더욱 답답해졌다.
마음이 좋지 못한 건 로건뿐만이 아니었는지, 빅토르가 그답지 않은 말을 꺼내 들었다.
“……주교님을 구해 낼 방도가 없겠습니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느 빅토르가 의외의 말을 꺼내자, 로건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빈민가의 고아들에게 인기가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 지역 깡패 녀석들도 일리아 주교님만은 존중하지요.”
“……소문을 들었나 보구나.”
“비번에 봉사 활동을 할 때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참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허?
봉사 활동?
전생의 귀족학살자 이미지를 아직 떨쳐 내지 못한 탓인지, 로건으로선 빅토르가 봉사 활동을 했다는 게 더 신기했다.
‘이 녀석…….’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빅토르가 전생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도 사소한 기쁨일 뿐이라, 로건은 안색을 굳힌 채 고개를 저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로서도 그건 무리다. 이단심문관들이 조사하기도 전에 이단으로 낙인찍힐 거야.”
“어차피 이단으로 찍힐 거면 사제님이라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뭐?”
“리아가 말하길, 이단심문관의 조사 이후 무죄로 판명 난 사례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빅토르의 말에 로건의 안색이 한층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차피 이단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섣부른 말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다. 네 말이 맞아. 그럴 확률이 높……겠어. 하…….”
충분히 예상 가능한 추론이었다.
그제야 로건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좋게 해결될 가능성만 찾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바보 같은…….’
정말 신전에서 애초에 그럴 작정이었다면 무슨 대책을 준비하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뇌물을 주려고 하면, 오히려 빌미가 되겠지.’
잘못하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잘 말해 줬다. 빅토르.”
소름이 돋아 오른 팔을 쓸어내리며 로건은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최선이 아닌, 최악을 대비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 옳을 테니까.
“데미안을 불러라. 그리고 기사단에도 말을 전해. 지금부터……”
로건의 말이 이어질수록 빅토르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변해 갔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랑의 성문으로 300여 명에 이르는 일단의 무리가 들어섰다.
그랑의 유동 인구를 생각하면 그리 큰 비중도 아니었지만, 그 독특한 행색이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제……인가?”
“법복 같긴 한데 왜 까맣지?”
“법관 대신 머리에 쓴 건 또 뭐야?”
새까만 법복에 무표정한 얼굴, 법관 대신 강철 투구를 쓴 그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중 눈썰미가 좋은 이들은 펑퍼짐한 흑색의 법복 아래, 투구와 비슷한 은빛 갑옷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지식이 있는 이들은 그 복장이 옛 시대, 정의를 외치며 공포를 조장하던 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색이 확 변했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그렇게 다수의 시선을 끌어모은 무리는 왕성에서 나온 기사단에 둘러싸여 빠르게 궁으로 향했다.
그 의미를 추론할 수 있는 소수의 지자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잔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로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추기경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만 안건이 안건인지라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겠군요.”
“하하. 뭐 폐하께서 거리낄 일이야 있겠습니까. 모든 것은 9대신의 뜻대로 순리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에셀 파브룬 추기경. 사람 좋은 얼굴과 고상한 어조만 보면 그야말로 사제의 표상 같았다.
하지만 파미엘 대주교의 말과 데미안의 조사 결과를 들은 로건은 도저히 이 자를 웃는 낯으로 대할 수가 없었다.
“정말 순리대로 흘러가기를 바랍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조사를 시작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라프탄 지방이라고 하던가요? 그 역병이 발생한 지역부터 조사할 생각입니다. 신전의 금기를 범했다는 우려스러운 보고가 있어서 말입니다.”
부드럽게 웃는 표정으로 뼈가 가득한 말을 뱉어 내는 에셀 추기경을 보며 로건은 안색을 굳혔다.
“역병의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 동행했던 주교도 허용했던 일이지요.”
“아, 일리아 자매님 말씀이군요. 안타깝게도 그 자매님은 지금쯤 중앙 신전으로 소환되고 있을 겁니다. 혹시 소식을 못 들으셨습니까?”
‘너 X 됐어.’라는 말을 전하며 에셀 파브룬은 웃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로건은 다소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교단 내에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저희로서는 억울한 노릇이 아닙니까. 신전에서 말을 바꾼 것이 저희 탓은 아니니까요.”
“그거야 물론 그렇지요. 그래서 저도 가능하면 교황님께 좋게 보고를 드리고 싶은데 말입니다. 이게 참…… 저도 제 입장이란 게 있어서 말입니다. 허허. 폐하께서 성의를 보여 주시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동그랗게 말린 엄지와 검지로 탁자를 두드리는 노인의 모습.
시골 시장에서 일수를 걷으러 다니는 깡패도 하지 않을 노골적이고 저속한 손동작은 그 첫인상과 너무도 상반되어 역겨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로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닥했다.
그러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빅토르가 거의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자루를 꺼내 들어 추기경 앞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탁.
철거덕.
“오호. 폐하, 이건 뭡니까?”
의뭉스럽게 웃는 추기경을 보며, 로건도 마주 웃어 주었다.
“약소하지만 일단 조사 활동의 착수금으로 써 주십시오. 돌아가실 때는 따로 넉넉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아, 불편하시다면 추기경님의 개인 계좌를 알려 주셔도 됩니다.”
“오호라. 이거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의뭉스럽게 웃던 에셀이 입꼬리를 더욱 끌어 올리며 갈색 눈을 번뜩였다. 그러고는 자루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폐하. 이단 조사 중인 사제에게 뇌물을 주는 것은 조사에 대한 혐의를 일정 부분 인정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거, 모르고 계셨나 봅니다. 로브 형제님, 기록하고 있겠지요?”
추기경의 교활한 웃음과 더불어 뒤쪽에 서 있던 사제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로건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흐음. 당연히 알고 있지요. 설마 추기경께서 저를 그렇게나 상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뭐?”
에셀의 표정이 자신도 모르게 일그러지는데 로건이 말을 이었다.
“요새 왕실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금화 대신 쿠퍼로 준비했습니다. 전부 합쳐서 10골드도 되지 않을 겁니다. 공식적인 뇌물의 기준이 100골드부터였지요?”
와락.
촤르륵.
에센이 신경질적으로 자루를 열자 이제는 구하기도 힘든 수십 년 전 구리 화폐가 쏟아져 나왔다.
두 눈 가득 들어오는 적갈색의 화폐들을 보며, 그가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씹었다. 그러더니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갑자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거 큰 실례를 했습니다, 폐하. 제가 성격이 좀 급해서…….”
“아닙니다. 그러실 수도 있지요. 뭐…….”
억지 미소를 교환하는 두 사람.
하지만 이미 속내가 어느 정도 까발려졌다는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특히나.
‘뇌물 밝히는 소아성애자, 이 쓰레기 놈이 뇌물을 거절했다. 이거 작정을 하고 온 게 맞군.’
로건은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