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추기경 예하. 그럼 이곳에서 일리아 주교의 심문 결과를 기다리시겠습니까?”
대행자들의 수장, 로브가 기록용 보구를 꺼내 들며 물었다.
조사단의 총책임자는 에셀이지만, 그 과정을 기록하여 전달하는 것은 보구를 가진 로브였다. 그는 라프탄 성에서 일주일째 머물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 기록을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이 임무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저 기록에 담긴 임무 수행 내역이 신앙에 위배되거나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에셀에게도 타격이 클 것이다.
‘이단의 증거를 찾거나 누군가를 희생시킨다……. 적어도 그 희생양이 내가 되어서는 안 돼.’
에셀은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라도,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비틀려 버린 계획을 다시 원 궤도로 돌려놓아야 했다.
교황의 살벌한 엄포를 떠올린 에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확보한 이단의 증거는?”
“사소한 것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처벌하려 할 때마다 기사들이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교단에 이의를 제기하시겠습니까?”
“……아니, 그것은 미뤄 둔다.”
“예? 어찌…….”
이의를 제기해도 교황이 외면할 것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보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는 사소한 이단 따위가 아닐 테니까.
결국 에셀은 다른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신이 버린 자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그자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 어디라고 했지?”
“이 왕국의 모태가 된 맥라인 영지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저 검공의 자식이라고 보고되었습니다.”
“그래. 그게 중요하지. 지금 한낱 이단을 잡기 위해 교단에 지원을 청하면, 정작 최우선으로 처벌해야 할 이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늦어지게 된다. 큰 목표를 봐야 할 때다. 작은 정화 작업에 미련을 갖지 말도록.”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래. 알면 됐다.
아마 교황도 이단심문관들의 이런 꽉 막힌 모습 때문에 자신을 인도자로 보낸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 이 꼴은…….
‘내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성과를 낼 방법이 없을까.’
맥라인 영지에서도 이단의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자살이라도 명해야 하나?
이단심문관 놈들이 아무리 꽉 막혔다지만 그런 명령까지 따를까?
‘어쩐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에셀 파브룬은 그날 밤 역시 편히 잠들지 못했다. 그 사건이 벌어진 이후로 지난 일주일 내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는 무언가를 각오한 얼굴로 선포하듯 말했다.
“맥라인 영지로 가야겠다.”
그것은 그대로 조사단과 2군단 기사들의 일정이 되었다.
히이이잉.
“자자, 오늘은 여기에서 야영을 하겠다!”
라프탄 영지에서 맥라인 영지를 향해 말을 달린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수도에서 라프탄으로 향할 때와는 달리 쉬엄쉬엄 여유 있게 움직인 일행이 맥라인에 도착하기까지 딱 하루를 앞둔 날 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가라! 모든 역량을 한껏 발휘해 이단을 찾아 섬멸하라!”
야영을 준비하기 전, 사제들이 한군데 모여 기도를 올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아닌 밤중의 고함과 함께 사방으로 튀어 나간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본 검공이 휘하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각자 맡은 놈들을 쫓아라!”
이내 검공이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에셀 추기경의 앞에 들이닥쳤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에셀 추기경?”
그 짜증 섞인 얼굴이 에셀은 오히려 기꺼웠다.
“허허. 조금 늦으셨습니다, 검공. 살펴야 할 지역이 많아 부득이하게 개별 행동을 명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4군단의 기사들 없이 이들뿐이라면, 지금까지처럼 이단심문관들을 얌전히 기절만 시켜 데려올 수는 없을 것이다.
‘놓쳐도 좋고.’
그간 이단심문관들의 마음속에 쌓인 울분은 적지 않았다.
기사들에게 압박당하고 제재당하느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심문관들은 혼자서도 과격한 이단심문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 옛날,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민중의 생사를 결정하던 그 시절처럼.
그렇게 되면 여태까지 행태를 보건대 이 왕국의 기사들 역시 참지 않을 것이다.
– 어떻게든 확실한 명분을 만들어라.
최소한 그 목적은 달성될 테니, 에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었다.
반면 검공의 표정은 확연하게 굳어졌다.
“이런 변칙적인 수를 쓰시다니, 크게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하하, 큰 사고라니요. 사고를 내겠다는 말로도 들리지만, 검공께서 명분도 없이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벌일 것 같진 않군요.”
십여 일간 동행하면서 검공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놈과 수하들은 절대 조사단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을 만나고 심계를 겨뤄 왔는지 네놈이 알까. 날 건드린 게 실수다, 검공.’
에셀은 자신의 판단을 믿고, 가슴에 새겨진 악심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혹시 모르지요. 제게 무릎을 꿇고 지난 무례를 사죄한다면, 본인이 큰마음을 먹고 보고를 좋게 올려 줄지도.”
물론 그럴 생각은 전혀 없지만.
에셀은 검공의 살기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씩 웃었다. 혀로 입술을 훔치며 킥킥거리는 모습은 성직자보다는 뒷골목 시정잡배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두두두두.
“산개하여 포위하라. 법복을 입은 놈들은 모조리 생포해!”
지축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석양을 등지고 달려오는 무리가 보이더니, 이내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에 따라 무장한 기사들이 사방으로 원을 그리며 흩어졌다.
그들의 위로 솟아 있는 불꽃의 깃발을 목격한 에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각하! 맥라인 영지의 정예들이 이단심문관들을 포위했습니다.”
이윽고 멀리서 루이스의 외침이 들려오자, 두 사람의 표정이 극명하게 바뀌었다.
피식.
“아무래도 예하의 계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설마 미리 알고 있었…….”
“예하께서 벌이실 만한 짓이 뭐,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냥 혹시나 해서 준비해 봤을 뿐입니다.”
“마, 말도 안 돼! 헛소리하지 마라, 이놈!”
“헛소리?”
피식 웃음을 흘린 검공이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며 에셀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늘부터 예하께서는 돌아갈 때까지 제 말만 옮기시면 됩니다. 다른 말을 하시면 그때마다 뼈를 하나씩 부러트리겠습니다. 명색이 추기경인데, 그 정도는 알아서 치료할 수 있으시겠지요?”
에셀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하지만 너무 벼랑 끝으로 몰았던 탓일까.
검공의 말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 에셀이 악에 받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돌아갈 때까지?! 그, 그래! 어차피 네놈은 나를 못 죽여! 그래, 못 죽이는 거였어. 흐흐. 감히 나를 이렇게 대하고도 이 왕국이 무사할 것 같으냐!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기경 예하. 그런데 제가 말을 하라고 했던가요?”
태연한 답문에 에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우드득.
“아아악!”
늙은 추기경의 뼈는 너무나도 쉽게 부러졌다.
* * * 덜커덩.
돌부리에 걸린 나무 바퀴가 튀어 오르자, 마차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철커덩.
한 면이 쇠창살로 된 마차 안. 족쇄와 수갑까지 찬 가녀린 몸이 거센 충격에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일리아는 조용히 좌정한 채 감은 눈조차 뜨지 않았다.
지나친 흔들림에 마차가 부서질까 살피던 성기사들은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독하다.”
“그러게.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역시 이단이라…….”
성전기사단의 한 조, 9명이 파견된 임무.
이단심문관이 파견 재판관이라면, 성전기사단은 판결을 집행하는 징벌자였다.
그런 성전기사단을 파견하여 소환한다는 건, 아직 진행되지도 않은 심문의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중앙의 염려와는 다르게 일리아 주교는 순순히 소환에 응했고, 사실상 죄수가 되어 끌려가는 동안에도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성기사들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렇게 순순히 끌려가고 있는 일리아 주교의 뒤로 은은하게 비치는 후광이었다.
“그런데 정말 성휘가…….”
“이단의 술수로 꾸며 낸 것이다! 흔들리지 마!”
“그래도 분명 신성한 느낌이 드는데…….”
“요셉! 내 말 안 들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광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요셉의 말대로, 일리아의 주위로 은은하게 퍼지는 성스러운 광채는 이제 그녀가 타고 있는 마차 전체를 덮을 정도였다.
하지만 수송의 책임자, 그란트는 그 고집스러운 얼굴 이상으로 완강한 태도를 고수했다.
“어허! 다 이단의 술수라니까!”
요셉은 선배의 말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토록 생생하게 느껴지는 신성력의 존재를 이단의 술수로 꾸며 낸다?
‘신의 힘을 꾸며 내는 이단이 말이 돼?’
그럼 그 이단이 오히려 신의 뜻을 대변하는 자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요셉이 그렇게 성기사로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적!”
뻐어억.
그의 눈에 갑작스러운 고함과 함께 쓰러지는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복면인들도.
“감히!”
뻐버버벅!
요셉과 동료들이 황급히 검을 뽑았지만, 쏜살같이 움직이는 세 명의 복면인들은 그와 동료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끄윽…….”
순식간에 뒤통수를 가격당한 요셉이 흐려져 가는 의식의 끝에서 확인한 것은, 자신을 습격한 복면인의 눈이 푸르고 붉은 오드아이라는 것 하나였다.
“일리아 주교님, 괜찮으십니까?!”
귀에 익은 목소리에, 갑작스러운 소란에도 미동도 없던 일리아가 눈을 떴다.
“빅토르 경?”
“예. 접니다, 주교님.”
인적이 없는 산길, 성기사들도 모두 쓰러트린 마당에 굳이 계속 복면을 쓰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빅토르는 서슴없이 복면을 벗고는 일리아의 앞에 섰다.
“폐하의 뜻이던가요? 하지만 이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너무나도 담담한 어조에 빅토르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팔다리가 결박되어 죄수처럼 끌려가고 있는데도 평온해 보이는 얼굴. 그 위로 성스러운 휘광까지 더해지자, 마치 제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확실히…….’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빅토르는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뜻이자, 제 뜻이기도 합니다. 주교님께서 원하신다면 이대로 구속에서 해방시켜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곳으로 가실 수 있도록 지원도…….”
“바로 수레를 부수지 않는 걸 보면 그게 본론은 아니겠죠? 성기사들도 그냥 기절한 것 같고. 급한 일이라면 본론부터 말씀해 주세요, 빅토르 경.”
길게 이어지려던 빅토르의 말이 일리아의 단호한 목소리에 끊겼다.
그러자 빅토르의 뒤에 있던 복면인 하나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빅토르 조장. 그러기에 내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소.”
“임무의 주체는 빅토르입니다. 충고는 이전의 것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만, 프란시스코 경.”
“호르헤. 자넨 정말 끝까지……. 끄응. 아, 알겠네. 조장 맘대로 하시게나.”
그 작은 소란에 일리아의 눈이 그들에게 향했다.
“빅토르 경. 뒤에 계신 분들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보통 분들은 아니신 듯한데.”
하아.
“전 왕실기사단장 프란시스코 로메로 경과, 맥라인 기사단 부단장, 호르헤 경…….”
“지금은 그저 1군단의 부관들입니다. 폐하를 모시는.”
한숨과 함께 나온 빅토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프란시스코가 복면을 벗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녀님.”
콧수염을 쓱 훑으며 웃는 그를 보며 호르헤도 복면을 벗었다. 비밀 유지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동료들의 태도가 내심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번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저 또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녀님.”
“성녀라니요. 너무 과한 말씀이십니다. 신전에 압송되어 가는 사제에게…….”
일리아가 씁쓸한 눈빛으로 고개를 젓는데, 그 모습을 본 빅토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과하다니요! 그랑의 빈민가에서는 주교님을 그리 부른 지 오래입니다. 최근의 소문이 아니더라도, 주교님께선 그런 호칭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고맙네요, 빅토르 경.”
자신과 몇 번인가 봉사 활동을 함께했던 젊은 기사를 보는 일리아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그럼 이렇게 무리를 하신 이유를 들어 볼까요?”
“……폐하께서 주교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십니다.”
“폐하께서요?”
“혹시 종교심문을 그냥 받아들일 생각이신지, 아니면 어떻게 해서건 벗어나고 싶어 하시는지를요.”
“그건, 무슨 뜻인가요?”
“주교님께서도 신전이 타락했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을 테지요. 아니, 지금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혹시 그런 신전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뜻이 있으신지 여쭤보라 하셨습니다.”
“하……. 폐하께서는 신전의 행사에 간섭하실 생각이신가요?”
일리아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맥라인에 그럴 여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세속의 권력이 신권을 침범하겠다 하는 상황 자체가 사제로서 기꺼울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빅토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미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 하나를 쥐고 흔들려는 신전의 겁박은 이미 도를 지나쳤다고요.”
그 사실만은 공감하는지 일리아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제가 그것을 원한다면요?”
“중앙 신전 내에서 큰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연결해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폐하께서요?”
로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전 내의 인맥은 또 다른 이야기. 종교심문에 관여할 수 있을 정도의 인맥이 그 젊은 왕에게 있냐는 뜻이 담긴 반문이었다.
“예.”
그럼에도 빅토르의 대답은 확고했다.
“그리고 맥라인 내에서도 주교님께 도움이 될 만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전의 내외에서 잘 호응이 되면, 이미 정해져 있을 심문의 결과를 바꿀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신전에 도착하신 이후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이어지자, 일리아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으, 으음? 흡! 저, 적!!”
요셉이 벌떡 일어나 검을 들었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형편없이 구겨진 표정의 선배들뿐이었다.
“……그란트 조장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
“아무 일 없었다.”
“……예?”
“아무 일 없었다고! 이단의 주교도 멀쩡하고, 죽은 이도 없다.”
가뜩이나 험상궂은 얼굴이 쏘아 낸 신경질적인 시선이 쇠창살을 지나 일리아에게 박혔다.
하지만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그녀에게서 그란트가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 임무는 상당히 중요하고도 위험했다.
‘무려 교황 성하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이야. 그런데 이런 실수를 했다고?’
그란트의 손이 벌벌 떨렸다.
송환 중에 기습을 당해서 전부 의식을 잃었었다는 보고가 들어가는 순간, 부하들은 몰라도 책임자인 그의 인생은 끝장이 날 것이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보다시피 바뀐 것은 없다. 그러니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한다.”
“예?”
“그게 무슨……?”
“그럼 보고하고 다 같이 망하던가! 너희들은 말단 성기사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게 될 테고, 난, 난…….”
끄응.
“아무튼! 없었던 일이야. 알겠어!?”
그 압박감에 성기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란트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오늘부터 저 이단의 식사는 한 끼로 제한한다. 그리고 감시 교대는 두 배로 늘려!”
그 호통을 끝으로, 일행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