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성하. 이단심문관들이 현지의 방해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담담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보고를 받는 이가 새하얀 눈썹 아래 주름진 눈살을 와락 찌푸려졌다.
“……한심하군.”
직통을 못 하게 했더니, 돌아서 징징대는가.
‘확실히 그간 너무 평화로웠지. 배에 기름이 낄 만해.’
교황은 자신이 에셀 파브룬이라는 독사를 돼지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을 확실히 자각했다.
“버림받은 자들의 신변 인수는커녕, 조사 활동 자체를 못 하고 있다 합니다.”
“그놈은 내 말을 이해조차 하지 못한 것인가…….”
“예?”
쓴웃음이 나왔지만 이제 와서 조사단의 수장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라, 교황은 싸늘해진 얼굴로 말했다.
“맥라인 왕국에 다시 한번 공식 전문을 넣고, 에셀 추기경에겐 순교도 불사하라 이르라. 조사단이 아무 탈 없이 돌아오면 오히려 책임을 묻겠다고.”
“……예? 아, 예. 알겠습니다.”
당황하는 주교를 본 교황이 쯧쯧 혀를 차며 손짓으로 그를 내보냈다.
‘말을 한 번에 알아듣는 놈이 없어.’
신전의 고루한 문화 속에서 자란 이들은 대부분 둘 중 하나의 모습을 보였다.
꽉 막혀서 말이 통하지 않거나, 완전히 타락하거나.
부리는 입장에서는 전자보다는 차라리 타락한 놈들이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는 다시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여겼다.
‘역시 변화가 필요해.’
이내 그의 머릿속에 이 결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젊은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 신전이 본디 해야 하는 일을 조금 일찍 함으로써, 제국의 차기 황제의 지지를 받게 되실 겁니다.
거액의 기부금은 별도로 치더라도, 그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바로스 황자. 확실히 난놈은 난놈이야.’
대놓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로서는 어차피 해야 할 일에 등을 떠밀어 주는 제안을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대륙을 지배하는 종교의 정점으로서, 이미 부귀영화는 누릴 대로 누려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욕심이 있었으니.
“이젠 나도 역사에 이름을 새겨 봐야지.”
너무 오랜 기다림이었다. 아세리안의 거렁뱅이 천민이 교황이 되었다는, 이 입지전적인 신화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 영원토록 기억되는 것.
나아가 대륙의 신민들이 세상의 절대자를 말할 때, 제국의 황제보다도 교황을 먼저 떠올리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름도 없는 하층민 출신으로 세상 위에 우뚝 선 교황, 율리오 움베르토 1세라는 이름으로.
‘우선 대륙 동부의 이단을 정리하고, 신전의 위세를 떨친다. 그게 시작이야.’
변방의 소국을 확실하게 제압해서 동부 대륙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만든다.
이단을 토벌하고, 교세를 드넓힌 교황.
제국의 황제도 고개를 숙이게 만든 교황.
교단의 역사에도 기록될 위대한 업적이 눈앞에 잡힐 듯 보였다.
물론 장애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결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일리아 주교는 어디까지 왔지?”
“이제 일주일 정도면 도착할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
“그래.”
성녀가 자신의 손안에 들어온다면, 교단 내부의 일부 반발 세력 또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흔이 없다면, 그냥 처분하면 그만.’
그것은 그것대로 반발 세력에게 훌륭한 경고가 될 것이다.
주교조차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화형시킬 수 있다는 예시가 될 테니까.
‘어느 쪽이 되었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율리오 움베르토 1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제국의 수도 아세리안에 뒤지지 않은 규모의 성도, 노비엔스는 그 음험한 야망에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평화롭기만 했다.
* * * [에셀 추기경이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이들, 그들의 표현으로는 ‘버림받은 자’들의 신변 인도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거절하고 있지만, 이단심문관들의 반항이 점점 거칠어지는 탓에 온전히 제압하기 위해 3군단의 기사들도 동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스승님. 조금만 더 애써 주십시오.”
[조사단이 이럴 정도면 신전에서도 말이 나왔을 것 같습니다만?]“안 그래도 또 통보가 오긴 했습니다. 신전의 행사에 반기를 드는 것이 왕실의 뜻이냐고.”
[신전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오는군요.]“한동안은 그냥 무시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 주십시오. 말씀드렸던 그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예. 알겠습니다.]‘이제 곧…….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통신을 마치고 나온 로건은 시기를 가늠해 보며 혹시나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그렇게 로건이 고심하며 본궁으로 향하던 도중,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삼촌……!”
“스텔라! 호칭!!”
“헤헤. 폐하!”
다다다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작은 발소리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로건이 저 멀리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귀부인과 그 호위기사들을 발견한 순간,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꼬마 숙녀가 그의 품 안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어이쿠!”
과장된 태도로 아이를 안아 든 로건의 입가에 자연스레 환한 미소가 걸렸다.
자신에 허벅지에도 오지 않는 자그마한 키에 짧게 찰랑이는 금발,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듯한 커다란 푸른 눈이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동포동한 볼살을 자랑하듯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며,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그 볼을 살짝 잡아당기고는 웃으며 물었다.
“아이고, 우리 꼬마 아가씨. 여긴 어떻게 왔어? 삼촌 보고 싶어서 왔어?”
“우음. 으. 아, 아빠 찾으러 왔는데…….”
간단한 인사치레에 아이가 당황한 듯 말끝을 흐렸다.
그 귀여운 모습에 슬쩍 장난기가 생긴 로건이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 삼촌은 안 보고 싶었구나.”
슬픈 표정을 연기하며 안아 든 팔을 내리려는데.
“아, 아닌데. 삼촌도 보고 싶었는데……!”
가뜩이나 큰 눈이 더 커진 스텔라가 두 팔을 휘적거리며 도리질을 쳤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만 로건이 다시 아이를 안아 들었다.
자신이 이름을 지어 준 아이.
스승의 딸이었지만 딱히 마땅한 호칭이 없어 삼촌이라 부르게 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조카 이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알고 있지요. 크크, 삼촌도 스텔라 많이 보고 싶었어.”
“히히.”
통통하고 부드러운 뺨에 얼굴을 비비니 세상 근심 걱정이 전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웃고 있자니, 옆에서 조금 난처한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폐하. 아이가 워낙 막무가내라……. 왕궁 구경도 시켜 줄 겸 나들이차 온 것인데 이렇게 뵙게 될 줄은…….”
스승님의 아내인 로즈 마이어 공작부인이 곤란한 얼굴이 보이자 로건이 바로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안 그래도 스승님께 과중한 부담을 드린 듯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얼마든지 찾아오셔도 됩니다. 제가 사실상 스텔라의 대부 아닙니까.”
“대부우? 삼촌, 대부우가 모에여?”
“스텔라! 존칭을 써야지!”
“힝……. 폐, 폐하?”
엄마의 나무람에 울상이 된 스텔라가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그 모습조차 사랑스러워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크크크. 우리 꼬마 아가씨는 불편한 호칭 안 붙여도 괜찮아.”
“그치이? 역시 삼촌이야! 최고에여!”
“하지만 폐하……!”
“하하. 괜찮습니다. 스승님이 계실 때만 주의하면 되죠, 뭘.”
“아이 버릇이…….”
“그러니까 스승님 없을 때만요. 괜찮지 않을까요, 그 정도는?”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로건의 말에 공작부인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고, 스텔라는 히죽 웃으며 아예 로건의 목말을 탔다.
“삼촌! 저어기로여!”
“그래.”
좀전의 질문은 그새 잊었는지, 왕궁의 구석을 가리키며 손가락질하는 스텔라.
그 천진난만한 모습과 따뜻하게 전해지는 체온에 로건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자연스레 더 진해졌다.
“삼촌! 여기, 여기! 히히.”
스텔라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기만 해도 가슴 한구석에 쌓인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근데 우리 아빠는 어디 갔어여?”
물론 잠깐 당혹스러운 물음도 있었다.
“어? 어…… 곧, 곧 오실 거야.”
“힝. 아빠 보고 싶은데…….”
“삼촌이 곧 아빠 손 잡고 같이 스텔라 만나러 갈 거야. 금방이야. 자, 약속.”
“지, 진짜여?”
“그럼, 진짜지! 삼촌이 언제 약속 안 지킨 적 있어?”
도리도리.
“없어여!”
“그래. 그러니까 약속할게. 자, 약속.”
“약소옥!”
자그마한 손에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만으로도 다시 환한 웃음을 짓는 스텔라를 보니, 문득 신전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이런 아이를…….’
버림받은 자라 칭한다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스텔라는 자신이 회귀하여 미래를 바꿨다는, 그리고 잘 바꿔 나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존재나 다름없었다.
지금껏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는 증거.
“……어?”
그 순간 로건은 갑자기 이상한 직감을 느꼈다.
왜 여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자신이 바꾼 미래?
바뀐 미래에서 태어난 아이?
설마 그럼 스텔라와 비슷한 아이들이 전부?
“에이 설마…….”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일이 너무 커지게 된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래를 바꿀 거고, 그 바뀐 미래로 인해 태어나게 된 아이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그게 단순히 맥라인에만 국한될까?
‘그럴 리가.’
10년. 20년, 아니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맥라인에서 태어난 그 아이들의 후손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종국에는.
‘신성력이, 신이 설 자리가 사라진다?’
쿵.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서운 결론에 다다르자, 절로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아니겠지. 설마…….”
말은 그리하면서도 왜인지 그 짐작이 옳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무리 회귀자라 하더라도 로건 역시 9대신의 신앙 아래 살아온 이 대륙의 인간.
정서적 근간이 무너지는 느낌, 아니 자신이 그 근간을 무너트린 느낌에 로건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핼쑥해졌다.
“삼촌?”
그 굳어진 얼굴에 스텔라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폐하. 어디 편찮으십니까?”
조금 떨어져 있던 공작부인과 호위기사들까지 그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니, 아닙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
있을 거야.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스승님께, 스승님께 통신을 해야겠습니다.”
“예? 갑자기요?”
“조사단놈들이 그 아이들에게 뭘 하려고 하는 건지 확인을 해야…….”
“예? 아, 예. 폐하께서 그러시겠다면야…….”
로건의 얼굴에 뚜렷이 드러난 혼란은 금세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옮겨 갔다.
로건 역시 그것을 알았지만, 그 불안한 예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그때.
“삼촌……, 왜 구래여?”
스텔라의 불안한 얼굴이 로건의 발길을 붙잡았다.
자신이 내민 새끼손가락이 여전히 아이의 작은 손에 닿아 있다는 것도 그제야 다시 눈에 들어왔다.
“스텔라…….”
주변의 어른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이 아이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더구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던 어른이 갑자기 이런다면?
“미안하구나.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 봐야겠어. 삼촌이 금방 돌아와서 다시 놀아 줄게.”
그 말에 스텔라의 큰 눈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
그렇게 심한 말이었나 잠깐 반성하는데.
“약소옥 안 해여? 스텔라, 아빠랑 빨리 못 만나여?”
아이의 그 한 마디에 다급히 움직이려던 로건이 멈춰섰다.
다시 표정을 관리하고 미소를 지은 로건은 아이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아니. 절대 아니야. 금방 만날 수 있어. 자, 약소옥. 울지 말고 삼촌 봐 봐. 자, 약속!”
“헤…… 다행이다.”
작은 손이 슥 눈물을 닦고 내려가자 다시 배시시 웃는 얼굴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큰 눈망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그것이 아이의 눈에는 어찌 보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생겨난 어떤 오기가, 무너지는 신앙을 그대로 내리눌렀다.
‘신성력이 사라진다? 그래서 뭐?’
이 아이와 비슷한 이들이 더 퍼져 나가고 신의 영향력이 없어진다면, 무슨 문제가 생기지?
가뜩이나 타락한 사제들과 신전이 민중에게 꼭 필요한가?
무엇보다.
그 반대급부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내 곁에 있는데?
“그래. 우리 꼬마 아가씨가 웃는 모습이 훨씬 중요하지. 그깟 신보다야.”
“에? 헤헤. 스텔라가 중요해여?”
“그러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지.”
“히히.”
그 사랑스러운 웃음에, 로건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약한 불안이 사라졌다.
‘그래.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애초에 여차하면 신전과도 싸울 생각이었다.
수십, 수백 년 뒤에 신전이 사라진들, 신앙이 사라진들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냥 실질적으로 변수가 될지나 확인하면 돼.’
그것도 계획이 뜻대로 진행되고, 신전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된 후에.
그때 일리아 주교나 다른 사제를 통해서 시험해 보면 된다. 굳이 지금 에셀이 말한 그 버림받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확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신앙도 그저 도구일 뿐이다.’
개척해 나갈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버리면 그만이다.
잠시지만 크게 흔들리던 마음이 더욱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맙다, 스텔라.”
“웅? 왜여?”
“그냥.”
쪽.
새로운 ‘희망’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로건이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그러고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다시금 와락 끌어안았다.
“우리 꼬마 아가씨는 왜 이렇게 귀여울까?”
“히히. 가, 간지러어여.”
그렇게 로건의 마음이 더욱 단단해진 깨달음의 날에서 며칠 지나지 않아.
“폐하! 연락이 왔습니다!”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