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덜커덩.
문 대신에 철창이 쳐진 죄수용 마차의 나무 바퀴가 돌길을 밟고 튀어 오르며 거친 소음을 만들어 냈다.
마차가 일순 기울었지만 그 안에 좌정한 여인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평온한 얼굴로 눈까지 감고 있는 모습에 성도 동문을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일행에게로 모여들었다.
“죄수 같지가 않은데?”
“상관하지 마. 성기사들이잖아.”
“그래도 특이하잖아. 게다가 저 여자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빛, 이상하게 포근한데 뭘까?”
“아침이라 그래. 그냥 아침 햇살이지, 이 사람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인데?”
“아, 거 사람 참. 신경 끄라니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수송 조장 그란트의 짜증을 폭발시켰다.
“비키시오!”
이내 빠르게 철창에 다가온 그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게 알려져 봤자 너에게도 좋을 게 없어. 머리가 있다면 생각이란 걸 해야 할 거 아닌가, 응?”
피식.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해 보시죠, 형제님. 제 입장에서 뭐가 달라질지. 저더러 이단이라면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란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말이 종교심문이지, 그저 요식 행위일 뿐이다. ‘위’에서 한 번 이단으로 찍히면 그것으로 화형이 확정된다. 성기사 생활 20년 동안 예외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차피 죽을 자가 같이 죽자고 나온다면…….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원하는 게 뭐냐? 미리 말하지만 난 이단 행위는 죽어도…….”
“오스틴 추기경님을 먼저 만나게 해 주세요. 그저 연락만 전해 주시면 됩니다. 제가 도착했다고.”
“……뭐?”
그 말에 잔뜩 굳어졌던 그란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오스틴 프루이트 추기경은 성도에서도 청렴하고 성실한 사제로 이름난 사람. 높은 지위에 오르는 동안 그 흔한 추문 하나 없이 존경받는 사제였으니까.
“그거면 되나?
“그래요. 그거면 충분해요. 내 입을 닫기에는.”
“……좋다.”
이 이단이 무슨 속셈인 건지는 모르지만, 오스틴 추기경과 연관이 되었다면 잘못될 일은 없다.
그란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며, 일리아는 남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빅토르를 통한 로건의 전언으로는 어차피 심문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 했지만.
‘로건 폐하. 저는 먼저 그분을 뵙고 판단해야겠습니다.’
먼 타지에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중앙 신전의 추기경들.
안타깝게도 그 소문들 중에 좋은 소문은 거의 없었으니까.
* * *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옥, 얇은 짚단 사이로 으스스하게 침범해 오는 한기에도 익숙해질 때쯤.
간수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일리아 주교님. 면회입니다. 높으신 분이니 혹여나…….”
죄수에게 하는 말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공손한 느낌이었지만 간수로서는 그럴만했다.
밝은 밖이라면 모를까,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 은은한 후광을 뿌리는 일리아의 모습은 확실히 범상치 않아 보였으니까.
“아아. 괜찮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녀가 웃으며 답하자 간수도 안심한 듯 다시 위로 올라갔고, 이내 누군가가 조용히 지하로 내려왔다.
“일리아 자매님. 과연……. 보는 것만으로도 알겠습니다. 성흔을 받으신 분이군요. 오스틴 프루이트가 성녀님께 인사드립니다.”
창백하고 깡마른 얼굴에 걸린 온화한 미소.
백발을 단정히 뒤로 빗어 넘긴 머리에는 낡은 법관을 쓰고 있었다. 입고 있는 법복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불과 음식의 신 아니마의 문양인 붉은 원이 흐릿하다 못해 안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차림만으로도 일리아는 이 노사제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분께 전갈은 받았습니다만, 제가 먼저 뵙고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뵙고 보니 너무 급하게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추기경 예하.”
“아니, 아닙니다. 어차피 빠르건 늦건 교황 성하께서도 알게 되실 일입니다.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고자 하시는 일은 들었습니다만, 그런데도 성하라고 호칭하십니까?”
“모든 사실이 확정되기 전에는 법도를 따라야지요. 상대가 아무리 법도를 어긴 사람이라 해도, 그를 벌하기 위해 나조차 법도를 어긴다면 주객이 전도된 일이지요.”
첫인상부터, 뚜렷한 주관이 담긴 말까지.
일리아는 더 이상 이 노사제를 떠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급하신 사안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로건 폐하와 추기경님의 뜻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녀님. 이 노구의 마음이 이제야 든든해지는 것 같습니다.”
훈훈한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 교, 교황 성하! 어찌 말씀도 없이 이 누추한 곳에…….
지하 계단의 위쪽에서 울려 퍼진 간수의 목소리에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벅저벅.
“이거, 좀처럼 얼굴 보기가 힘든 사람을 이런 험한 곳에서 만나는군.”
교황, 율리오 움베르토 1세.
오스틴과 마찬가지로 새하얀 백발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깔끔한 외양이었다. 얼굴 역시 오스틴처럼 주름진 노안이었지만, 두 사람의 닮은 점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최고급 비단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법복 위에는 반짝이는 금실로 신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머리 위에 쓴 높은 법관은 은은하게 빛나며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으로 유명한 은빛 눈동자와 함께 그 뒤로 은은하게 비치는 후광은 그 역시 신의 선택을 받은 성자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교황을 보는 일리아의 미간은 오히려 좁혀질 뿐이었다.
그 찌푸려진 시선이 교황과 마주치려는 순간, 철창 밖에 서 있던 오스틴이 황급히 교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성하를 뵙습니다.”
오스틴이 고개를 숙이자, 일리아 역시 황급히 그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교황은 그런 둘을 바라보면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래. 종교심문 대상자를 이리 일찍 만나러 온 이유가 있던가, 오스틴?”
“……성녀라는 소문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성하. 절차를 어긴 점이 있다면 질책하여 주십시오.”
“아니, 뭐 그런 것 가지고 추기경을 질책하겠나. 궁금할 만도 하지. 하지만 다음번에는 좀 더 조심해 주게나.”
“예, 성하.”
온화한 목소리들과는 다르게, 두 사람의 눈빛이 날카롭게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피식 웃은 교황이 불쑥 본론을 물었다.
“그래. 직접 보니 어떤가?”
“……일리아 자매님은 성녀가 분명합니다.”
“그래. 저 후광, 사제라면 특히나 모를 수가 없지.”
일리아를 바라보는 교황의 은빛 눈동자가 기이하게 번뜩였다.
“그런데 성녀가 금기를 범하다니, 이거 참 곤란하군. 심문이 어려워지겠어.”
“성녀께서 금기를 범하실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흔을 받지도 못했을…….”
“그만. 오스틴 추기경, 판단은 내가 한다네. 심문장에서도 마찬가지고.”
“……예, 성하.”
“그렇다고 그리 긴장한 표정을 짓진 말도록. 나도 나 외에 성흔을 받은 사람은 30년 만에 처음 보니까.”
“성녀는 신전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부디…….”
“흐음, 글쎄. 과연…….”
일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차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뒤로 비치는 후광을.
‘일반인, 아니, 정말 고위 사제라도 잘 느끼지 못하겠어. 정말 교묘해.’
자신이 성흔을 가졌기에 알 수 있었다.
교황이 가진 후광이, 그의 손목 어디에 있는 ‘무언가’에서 시작된 가짜라는 것을.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 율리오 교황의 후광이 가짜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정말 그것을 확인하게 되신다면, 따로 연락을 주셨으면 한다고 폐하께서 전하셨습니다.
‘로건 왕은 이 사실을 대체 어찌 알았을까.’
자신은 소문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신전의 중심인 교황이 가진 성자의 지위가, 그 후광이 가짜라는 충격적인 말은.
감히 누가, 아니 누구인가를 떠나서 어떻게 신성력을 흉내 낼 수 있단 말인가.
‘어떤 마법도 불가능한 일인데.’
그 복잡한 심사가 일리아의 얼굴에 고스란히 비치는데, 교황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도 반갑지 않은가. 성흔이 서로를 인식하고 기쁨의 울림을 내는 것이 나에게는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주름진 얼굴은 인자한 미소를 담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저 가식이 추해 보였다.
자신의 성흔에 반응에 울리고 있는 것은 성흔이 아닌 교황의 손목에 있는 무언가였으니까.
‘마법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던가? 신성력을 꾸며 내는 것이? 이게 대체…….’
갈수록 혼란이 커져 가고 있었지만, 일리아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 성하. 그 존귀하신 성흔이 전해 주는 울림이 제 영혼에 퍼지고 있습니다.”
일리아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하는 거짓말이었지만, 다행히 목소리가 떨리진 않았다.
빅토르를 만난 이래 무수히 연습했던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말에 교황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일리아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신했다.
“그래. 역시 그렇군. 만나서 반갑네. 뭐, 성흔이 있는데 심문은 하나 마나겠군.”
“성하. 그럼……?”
곁에 있던 오스틴이 반색하며 끼어들었지만.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 하니 재판은 열어야겠지. 하지만 너무 걱정 말게. ‘내가’ 그대를 인정하고 지지할 테니, 큰일은 없을 걸세.”
교황은 그를 무시한 채 그저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일리아의 어깨를 두드릴 뿐이었다.
‘저거군.’
그러나 그 손길 덕분에 일리아는 교황의 널찍한 소맷자락 안에 보이는 새하얀 팔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절로 이가 갈릴 만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그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감격한 듯 교황을 바라보았다.
“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성하.”
이것 역시 약속된 연기.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오스틴은 크게 놀라 눈을 부릅떴다.
오스틴의 그 표정 때문일까.
아니면 일리아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까.
“그래. 그럼 내일 보세. 아, 오스틴 자네도.”
교황은 더욱 진한 미소와 함께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 날.
중앙 신전 내에서도 가장 거대한 대전에서 열린 이단심문을 보기 위해, 중앙 신전의 사제들이 거의 모두 모여들었다.
“어떻게 될까?”
“성녀라는 소문도 있던데?”
“에이, 설마.”
웅성웅성.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천 명이 넘는 사제들이 관객이 되어 참여하자 거대한 대전 안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내.
“지금부터 맥라인 교구의 주교, 일리아 가본에 대한 이단심문을 진행하겠다. 모두 조용히 하라.”
교황의 목소리가 대전에 울리자 소란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이내 고요해진 대전의 안으로 손발에 족쇄를 찬 일리아가 들어왔다.
철컹. 철컹.
묵직한 걸음 소리가 짊어진 족쇄의 무게를 가늠케 했지만, 천여 명의 사제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리아의 표정은 편안하기만 했다.
이내 그녀의 뒤에 비친 후광을 확인한 사제들의 눈이 커졌다.
“정말 성녀인 거 아냐?”
“뭐? 속임수 아냐?”
“아냐. 분명히 신성력의 느낌이야.”
“그럼 그 소문이 정말…….”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다시금 커지는데.
“조용. 조용하라!”
땅. 땅.
교황의 법봉이 만들어 낸 청명한 소리가 다시금 소란을 잠재웠다.
이윽고 교황이 뭐라 말을 더 잇기도 전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9명의 추기경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황 성하. 일리아 자매는 역병을 극복하고 성흔을 받은 성녀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교리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그 소문부터 확인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샘 프리먼, 교황의 왼팔로 알려진 추기경이 이곳에 모인 사제들을 대변하여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은 교황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다. 일리아 주교, 그대는 그대의 성흔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 말에 일리아는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저이오나, 아문다 님의 은혜를 받들어 성흔을 받았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찌이익.
그녀가 이미 낡아 버린 법복의 오른쪽 어깨를 뜯어내자, 훤히 드러난 그녀의 새하얀 어깨 위로 선명한 푸른 원이 보였다.
그 순간, 더욱 강력하게 퍼지는 신성력을 느낀 사제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
“정말이다!”
“성녀야! 성녀!”
다시금 대전 안이 소란스러워졌지만 이번에는 교황도 소란을 진정시키지 않았다.
잠시 후,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차츰 진정이 되고 나서야 교황이 다시 법봉을 꺼내 들었다.
그가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본디 일리아 주교에 대한 이단심문은 역병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쓴 수단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나 성흔이 그 수단의 정당함을 뒷받침하니, 교리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대전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자, 교황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여 이단심문의 무효를 선언하며, 그 대상이 된 성녀 일리아를 명예 추기경에 임명한다!”
“우와아아!”
그 순간 요란한 환호성이 대전 안을 가득 메웠다.
이단심문장이 오히려 새로운 추기경의 임명식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일리아, 너는 이제 신전의 부정적인 소문을 씻어 내고 그 고결함을 증명하는 상징이 될 것이다.’
교황은 환호하는 사제들을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새로운 패가 될 성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리로 오게, 일리아 자매. 내가 직접 추기경의 법관과 법복을 하사하겠네.”
교황은 이례적으로 웃으며 일리아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일리아가 심문장에 모인 천여 명의 사제들 앞에서 교황을 향해 다가갔다.
미리 준비한 듯 내려지는 순백의 법복과 법관.
교황의 손을 떠난 그것을 일리아가 받아 드는 순간,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추기경 예하를 뵙습니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천여 명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며 일리아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보였다.
몇 개월의 수송 기간 동안 빛이 바래 버린 법복과 흐트러진 머릿결에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빛을 발했고, 성흔이 전해 준 후광은 그 아름다움을 더 신성한 무언가로 보이게 했다.
“정말 성녀님이 맞구나. 저리 아름답다니…….”
“신의 화신이니까…….”
웅성웅성.
그렇게 대전 안이 온갖 환호성과 감탄으로 가득해진 순간.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 신전의 사제들이 대다수 모인 지금, 이단심문보다 더 중요한 안건을 회의에 상정하고자 합니다.”
오스틴 프루이트가 그의 뒤를 따르는 일부 사제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목소리에 다시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데.
“본 추기경은 교황, 율리오 움베르토 1세에 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바입니다!”
이어진 발언이 심문장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뭐?”
“무슨 말이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대전이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워지는 가운데, 교황이 차가운 분노를 토해 냈다.
“오스틴 추기경.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하지만 창백한 인상의 노인은 담담하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탄핵의 사유는 뇌물 수수 및 직권 남용, 거기에 더해 신전 안팎에서 벌어진 23건의 범죄에 대한 유력 용의자 혹은 사주자이기 때문이오. 증거도 함께 제출하겠소.”
심문장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저게 무슨?”
“교황 성하를?”
“탄핵이란 게 있었어?”
“있어. 200년 만이긴 하지만. 그보다 저게 정말일까?”
웅성웅성.
“웃기지 마라, 오스틴 플루이트! 지금 신전의 법률을 모독하는 것인가! 교황 성하의 탄핵은 최소 추기경 2명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교황이 차분히 지켜보는 가운데.
분노한 추기경, 테너 레이니의 고함이 터져 나오자 대전이 다시금 고요해졌다.
대외적으로도 알려진 확실한 교황 파벌의 추기경.
하지만 그가 한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아, 그런가?”
“맞다.”
“그런 게 있었지.”
교황 일파의 비리에 대한 소문은 타락한 신전 내부에서도 만연했지만, 그 말 한마디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뜻 그대로라면 탄핵안 발의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제가 그 탄핵소추안에 동의하겠습니다.”
조금 전 임명된 명예 추기경, 일리아가 거수하며 심문장의 분위기가 다시 한번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