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확실히 탄핵 소추안에 이단 조사단의 실종 정도로는 교황을 완전히 엿 먹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를 흔들 수는 있을 겁니다.”
“작은 흔들림 뒤에 올 더 큰 파도가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주군.”
“그 작은 흔들림을 거센 지각 변동으로 만들 방법이 있습니다.”
“예?”
클레이튼의 반문에도 로건은 그저 웃었다.
‘처음에는 쉽게 떠올리지 못했지.’
전생에서의 수많은 기억 중에, 그다지 관심도 없던 교단에서 발생한 사건 하나를 바로 떠올리기란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오스틴 추기경의 입에서 ‘탄핵’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거짓말처럼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 교황의 암살 미수 사건.
–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교황의 수십 년 사기극이 탄로 났다.
– 가짜 성자. 그로 인한 탄핵.
물론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전생에 그 소문을 들었을 때는 신전이 타락하더니 교황도 사기를 친다며 그저 웃어넘기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현생에선 누가 교황이 가짜 성자라는 소문을 퍼트린다 한들 믿는 이도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교황의 탄핵 소추안이 발의된 상황에서 그런 소문이 퍼진다면?
‘누군가는 의심하고 확인하려 하겠지. 그거면 충분해.’
그동안 저지른 비리에 의한 탄핵.
월권에 의한 전력 희생.
거기에 성자 사칭 사기까지.
“이단 조사단이 사라진 연유를 조사할 여유 따위는 없어질 테니까요.”
이어진 로건의 설명에 클레이튼은 그저 입을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데미안 그 친구의 능력이 꽤 출중하지요.”
“허……. 정말 대단한 친구였군요. 저도 신세 좀 지도록 해야겠습니다.”
세상의 진리를 탐구한다는 마도사의 의문이 어디 한두 개로 끝날까.
데미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듯한 환상이 보였지만, 로건은 슬며시 밀려오는 양심의 가책을 무시해 버렸다.
‘회귀에 대한 것은 무조건 비밀로 해야 해.’
타락한 신전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권능을 사칭했다는 이유로 교황을 갈아치웠다.
신조차 할 수 없다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간섭, 회귀에 대한 정보는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된다.
새삼 그렇게 다시 다짐하는데, 이번엔 스승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래도 의심을 피하려면, 저희는 몰라도 주군의 알리바이는 확실히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준비하셨을 거라 믿습니다만…….”
타당한 우려였다. 일부러 제국에서 일을 벌이긴 했지만, 그들에게 원한이 있는 맥라인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몰릴 테니까.
게다가 이단 조사단을 소수로 토벌할 수 있는 전력은 극히 제한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물음에도 로건은 자신감 있게 웃을 뿐이었다.
“물론 제대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시각, 맥라인 왕실은 여느 때와 별다른 점이 없었다.
“그럼 그 안건은 그리 처리하겠습니다, 폐하.”
“모두 수고 많았소. 수고 많으셨습니다, 장인어른.”
“예……?”
‘로건’의 말에 로버츠 플로이드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장인어른이라니.
공적인 자리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던 말이었다.
하지만 여럿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이 싫을 리는 없었다.
괜스레 기분이 들뜬 로버츠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하, 별말씀을요. 그럼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렇게 로버트를 비롯한 왕궁 대신들이 사라지는 순간,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드웨인이 로건의 발을 거세게 밟았다.
“억!?”
펄쩍 뛰어오른 로건.
평상시라면 상상도 못 할 짓을 저질러 놓고도 드웨인은 오히려 그 앞에 이를 드러내며 으르릉거렸다.
“미쳤냐? 장인어른이 왜 나와, 장인어른이!?”
“가, 갑자기 신하가 이러는 게 어딨…….”
“뭐?”
“죄, 죄송합니다.”
드웨인의 위협적인 목소리에 로건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드웨인이 그의 어깨를 퍽퍽 소리가 나도록 두드렸다.
“윽!”
“똑바로 해라, 릭. 폐하의 버릇을 가장 잘 아는 게 너야. 체형도 비슷하고, 최고급 마법까지 써 줬는데 고작 며칠을 못 버티고 사고를 칠 거야?!”
“악! 아픕니다, 행정관 님! 힘이 왜 이렇게 세요!”
“다 폐하와 너를 위해서야, 이 녀석아!”
퍽. 퍽.
“아, 아닌 것 같은데…….”
로건, 아니 로건으로 변장한 릭의 중얼거림에 드웨인은 살짝 양심이 찔려 오는 것을 느꼈다. 며칠째 로건의 얼굴을 한 릭을 타박하면서, 은근한 쾌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진심을 숨기기 위해, 드웨인은 더욱 강하게 나갔다.
“뭐 인마? 누군 지금 똥줄이 타들어 가는데, 자꾸 실수만 하면서 지금 뭐라고?”
일그러진 얼굴로 로건의, 아니 릭의 멱살을 잡는 드웨인.
사실 덩치만 보면 웬만한 기사 저리 가라 할 수준에 수염까지 무성했던지라, 그가 작정하고 인상을 쓰면 거의 산적이라 봐도 무방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그를 쭉 봐 온 릭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 아니. 그게 저도 이제 엄연히 왕실 시종장인데 너무 막 대하시는…….”
드웨인은 그런 릭의 항변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아아. 이런 손맛이라니…….’
로건의 외양을 한 자의 멱살을 잡는 순간, 그는 달콤한 환상에 젖어드는 듯했다. 그간의 개고생이 아련하게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 내가 너 때문에 개고생 한 게 얼만데.
요샌 위장병까지 달고 사는데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진짜도 아니고 가짠데 말야.
“어? 마! 내가 말이야. 이래 봬도…….”
차오르는 가슴속 호기에 드웨인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아니! 무엄하게! 지금 무슨……!?”
“무엄하기는 무슨, ……어?”
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의 몸이 덜컥 굳어졌다.
끼기긱 고개를 돌려 보니, 그의 눈에 조금 전 집무실을 나선 왕궁 대신들이 서 있었다. 저마다 선물 같은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있는 대신들의 얼굴엔 황당함만이 가득했다.
“드웨인 님??”
너 지금 뭐 하냐?
로버츠 플로이드의 입에서 생략된 말이 드웨인의 뇌리에서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커헉! 그, 폐, 폐하의 용포에 먼지가 좀 묻어서 말입니다.”
황급히 돌아서서 변명을 내뱉던 드웨인이 대신들의 손에 들린 것들을 흘깃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낯익은 포장지였다.
‘임포릭? 저거 지금 안 팔 텐데? 어떻게 구했지?’
그 외에도 대신들은 크랑의 풀이나 리테의 간 같은, 온갖 정력에 좋다는 물건들을 들고 있었다.
대체 이 타이밍에 왜?
“그런데 어쩐 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까?”
“아아. 폐하께서 신혼이신데, 아직 좋은 소식이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장인으로서 선물을 좀 준비해 봤습니다. 본디 따로 찾아뵈려 했지만, 이 사람들이 하하. 동시에 밀어붙이는 통에.”
“아……. 하하. 그렇군요.”
드웨인이 슬쩍 뒤를 바라보며 눈을 부라렸다.
공과 사를 확실히 구별하는 평상시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였다. 아마 그 장인어른이라는 호칭이 만든 작은 변화임이 분명했다.
드웨인이 거 보라는 듯 로건의 탈을 쓴 릭에게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하하. 우리 재무대신께서 생각보다 더 폐하와 사이가 가까우셨나 봅니다. 그리 살갑게 지내실 줄이야.”
갑자기 들려온 로버츠 플로이드의 떨떠름한 목소리에 그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여전히 미심쩍은 시선들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하하하. 저야 폐하께서 어렸을 때부터 워낙 친분이 있었으니까요.”
“그랬습니까? 제가 들었던 이야기랑 조금 다른데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드웨인은 한 손을 등 뒤로 돌린 채 손가락을 빠르게 세 번 폈다가 접었다.
이 짧은 수신호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했다.
– 비상 상황. 로건 맥라인이 했을 법한 행동과 말투를 보여라.
라는 뜻.
그리고 릭은 그 신호를 아주 확실하게 받아들였다.
“드웨인. 머리 박아.”
“……예?”
끼기긱. 그의 고개가 다시 반대로 돌아갔다.
너 미쳤어?
눈에 한껏 힘을 줘 보지만.
“왕궁 대신이 되었다고 내가 너무 풀어 준 모양이야. 장난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거늘. 쯧.”
무표정한 얼굴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릭은 이미 완벽히 로건의 탈을 쓰고 있었다.
정말로 제 주군이 보였을 법한 그 언행에, 드웨인의 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하지만 여기서 반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폐하.”
쿵.
황급히 머리를 박는 드웨인의 모습에 로버츠를 비롯한 대신들이 그제야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머리를 박는 와중에도 그 표정들을 확인한 드웨인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는데, 릭이 엎드린 그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득.
“커흑! 허, 허리……. 폐, 폐하?”
“어허. 조용히 하거라. 대신들 앞에서 왕의 체면을 상하게 한 죄치고는 가볍지 않나.”
“어, 어윽.”
너, 너 이 새끼.
설마 지금 복수하는 거……?
울분이 치솟았지만 토해 낼 방도가 없었다.
“아. 그리고 선물이라고 하셨던가요, 장인어른?”
“예, 폐하. 남자에게 좋다는 물건들로만 모아 왔습니다.”
“하하. 뭘 이런 것까지.”
일과가 끝난 후 한결 가벼워지곤 하던 로건의 표정과 말투를 완벽하게 흉내 낸 것과는 별개로, 릭은 드웨인이 알면 기함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히히. 라일라가 좋아하겠네. 폐하야 초인이신데 뭐, 이런 게 필요하려구.’
왕실 시종장은 자신의 후사 계획을 떠올리며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 * 오스틴 추기경의 탄핵 소추안으로 성도 노비엔스가 온통 떠들썩해졌지만, 주민들 대다수는 그 결과를 부정적으로 예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교황 성하신데.”
“그분이 설마 그런 짓을 했겠어?”
교황을 지지하는 자들도.
“교황파 추기경이 7명이야. 고위 사제들 중엔 훨씬 많을 테고.”
“이건 무조건 교황이 이기는 싸움이야.”
교황을 비판하던 자들도.
그 결론에 대한 생각은 같았다.
그런 와중에, 그 심판일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소문이 성도를 강타하며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귀환하던 이단 조사단이 단체로 실종됐다.
전투의 흔적도 있지만 성법으로도, 마법으로도 그 추적이 불가능하다.
조사단 전멸 추정. 대지의 마도사가 관여한 것은 확실하나 흉수를 특정할 수가 없다.
근래 가장 큰 화제였던 이단심문관들의 단체 출정. 그 출정의 결과가 예상치도 못한 참상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단심문관이 구시대의 잔재라고는 하나, 엄연한 신전의 정예들이었다. 단일 부대라면 성전기사단에도 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력이니만큼, 자연히 후보군은 좁혀졌다.
“제국 영토 내라면, 제국 짓인 거 아냐?”
“제국이 뭐 하러?”
“그래도 그런 일을 할 만한 저력이 있는 곳은 제국뿐이잖아.”
“왜? 맥라인 왕국도 있잖아.”
“그 작은 나라가?”
“작지만 왕이 초인이야. 그리고 대지의 마법사도 있지. 무엇보다, 이단 조사관들에게 유감이 있을 테니까.”
코웃음 친 반발은 그나마 소식통이 밝은 이의 반문에 묻혔다.
하지만.
“그 소국이 감히 ‘제국의 영토’에서 ‘신전’을 공격한다고? 그게 어찌 안 들켰는지는 둘째치고,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들 대다수의 상식은 그 유력한 추측을 부인하게 했다.
거기다 평상시라면 나오지 않았을 목소리들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뚜렷한 확증도 없이 이단 조사관을 파견한 건 교황 아닌가?”
“심지어 이단 판정도 안 났어. 무리수가 천벌로 돌아온 거겠지.”
교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사태를 신전의 수뇌부, 정확히는 교황의 파벌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신전의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흉수를 찾아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게 아레스건 맥라인이건, 죄의 대가를 물어내게 해야 합니다!”
추기경 회의.
정확히는 오스틴과 일리아를 제외한 교황파에 속하는 다른 추기경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고함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에 교황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앉은 테너 레이니 추기경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현재로선 맥라인이 가장 유력합니다. 제국은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병력이 움직인 흔적이 없습니다. 그 왕국에, 이토록 짧은 기간에 조사단을 처리할 수 있는 무력이 있습니까?”
“그거야 조사해 보면 알 일이지요.”
“허허. 뭐 다른 방안이 없다면…….”
“성전기사단을 파견하여 진상 조사를 합시다. 그것이 성법이 됐건 마법이 됐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토설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황 성하의 허락도 없이 말입니까?”
강력하게 맥라인 조사를 주장하던 교황의 오른팔, 테너 레이니조차 그 말엔 잠시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탄핵 소추안이 부결될 때까지, 교황 성하의 직무는 정지요. 어쩔 수 없지 않소.”
한참 뒤에야 누군가 그리 말한 순간, 회의실 문이 열리며 또다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거리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또 뭐야?!”
사라진 이단 조사단에 대한 소문으로 떠들썩하던 성도가 그보다 더욱 충격적인 소문으로 연일 시끄러웠다.
율리오 움베르토 1세의 성자 봉헌식은 사기극.
그는 가짜 성자다.
일반인은 물론, 사제라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괴악한 소문이 출처도 없이 성도와 그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하층민 출신의 율리오 사제가 교황의 직위에 오른 것은, 당시 50년 만에 나타난 성자의 증거가 준 영향력이 막대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상식.
즉 탄핵과 월권에 관한 소문도 모자라, 교황의 입지 근간마저 흔들 소문이 자꾸 퍼지고 있는 것이었다.
“에이 설마…….”
“그게 말이 돼?”
“그래도 지금 상황이…….”
평상시라면 주민들도 코웃음으로 넘길 소문이었지만, 연이어 흉흉한 일이 벌어지고 있던 터라 대다수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리 떠드는 놈들은 모조리 잡아들여!”
“신전을 봉쇄하고 사제들이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해!”
“엄한 소문을 퍼트리는 자는 극형에 처하겠다!”
교황파 추기경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그 소문을 부정했다.
하지만.
“교황은 범죄자일 뿐만 아니라 사기꾼이다.”
탄핵 소추안을 발의한 오스틴 추기경과 새롭게 성녀로 추대된 일리아의 목소리가 더해지는 순간.
성도는 물론, 온 대륙의 여론이 중앙 신전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다가오는 교황의 탄핵 심판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