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8)
28화맥라인의 본대와 가주인 패드릭 맥라인이 테스론 성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난 뒤였다.
도착하자마자 로건이 벌인 ‘일들’에 대해 들은 패드릭은 그 즉시 로건을 따로 불렀다.
“……하만이 자살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느낌이 듬뿍 담긴 어조였다.
하지만 로건은 뻔뻔하게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예. 좌절감이 컸나 봅니다.”
“죽였느냐?”
움찔.
“……아닙니다.”
괜히 먼 곳을 바라보는 아들의 눈을 본 패드릭이 길게 한숨을 토해 냈다.
“하아……. 하필 또 그 아들들은 하나같이 너와 결투를 하다 죽었고?”
“주제를 모르고 저를 모욕하기에 결투를 신청한 것뿐입니다.”
귀족 대우를 해 달라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항의하다 죽은 이들이 들었다면 복장이 뒤집혔을 말이다.
“포스유저가 일반인에게 말이냐?”
“명예는 포스와 상관이 없지요.”
“으으음…… 로건, 솔직히 말해도 된다.”
무언가를 삭이는 듯한 신음과 긴 한숨 끝에 나온 패드릭의 말에, 변한 아버지의 눈빛을 확인한 로건이 담담히 진짜 이유를 말했다.
“예. 일부러 죽였습니다.”
“왜?”
“테스론 영지는 다시 우리 맥라인의 아래에 놓여야 합니다. 핏줄을 살려놓아 분란거리를 남겨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살려두고 신하로 삼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느냐?”
“예.”
지체하지 않고 나온 짧은 대답에 패드릭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전처럼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는 않았다.
이번 전쟁으로 그는 자신의 큰아들이 자신의 품 안을 벗어난 성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자각했다.
잘못을 가르쳐 다듬어야 할 대상이 아닌, 다른 생각을 가진 성인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손속이 과하긴 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며칠 전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의 변화였다.
냉대와 무시 속에서도 가문을 지켜 낸 아들은 그런 신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문제를 따지고 들기에는 당장 급한 일들도 많았다.
“하아아…….”
긴 한숨만이 채 말로 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했다.
“그래, 알겠다. 들어가자. 다른 일은?”
“귀금속류 재물은 한군데에 모아 놓았습니다. 기타 제반 사항은 테스론의 관리들을 모아 보고서를 작성해 놓게 했습니다.”
“관리들?”
“도합 열둘, 행정관리들은 필요할 것 같아 굳이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잘했다.”
테스론 성의 대전으로 정복자들의 수장과 그 아들이 자신들이 이룬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섰다.
* * * 맥라인 가문의 병력이 다시 본성으로 돌아온 것은 전쟁이 시작된 지 고작 일주일 후였다.
실질적인 전쟁은 단 하루 만에 끝났으니, 실제로는 테스론 영지를 왕복하는 과정이 그 기간의 전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귀환하는 병력들을 반기는 영지민들은 몇 년 만에 귀환한 전쟁 용사를 맞이하듯 환호했다.
“맥라인 가문 만세!”
“패드릭 맥라인 만세!”
무사히 돌아온 가장이나 아들을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끝도 없이 만세를 외쳤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작한 전쟁이었던 만큼, 그 승리는 더욱 짜릿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어울리지 않는 환호성이 로건의 귀에 들어왔다.
“로건 대공자 만세!”
생각지도 못한 환호성에 로건은 얼떨떨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는 생각보다 빠른 변화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미 소문은 퍼질 대로 퍼져 있었다.
로건 대공자가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였지만 그들의 품에 돌아온 가족들의 증언은 오히려 소문보다 더했다.
그로 인해 그동안 쌓여 왔던 로건에 관한 악소문은 어느 순간 씻은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당사자도 낯뜨거운 극찬뿐이었다.
천재적인 혜안과 그 이상으로 놀라운 무력. 세상에 다시 없는 인재.
카록의 고기 같은 괴행에 대한 소문은 ‘범인은 이해하지 못할 천재의 기벽’ 정도로 이해되었고, 과거의 패악질에 대한 소문도 로건이 스스로 뛰어남을 숨기기 위해 연기를 해 온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포장이 덧씌워졌다.
개선 행렬의 와중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말도 안 되는 미담에 로건의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형님, 기분이 어떠세요? 모두가 형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찬양은 무슨, 얼굴만 화끈거린다. 너도 적당히 해, 로니.”
그 말은 진심이었다. 사실상 미래를 안다는 것 하나로 이뤄 낸 전공이었다.
그것이 모두 자신의 재능이라 평가받는 것은 아무리 낯짝이 두꺼운 자신이라도 조금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건이 내심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저는 대공자님이 결국 일을 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병사의 신분에서 어느새 시종으로 복귀한 릭.
“사실상 공자님이 승리하신 것과 다름없습니다!”
평상시에는 과묵하기만 했던 기사단장 헤인켈.
“맞습니다! 공자님! 이 승리는 공자님의 것입니다!”
거기에 주변의 어떤 기사도 그 낯뜨거운 칭찬을 반대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쫓겨났던 전생의 삶. 그리고 망가졌던 가문.
전생에 한으로 남았던 아픔 두 가지가 사라졌다.
그만큼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어깨가 절로 올라가는 것을 참는 것도 고역이었다.
‘침착해, 침착하자. 이제 시작이야. 미래는 더욱…….’
스스로를 다독여 봐도 빙그레 미소 지어지는 얼굴 근육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 이 전쟁의 가장 큰 공신이 누군지 모두에게 보여 주자!”
“우와아!”
한 기사의 외침에 따라 주변의 기사들이 로건을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헹가래.
“로건 공자님, 만세!”
“만세!”
하늘로 치켜든 기사들의 손, 모여드는 영지민들의 기분 좋은 시선.
하늘 높이 던져진 로건의 입에서 더는 숨기지 못한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하하하!”
* * * 한동안 계속된 떠들썩한 환영식이 마무리되고 영지의 중심인물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임시로 테스론 영지를 관리하기 위해 남긴 다섯의 수위기사들 대신 기사단 대표로 홀로 참석한 헤인켈.
재무담당 드웨인을 비롯한 행정관리 다섯.
그리고 맥라인 일가의 사람들.
우울한 얼굴의 메리안을 제외하면 모두가 밝은 분위기 속에서 패드릭이 선언했다.
“지금부터 영지전에 관한 논공행상을 시작하겠다. 드웨인.”
“예. 결과 보고 드리겠습니다.”
드웨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전쟁의 전과를 읊었다.
테스론 영지 예산 잔금, 현금 432만 골드.
추정 가치 100만 골드가량의 귀금속류.
추정 가치 30만 골드에 달하는 곡물.
테스론 성(城)과 영지, 500헥타르(5㎢)에 육박하는 평야.
이 전쟁을 통해 맥라인 가문이 얻은 막대한 물질적 이득이었다.
“이상입니다.”
“우와아아!”
드웨인의 말이 끝난 순간 환호성이 터지는 것도 당연했다.
“테스론 가문이 저희 예상보다 돈이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드웨인의 부언에 흡족한 웃음을 지은 패드릭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모두 수고가 많았다. 그럼 이제부터 포상을 결정하겠다.”
가장 먼저 기사들의 전공이 거론되었다.
가문의 주전력이었으니 이들의 포상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의외인 것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행정관들에게도 소정의 보상이 돌아간 것이었다.
그것은 가문의 일원으로서 일체감을 높이기 위함임과 동시에, 앞으로 그들이 해야 할 막대한 양의 전후처리업무에 대한 사전 보상이기도 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얻은 이득에 비해 그리 크지는 않았다.
기사단장 헤인켈에 대한 보상이 5만 골드로 다소 컸을 뿐, 모든 이들의 보상을 모두 합쳐도 채 50만 골드를 넘지 않았다.
아무리 큰돈을 얻었어도 전쟁을 치르면서 소모된 비용과 앞으로 들어갈 비용에 비하면 작은 돈이었다.
전쟁은 자원을 소모할 뿐, 생성하지는 않으니까.
당장 테스론 성에 써야 할 예산까지 따진다면 올가을의 추수까지는 오히려 돈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아니, 농번기에 일어난 전쟁이니 내년까지 허리를 졸라매야 할지도 몰랐다.
적어도 이곳에 모인 모두는 그 정도 사실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소한’ 보상들이 전부 정해지고 나자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것이다. 이 전쟁은 나를 비롯한 기사들의 힘이 아니라, 다른 이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란 사실을.”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음에도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헤인켈을 비롯한 전장에 참가했던 이들의 시선은 한없이 호의적이었지만, 전장에 없었던 관리들의 시선에는 아직 미심쩍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정말 그 대공자가 전쟁을 바꿨다고?’
불신의 기색이 역력했지만 분위기상 무어라 딴지를 걸 수는 없었다.
복잡한 마음을 담은 시선들이 한 번에 로건을 응시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로건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회의가 끝난 후 하려고 마음먹은 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다음 이어진 패드릭의 말에는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의 1등 공신은 오직 한 명. 내 아들 로건뿐이다. 나는 그에게 30만 골드를 하사하고자 한다.”
얼핏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기사단 전체의 포상금과 같은 어마어마한 포상금이었다.
현재 맥라인 가문의 상황에서는 엄청난 지출인 것이다.
“또한 맥라인 가문의 장자로서, 그 정당한 핏줄의 적합성과 전공을 인정하여 로건 맥라인을 가문의 정식 후계자로 선포한다!”
게다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승계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후계 선언에 잠시 멍하니 패드릭을 바라보던 회의실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대공자님! 축하드립니다.”
헤인켈이 환한 안색으로 박수를 보내는 한편, 떨떠름한 표정의 관리들은 서로 눈치를 볼 뿐이었다.
그나마 드웨인이 조심스레 나섰다.
“가주님, 후계는 조금 신중히 생각하시는 게…….”
“어허. 이 사람. 자네가 전장에서 공자님을 못 봐서 그래.”
“아니, 그래도 한 면만 보고…….”
드웨인과 헤인켈, 가신들의 대표 둘이 서로 언성을 높이려는데.
“죄송하지만, 우선 후계자에 관한 이야기는 사양하겠습니다.”
정작 무덤덤한 표정의 당사자가 찬물을 끼얹었다.
“……뭐?”
“내가 잘못 들었나?”
“지금 사양이라고…….”
그리고 그런 목소리들을 대표하여 약간 굳은 표정이 된 패드릭이 다시 물었다.
“……왜냐? 설마 일전의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것이냐?”
그는 전쟁 직전, 로건의 성년식(?)에서의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가신들의 시선 속에서 로건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그럼?”
“그때도 말씀드렸듯이 기사 가문인 맥라인의 후계자는 무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로니안이 더 어울립니다.”
“형님?!”
로니안이 소리를 지르고, 내내 우울한 표정이던 메리안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게 만드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듣는 이들 대부분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로건이 이번 전쟁에 죽인 기사의 수가 몇인가. 게다가 그중에는 무려 상급기사까지 있었다.
아무리 부상자였다 한들, 고작 스물의 나이에 상급기사의 목을 베어 버린 이가 천재가 아니라면 누가 천재라는 말인가.
듣는 이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건 로건은 아랑곳없이 말을 이었다.
“로니안은 고작 열네 살에 포스유저가 되었습니다. 저보다 5년은 빠르지요. 이 녀석이 성년이 되었을 때 어떤 성취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네 말대로 된다고 해도 단순히 무력이 강하다고 한 가문의 주인이 되는 법은 없다, 로건.”
‘아니. 있습니다.’
아버지의 상식적인 답변에 로건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로니안이 전생처럼 대륙 최연소 오러유저라는 타이틀을 얻는다면 어떤 단점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장은 그것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가 굳이 후계자가 될 필요는 없어.’
좀 더 정확히는 후계자가 아닌 쪽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편했다.
일단 지위를 가지는 순간 그의 안전 문제에 신경을 쓰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고, 후계자 수업이라는 빌미로 수많은 서류 작업들이 그의 시간을 잡아먹을 것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로니안을 후계자로 만들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적어도 형으로서 동생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로니안이 성년이 되었을 때, 그날까지 후계자의 선정을 미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이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형님…….”
복잡한 표정의 로니안과 새어머니의 얼굴은 굳이 쳐다보지 않았다.
다행히 그 대답은 아버지와 가신들을 감탄하게 만든 것 같았다.
“과연…….”
“역시 대공자가 변했…….”
“대단…….”
전공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미심쩍은 표정이었던 관리들도 그 말에는 감탄한 눈빛으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특히 기사단장 헤인켈은 더없이 뿌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훈훈한 분위기에 패드릭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네 뜻을 받아들여 후계자 선정은 향후 5년 뒤, 로니안의 성년 이후로 미루겠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미소가 다 지워지기도 전에, 로건이 또 하나의 폭탄을 던졌다.
“포상 역시 거절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