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전생에서 제국의 정복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 사학자들은 그 수많은 전쟁 사이에 미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바로 ‘제국에 대항하는 유능한 왕은 개전 초기나 그 직전에 죽는다.’라는 것.
반대로 그란디아의 왕처럼 암군이나 폭군으로 불렸던 왕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살아남는다는, 완전히 대비되는 자료도 남아 있었다.
한편 일각에서는 ‘제국에서 운용하는 킹 슬레이어 집단이 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무능한 왕은 오히려 제국에 도움이 되기에 남겨 둔 것뿐이라는 비아냥이 곁들여진 소문이었다.
소문이 퍼지던 초창기만 해도 용감한 자가 빨리 죽는 것일 뿐이라며 음모론을 부정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정복 전쟁이 끝나갈 무렵 대륙 서부의 유명한 초인 왕이 자신의 왕궁 내에서 암살당하고 나서는 모두가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초인조차 죽일 수 있는 암살자 집단이 제국에 있다.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제국 황실 특수감찰부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공포가 된 집단. 제국의 그림자들, 혹은 귀신이라 불리던 암살자들.
세상의 정점에 선 이들만 만날 수 있는 사신이었기에 로건으로선 그들의 위명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후에 알려진 그들의 특징을 소문으로나마 들어 본 적은 있었다.
바로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인과 같으나 움직일 때는 귀신과 같다는 것, 죽을 때는 자폭하여 주변을 초토화하는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로건은 뒤늦게나마 놈들의 정체에 대해서 추론할 수 있었고, 이내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놈들이 왜 벌써…….”
제국이 전쟁을 시작하려는 건가?
이 시점에?
제국의 움직임에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몰랐다고?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휩쓰는데.
“으아아. 죄송합니다, 폐하. 저는 그냥 그놈들이 서로 좋아하는 줄 알고…….”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횡설수설하는 릭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트렸다.
‘그래. 일단…….’
전후 사정부터 확인해야 할 때였다.
“아니, 넌 잘못한 거 없어. 오히려 공을 세웠지. 그런데 어쩌다 놈들이 수상하다고 느낀 거야?”
자신 역시 멀리서 지나쳤다면 느끼지도 못했을 만큼 은밀한 기운이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그게……, 저…….”
“뭐?”
“저, 저는 그냥 그놈들이 몰래 수신호를 주고받았으면서도 갑자기 서로 모르는 척을 하길래 그렇고 그런 사이인 줄 알고…….”
그 말에 로건은 그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로건은 다시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미리 왕궁에 숨어들었을 수도 있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나를 암습하려다 잡힌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찾아낸 거니까 아직 전쟁은 아닐 거야.’
하지만 왜 이리 싸한 느낌이 드는 걸까.
“이놈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조, 존과 켄입니다.”
“이놈들이 왕궁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조사해 봐. 그리고 데미안에게 연락해서 입궁하라고 해.”
“예, 폐하.”
“어깨 펴, 릭. 네 덕분에 수상한 놈들을 잡았다.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예? 아…… 예! 물론이죠, 폐하! 하하.”
로건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시종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주변의 기사들을 소집시켰다.
“왕궁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을 대전에 집합시켜라. 일단 전부 내가 살펴봐야겠다.”
“예?”
“전부 집합시켜. 시종이나 병사, 기사 할 것 없이 모두.”
“예, 예!”
“시종들은 잠시 이곳에 모여 있도록 해라. 모든 이들의 신분 확인이 끝날 때까지.”
“……예.”
로건의 명과 함께 흩어지는 기사들.
하지만 갑작스레 왕성의 모든 근무자를 불러모은 소환령은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수천의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로건만 괜히 피곤해지고, 소집 자체는 삽질로 끝나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 소란으로 인해 왕실에 무언가 사고가 터졌다는 소문만 알음알음 퍼져 나가고 말았다.
* * *
“그 두 놈의 입궁 과정에는 흠잡을 것이 없습니다.”
“뭐?”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이 좀 변했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해 봐.”
로건의 말에 데미안은 잠깐 주저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어두운 성격이긴 했어도 종종 말은 받아 줬는데, 폐하의 결혼식 이후로 사람이 더 어두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체로 원래 그랬던 자들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고는 합니다만.”
“……그때 사람이 바뀌었다는 건가.”
“저희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으음. 역시 그럼 그때…….”
“네?”
“아니다. 계속 말해 봐. 다른 놈들은?”
“소집령에 응하지 않고 사라진 자들이 시종 셋, 병사 여섯이 더 있습니다. 그들의 행적을 추적 중이기는 합니다만…….”
“어렵겠군.”
“죄송합니다, 폐하.”
“아니, 아니야. 그럴 수밖에 없지.”
“예?”
로건이 마치 놈들의 정체를 안다는 듯이 말하자 데미안이 의아해했지만, 그의 주군은 의문을 해소해 주지 않았다.
“그보다 제국 쪽은?”
“예?”
“별다른 반응 없나? 이상한 움직임이나? 필립하고 연락은 하고 있지?”
“예, 물론입니다. 당부하신 대로 매일 통신으로 점검하고 있습니다만 어제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왕의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심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데미안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눈에 띄게 안심하는 왕을 보며 다시금 의구심을 가졌다.
“왕성에 생긴 사고, 제국과 관련이 있는 놈들입니까?”
“……아마도.”
“폐하께서는 어찌 그걸…….”
“단편적으로 중요 정보를 전해 오는 비선이 있다.”
서운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데미안은 오히려 안심했다.
‘역시. 폐하께서는 나만 믿고 계시는 게 아니구나.’
정보 조직을 만들고 운용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자신을 과하게 신용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데미안은 철두철미한 주군의 성품을 다시금 확인하며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하면, 놈들에 대한 정보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일이 좀 더 수월해질 듯합니다.”
“단편적인 것뿐이다. 너희들이 쉽게 찾을 수 없을 거야.”
“그 비선 쪽도 마찬가지입니까?”
“……그래.”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겠지요.”
“……그렇겠구나.”
당황하는 주군의 모습을 보며, 데미안은 결심했다.
언젠가는 주군의 저 한숨이 감탄으로 바뀔 수 있도록.
다른 비선을 능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데미안을 돌려보낸 후, 로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전쟁은 아니야. 일단 왕성에 숨어든 귀신들을 없앴다는 것에 만족하자.’
그리고 더 준비하자.
지금 같은 우발적 상황에 더 당황하지 않도록.
그날 로건은 얼마 전 새롭게 떠오른 기억을 바탕으로 제국에 관한 정보를 다시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
* * * 왕궁 내에 타국의 첩자가 잠입했다.
국왕의 암살미수 사건이 벌어졌다.
느닷없이 떨어진 국왕의 소집령과 시종들의 목격담으로 인해 왕궁 안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시종들은 경황이 없던 탓에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소문을 더욱 키웠다.
심지어 그날 이후 왕성의 경비가 한층 삼엄해지고 출입 또한 엄격하게 통제되면서, 왕도 그랑 전체의 분위기까지 싸늘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랑의 외성 밖, 빈민가의 한구석.
창문조차 없는 암실에 숨어든 다섯 명의 복면인이 있었다.
자그마한 촛불 하나만이 흔들리고 있는 어둠 속에서, 한 복면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체 부하들을 어떻게 관리했길래 ‘설계자’들이 먼저 움직인 거지?”
“죄송합니다. 아마도 어린 왕을 얕보고 과한 충성심에 움직이지 않았을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나지막한 목소리엔 진득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에 대꾸하던 이가 한 발짝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부디 용서를…….”
그 모습을 잠시 노려보던 복면인은 이내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에게 내려온 첫 공식 명령이다. 한데 그걸 이딴 식으로 처리하다니……. 이 소식이 제도에 전해진다면 폐하께서 우리를 어찌 생각하실까!”
“…….”
“침투조의 책임을 맡은 2호는 근신하라. 이번 작전에서 빠진다.”
그 말에 고개를 숙였던 복면인이 말없이 한 걸음 더 물러났다.
그런 부하를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던 복면인은 다시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일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사고가 생겼으니 더더욱. 기존에 배당된 인원을 배로 늘려 신청하고, 그들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대기한다.”
“배로 말입니까?”
“그렇게나 많이……?”
“으음…….”
“이미 왕궁의 경계망이 강화된 후다. 다소의 희생자와 흔적을 남기더라도 임무를 완벽히 완수한다. 그것이 현장지휘관인 내 판단이다.”
그 말에 남은 복면인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 달 전의 사건은 로건에게도 경각심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전생의 자신과는 상관없었던, 그랬기에 잊고 있었던 정보들을 끄집어내 대조하고 조합해 보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시 파악해 보았다.
그 결과, 자신이 간과하고 있던 것 중 가장 큰 위협은 역시 그 귀신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타국의 왕성에 제집 드나들 듯 스며드는 은밀함. 그나마 흔적이 남은 것도 초인인 왕과 상대할 경우뿐이었다.
그 말인즉, 웬만한 마법이나 경비 체계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초강자들이라는 이야기였다.
결국, 대책은 단편적일 수밖에 없었다.
‘놈들에게 당하지 않을 정도로 내 실력을 키우고,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주변 병력을 빠르게 소집할 대책이 필요해.’
그런 생각으로 일단 스승께 상담을 청한 로건은 뜻밖의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 크흠. 겨우 몇 달 동안 경지가 안 올랐다고 지금……. 허허. 어이가……. 아, 아닙니다. 도와 드려야죠.
– 감각을 극대화하여, 종국에는 오감의 한계를 넘어서 확고한 육감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오러유저 상급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스승의 조언에 로건은 작정을 하고 자신의 감각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 몰두했다.
어차피 회귀한 이후 수년간 명상 수련으로 밤을 지새웠던 전력도 있는 터. 감각의 확장 및 접근자 색출을 목표로 잡고 밤중의 수련을 거듭했다.
덕분에 또 한 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 이게 되네…….
– 예?
– 아, 아닙니다, 폐하. 하하. 육감의 개발이라는 게 그리 쉬운가 싶어서요. 아, 왜 눈에서 땀이…….
스승의 감탄 속에서 새삼 스스로 설계한 특성 ‘업(Up)’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리고 오늘, 로건은 잠을 자던 자세 그대로 번쩍 눈을 떴다.
심장에서 맥동하는 ‘7개’의 포스코어가 만들어 낸 거대한 감각권 안에 이질적인 움직임들이 스며든 것이다.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감각권이 확연하게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이미 자신의 침소로 스며들고 있는 이질적인 움직임은 충분히 확인한 뒤였다.
로건은 겉으로 티 나지 않게 살며시 아내의 손을 잡았다.
움찔하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다행히 아내도 약속된 신호를 알아들은 듯, 낮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세를 바로 하기 시작했다.
이내 체내에 흐르는 포스의 흐름이 빨라지며 신체의 전투 준비를 돕는 것이 느껴졌다.
준비는 완벽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바로 또? 정말 제국전쟁이 앞당겨진 것인가.’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
하지만 그 답은 여전히 알 수가 없었기에, 로건은 그 스트레스를 다가오는 적들에게 풀기로 마음먹었다.
다가오는 기척에 한껏 집중하니, 소리도 없이 떨어져 나간 창문을 통해 그림자들이 스며드는 게 보였다.
번쩍.
촤아아악!
그 순간, 황금빛이 번뜩이더니 이내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흩뿌려졌다.
그와 동시에 분명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검은 복면인이 나타났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은신술이었지만, 상체가 기다랗게 베인 복면인은 그대로 털썩 쓰러져 부들부들 떨었다.
복면 속 부릅뜬 눈은 충격으로 굳어 있었다.
놈과 함께 침소로 습격한 그림자들은 어둠 속에서 더욱 숨을 죽였다. 하지만 순간 멈칫한 움직임이 이미 로건의 육감에 생생히 걸려든 뒤였다.
어느 틈에 일어선 아내가 검을 뽑아 드는 것까지 느껴지자 마음이 한결 든든해졌다.
“몇이나 되죠?”
“당장은 열, 아니 열 다섯.”
비록 무장도 하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가 질 리는 없다.
“쥐새끼들. 전부 죽여 주마.”
로건은 살벌한 미소와 함께 투기를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