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적막이 무겁게 내려앉은 밤.
휘이이잉.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 한 줄기가 새어 들어왔다.
흔하디흔한 겨울바람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미세한 움직임을 느낀 로건이 낮게 외쳤다.
“온다!”
에일렌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검게 칠한 단검 두 자루가 그녀의 머리 위쪽에 불쑥 나타났다.
에일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타당!
로건의 오러가 황금빛 선을 그리며 단검들을 튕겨 내자, 습격자들의 기척이 다시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은신술이었다.
“공격할 때는 기척이 느껴져! 감각을 최대한으로!”
최대한 침착하게 외쳤지만, 로건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포스블레이드 수준으로 보였는데…… 오러를 버텨?’
본래라면 내부가 진탕되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놈들이 여전히 은신술을 사용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놈들의 검은빛 포스블레이드가 특별한 마법이나 비전의 흔적이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었다.
거기다 더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요인도 있었다.
‘빅토르 녀석은 왜……?’
정말 귀신이 습격하기라도 한 것일까.
관례적으로 세워 두던 경비 대신, 빅토르와 호르헤 두 명의 최상급 기사에게 번갈아 경비를 맡겼다. 진짜 그 귀신들이라면 최상급 미만의 기사들은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런 소란이 일었는데도 빅토르의 반응이 이상하게 늦었다.
‘설마 벌써 당한 건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에 이를 악문 로건의 주위에서 다시금 단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쾅!
번뜩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막으려는데, 그보다 먼저 단검들을 동시에 쳐 내는 푸르스름한 검신이 보였다. 에일렌의 애검 프리구스(Frigus)였다.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다시 자세를 잡은 에일렌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강해요.”
짤막한 감상.
오러를 튕겨 낸 것이 단순히 편법만은 아닌 듯했다.
최상급에서도 정점에 이르러 초인의 경지를 넘보는 에일렌이 고작 두 놈의 공격을 쳐내고 안색이 변한 것이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놈들이 움직임도 빨라.’
분명 존재가 느껴지는데, 시각이나 청각에는 걸리는 게 없다.
마법인지 포스를 이용한 기술인지 모르겠지만, 시각을 교란하는 기술만큼은 확실히 엄청난 놈들이었다.
초인을 죽였었다는 전생의 소문이 단번에 납득이 될 만큼.
하지만.
‘내가 좀 더 힘을 쓰면 돼.’
신경을 곤두세우자 로건의 기감이 침실의 반경을 넘어 사방 30여 미터를 완벽히 커버할 정도로 늘어났다.
수면 시 모든 역량을 감각에 집중해 무의식에 컨트롤을 맡겼던 극대감각권에는 현저히 미치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스승이 경악했을 정도로 기이하게 넓은 범위의 감각권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방문 밖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빅토르의 기척이 느껴졌다.
벌써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이 난리가 났는데 이 자식이…… 아?!’
직감이 드는 순간 얇은 황금빛 선이 침실의 벽을 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방안을 넓게 감싸고 있던 투명한 벽이 푸른 빛살만을 남기고 깨어지며 창밖의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비명조차 지르지 않던 적들 속에서 단호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폐하!”
동시에 빅토르가 회색빛 포스블레이드를 번뜩이며 방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늦었다, 이놈아! 놈들이 공격하는 틈을 노려!”
그 말에 빅토르는 순간 당황하는가 싶더니, 등 뒤에 나타난 검은 단검에 길게 갑옷이 갈라지자 정신이 번쩍 든 눈빛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빅토르에게 둘, 에일렌에게 셋. 나머지는 전부 나.’
일반적으로는 초인이라도 분명 버거운 상대였지만, 적들의 움직임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로건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번쩍.
스각.
로건의 휩 오러 블레이드가 정확히 적을 찾아 파고들었다.
방향성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놈들의 은신술에 못지않은 공격이었다.
번쩍.
스각.
푸슈슉.
또다시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적, 아니 시체.
여전히 비명 한마디 토하지 않았지만, 놈들의 움직임이 급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빈틈투성이로군.’
뱀처럼 유영하는 로건의 황금빛 오러가 연이어 시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도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한순간에 기척이 흩어진다 싶더니, 사방에서 검은 단검들이 튀어나왔다.
‘윽!?’
거기에 더해, 일순간 이질적인 에너지가 로건의 몸 위로 쏟아져 그를 속박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강력한 마법.
비록 한순간이었지만, 로건의 움직임을 멈추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단검들에서 일제히 뿜어진 검은빛 포스 블레이드가 쭈욱 길어지며 로건의 몸을 파고들었다.
콰아아앙!
“허!?”
충돌 직후에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던 습격자들 사이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공격이 직격하려는 찰나, 황금빛 채찍 같은 로건의 오러블레이드가 그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 버린 것이다.
거기에 튕겨 나간 다섯 명의 암살자들이 은신술을 유지하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오러와 부딪친 포스유저들의 전형적인 증상이 이제야 나타난 것 같았다.
그리고 로건은 그런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번쩍.
푸우욱.
쩌어억.
지그재그로 움직인 황금빛 오러블레이드가 그대로 다섯 명의 목을 관통했다.
“꺼, 꺼흑.”
그중 한 명이 피분수를 쏟아내는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흡!”
보이지도 않는, 공격 직전에나 칼이 드러나는 세 명의 암살자들을 정신없이 상대하던 에일렌은 그들의 공격이 멈춤과 동시에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공간을 장악하던 흉흉한 살기가 확연하게 줄어든 것이다.
빅토르도 마찬가지였다.
“칫! 폐하! 놈들이 도망을……!”
에일렌과 빅토르로서는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지만, 로건의 느낌은 달랐다.
“아직!!”
감각권 안에 잡힌 나머지 다섯 놈이 저항을 포기한 듯 맨몸으로 자신에게 몸을 던지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그 자포자기한 몸짓과 일순 수그러든 살기만 생각하면 그저 포기하고 자살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지만, 로건은 한 달 전 놈들의 선발대(?)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었다.
촤라락.
푸우욱.
이제는 의지가 이는 순간 바로 움직이는 휩 블레이드가 황금빛 원을 그리며 포위하듯 달려드는 다섯 놈의 몸을 한 수에 꿰었다.
그리고 놈들의 시체가 벌겋게 부풀어 오르는 것보다 먼저.
“꺼져라!”
로건의 고함과 함께 시체가 창밖으로 던져졌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릉.
여러 놈이 같이 폭발한 탓인지, 허공에서 발생한 폭발의 여파만으로 왕궁의 건물이 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광경을 보며 하얗게 질린 에일렌이 떨리는 손으로 그의 옷깃을 잡았다.
“세, 세상에. 이런 미친놈들이…….”
“괜찮소. 이번엔 전부 처리했으니, 앞으로도…….”
로건 역시 딱딱하게 굳은 안색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귀신 같은……. 흠. 흠. 실례했습니다.”
서로를 다독이는 국왕 부부를 멍하니 바라보던 빅토르가 그들이 잠옷만 입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헛기침하며 돌아섰을 때였다.
‘흡!?’
등줄기가 써늘해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로건의 눈에 검은색 단검 한 자루가 허공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습격자들을 모두 물리쳤다고 완전히 안심하고 있던 순간을 노린 귀신 같은 공격.
이전의 습격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기감에도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은 괴물 같은 은신술.
거기에 다른 습격자들의 포스블레이드와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을 주는 은은한 검은빛이 에일렌의 뒤편에서 자신까지 꿰뚫을 듯 날아오고 있었다.
‘오러!’
본능적으로 애검 룩스의 시간 가속이 발동되었다.
확장된 의식과 극도로 끌어 올린 긴장 때문인지 이전보다 더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느껴지고, 위기감 속에 자연스럽게 특성이 발동되었다.
심장의 7개의 포스코어 사이에서 또 하나의 포스코어가 튀어나오며 그의 의식을 한 차례 더 고양시키고 힘을 폭증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악수였다.
비정상적으로 가속된 의식과 폭증된 힘이 아주 짧은 순간 합을 맞추지 못했고, 그 순간 의지를 따라 자연스레 뻗어 나가서 적을 요격해야 할 휩 블레이드가 잠시 주춤했다.
그의 검이 재차 다시 적을 향해 뻗어지는 그 짧은 틈이 문제였다.
이대로는 자신은 몰라도 아내는, 에일렌은 확실히 죽는다.
‘안 돼!!!!’
절망적인 예감에 로건의 인상이 일그러질 때, 에일렌 역시 부릅뜬 반려의 붉은 눈에 비친 검은 단검을 인식했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습격을 받은 직후였다.
안도하던 신경이 일순간 팽팽하게 당겨졌지만,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은 이미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까지 단번에 인식하고 말았다.
‘안 돼!’
최후를 직감하는 순간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인생 전체를, 누군가는 가장 소중한 기억들을 본다던 그 주마등 속에서 그녀는 우습게도 최근의 자존심 상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 지금 날 걱정하는 거예요? 맥라인 여군의 상징이자 최초의 여성 최상급기사인 나를? 걱정 마요, 절대 짐이 되지 않을 테니까!
남편이 바로 사과하지 않았다면, 결혼한 후 처음으로 부부 싸움을 할 뻔했다.
혹시 모를 암살자들의 습격이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의 약점이 된다는 것은 그녀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였으니까.
어려서부터 그저 평범한 귀족 레이디가 아닌 기사가 되고자 했다.
물론 자신의 재능을 인식했던 것이 가장 큰 계기이기는 했지만, 순종과 내조를 인생의 미덕으로 보는 그란디아의 여성상에 대한 반감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로건을 만나기 전까지는 끝없이 조롱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지금까지 왔다.
어쩌다 보니 왕비까지 되긴 했어도 마음가짐만은 여전했다.
그런데 그 끝이 이렇다고?
남편의 약점이 되어…… 죽는다?
– 절대 안 돼!
그런 수치스러운 죽음은 죽어도 사양이다.
그 오기가 그녀의 잠재력을 끌어올렸다.
그녀는 최상급의 끄트머리에서 끝없이 단련하며 넘보았던 벽 너머로 손을 뻗었다.
– 평소의 신념과 무술이 지향하는 바를 마음에 새기고…….
남편이 말한 특성 설계라는 개념을 아직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스스로가 원하는 것, 그리고 기사로서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단련된 육체와 정신이 그 순간 완전히 하나가 되어, 그녀의 신념과 목표를 그대로 구현했다.
꺾이지 않겠다.
굴복하지 않겠다.
소중한 이의 약점이 되지 않겠다.
끝내는…….
– 홀로 오롯이 서겠다.
그녀의 푸른 눈이 빛나는 순간.
붉은 포스가 붉은빛 오러가 되어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바꾸고, 겉으로 실체화되어 그녀를 휘감았다.
얇디얇은 붉은 오러가 수십 겹의 방어막이 되어, 마치 든든한 성처럼 방벽을 형성한 것이다.
후세에 맥라인 최초의 여성 초인의 특성이자, 최강의 방어형 특성으로 알려질 ‘불굴의 성채’.
그 최초의 발현이었다.
따아아아앙!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그녀를 습격하던 검은 오러가 튕겨 나갔다.
그리고 폭발하듯 솟구친 황금빛 오러가 그녀의 좌우로 넘어 습격자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갈아 버렸다.
콰콰콰콰콰.
“어흐흐. 깜짝이야.”
왕의 침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참상 속에서, 로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반려를 힘껏 끌어안았다.
……물론 지나치게 견고하게만 느껴지는 붉은 오러의 방벽에 곧 뻘쭘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내가 방해 안 된다고 했죠?”
반려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로건은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부가 온전히 안도하며 기쁘게 웃을 때였다.
“폐하!”
이번에도 한발 늦은 빅토르가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다, 이내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닫고 멋쩍게 웃었다.
* * * 국왕이 암습을 받았다.
한 달 전의 일과는 달리, 이번 소문은 숨길 수가 없었다.
왕의 침소가 터져 나가고, 그 자리에서 열 구가 넘는 시체가 발견되었다.
거기다 국왕이 그 압습으로 중상을 입었다는 대외 발표까지 이어졌다.
– 습격자 중에 오러유저도 있었다. 그것도 암살에 특화된.
– 우리는 이런 능력자들을 동원할 수 있는 집단을 하나밖에 알지 못한다.
믿기지 않는 발표.
맥라인 왕실에서 공표한 사고의 전말은 왕국을 넘어 주변의 모든 나라에 큰 충격을 주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맥라인에서 말한 ‘그 집단’이 어디일지는 뻔했으니까.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아무래도 서쪽에 있는 제국의 누군가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