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실패!? 실패라고!? 그게 무슨!?”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2황자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의 휘하에 있는 자로서는 절로 고개를 움츠릴 수밖에 없는 격한 모습이었지만,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오스는 굳은 표정으로 더 심각한 이야기를 꺼냈다.
“맥라인 왕실 내에서 저희 제국이 언급되었습니다. 그에 대륙 동부의 시선이 일순간 몰려들어, 황위 계승전을 위한 ‘작업’도 당분간은 중지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 내려왔습니다.”
“……빌어먹을. 어쩔 수 없…….”
“그리고 이 사태를 초래한 대가로 황자 전하의 계승전 점수가 10점 더 차감되었습니다.”
“……뭐!?”
한탄하던 2황자의 눈이 다시 한번 뒤집혔다.
“애초에 약속한 10%라면 잘해야 5점 내외여야 할 텐데?!”
“귀신의 수장 중 하나가 맥라인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뭐?”
“황제 폐하께서도 예상치 못한 최악의 결과에 진노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항의하셔서는 곤란합니다, 전하.”
“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던 2황자가 탄식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이내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다시 고개를 벌떡 들었다.
“10점 ‘더’!? 그럼 원래 약속한 점수에 추가로……. 그럼 지금 형님과 점수 차이는?!”
“그게…….”
레오스의 표정이 흐려지는 것을 보며 최악의 결과를 직감한 바로스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1점 차로 점수가 뒤집혔습니다.”
“이런 젠장!!!!”
와장창!
군주는 불안감을 내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신조를 지니고 있던 그였지만, 지금은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차려진 조반 식탁을 그대로 뒤집어엎은 2황자가 벌떡 일어서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만회를 해야 해. 만회를. 그 빌어먹을 로건 맥라인을 어찌한다…….”
불안감도 전혀 감추지 못하는 와중에 또 무언가를 하려고?
레오스는 애써 표정을 감추고 자신의 운명을 쥔 주인을 바라보았다.
* * * 맥라인 왕실의 발표에 온 세상이 놀랐지만, 제국은 아무런 반응 없이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에 제국의 음모라는 소문은 곧 사그라들었고, 이내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가 번져 나갔다.
“에이. 제국에서 왜?”
“그래. 제국에서 뭐 하러 소국의 왕을 노려.”
“그 왕 예전에 폭군으로 유명했잖아. 왕조도 갈아엎었고. 원한 있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어?”
맥라인 왕국에서조차, 왕이 당한 습격이 과거 그란디아 왕국의 망령이 벌인 일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역시, 일이 쉽게 풀리진 않는군.”
몸져누웠다고 소문난 로건은 멀쩡히 집무실에 앉아 데미안의 보고를 들으며 피식 웃고 있었다.
어차피 이 정도는 예상했던바. 그럼에도 암습 사건으로 그런 소문을 퍼트린 것은 에일렌의 각성과 로건 자신의 실력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가장 큰 목적은 따로 있었다.
“대중의 착각이야 어찌 되었건, 소왕국 연합의 군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정말 그들과의 연합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럼. 우리가 무너지면 어차피 그 연합도 바람 앞에 등불이야. 경각심을 가진다면 응할 수밖에 없을 거야.”
5개의 군단, 그리고 수십만의 자경단만으로는 아직 불안했다.
그랬기에 로건은 왕국의 동쪽에 있는 소왕국 연합을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다. 7개의 소왕국으로 이루어진 연합은 그 하나하나의 힘은 부족하더라도 총체적인 전력은 과거의 그란디아 왕국에 필적할 만했으니까.
하지만 데미안을 비롯한 측근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것도 제국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증거를 잡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희야 폐하를 믿는다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래도…….”
데미안이 염려하는 것을 로건 역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아직 시간은 있어. 이번 일이 그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거고. 왕국의 준비는 해 오던 대로 하면서 시간을 들여 설득해 봐야지.”
“그러시다면야…….”
그렇게 데미안이 한발 물러서는데 집무실 밖에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트리아 왕국에서 통신이 왔습니다. 그 국왕이 직접……!”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몸은 괜찮으십니까?]갈색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인상이 좋은 사람.
트리아 왕국의 국왕, 라몬 1세에 대한 로건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그 선해 보이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첫 만남부터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조금 미안할 정도였다.
“콜록.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오러에 당한 상처는 좀 오래갈 수밖에 없지요.”
일부러 왕실의 통신구를 좀 흐리게 만들었지만, 혹시라도 눈치챌까 싶어 안색이 창백해 보이도록 얼굴에 분칠까지 한 마당이었다.
다행히 트리아 국왕은 로건의 건강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 그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연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로건이 놀랄 만한 소리를 내뱉었다.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역시 제국의 음모에 당해 메말라 가는 처지라, 어쩌면 서로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바라마지 않던 말이 그 대상의 입에서 바로 튀어나오다니.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예?”
[그게 국혼 때 저희 사절 라곤 경에게 들으셨겠지만…….]“아……. 하하, 예. 물론 듣긴 들었습니다만…….”
그런 사람 기억에 없는데…….
살짝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국혼에서 만난 사신을 전부 기억에 담아 둘 만큼 당시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제국의 음모라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무슨 뜻인지요?”
하지만 제국의 음모라는 말이 나왔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기에 로건의 반문에는 진실성이 담겨 있었다.
[아. 하하, 제가 마음이 급했군요. 라곤 경이 사절로 갔을 때는 확실히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글쎄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타히티 공국과 그 주변 세 왕국에 제국의 손길이 뻗쳐 있으며, 그들의 손길이 닿은 자들이 왕국 연합의 자멸을 유도하고 있다고.]뭐?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심각해진 로건이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차분해진 안색으로 되물었다.
다행히 라몬 1세는 자신의 심중에 담은 말을 쏟아 내기에 바빴다.
지난해 겨울, 맥라인 왕국의 동쪽에 있는 7개의 소왕국 연합은 정치적으로 거대한 변동을 겪었다.
트리아. 리버티. 테로난. 로메인, 칼론. 로멘. 타히티.
고대의 일곱 영웅의 후손들이 세운 일곱 왕국은 대대로 언급된 순서대로 서열을 매겨 왔다.
고대 영웅들의 서열대로, 그리고 현재 국가가 가진 땅의 크기와 인구수대로 .
가장 큰 트리아 왕국은 현 맥라인 왕국의 1/3 이상의 크기였지만, 가장 작은 타히티 공국은 맥라인의 대영지보다도 작았다.
하지만 연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언제나 의결권은 동일하게 가졌다. 다만 의장을 하나 선출해 일곱 왕국의 의견을 외부에 대변하고는 했다.
물론 대다수의 경우 그 역할은 트리아 국왕의 것이었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해도 리버티나 테로난 밑의 국왕이 의장의 역할을 맡은 적은 없었다.
적어도 지난겨울까지는.
하지만 지난겨울, 타히티 공국의 변란과 함께 정권을 잡은 레온 타히티 공왕은 갑작스레 의장 선출에 관한 재논의를 요구해 왔다. 그에 로메인, 칼론, 로멘 왕국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동조했고, 연합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그들에게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네 왕국은 기존의 강성하던 세 왕국의 국익에 반하는 연합 정책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력을 논하자면 여전히 저희 세 왕국이 더 크긴 합니다만, 힘의 우위로 찍어 누르기에는 저희 연합의 사정이 좀…….]트리아 국왕이 말끝을 흐렸지만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더 동쪽으로 나가면 바다뿐인 소왕국들이 연합을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그란디아 왕국을 견제함이 아니었는가.
심지어 그란디아 왕국이 강성했던 고대, 그 지배에 불만을 품고 독립을 했던 영웅들이 지금 그들의 조상들이었다. 힘으로 연합을 깨려 한다면, 그 반동은 가장 먼저 연합을 깨고자 하는 왕국으로 향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트리아 국왕의 통신은 조금 묘한 모순이 있었다.
“연합의 전통을 깨기 싫다면서 우리 맥라인에 도움을 요청하시겠다는 말입니까?”
[하하. 맥라인 왕국은 그란디아 왕국이 아니지 않습니까. 엄연히 왕조가 달라졌는데 무엇이 문제겠습니까?]국가 간의 관계 그 본질을 호도하는 교언.
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라몬 1세의 표정에는 정말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 보였다.
‘이 자도 능구렁이로군.’
로건은 내심 그렇게 경계심을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네 왕국의 변화가 제국의 음모라는 말씀에는 어떤 근거가 있으신 건지요?”
[아. 그게…….]상대가 망설이는 듯 말끝을 흐리자, 로건은 그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졌다.
“그걸 알아야 저희도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거 부끄럽습니다. 다 말씀드리겠다 다짐하고 연락을 드렸는데도 막상 말을 하자니 부끄러움이 앞서는군요. 오해는 말고 들어주십시오.]“오해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편히 말씀하시지요.”
[사실 저희 왕국에서는 연합의 우호 관계 증진을 위해 각 왕실에 혼사를 추진해 왔습니다. 물론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왕국들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각 왕실은 사실 복잡한 혈연으로 얽혀 있지요.]라몬 1세의 말이 길어지려는 조짐을 보이자, 로건의 표정이 무의식적으로 찡그려졌다. 상대도 그것을 느꼈는지, 이야기가 황급히 본론으로 넘어갔다.
[물론 그중에서도 제가 유독 딸을 많이 낳은 덕분에 각 왕실에 2명씩 시집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딸들이 문안 인사 겸해서 각 왕실의 소식을 좀 전해 오지요.]그 말에 로건은 순간 헛웃음을 삼켜야 했다.
딸을 최소 12명을 낳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딸들을 연합 왕국에 죄다, 그것도 2명씩이나 시집보냈다는 것은 애초에 저 왕 역시 연합의 실권을 쥐고 흔들려 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틀어지니까 도움을 청한다라.’
점점 더 저 사람 좋은 인상이 못 미더워지고 있었다.
그에 대한 신뢰도 점차 하락하려는 순간, 이어진 라몬 1세의 말은 꽤 놀라웠다.
[그러다 보니 듣게 된 소식이 있사온데, 이 일을 주도한 타히티공국에서 제국의 귀족을 보았다는 얘기가 연달아 들려왔습니다. 그것도 왕 가까이에서요.]궁궐에서 곱게 자라다 이웃 나라로 시집간 공주들이 어찌 제국의 귀족을 알아보았을까.
‘시집 보낸 딸들뿐만 아니라 첩자도 잔뜩 뿌렸다는 말이군.’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인식하면서도 로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데 그럴 리가?’
제국이 정말 소왕국 연합에 작업을 하려 했다면, 최소한 알려지지 않은 자들을 썼을 것이다.
지난 왕실의 클레오처럼.
“제국이 그리 허술하게 움직이겠습니까? 저로서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만?”
로건이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며 추궁하자, 라몬 1세가 다시금 얼굴이 벌게지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이어진 말에 로건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저…… 사실 제가 딸을 시집보낸 곳 중엔 제국의 귀족가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국의 고위 귀족인데…….]와.
이 대단한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