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마도사를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완벽한 답을 아는 이는 없다. 기사가 한계를 깨고 오러유저가 될 때 특이한 특성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반면, 마도사로 각성할 땐 거의 100%의 확률로 새로운 속성이나 특성을 발현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나(Mana)가 마력(Magic force)으로 진화하며 기존의 마법 또한 자연히 제곱 배로 강력해지기까지 하니, 마도사가 전투에서 몇 가지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지 확실히 아는 자는 그 자신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가장 정답에 가까운 대응책이 있다면.
‘속전속결!’
무슨 수를 쓰기도 전에 쓰러트리는 것.
그렉을 향해 돌진하던 빅토르의 몸이 갑자기 훅 꺼지듯 사라지더니 마도사의 전면에 나타났다.
“헛!?”
귀신 그림자를 전력을 다해 운용하여 만들어 낸 움직임은 최상급기사인 그렉조차 순간 당황할 정도로 놀라운 속도를 자랑했다.
빅토르는 단숨에 마도사를 베어 넘길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카아아아앙!
쩌저적.
어느새 생겨난 묘한 회색빛의 장막을 강타한 검은 약간의 균열을 만들어 냈을 뿐 마도사를 베지 못했다.
그 순간, 빅토르의 몸이 사라지더니 이내 마도사의 뒤쪽에서 나타났다. 정확히는 마도사와 함께 있던 마법사들의 뒤쪽에.
“뒤……!”
그나마 빅토르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두 강자, 그렉과 나트만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기사들이 한 박자 늦게 빅토르에게 돌진했다.
마도사 또한 느리게나마 뒤를 돌아봤지만, 불행히도 다른 마법사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들의 최후가 되었다.
스각.
작은 절삭음과 함께 회색빛 포스블레이드가 기다란 반원을 그렸다.
“……!”
그대로 허리가 잘린 마법사 다섯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 우르르 쓰러졌다.
“이런 젠장!”
“물러서!”
그렉과 기사들이 달려드는 모습 위로 마도사의 고함이 어지럽게 섞일 때.
마도사의 검은 후드 아래서 씩 올라간 입꼬리를 본 빅토르가 나머지 마법사들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다시 유령처럼 사라졌다.
“어딜!”
빅토르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나트만이 번개처럼 출입문을 향해 움직였다. 흐릿하게나마 보인 빅토르의 움직임에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상대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면 대응하지 못할 것도 없다.
상대 역시 어디까지나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최상급 포스유저.
‘경지는 같다!’
오기로 쏟아 낸 비기, 유성우.
스아아아아.
파바박.
빗발치듯 쏟아진 붉은색 포스의 응집체가 놈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스각.
갑자기 엄습해 오는 섬찟한 느낌에 나트만이 몸을 피한 순간, 회색 포스블레이드가 그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칫.
짧게 혀를 찬 빅토르가 다시 검을 들어 올리려는데, 그의 일검에 쓰러졌던 마법사들의 시체가 별다른 징조도 없이 터져 나갔다.
미처 놀랄 새도 없이, 사방으로 뿜어져야 할 핏줄기들이 빅토르를 향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흡!?”
콰콰콰쾅!
회색빛 포스블레이드와 수백 줄기 핏방울의 충돌이 강렬한 폭음을 만들어 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빅토르가 주르륵 밀려나는 틈을 노려 나트만이 그의 뒤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료인 그렉 역시 빅토르의 전면으로 쏘아지는 순간.
“호러블 테러(Horrible terror).”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마도사의 손가락이 빅토르를 가리켰다.
다른 이들에겐 그저 마도사의 손끝에 희미한 회색빛이 어리는 것만이 보였으나, 빅토르가 갑자기 비틀거렸다.
“지금!”
그를 향해 달려들던 그렉과 나트만의 눈이 빛나는 순간.
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빅토르의 검이 다시금 빛살처럼 움직였다.
콰콰쾅!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앞뒤에서 합공하려던 그렉과 나트만이 동시에 튕겨 나갔다.
그것을 본 마도사가 푸르스름한 안광을 번뜩이자 검은 후드 아래 가려져 있던 창백한 노인의 얼굴이 얼핏 드러났다.
“재밌는 놈이군! 퇴로만 막아라.”
그 나지막한 목소리에 재차 달려들려던 그렉과 나트만이 멈춰 섰다. 그리고 그것이 나트만의 목숨을 살렸다.
스슥.
한 발 앞으로 내디디려던 발을 멈칫한 순간 회색빛 포스블레이드의 잔상이 그의 목젖 앞을 한 끗 차이로 스쳐 지나간 것이다.
“쯧.”
충격이 작지 않았던 듯, 입가에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던 빅토르가 아쉬운 감정을 담아 혀를 찼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맛본 나트만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게 나와 같은 경지라고? 초인이 아니라?’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나트만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상급자의 지시대로 방어 태세를 굳힌 채 길목만 막을 생각이었다.
그렉 역시 비슷한 생각인 듯 무너진 벽 앞에서 톱날검, 소드브레이커를 곧추세웠다.
강자들의 공세 속에서 나설 틈을 찾지 못하고 있던 18명의 기사는 벽을 따라 죽 늘어서서는 빅토르를 둥그렇게 포위했다. 설령 빅토르가 다른 쪽 벽을 뚫고 지나가려 하더라도 둘 이상은 상대해야 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빅토르가 멈춰서자, 마도사의 뒤쪽에 모여 있던 살아남은 마법사 7명이 일제히 전신에서 음산한 검은빛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
마도사 게로힌이 창백한 안색만큼이나 새하얀 손을 들어 부하들의 마법을 가로막고는 돌진하려던 빅토르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에 조금 전 정신을 잃을 뻔했던 괴상한 마법을 떠올린 빅토르가 전신의 포스를 끌어 올리는데, 피식 웃음을 흘린 마도사가 검은 로브의 후드를 젖히고 얼굴을 완전히 드러냈다.
“이야기 좀 하지. 이거 길을 좀 잘못 든 인재 같은데.”
기이할 정도로 푸르스름한 안광이 아니었다면 수려한 인상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노인, 게로힌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빅토르로선 들어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놈의 마법에 아찔한 타격을 받은 정신과 무리를 한 내부를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빅토르는 포스를 운용해 내상을 치유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
단순히 시간을 끌려는 질문이었을 뿐인데, 적이 정말로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자네처럼 간혹 있는 특이한 색을 가진 포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나?”
포스가 붉은색이 아닌 자.
일반적으로는 포스유저 수십 명 중에 하나 정도였고, 그 이유는 아직도 증명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냥 일부의 개성이 아니었나?”
“클클. 그래, 대다수는 그리 알고 있지. 귀한 기사들을 잡아다가 해체까지 해 가면서 연구해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창백한 얼굴로 기괴한 웃음을 짓는 마도사의 말은 상당히 꺼림칙했다.
마치 자신은 해 보았다는 듯한 어조가 아닌가.
빅토르의 미간이 절로 좁혀지는데, 마도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 소수의 특수한 포스를 다루는 이들이 가진 비밀이 궁금한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정말로 솔깃한 마음 반, 시간을 끌고자 하는 마음 반.
빅토르는 자신의 최선을 다한 연기가 변조한 목소리로도 잘 전해지길 바라며 내부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의식의 대다수를 할애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포스유저가 일반인에 비해 회복이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아예 포스를 직접적으로 치료에 이용하는 것은 얘기가 좀 달랐다.
물론 자신이 가진 생명의 힘이기에 스스로의 상처를 빠르게 치료하는 것은 분명 가능했다. 특히나 외부, 피부의 상처를 지혈하는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 감각만 있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는 내부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포스를 극도로 정밀하게 다룰 수 있는 재능과 자신의 내부를 눈으로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한 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갖춘 극소수의 인재 중 한 명인 빅토르는 멈춰서 말을 섞는 와중에도 흔들린 내장을 느리게나마 치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붉은색이 아닌 다른 색의 포스는 또 다른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자가 포스까지 발현하게 될 때 나타나는 변화지.”
“……뭐?”
“뭐, 대다수는 이제는 이 대륙에서 사라진 정령과의 친화력을 나타내는 쓸모없는 것이지만, 자네처럼 회색의 포스는 달라. 아주 귀한 재능이지.”
이어진 게로힌의 말이 빅토르의 집중을 흔들었다.
“……무슨 뜻이지?”
“‘우리’쪽에서 대성할 수 있는 재목이라는 말이지. 최상급기사가 ‘우리’의 마법까지 익힐 수 있다는 소리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포스유저가 마법을 쓴다?
마법기사는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것 아니었던가?
빅토르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 게로힌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마법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한다면 자네는 한계를 넘지 않아도 초인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야. 솔깃하지 않은가?”
손끝에 회색빛 마력을 피워 올리며 웃는 마도사.
그 마력의 느낌은 빅토르 자신이 보기에도 제 포스블레이드와 꽤 닮아 있었다.
“그 기회를 주겠다. 우리에게 와라. 그리고 충성을 맹세해라. 우리는 네게 세상을 놀라게 할 힘을 줄 수 있다.”
“흐음…….”
“크크크. 고민하는 척을 하는가. 이미 내상은 얼추 가라앉혔을 텐데?”
“!?”
그 말을 듣는 순간, 빅토르의 몸이 다시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우우웅.
그그그극.
어느샌가 빅토르의 팔다리를 잡고 늘어진 회색빛 사슬.
은밀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사슬 4쌍이 앞뒤 좌우의 벽에서 튀어나와 그의 사지를 결박하고 있었다.
“네겐 안타깝게도 내 마법은 이미 완성되었지.”
“흡!”
쩌저적.
그 비웃을 본 빅토르가 전신에 힘을 주는 순간 처소의 벽 전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소의 시간을 준다면 충분히 뜯어낼 수 있을 듯했지만 적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클클. 어디 한번 발악해 보거라. 마인드 브레이커(Mind Breaker).”
스아아.
마도사의 손끝에서 번진 회색빛 안개가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그의 평생 가장 끔찍했던 기억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 도, 도망가!
– 꼭, 꼭! 살아남거라!
– 아들! 동생을, 리아를 부탁한다!
– 아아악!
이윽고 언제나 그리웠던 이들의 모습이 뇌리를 잠식했다.
적의 수작이라는 사실조차 뇌리에서 흐릿해질 만큼 생생한 기억이었다.
“내, 내가…….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어느새 빅토르는 자신이 지금보다 한참 어리고 작았던, 그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꼈다.
사랑하는 이들의 피가 묻은 손.
작디작은, 그리고 힘이 없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던 당시의 절망감이 그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 너만 아니었어도…….
– 네가 짐만 되지 않았어도…….
– 우리는 살 수 있었어!
최악의 기억이 더욱 끔찍한 형태로 변질되어, 마치 현실처럼 덮쳐 오며 그를 절망에 빠트렸다.
“으으으. 내, 내가. 내 잘못…….”
지독한 어둠 속. 환시와 환청이 주는 끝없는 죄책감 속에서 몸부림치는데, 시커먼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희미한 빛살이 내려왔다.
나를 구원해 줄 빛.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달은 어린 빅토르가 상처 입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고통스러운 기억은 잊고 다시 태어나라. 그것이 곧 구원이니…….
인자한 얼굴과 목소리.
그 말을 따라 빛을 따라가면 모든 것이 편해지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 나의 이름은 게로힌 아인헤드. 너의 구세주다. 내게 고통을 맡기고, 기쁨 속에서 나를 위해 살아라.
이어진 목소리에 어린 빅토르가 멈칫했다.
“아, 안 돼요…….”
따스한 빛을 외면하고 다시 어둠을 바라보는 빅토르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 ……고통은 잊어라. 내가 너를 구원할 것이니 고통을 잊고 나를 따르라.
따스했던 목소리가 재차 그를 유혹했지만, 어린 빅토르는 다시 빛을 바라보지 않았다.
“나, 난 리아를, 동생을 위해 사, 살아야 해요. 그, 그게 약속…….”
어둠을 응시하며 일그러진 얼굴로 두려움에 떨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어요.”
어린 빅토르는 빛을 향해 다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자신을 대신해 죽은 부모와의 약속. 그 영혼을 짓누르는 짐을 오롯이 인식하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 잊어라!
“그럴 수 없어요.”
– 잊어라!
“안돼요!”
– 잊어라!
“싫어요!”
지속해서 자신을 꾀는 빛을 외면하면서 어린 빅토르는 오히려 점점 성장해 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몸집을 불린 빅토르가 다시금 현재의 몸을 되찾은 순간, 그의 눈동자에 이성의 빛이 돌아왔다.
“……싫다고!”
와장창!
우렁찬 고함과 함께 온통 새카맣게 주위를 뒤덮었던 어둠이 깨어져 나갔다.
“흐. 이걸 버틴다 이거지? 더욱 탐이 나는군.”
충격에 비틀거리면서도 게로힌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찢어 죽여 주마, 마도사.”
쿨럭.
창백한 안색으로 피를 한 움큼 토해 낸 빅토르의 손에서 회색빛 섬광이 솟구치며 그의 사지를 묶은 회색빛 사슬을 끊어 냈다.
무채색의 빛 때문에 그 상서로움이 대다수 가려졌지만, 마도사인 게로힌은 그 차이를 한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포스블레이드와는 질적으로 다른 상위의 힘.
“너……!?”
게로힌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쿨럭.
“제대로 해보자고.”
분노한 빅토르의 전신에서 살벌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비틀.
전신을 옭아매고 있던 사슬을 끊어 낸 여파인지, 빅토르의 몸은 그 의지와는 달리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회색빛 섬광 역시 빛을 잃어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흐……, 그럼 그렇지. 내 마법을 그리 쉽게 벗어나지는 못해!”
마도사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자리 잡았다.
“잡아라! 월척이구나. 새로운 오러유저라니!”
비죽이 웃은 게로힌이 다시 소리를 지르자 그렉과 나트만을 비롯한 기사들이 일제히 빅토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빅토르가 서 있기조차 힘든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던 순간.
콰아아아앙!
파바바박.
폭음과 함께 출입문의 반대쪽 벽이 터져 나가고, 무너진 벽 너머에서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악!”
“끄아악!”
“화, 화살!?”
달려들던 기사들이 화살에 몸이 꿰뚫려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고 이내 ‘주황색’ 상서로운 빛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