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주황빛이 방 안에 가득 퍼지는 순간, 빅토르를 향해 달려들던 기사들이 일제히 목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그나마 그렉과 나트만은 최상급기사답게 눈앞에 날아든 주황빛 검을 쳐 냈다.
“흡!”
“윽!?”
하지만 그 순간 포스보다 명백히 상위의 힘이 그들의 내부를 뒤흔들었고, 충격에 비틀거리는 그들은 곧바로 눈앞에 나타난 붉은 머리 붉은 눈의 청년을 보면서도 대응하지 못했다.
“아……!?”
스각.
이내 그들은 가벼운 소음과 함께 세상이 갑자기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자신들의 두 다리가 어느새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는 것을.
“아악!”
“이, 이런 미친!”
“빅토르! 형 왔다!”
“……너 어떻게?”
그 장난기 어린 어조에 빅토르조차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피식 웃음 지으며 돌아서는 로니안.
하지만 돌아서자마자 웃음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불같은 분노가 채웠다.
“입 열 놈들은 확보했으니 죄다 죽여 주마!”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오고 나서야 한 박자 늦게 게로힌을 위시한 마법사들의 마법이 쏟아졌다.
“스피릿 쏜(Spirit Thorn)!!”
마법사들이 동시에 고함을 내지르자 어디선가 회색빛 가시넝쿨이 튀어나와 그들과 게로힌의 사방을 감싸 안았다.
티디딩.
뒤편에서 연달아 쏘아 낸 부르델의 화살이 가시의 장벽에 막혀 튕겨 나갔다.
부르델이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는데 장벽 뒤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커럽 익스플로전(Corrupt Explosion).”
그 순간, 회색빛 안개와 함께 죽은 기사들의 시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마법들에 로니안의 표정이 구겨지는데, 그 모습에서 익숙한 상황을 떠올린 빅토르가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터진다! 피해!”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정작 당사자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자, 찰떡같이 알아들은 로니안이 빅토르의 전면을 막아섰다.
이내 그가 들어 올린 검에 주황빛 오러가 맺히는가 싶더니.
꽈아아아아앙!
왕성을 통째로 날려 버릴 듯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기사들의 시체 역시 함께 폭발했으나 그 충격은 주황빛 벽에 가로막혀 로니안과 빅토르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우르르르릉.
폭발의 여파가 남긴 충격에 처소가 무너지고, 사방에서 먼지가 잔뜩 피어오르는 와중에도 주황빛 벽에 둘러싸여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빅토르는 놀란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너, 너 이게 대체? 아니, 그보다 어떻게 지금 여기……?”
“이런. 놈들이 튄다! 설명은 나중에!”
자욱한 먼지 너머로 적들의 낌새를 느낀 로니안이 그리 외치자 빅토르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가라.”
“뭐?”
흙먼지 속으로 돌진하려던 로니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오랜 친구를 바라보았다.
“제국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어. 가능하면 한 놈쯤은 사로잡아.”
그러나 빅토르는 좀전의 폭발을 떠올리며 오히려 그를 종용할 뿐이었다.
“난 임무를 마저 완수해야 하니까.”
“그 상태로 지금 무슨…….”
마도사를 상대하느라 큰 부상을 입은 친구가 임무를 속행하겠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절로 미간이 좁혀졌지만, 이내 직전과는 전혀 다르게 완전히 회복된 빅토르의 기세를 느낀 로니안은 눈을 부릅떴다.
“너……!?”
“이제야 익숙해졌다.”
싱긋 웃은 빅토르는 언제 비틀거렸냐는 듯 손 위로 회색빛 오러를 번뜩여 보였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힘은 마치 조금도 다친 적이 없었다는 듯한 생생하기만 했다.
그것을 보며 무언가를 느낀 듯 피식 웃음 지은 로니안은 이내 친구의 어깨를 두드렸다.
“조심해라.”
“너도.”
수년 만에 만난 두 친구는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쏘아지며 자취를 감췄다.
* * * 우르르릉.
“이, 이게 뭐야!”
“폐하의 침실 방향이다!”
“기, 기사님들을!”
공왕성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갑작스레 왕의 처소에서 들려온 폭음과 무너질 듯 흔들리는 왕성.
하지만 그 소란을 한 중년 남자가 진정시켰다.
“모두 당황하지 마라! 이미 대비는 되어 있다!”
한밤중의 갑작스러운 난리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관복을 챙겨 입고 냉막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자.
“아, 예!”
“예, 재상님.”
“전부 진정하고 각자 할 일이나 해!”
중년인의 정체를 아는 모든 이가 우왕좌왕하던 것을 멈추고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하. 이 정도면 확실히 제압되었겠죠?”
“당연히. 이 정도 폭발이라면 분명 게로힌 님의 마법이다. 준비된 마도사를 한낱 암살자가 어찌할 수는 없지.”
옆에서 굽실거리는 부하를 보며 중년인, 도나티 펠로가 싸늘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리가 미소 지은 얼굴 그대로 미끄러지듯 굴러떨어졌다.
푸슈슉.
갑자기 솟구치는 핏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던 주변의 인물들이 이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재, 재상님이!”
“기사단을 불러!”
이전보다 더욱 시끄러워진 시종들.
그 소란스러운 틈을 타, 얼어붙은 관리 하나의 뒤로 싸늘한 예기가 따라붙었다.
“공왕은 어디에 숨었지? 안내해.”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해진 관리는 창백한 얼굴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떨리는 걸음이 등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끝으로 인해 점점 빨라졌다.
금방이라도 목이 달아날 것만 같은 공포에 시달리던 그는 간혹 마주친 이들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으아악!”
그러나 눈치를 채는 순간 도망치는 이들이 대다수요.
“이놈!”
간혹 간이 부은 병사나 기사들이 덤벼들기도 했지만.
스각.
단칼에 목이 분리되어 허공을 날았다.
결국 관리는 반항을 아예 포기한 채 더욱 빠른 걸음으로 빅토르를 공왕에게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기사가 적어. 아는 게 있나?”
“저, 저는 잘…….”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발걸음은 공왕성에서 가장 넓은 방으로 이어졌다.
공왕이 공무를 집행하는, 대전에 있는 홀로.
피식.
“공왕이 이 안에 있다고?”
“저, 정말입니다! 맹세코…….”
어처구니 없다는 헛웃음을 흘리는 빅토르를 보며 관리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니, 확인은 했다.”
퍼억.
“그냥 어이가 없을 뿐이지.”
순식간에 관리를 기절시킨 빅토르는 대전의 문을 바라보며 안색을 굳혔다.
대전 안쪽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기세는 결코 한두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티팩트가 멀쩡했다면 숨어들어서 공왕의 목만 따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그그긍.
자신감 어린 미소를 지은 빅토르가 힘을 끌어 올리자, 대전의 문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열렸다.
활짝 열린 문으로 당황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얼핏 보기에도 백 명이 넘는 기사와 십수 명의 마법사들의 시선이.
“누구냐!?”
대전을 가득 채운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자, 빅토르가 비웃음을 흘렸다.
“참 많이도 모았군. 기사가 다 어디 있나 했더니…….”
아마 이 밤에 바로 기사들을 불러모은 것은 아닐 테니, 그렉이 말한 대로 자신들의 흔적을 찾자마자 대기를 시켰으리라.
그 생각을 증명하듯 백 수십 명의 기사들 대부분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 까닭인지, 아니면 빅토르가 혼자이기 때문인지 정작 그를 향해 다가오는 기사들은 몇 없었다.
“그 검에 피…….”
대전의 위쪽에서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초췌한 안색의 장년인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나티 펠로의 피다. 다음은 네 차례다, 공왕.”
빅토르가 한심한 마음과 자신감을 담아 굳이 대답을 해 줬더니, 대전에 모여 있던 이들의 반응이 극적으로 달라졌다.
“재상 각하를……!?”
“저놈이!?”
“죽여!!”
기사들 수십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마법사들 역시 일제히 무어라 웅얼거리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죽이지 말고 제압해!”
그 와중에 누군가 지른 고함을 들은 빅토르가 피식 웃었다.
안 죽인다고?
“거 고맙군.”
뽑아 든 빅토르의 검에서 회색빛 오러블레이드가 솟구쳤다.
몸 안에서 확연하게 느껴지는, 새로이 발현된 특성이 빅토르의 자신감을 하늘 끝까지 끌어올렸다.
– 동생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빅토르의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큰 목표였다.
부모님의 죽음이 가져다준 책임감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루어야 할 강박이 된 것이다.
너무 어려서부터 생긴 삶의 목적.
부모 없이 세상에 내던져져 자신보다 더 어린 동생을 지켜야 했던 꼬마에게 큰 고민은 필요 없었다.
그 작은 목적도 제대로 이룰 수 있으리란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려서는 동생을 물리적으로 지키기 위해 살았고, 커서는 그 동생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장소를 지키기 위해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더 이상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 나도 알아서 잘할 수 있어!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은 안다.
그리고 동생이 가장 어린 나이에 마도사가 될지도 모르는 천재라는 것도 안다.
더 이상 자신의 보호가 필요 없다는 것도.
그래서 그는 시선을 돌렸다.
자신과 동생의 인생을 구원해 준 주군에 대한 감사한 마음.
그 마음을 갚아야 겠다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의 주군은 그의 도움 따윈 필요 없는 초인이었다.
– 네가? 하하. 마음은 고맙구나.
보통 사람은 기꺼워하며 웃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빅토르에게는 오히려 고민이 되었다.
–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동생에 대한 애정도.
주군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모두가 거짓 없는 진실된 마음이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빅토르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살아온 그는 자신을 위해 사는 법을 몰랐으니까.
– 이젠 오빠 인생을 살아. 더 이상 내 눈치 보지 말고!
– 네 발전만 생각하거라. 그게 결국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
네 인생을 살아라.
그가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의 말은 결국 같았다. 그래서 빅토르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원하는 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검술을 수련하며 육체를 극한으로 몰아넣고, 회복을 위한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구했다.
어느 순간, 그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내밀한 갈망을 마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 살아라.
부모님이 최후의 순간 그에게 바랐던 것은 동생의 안위가 아니라 그의 생존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비참하고 처참한 생을 이어 가더라도 반드시 살고자 했던 게 자신이라는 것을.
‘반드시 살아남고 말겠다.’
그것이 바로 생물의 원초적인 욕망과 부모님의 마지막 희망이 더해져 만들어 낸 자신의 갈망이었다.
이타심 위에 두껍게 쌓여 있던 죄책감을 걷어 내자 드러난 솔직한 마음이었다.
처음 자각했을 때는 그것이 부끄러웠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 스스로의 욕망을 직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으면 된다.
– 그것이 너만의 특성을 발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 믿는다.
그는 스승이자 주군의 말을 떠올리며 계속 단련했다.
하지만 단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 ‘살고자 하는 갈망’을 끌어내기 위해선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만한 위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위기를 마주한 지금, 빅토르는 드디어 성공했다.
“어디 한번 해보자.”
빅토르는 몸 안에 끝없이 샘솟는 활력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생명의 힘, 포스가 진화한 것이 오러.
그리고 비로소 발현된 그의 특성은 ‘끝없는 생명력.’
우우웅.
그의 검에서 이제 막 오러를 각성한 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강력한 회색빛 오러블레이드가 솟구쳤다.
하지만.
“최상급기사!!”
“그래도 혼자다!”
“잡아!”
기사들에게는 불행히도, 회색빛 오러블레이드는 오러 특유의 상서로운 빛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다.
그 탓에 그들은 빅토르의 수준 자체를 착각해 버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더 쉽게 끝나겠는데?’
자신의 포스가 지닌 특성이 이런 식으로까지 도움이 될 줄은 그 역시 전혀 예상치 못했다.
– 너는 우리의 마법을 익히기에 적합한 인재…….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마도사의 말.
문득 시체를 폭발시키던 기괴한 마법이 잠깐 떠올랐다.
그리고 왕성에서 보았던 귀신들의 특징 또한.
시체와 생체, 타의와 자의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수법들이 이상하게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정말로 그놈들은 제국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눈앞에 다가오는 칼들을 보며 빅토르는 다시 눈을 빛냈다.
그리고 고함을 질렀다.
“제국을 뜻을 거스른 죄, 그 벌을 받아라!”
“……뭐?”
상석의 공왕이 내뱉은 황당한 목소리는 빅토르의 고함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삼십여 분이 지나고, 빅토르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시체로 산을 쌓고 공왕의 앞에 섰다.
푸슉.
“큭.”
옆구리에 박힌 검을 가볍게 뽑아내자, 급속도로 아무는 상처.
불덩어리를 쳐 낸 왼손의 화상도 빠르게 치유되는 것을 보며 빅토르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갑옷이 없어도 되겠는데.”
물론 농담이었다.
아무리 특성발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회복하는 데엔 포스가 소모되긴 했으니까.
막을 수 있다면 막는 것이 좋다.
물론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전혀 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괴, 괴물…….”
“공왕…….”
마법으로 한 변장도 아니고 본인 맞군.
그렇게 확신이 서는 순간 빅토르의 검이 가볍게 움직였다.
스각.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을 거둔 빅토르의 앞엔 머리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날, 타히티 공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