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또! 또 실패!?”
검은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는 2황자를 보며 레오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맥라인에서의 일이 어긋나면서부터, 아니 정확히는 1황자와 점수가 역전된 후부터 언제나 냉정하게만 보였던 바로스 반 아레스는 슬슬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위장된 그릇이었던가. 대체 왜 이제 와서 어릴 때보다 못한 모습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레오스는 이번처럼 무리한 작전도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는 계승전의 기록관. 바로스 황자의 운명이 곧 그의 운명과 직결되니까.
“자중하라는 폐하의 명령을 어긴 것도 모자라 ‘그놈들’과 계약까지 했다. 그런데 실패!?”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당장이라도 레오스를 후려칠 것 같았지만, 다행히 바로스는 그 최후의 선을 넘지 않았다.
최후까지 같은 배를 탄 운명.
지금의 2황자에게 레오스는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것은 레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속이 쓰린 느낌이 들더라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그자’들 말로는 공국의 암살자로 초인들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둘 이상이라면서 계약에 어긋난 일이니 위약금도 내지 못하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와장창창.
이미 황족의 품위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호위기사와 시종들을 전부 내보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레오스는 2황자의 발작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바로스가 좀 잠잠해진 듯하자 다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아직 믿을 것은 있습니다. 공국의 패는 잃었지만, 소왕국 연합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 시발점은 분명 저희가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검은 눈동자 속에서 붉은 기운이 번뜩이는 것을 보며 레오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여기서 헛소리를 하면 저 광기가 자신을 향해 폭발할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는 마른 입술을 적시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폐하의 명에 따라 황위 계승전은 소강상태입니다. 1황자 전하도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왕국 연합의 혼란은 계승전의 점수로 반영이 될 것이니, 다시 역전이 가능합니다.”
가장 긍정적인 희망을 말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의 말에는 타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맥라인과 그 연합을 충돌시키기 위해 벌일 일이었다.”
으르렁거리는 음성은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했다.
“맥라인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위입니다. 황자님, 보다 높은 곳을 보시지요.”
그제야 검은 눈에 스며든 광기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곧 힘이 빠진 듯, 황자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못 볼 꼴을 보여서 미안하군.”
하아아.
깊은 한숨과 함께 나온 말에 레오스는 간신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2황자가 침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로건 맥라인, 그놈만 떠올리면 자꾸 냉정을 잃는단 말이지.”
“몇 번 실패를 맛보셔서 분하신 거겠지요.”
“……아니. 그게 아니야.”
“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 내가 모르는 이유가. 무언가가 내 정신을 뒤흔들고 있어.”
잇따른 실패로 광기에 빠진 자의 헛소리라 여기기에는 지극히 냉정한 모습이었다.
기록관으로서의 자신이 차기 황제감으로 점찍었던 바로 그 모습.
그에 레오스는 다시금 기대감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 말씀은……?”
“그놈들을 불러와. 황궁으로. 사람과 정신을 다루는 수법에선 역시 그자들이 최고 아니겠나.”
“한 번의 계약도 도박과 같았습니다. 혹시라도 그게 폐하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아니. 이대로는 안 돼. 더 안 좋아질 거야.”
“위험한 시도입니다. 어쩌면 그자들이 전하께 술수를 부린 걸 수도 있습니다.”
“우리 황족은 온갖 마법 장치 덕에 육신보다 정신의 보호가 더 철저하다. 그것을 잊었느냐?”
그게 다 그자들 때문에 생긴 전통 아닙니까.
레오스가 목까지 치미는 말을 꿀꺽 삼켰지만, 그 속내를 짐작한 듯 황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아니야. 내게 이상이 생긴 건 분명 로건 맥라인 그자를 만난 직후부터야. 자꾸 이상한 꿈을 꾸고 계속 놈에 대한 분노가 솟구쳐. 이건 확실히 원인을 파악하고 넘어가야 해.”
근거도, 이유도 불확실하기 그지없었지만, 바로스의 목소리에는 이상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망설이던 레오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연락을 넣어 보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황궁으로 오라고 해.”
“그들이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황궁은 그들에게는 사지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그게 불가능하다면 내가 그들을 만나러 가야겠지.”
“그건 더 위험…….”
반대하려던 레오스는 자신을 무섭게 쏘아보는 검붉은 눈동자를 본 순간 얼어붙어 버렸다.
좀 전에 광기가 번득이던 눈빛보다, 저렇게 냉정하고 차분한 눈빛을 보일 때의 2황자가 더욱 무서웠다.
한편으론 그랬기에 그의 기록관이 되기를 지원한 것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결국 레오스는 다시 한번 손대지 말아야 할 곳에 손을 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시간.
황궁의 중심부에서는 그런 그들의 인생을 결정짓는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바로스 그 아이가 뱀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거대한 옥좌를 가득 채운 장년인의 검미가 슬쩍 찌푸려졌다.
제국을 지배하는 절대자가 그 불쾌한 감정을 표시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었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단어, ‘뱀들’을 논할 때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
–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황제 홀로 존재하는 듯하던 공간에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그 무례에도 황제는 익숙한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어찌 놈들과 연이 닿았던가?”
– 거기까지는 저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 미친놈들이 여전히 황실에 끈을 두고 있었다는 거군. 불쾌해. 불쾌한 일이야…….”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는 황제의 모습에선 말 그대로 짙은 불쾌감이 묻어났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별다른 명이 나오지 않자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 어찌하시겠습니까?
감히 황제를 재촉하는 불경을 저질렀음에도 황제는 여전히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바로스 그놈. 싹수가 있는 줄 알았는데 한심하군.”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황제의 입에서 살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스를 미끼로 던진다. 놈들과의 연을 맺게 놔두고, 놈들의 본거지를 파악하라.”
– 그럼 황위 계승전은…….
“바로스는 탈락이다. 하지만 공표는 미룬다. 기한은 그 검은 뱀 놈들을 제국에서 소멸시킬 때까지.”
– 명을 따르겠습니다.
“검혼과 삭풍을 붙여 주겠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 뱀들의 뿌리를 뽑아라.”
현 대륙제일검과 제국의 마도사 중 가장 정점에 있는 이의 이명이 언급되는 순간.
– 예.
그 짧은 대답을 끝으로 목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 * * 로건이 약4국의 하나이자, 가장 북방에 있는 로멘 왕국과의 국경에 도착한 것은 왕을 만난 지 불과 3일 만이었다.
하지만 왕의 명령서와 함께 통신까지 미리 넣었음에도 막상 도착한 최전방의 기지에서 그를 대하는 태도는 그리 곱지 않았다.
“산속에서 수련만 하다 나온 초인이시라…….”
연신 로건의 위아래를 훑어보는 카릴 자모드 백작의 태도는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직접 선봉에 서시겠다고요? 아무리 초인이라도 기사들이 그 뒤를 받쳐 주지 않으면 힘들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니 제 지시에 충실히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로건은 카릴의 두 눈에 담긴 욕심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어차피 이길 전쟁. 공은 자기 것이다, 이거지.’
탄탄한 몸과 단단해 보이는 각진 얼굴엔 투지가 가득했다. 다만 그 투지가 아군이 분명한 자에게도 향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마도 왕의 명령서와 통신이 아니었다면 만나 주지도 않았을 것이리라.
그 심리를 짐작하며 로건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봉을 맡겨 주기만 한다면 상관없다.”
대뜸 튀어나온 하대에 카릴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하지만 당장 작위를 받지 않았을 뿐, 오러유저라면 리버티에선 공작의 작위도 어렵지 않은 인재.
게다가 그 군터 리버티가 직접 실력을 확인했다는 전갈까지 받은 터라, 카릴은 감히 로건을 시험해 볼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바로 표정을 관리한 카릴은 억지웃음을 보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가서 쉬시오. 전쟁이 시작되면 부르겠소.”
뒤를 받쳐 줄 기사들과의 호흡을 말해 놓고 인사조차 권하지 않는다.
그 속셈이 너무도 뻔히 보여 속으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여차하면 내가 알아서 튀어나와야겠군.’
괜히 기 싸움을 할 필요는 없었다.
로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 전쟁을 최대한 빨리, 최대한 피해가 적게 끝내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전쟁의 시작부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국지전 책임자와의 괜한 기 싸움은 스스로의 가치를 낮출 뿐이다.
– 전쟁은 트리아와 리버티, 테로난에서 각기, 그러나 동시에 시작될 것이오.
동쪽에 자리한 테로난이 까다로운 해상 왕국 칼론을 압박하고.
연합의 중심부에 있는 최강국 트리아가 남쪽의 로메로와 타히티를 향해 진군한다.
그 사이 리버티는 로메로와 쌍둥이 조상을 둔 로멘 왕국에 쳐들어가 그들을 정복한 뒤 곧바로 남으로 진군한다.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전선을 넓히고, 4국 전체를 단숨에 집어삼키겠다는 간단하고도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최대한 빨리 로멘을 점령하고 남으로 진군한다. 그리고…….’
로건은 로니안과의 통신을 끝낸 후 바로 연결했던 라몬 1세, 트리아 국왕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를 움직인 제3의 세력을.
– 약속은 지켰소이다.
– 아……. 하하. 역시 맥라인입니다. 믿고 있었습니다.
– 전쟁은 언제 시작하실 겁니까?
– 지, 지금 치열하게 준비 중입니다. 하하.
통신에서부터 느껴지던 어색한 공기.
아마도 그 뒤에 있는 자들은 더욱 당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트리아의 전선에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로건의 얼굴이 절로 굳어졌다.
만약 정말 트리아에서 일이 터진다면.
‘그때는 리버티와 테로난의 선봉장들이 트리아 왕국의 왕실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을 정리해서라도 전쟁을 끝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에일렌이 실력을 보인다면 리버티와 테로난을 위시한 연합의 왕국들은 앞으로도 맥라인의 말을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로건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카릴 자히드 백작이 마련해 준 처소에서 명상을 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판은 벌어졌고, 이제 제국이 어찌 나올지 궁금하군.’
사실 이쯤 되면 징글징글할 지경이었다.
세상을 뒤엎을 전력을 가지고 왜 이렇게 계속 음모를 꾸며 대는 것인지.
하지만 그 목적은 이제 슬슬 예상이 갔다.
‘놈들이 바라는 것은 아마도 혼란.’
맥라인이 그랬듯, 제국 역시 주변의 나라들을 약화시키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침략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과정일까.
그렇다면 자신은 그 혼란을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종식시키고.
‘왕국 연합까지 아군으로 삼는다.’
그것을 위한 준비가 로건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불꽃의 눈과 데미안의 머릿속에서 지금도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3일 정도 이어졌을 때.
리버티 왕국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로건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진격하라!”
2천이 넘는 기사, 5만이 넘는 병사들.
리버티의 총력을 집결시킨 군대가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알려진 로멘 왕국의 병력은 이 절반 이하.
진군하는 병사부터 기사들, 그리고 지휘관들까지 모두가 승리에 대한 예감으로 잔뜩 들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는 듯했다.
국경을 넘어선 지 3일 만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하는 첫 번째 성을 손쉽게 함락시킨 것이다.
승리에 기쁨에 취해 기분이 잔뜩 고조된 카릴 자모드는 로건을 보며 씩 웃었다.
“굳이 초인이 나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냥 뒤에서 지켜 보시지요.”
그로부터 3일 뒤 두 번째 성을, 또 3일 뒤 세 번째 성을 연달아 함락시킨 리버티 왕국군은 어느새 로멘 왕국의 수도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자연히 그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적들이 저항을 포기했다!”
“진격하라!”
소수의 지휘관과 로건만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구심을 품고 있을 때.
전장이 변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