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리버티의 국경에서부터 3개의 성을 연달아 점령하며 왕성을 향해 진격한 리버티 군대의 단점은 가늘고 길게 늘어진 보급로에 있었다.
카릴 자모드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점령한 성마다 병력의 일부를 남겨 두어 보급로를 관리하도록 했다.
그 결과 로멘의 왕성을 눈앞에 둔 거리에서 리버티 군의 총 병력은 기사 1,400여 명과 병사 4만여 명 수준으로, 맥라인의 1개 군단보다도 수가 적어진 상태였다.
물론 그 정도 병력만으로도 로멘의 군대를 압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배치였지만.
왕성이 저 멀리 보이는 그때.
카릴 자모드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게 대체……. 오, 신이시여…….”
그럴 만한 일이었다.
왕성 안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로멘의 병력은 이미 평원에서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카릴이 오히려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로멘의 양옆에서 나란히 펄럭이는 두 개의 깃발이 문제였다.
로메로와 타히티 공국.
연합의 약4국 중 3국의 연합군이 그들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전력은 현재 리버티 총 전력의 1.5배를 가뿐히 능가하는 대군이었다.
– 침략자를 징벌하라!
적진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함께 적들이 진격을 시작하자 리버티의 진영은 패닉에 빠졌다.
“왜, 왜 저렇게 많아.”
“우리가 이긴다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그란디아에 대항하기 위해 세워진 연합이었다.
그란디아의 몰락과 함께 자연히 수백 년간 전쟁이 없었던 왕국의 군대는 훈련도 잘 되어 있지 않았고, 돌발 상황에 대한 내성도 없었다.
“각하! 적들이 다가옵니다!”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젠장!”
지휘관들마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트리아, 그놈들이 늦장을 부려서……!”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한 카릴 자모드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당장 전령을 파견해! 통신도 연결하고! 트리아 왕국이 왜 출전하지 않았는지 따지라고 해!”
추론은 간단했다.
바다를 무기로 테로난과 대치 중일 칼론을 제외한 나머지 연합국이 트리아 왕국을 상대하지 않고 리버티에 전력을 집중한 것이다.
‘우리에게 전부 달려들다니…… 설마 트리아 놈들이 이 상황에 또 수작을 부리는 건가?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로건으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지금 트리아의 사정을 알 수 없는 그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카릴 백작. 기사단을 내게 맡겨라.”
“지금 외부인이 나설……!”
“닥쳐라! 지금 통신 하나로 상황이 해결되나! 정신 못 차려!”
본능적으로 로건을 배제하려 했던 카릴 자모드가 그 호통에 움찔했다.
단순히 그가 대가 약해서만은 아니었다.
오러 유저의 기세가 은밀하게 그의 심령을 파고든 것이다.
예상치 못한 적의 대군에 공황에 빠진 장수는 갑작스러운 초인의 기세에 기개를 잃고 확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전하의 명령을 기억하라, 백작! 내가 선봉이다! 기사단을 정렬시켜라. 내가 직접 선두에 서겠다!”
“예!? 예! 아, 알겠습니다!”
카릴은 사납게 일그러진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도 로건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정신 차리고 전열 창 들어!”
리버티의 기사들은 갑자기 선두로 말을 몰고 튀어나온 생소한 갈색 머리 사내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바로 카릴 자모드의 외침이 이어지자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왕국의 새로운 초인 가일…… 슬레이어 님이시다! 명을 따라라!”
가짜 신분도 모자라 난데없이 더해진 가짜 성에 기운차게 앞으로 튀어나온 로건의 몸이 살짝 휘청였다.
‘슬레이어가 뭐냐, 슬레이어가!’
성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명에 헛웃음이 났지만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무리 오러유저가 대륙 어디에서도 귀족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한들, 당장 성이 없는 평민이라 하면 반발할 기사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게 미리 소개해 줬으면 좀 좋아?’
그 기지에 어울리지 않는 카릴의 좁은 속을 탓하면서도, 로건은 힘차게 검을 치켜들었다.
지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사기를 높여야 할 때였다.
로건의 검에서 은빛 오러블레이드가 길게 솟구치는 순간.
“우와아아!”
기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깃발 3개만 꺾으면 전쟁이 끝난다! 나를 따르라!”
전장의 모두가 은빛 섬광에 휩싸인 채 앞으로 질주하는 로건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으아아아아!”
신화 속 군신과도 같은 그의 모습에 사기가 충천한 리버티의 기사단이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돌진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두 진영.
선두에 선 기사들은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서로를 느끼며 점점 기세를 끌어 올렸다.
“겁먹지 마라! 그냥 허세다! 적진에 오러유저는 존재하지 않는다!”
포스가 실린 외침이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억누르며 전장에 퍼져 나갔다.
그 소리를 들은 로건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다.
‘군터 리버티에 대한 정보도 수집했다는 건데.’
“수도 우리가 배는 많다! 돌진해!”
눈에 보이는 로건의 기세를 부정하고, 반 배 많은 수를 배로 포장하는 적 수장.
비록 자신에 대해서는 헛짚었을지언정,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 단순한 거짓말에도 적의 사기가 단숨에 치솟은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임기응변일 뿐이었다.
‘이렇듯 전통적인 방식의 기사단 돌진이라니.’
석궁으로 쏘고, 리베라티오로 터트린 다음에 초토화된 진영을 밟아 버리는 용도로만 기사단을 써먹던 한 젊은 왕에게는 이 상황 자체가 쓴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연합을 접수하면 연사 석궁부터 무장을 시켜야겠어.’
한가하게 이런 생각이나 떠올렸을 정도로 긴장감이 들지 않는 전투였다.
그의 눈에 비친 그 어떤 기사도 그의 일검을 받아 낼 수준이 못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만큼 확실하게 밟아 주마!”
애검 룩스도 아닌 평범한 장검에서 4m가 넘는 오러블레이드가 뻗어 나왔다.
“어림없다! 속임수를 밝혀내 주마!”
정보에 대한 과신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오러를 몰라본 것인지 그를 향해 겁 없이 돌진해 온 적 대장의 포스블레이드가 허무하게 갈라졌다.
꽈아아아아앙!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은빛 오러블레이드에 적중한 적장의 몸이 그대로 폭탄처럼 터져 나갔다.
조각난 그의 육신이 피 보라가 되어 그 뒤를 따르던 기사들을 덮쳤다.
단순히 베고 가르는 것을 넘어서서 오러에 속성까지 부여해 부린 재주. 그 재주가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는 이는 이 전장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여 주마!”
은빛의 오러블레이드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반경 4m 안의 모든 것이 잘려 나갔다.
포스로 강화된 기사의 몸뚱어리도, 갑옷도 소용없었다.
은빛 서광에 휩싸인 말은 전장의 모든 시선을 집중시키며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적진을 일직선으로 돌파했다.
적의 초인에 대해 대비하지 않은, 오히려 무시했던 대가.
약3국의 연합군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으아아악!”
“괴, 괴물이다!”
“피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요란한 빛을 번뜩이며, 지나가는 모든 곳에 피 보라를 일으키는 물체.
그 물체가 다가오는 것을 본 적진의 후방에서부터 병사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뭐해! 적은 하나다! 집중해서 죽여!”
무성한 깃발에 둘러싸인 로멘 왕국의 지휘관, 발타 그로우가 연신 소리를 질렀다.
‘오러유저라니. 군터는 분명히 왕성에 있다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 갔다.
그러나 아무리 초인이라도 지치기 마련.
몸을 둘러싼 저 은빛이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은 여느 사람의 몸뚱이뿐이다. 놈이 힘을 소모할 때까지 몰아치면 쓰러트릴 수 있다. 그것이 다수가 초인을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으으으!”
“도, 도망쳐!”
“저걸 어떻게!”
‘소모품’이 되어야 할 병사들이 그 역할을 거부했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전면에 섰던 기사단이 저 은빛 괴물의 손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모두가 보았다.
병사들로선 자기 자신보다 훨씬 강한 기사들을 사뿐히 짓밟는 괴물에게 덤빌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유난히도 반짝이는 화려한 은빛이 마치 저승으로 초청하는 사신의 초대장처럼 보일 뿐.
“나를 막는 자, 모두 죽는다!!”
게다가 이상하리만치 쩌렁쩌렁한 고함이 귓속을 파고들자 절로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것은 지휘관을 호위하는 역할로 뽑힌 정예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 병사들을 지나친 은빛 괴물은 순식간에 호위기사들의 목을 베어 버리고는 그대로 지휘관에게 돌진했다..
스걱.
“로멘 왕국의 깃발을 꺾었다!”
단칼에 지휘관의 목을 베고 깃발을 꺾어 버린 괴물은 주저앉아 오줌을 지린 병사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다른 깃발을 향해 돌진했다.
“다음! 로메인!”
로멘 왕국과 쌍둥이 조상을 둔 이웃 나라 로메인.
그 깃발은 그 형제의 나라와 정확히 대치되는 반달의 문양이었다.
로건이 그 깃발을 가리키며 외치자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리버티의 기사들이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우아아!”
“우리는 승리한다!”
“가일 님을 따르라!”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리버티의 정예들이라 할 수 있었다.
어설픈 이들은 대다수가 전장의 중심부에 발이 묶였고, 실력이 있는 자들만 로건을 따라 적의 대군을 헤집으며 따라붙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앞에서, 로건은 포스의 총량을 가늠하며 연신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 와중에 어처구니없는 깨달음도 얻었다.
‘괜히 포스를 낭비하는가 했는데, 이게 오히려 효율이 좋다?’
미친놈처럼 말에게까지 포스를 씌워 반짝이게 만들었지만, 솔직히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했다.
보통의 기사였다면 그 즉시 표적이 되어 순식간에 죽기 딱 좋은 자살행위였으니까.
이길 자신이 있던 로건으로선 그저 눈에 띄는 전과와 퍼포먼스를 위해 선택한 일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적들의 공포를 극대화시킨 것 같았다.
적진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계속 써먹을 만하겠어. 돌아가서도.’
이런 상황이면 오러의 색을 바꾸느라 제한된 운신의 폭과 실력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두 돌진하라!”
연달아 휘둘러지는 은색의 오러블레이드.
그가 가는 곳을 따라 일직선으로 만들어지는 혈로에 피가 점점 더 많이 흐를수록 전장은 더욱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은빛의 사신이 전장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본진을 엉망으로 만들고.
3국 연합군의 지휘관 중 둘이 전투가 시작된 지 채 3시간도 되지 않아 목이 따이고.
나머지 하나는 투구를 벗어 던지고 깃발을 버린 채 사라져 버렸다.
이 시대의 장수로선 죽음보다 못한 도피를 선택한 것이다.
자연히 그 순간부터 무너진 연합군은 이내 몰아닥친 리버티 군을 막아 낼 여력이 없었다.
“모두 죽여!”
“다 죽여라!”
“어딜 감히!”
리버티의 병사들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 겁먹었던 것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무참히 창과 검을 휘둘렀다.
사기가 떨어져 버린 연합군은 맹렬한 공격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항복하는 이는 건들지 마라!”
아군에게 승기를 가져다 준 은빛의 사신이 그 전장의 광기를 가라앉혔다.
“무기를 버린 이는 포로다! 명예로운 리버티의 전사는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평생 들어 본 적도 없는 이상한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저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은빛의 주인은 바로 승리의 상징이고, 그들을 구원할 신의 사자였으니까.
“가일 슬레이어 님의 명을 따라라!”
“우리가 승리했다!”
“자비를 보여라!”
신의 사자를 따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사들까지 그리 소리높여 복창하자 도망치지 못하고 전장에 주저앉은, 다치고 쓰러진 적까지 참살하던 군대의 광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적군의 반수 이상이 도망치기는 했지만 분명히 압도적인 승리.
이 전과가 누구 덕분인지는 전장의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리버티 만세!”
“가일 슬레이어 만세!”
“은빛의 사신 만세!”
하지만 그 칭송의 대상인 로건은 도망치는 적들을 지켜보며 이후의 전황을 그려 보기에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