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98)
298화 ‘윽?!’
전, 현생을 통틀어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지독한 불쾌감이 로건의 전신을 엄습했다.
순식간에 체내로 파고들어 신체를 장악하려고 하는 회색빛 기운에 당황한 것도 잠시.
로건이 그 기운에 저항하기 위해 포스를 끌어 올리는 순간, 온몸을 뒤덮었던 불쾌한 느낌이 봄날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하?”
긴장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쉽게 사라져 버린 기운.
로건은 당황한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습격한 기운의 근원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적들의 중심.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한눈에도 정예로 보이는 기사들의 엄중한 호위를 받고 있었다.
로브 아래로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놈의 일그러진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목표는 확실해졌다.
히이이잉!
“죽여 주마!!”
말과 전신에서 번뜩이는 은빛.
다시금 전장의 시선을 집중시킨 로건이 홀로 적진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막아!”
“놈은 혼자다!”
“죽여!!”
돌진하는 은빛의 기마를 보며 전장의 곳곳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별다른 대항마가 없는 대군이 오러유저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인간의 파도가 로건을 향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준비된 마도사라면 몰라도 보통의 오러유저라면 사람을 베다 지쳐 쓰러질 수준.
하지만.
“전부 꺼져라!”
쩌렁쩌렁한 고함과 함께 찬란하게 빛나는 은빛 빛줄기가 높이 치솟았다. 70m 가까이 솟구친 빛줄기가 이내 거대한 거인의 검으로 화해 가로로 휘둘러졌다.
쩌어어억.
공간이 갈라지는 듯한 착시 현상과 함께 로건 전방의 병력이 기사, 병사 가릴 것 없이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전장의 일각이 그야말로 초토화되어 버린 것이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 죽은 자들을 대신해, 뒤에서 지켜보던 적군들이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아, 악마!”
“괴물이다!”
‘지금!’
로건은 그 순간 이를 악물며 패닉에 빠진 적군들 사이로 돌진했다.
우웅.
심장의 포스코어가 일시에 삼 분의 일 이상 사라져 버린 힘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맹렬히 진동하고 있었다.
오러가 아니라 포스를 이용한 대지 가르기였지만, 힘을 억지로 제한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꽤 무리한 일격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단순히 적을 쓰러트리는 효율만 따져 보자면 오히려 굉장히 비효율적인, 그야말로 에너지 낭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홀로 수만의 대군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적군의 사기는 끌어 내리고, 아군의 사기는 올려 줄 일종의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그리고 로건의 그 계략은 훌륭히 먹혀들었다.
“막아! 막으란 말이다!”
“대, 대체 어떻게…….”
“저런 괴물을…….”
지휘부의 고함에도 패닉에 빠진 적군들은 로건의 질주를 가로막지 못했고, 그 광경을 본 리버티 군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은빛 사신!”
“가일 슬레이어!”
“은빛 사신이 우리와 함께한다!”
전장에 수작을 부리던 마법사가 그리 많지는 않았는지, 로건이 곳곳에서 칼을 휘두르고 나자 이전과 같은 단체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내 전열을 재정비한 리버티군은 로건의 뒤를 따라붙기 시작했다.
“저 괴물을 처리해 준다고 하지 않았소!?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요!”
연합군의 지휘관, 로메로 왕국의 칼툰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검은 로브의 마도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전투의 초반 무너지는 적 전열을 보며 환호성을 지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검은 로브의 마도사가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뒤를 돌아본 순간, 다급한 마음에 고함을 질러 대던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전장을 확인한 검은 로브의 입에서 으스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쓸모없는 것들…….”
주변의 호위기사들이 절로 움츠러드는데, 정작 다가오는 로건을 응시하는 마도사, 게로힌의 안광은 꽤 흔들리고 있었다.
‘소울 브레이커(Soul Breakers)는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갔어. 그런데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울 브레이커는 그 하위 마법인 마인드 브레이커와는 다르게, 정신의 ‘세뇌’가 아닌 ‘파괴’를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었다. 심지어 애초에 초인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렇게 쉽게 뿌리친다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증폭된 마도사의 마법을 저리 쉽게 뿌리친다면, 애초에 마도사가 오러유저와 같이 초인이라 불릴 이유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마법은 아직 현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으니 미리 방비를 한 것도 아닐 터였다. 아니, 설령 방비를 했다 해도 너무 쉽게 극복해 낸 듯했다.
탑의 전설에나 나오는 그 ‘숙적’이 떠오를 정도로.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강력하긴 하지만 포스의 색부터 달라.’
만약 은빛이 아닌 황금빛 포스를 보였다면 정신 마법인 소울 브레이커가 아닌 다른 수를 썼을 터였다.
온갖 상념에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게로힌은 이내 다시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끌어 올렸다.
2황자와의 계약이 연장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렇다면 타히티 공국에서와는 다르게 실패에 대한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 어둠 속에서 침묵해 온 탑이 다시 세상에 나서려는 이때.
탑은 이번 의뢰를 하는 김에 그 새로운 정착지를 동부의 소왕국 연합으로 결정했다.
자신이 아무리 탑의 장로 중 하나라고 해도 잇따른 실패는 용서받지 못할 터였다.
– ‘신들이 떠난 시대’. 그 예언의 조짐이 확인되었다.
탑의 수장이자 자신의 스승이 꺼낸 말을 떠올리며 게로힌은 이를 악물었다. 놈을 보니 타히티 공국에서 놓친 대어가 또 떠오른 까닭이었다.
“죽여 주마!”
정신 마법만이 자신의 특기가 아니다.
음산한 목소리가 으르렁거리는 맹수의 울음을 토해 내자 회색 마력이 주인의 의지에 따라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
로건은 회색 마력이 움직이는 순간을 확실히 보았다.
하지만 사람의 정신만을 공격하던 이전의 수법들과는 달랐다.
푸슈슈슉.
갑자기 땅속에서 회색빛 가시넝쿨들이 튀어나왔다.
달려가는 기마를 통째로 옭아매는 가시넝쿨들은 오러를 둘러 웬만한 창검의 공격은 그냥 튕겨 낼 수 있는 말의 질주를 완벽하게 막아 냈다.
우드드득.
히이이이잉!
억지로 가시넝쿨을 뚫어 내는 순간 피투성이가 된 말.
거기다 높이 솟아 시야를 차단해 버린 회색의 장벽을 뚫기가 무섭게 거대한 검은 뱀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달려들며 다시 시야를 가렸다.
“칫!”
콰아앙!
검은 뱀의 머리가 로건이 있던 공간을 박살 냈을 때.
그는 이미 말의 안장을 박차고 허공을 뛰어넘어 마도사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타아!”
마도사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이제는 그 검은 로브 아래 창백한 얼굴이 초감각에 뚜렷이 잡힐 정도였다.
하지만 그 길지 않은 공간은 어느새 기사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눈이 이상하리만치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얼굴엔 검붉은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온 기사들이.
“캬아악!”
“크아아!”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괴성과 함께 기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평기사에 불과하던 이가 검에 넘실거리는 포스를 담아 바위도 부숴 버릴 검격을 날리고, 중급기사들은 어설프게나마 유형화된 포스를 뿜어내며 번개같이 무기를 휘둘렀다.
‘미친……!’
한눈에 봐도 아군을 제물로 삼은 것이 분명한 마법.
악마의 소행 같다는 빅토르의 보고가 다시금 뇌리에서 재생되었다.
동시에 아쉬움이 들었다.
‘풍신의 부츠만 있었어도.’
원래의 장비만 있었어도 이까짓 공격쯤은 아예 무시하고 허공을 뛰어넘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로건은 귀신 그림자를 최대한 발휘해 거리를 단축하며 기사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다행이라면 정신이 나간 버린 듯한 기사들의 공격은 위맹할지언정 정교하지 않았고.
“크륵.”
“크으으.”
그랬기에 로건은 최소한의 기사만 베어 내며, ‘조금의’ 시간만 지체한 채 마도사의 앞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조금의 시간이 적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꺼져라!!”
강렬한 분노와 적개심이 담긴 카랑카랑한 고함과 함께, 공간을 통째로 분쇄하는 듯한 강력한 충격파가 로건이 있는 곳을 강타했다.
꽈아아아앙!
우르르르릉.
게로힌의 전면이 단숨에 초토화되며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어딜 감히…….”
대마법을 연달아 구사하느라 안색이 더욱 창백해진 게로힌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등 뒤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살기를 느꼈다.
하지만.
스각.
“끄…….”
미처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전신이 일자로 관통된 듯한 짜릿한 감각이 그를 덮쳤다.
털썩.
두 쪽으로 갈라져 쓰러지는 몸.
한쪽만 남은 푸른 동공에는 ‘황금빛’ 오러를 수습하는 목표의 모습만이 아련하게 비치고 있었다.
하악. 하악.
로건은 가쁜 호흡을 다스리며 질린 눈으로 시체가 된 마도사를 바라보았다.
‘위험했다.’
마지막 순간, 포스의 변환을 위해 억누르고 있던 오러를 끌어 올리고 짧게나마 특성까지 동원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쓰러진 것은 그가 되었을 테니까.
– 어떤 일이 생겨도 내 몸 하나 건사할 수는 있다.
그렇게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남의 전쟁을 도우러 왔던 곳에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될 줄이야.
‘대체 이놈들 정체가 뭐야?’
듣도 보도 못한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는 괴상한 마도사라니. 전생에서는 소문으로조차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놈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적 마도사를 쓰러트렸다!!”
호흡을 수습한 로건은 다시 허공에 ‘은빛’ 오러를 펼쳐 보이며 크게 외쳤다.
그것은 곧 두 번째 회전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 * *
“우와아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평원에서의 회전이 끝난 이후, 전장은 리버티군의 만세 삼창으로 가득 메워졌다.
사실상 이번의 주 정벌 대상이었던 4국 중 3국의 주전력을 리버티 혼자 궤멸시킨 것이다. 리버티가 단순히 연합의 장이 되는 수준이 아니라 정복자가 되는 것도 고려해 볼 정도의 대승이었다.
그러나 요란한 환호성의 대부분은 나라보다는 전장의 판도를 뒤집은 초인, 가일 슬레이어를 향한 것이었다.
“리버티 만세!”
“은빛 사신 만세!”
“가일 슬레이어 만세!”
병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씨익 웃은 카릴 자모드가 로건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가일 님. 이제 3국을 정리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전부 가일 님 덕분입니다.”
처음에 퉁명스럽고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던 이는 이제 없었다. 그저 손바닥이 닳아도 상관없다는 듯 연신 손을 비벼 대는 아부꾼만이 있을 뿐.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귀족이기 이전에 한 명의 기사로서, 어찌 이런 대단한 기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내면에는 다른 계산도 있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리버티가 연합의 패권 국가가 된다면 눈앞의 가일은 최소 군터 대공 이상의 지위를 가지게 될 것이니, 미리부터 잘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그런 속내가 전혀 티 나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지금 그를 지켜보는 이들 중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정작 그 아부의 당사자가 된 사람은 작고 수수한 반지 하나를 들어 올리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백작.”
“예, 예. 각하!”
“내 손에 죽은 마도사, 혹시 그자에 관해 들은 것이 있소?”
“아…… 저, 그, 그게…….”
“그럼 이 이상한 문양에 대해서는?”
로건이 반지에 포스를 주입하자 허공에 푸른빛 원 안에 똬리를 튼 검은 뱀의 형상이 떠올랐다.
로건으로선 직접 보는 것만 두 번째인 문양.
하지만 이제는 이전처럼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각하. 최대한 빨리 조사해 보겠습니다.”
역시나.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마도사를 소왕국 연합의 전선에 투입할 정도면 분명히 엄청난 집단일 거야. 제국은 대체 그 내부에 얼마만 한 저력을 품고 있는가.’
검은 뱀의 문양을 쓰는 이들이 제국과 적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로건으로서는 시름이 깊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 때문에 리버티의 지휘관들은 대승 이후에도 기쁜 내색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칼룬 왕국과 테로난의 왕국의 전쟁이…….”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소식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