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칼론 왕국은 소왕국 연합 중 유일한 해상 왕국으로, 해군의 무력만큼은 4약이 아닌 3강과도 비교할 만하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육상으로의 침략 전쟁이 아닌 해상에서의 방어전만 펼친다면, 3강의 왕국 중 하나는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다는 것이 연합의 중론.
실제로도 전쟁이 시작된 직후, 칼론은 테로난의 해상 병력을 몇 차례나 격파함으로써 그 자부심을 증명했다. 비록 그 전력의 3할이 해일의 마도사 구스타프 클레멘의 활약 덕분이라 평가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테로난의 해전에 불쑥 나타난 한 오러유저로 인해 칼론의 해군은 서서히 그들의 해역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 시대의 해상전은 배의 충각을 이용해 적선과 충돌하여 침몰시키거나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활이나 마법으로 원거리 접전을 벌이다 배를 붙여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해군 전력의 역량을 평가할 때는 배의 진퇴를 부드럽게 조절할 수 있는 능숙한 조타수와 흔들리는 뱃전에서의 백병전에 강한 병사들이 그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칼론의 해군은 달랐다.
그들의 주력은 물의 마법사들로, 해류를 바꿔 함대 전체의 진로를 얽히게 하던가 바닷물을 이용해 말도 안 되는 물리력을 발휘하여 멀리서 배를 뒤집어 버리는 등 아예 접근 자체를 불허하는 전술을 주로 활용했다.
그야말로 바다 위의 절대자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해일의 마도사, 구스타프 클레멘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해일의 마도사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전의 균형을 깨는 또 다른 초인이 있었다.
“또 온다!”
“막아!”
“어떻게 막으라고! 젠장!”
칼론의 병사들이 바다 위를 ‘뛰어’오는 갈색 머리 사내를 보며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그 고함을 따라 화살이 쏟아지고, 일부 배에서는 물의 화살과 얼음의 세례 같은 마법이 쏟아졌지만.
퍼버버벙.
타다닥.
바다 위를 달리는 초인의 주변에 일렁이는 진한 붉은색 오러는 적군 병력의 그 어떤 공격도 손쉽게 튕겨 내고 있었다.
“저게 말이 돼?”
“빌어먹을!”
“대체 뭐야 저건!?”
전신을 감싼 상서로운 붉은빛을 보면 오러유저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오러유저가 물 위를 걷고, 그 위에서 쏟아지는 공격까지 아무렇지 않게 튕겨 낼 수 있단 말인가.
원래 테로난의 유일한 초인이라 알려졌던 ‘철벽’도 저만한 방어력을 갖추진 못했을 듯했다. 물론 그는 애초에 물 위에 서지도 못할 테지만.
“우와아아!”
초인의 뒤편에서 다가오는 테로난의 함선들에서 터져 나온 함성에 칼론 병사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제 저 초인은 그저 언덕을 오르듯 배에 올라 저항조차 못 하는 자신들을 무참히 학살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박살이 난 함대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테로난의 함대가 바짝 다가와 월등한 숫자로 백병전을 유도할 터였다. 그것이 최근 테로난 해군이 칼론을 밀어붙이게 된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콰아아아아아앙!
다가오던 적 초인이 딛고 있던 수면이 일순간 굉음과 함께 비상하듯 솟구쳤다.
여태 모든 공격을 무시하며 다가오던, 그야말로 재앙 같던 초인이 거센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맥없이 튕겨 나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들의 뒤쪽에서 해일의 깃발을 단 배가 다가오는 모습을 본 칼론의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터트렸다.
“구스타프 님이다!”
“해일의 마도사!”
“우와아아!”
대륙에서 칼론 군도로 향하는 3개의 항로에서 각기 전쟁의 판도를 바꾸던 두 초인이 드디어 조우한 것이다.
그리고 그 초전의 결과는 누가 봐도 해일의 마도사 구스타프의 우위였다.
하지만 정작 테로난의 초인을 요격한 마도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저렇게 쉽게?’
마도사 같지 않게 땡볕에 그을린 듯한 구릿빛 피부, 근육질의 우람한 체격을 한 장년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 그의 의도는 해괴한 수법으로 물 위를 달리는 적 오러유저에게 충격을 주어 균형을 흔든 뒤,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혀 수장을 시킬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견제라고 할 수 있는 가벼운 공격에 적이 아예 날아가 버린 것이다. 순간 자신이 마력을 너무 과하게 썼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허공으로 날아가던 적이 공중에서 바람을 타듯 미끄러져 내려와 기함에 착지하는 광경을 보자, 구스타프는 그 생각을 단번에 지워 냈다.
정확히 무슨 재주를 부리는지는 몰라도, 몸을 한없이 가볍게 하는 수법 중 하나인 듯했다.
다행히도 그는 오러유저 중에는 간혹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특이한 능력을 가진 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옆 왕국에는 아예 바람을 타고 나는 오러유저도 있다던데 그저 비스듬히 낙하하는 정도면 귀여운 수준 아닌가.
게다가 그는 물의 마법사로서 6서클을 각성하며 바람의 속성까지 얻은, 그야말로 해전에 특화된 전투 마법사였다.
구스타프는 바다 위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다.
“어림없다!”
구스타프의 자신감 넘치는 고함과 함께 날아들던 적이 비틀거리며 추락했다.
적의 몸이 수면 가까이 떨어진 순간, 바닷물이 거인의 창으로 변해 적을 꿰뚫을 듯 솟구쳤다.
콰아아아앙!
다시금 이어지는 폭음.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듯 불규칙적으로 튕겨 나가는 적을 본 구스타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는 금세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튕겨 나가?’
꿰뚫려서 박살이 나거나, 터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구스타프의 표정이 다시 굳어지는 순간, 튕겨 나갔던 적이 언제 공격을 당했냐는 듯 살포시 바다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다시 그가 있는 기함으로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초인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느린 속도였지만, 육지의 보통 기마병과 비슷한 속도로 바다 위를 질주해 오는 초인을 육중한 함선이 피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저 초인에겐 충격을 반감시키거나 힘을 타고 움직이는 등의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예 으스러트려 주마.”
빠드득.
자존심이 상한 구스타프의 의지에 따라 마력이 진동하고, 이내 적 초인이 딛고 달려오던 바닷물 자체가 그의 무기가 되어 적의 사방을 감싸 안았다.
“뒈져라!”
불끈 쥐어지는 주먹과 함께 적을 감싼 바닷물이 강력한 압력으로 중심부의 적을 옥죄었다.
하지만.
“……어?”
당혹스럽게도 가운데에 적을 가둔 물 덩어리는 직전보다는 확실히 느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 함선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익. 감히!”
구스타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콰콰콰콰콰콰.
적을 감싼 물 덩어리는 이내 바닷물을 감아올리며 솟구쳐 해수면과 하늘을 잇는 기둥이 되었다.
구스타프 자신도 평생에 몇 번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최고의 비전, 해신의 분노.
그 위력은 그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우와아아아아!”
“난간 잡아!”
“여차하면 우리도 휩쓸린다!”
아군의 함성과 비명이 섞여 나오는 거대한 함선이 요동치는 파도에 맞섰다.
“저, 저럴 수가!?”
“저게 뭐야?”
“저게 사람이 만들어 낸 짓이라고!?”
해일의 마도사가 가진 저력을 확인한 양국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일순간 격랑이 가라앉고, 그 자리에 적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구스타프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적의 초인을 처리했다! 침략자를 물리쳐라!”
구스타프의 고함과 함께 칼론의 함대들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거리를 두고 마법으로 공격하는 작전을 많이 쓰던 칼론의 함대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내륙의 어떠한 군대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해진 상태였다.
반면.
“젠장!”
“우리도 돌진해!”
“후퇴는 없다!”
사기가 떨어진 테로난의 함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마주 돌진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최대한 빨리 백병전에 들어가서, 저 무서운 마도사가 아군을 의식해 마법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어.’
단순 함선의 숫자와 병력의 수는 이쪽이 위다.
“전 함대 전속 돌진!”
테로난의 지휘관, 칼립 브로스 후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연신 소리를 질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어!?”
자신감에 취해 돛을 올리던 칼론의 병사 몇몇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하늘에서 붉은 빛 유성 같은 형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저게 뭐야?!”
칼론 병사들의 시선이 하나둘 하늘로 향하는 순간.
콰아아앙!
붉은 유성(?)은 칼론의 함선 중 하나의 갑판을 꿰뚫으며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더니.
퍼어어어엉.
그 함선의 옆구리를 터져 나가며 테로난의 초인이 그 귀환을 알렸다.
“우와아아!”
“아머드!”
“아머드 하센!”
“테로난의 수호자!”
다시금 테로난의 함대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고, 기세등등하게 돌진하던 칼론의 함대는 선두의 기함을 필두로 황급히 선회를 시도했다.
“그대로 돌진해! 적 하나 때문에 대열을 망칠 셈이냐!”
구스타프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함선들이 다시 전열을 수습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짧은 순간 급선회 기동을 두 번이나 한 만큼 그 속도가 현저하게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틈에 기세를 탄 테로난의 함대는 그대로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 선두에 선 함선들의 뱃머리에 달린 크고 뾰족한 충각들이 유난히 빛나 보였다.
‘아으으. 이건 좀 아프네.’
아머드, 아니 에일렌은 전신에 전달되는 아찔한 충격에 몸을 떨었다.
갑자기 강력한 압력과 함께 구름 위까지 솟구쳤을 때는 순간적으로 죽음을 떠올렸을 만큼 정신이 아득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국 견뎌 냈고, 그것은 그녀에게 더욱 확고한 자신감을 주었다.
‘내 특성은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맞아.’
그녀의 특성인 불굴의 성채는 수십 겹의 얇은 오러가 온몸을 빈틈없이 감싸며 평상시에도 강력한 방어력을 갖추게 해 주는 것이었다. 나아가 온 힘을 다해 전개했을 때는 그 겹쳐진 오러의 진동으로 인해 방어막이 훨씬 강력해졌다.
처음 이 특성을 각성했을 때만 해도 에일렌이나 로건은 방어를 도외시한 극단적인 공격일변도의 검술 변화를 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문제점을 깨달았다.
에일렌의 특성은 그 강력한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았던 것이다.
상시 오러가 전개되어 있는 모양새 때문에 신체 능력의 증폭률이 다른 오러유저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고, 그 고정된 모양새에서 변용이 거의 되지 않았기에 범용성도 현저히 떨어졌다.
간신히 장검에 오러를 두르는 수준이 한계일 정도.
그나마도 다른 오러블레이드처럼 극강의 절삭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검이 엄청나게 튼튼해지는 게 전부였다.
– 이래서는 설령 월등한 검술을 갖춘다 하더라도 다른 오러유저와의 싸움에선 일방적으로 방어하는 그림밖에 안 그려져.
– 공격하던 적이 먼저 지치기를 기다리려야 한다? 이건 좀…….
로건은 좌절했지만, 오히려 에일렌은 웃었다.
그만큼 장점도 확실했으니까.
– 이제 수준 미만의 사람들한테는 사실상 무적이잖아요. 아무리 협공을 하더라도 다칠 일도 없을 테고.
거기다 이제는 부부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검공이 그 장점을 극대화할 묘안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 대결의 기본은 보법, 운신입니다. 이것만 잘 활용하면….
검공은 에일렌이 오러를 최고로 전개했을 때 자동으로 전개되는 진동을 귀신 그림자에 더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그 결과 에일렌은 외부의 충격을 한없이 가볍게 받아 흘리는 자신만의 운신법, 깃털 걸음(羽步, 우보)을 개발해 냈다.
물론 공격으로 전환할 때는 문제점이 여럿 있었지만, 적어도 방어로 일관할 때는 두 단계 위의 경지에 있는 로건조차 그녀를 제압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거기다 그 장점이 완벽하게 다듬어진 뒤에는 높은 곳에서 바람을 타고 활강하거나 출렁이는 수면 위를 평지의 절반 정도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등 기대하지 않았던 부가적인 재주까지 얻을 수 있었다.
– 오러유저 미만의 상대에겐 무적, 거기다 마도사를 상대로도 웬만한 놈들에겐 극상성이 되겠구나. 내가 또 하나의 괴물을 만들어 냈어.
검공의 감탄사가 부끄럽지 않은 절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로 온 거지. 저자, 해일의 마도사를 잡기 위해.’
물론 바다 위라는 특성 탓인지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구스타프의 구릿빛 피부가 창백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에일렌은 그 수법이 이 전장에 다시 나올 일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날.
카론의 해군은 대패했고 해일의 마도사 구스타프는 중상을 입은 채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이 전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오러유저, ‘테로난의 수호자’ 아머드 하센이라는 신성이 동부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순간이었다.
때맞추어 내륙에서는 리버티의 ‘은빛 사신’ 가일 슬레이어가 3국 연합군의 주력을 격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때부터 연합의 전쟁은 빠르게 수습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