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
3화아버지의 집무실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 반대편에서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듯, 눈을 마주치자마자 인상을 팍 찡그리며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로건은 작은 한숨을 내뱉으며 최대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니.”
그 말에 다가오던 귀부인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어머니라. 참 어색하게 들리는 말이네요, 대공자.”
귀부인의 차가운 눈동자가 로건을 응시했다. 검고 긴 생머리가 그녀의 인상을 더욱 냉소적으로 보이게 했다.
메리안 카이로스. 로건의 새어머니, 즉 로니안의 생모이자 현 맥라인 가문의 안주인이었다.
그녀는 단순한 가모가 아니었다.
현재 맥라인 가문 재정의 절반 이상을 카이로스 가문이 책임지고 있는 것은 오롯이 메리안 덕분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맥라인 가문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였다.
나아가 무작정 로건을 따르던 로니안을 대신하여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사람이자, 전생대로라면 얼마 후 벌어질 사건에서 그의 추방을 가장 크게 주장했던, 아니, 주장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저 인사일 뿐입니다, 어머니.”
지금부터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준다면 이 관계도 차차 나아질 것이다.
로건은 그리 기대하며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물론,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안 하던 짓을 하는 걸 보니, 또 무슨 한심한 짓거리라도 준비하는 건가요?”
새어머니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했다.
그 날카로운 도발에도 로건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 한 걸음 뒤에서 로건을 향해 간단히 고개를 숙이는 새어머니의 심복, 총관 벡터의 눈은 아예 그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가문의 대공자를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으니 기본적인 예의만 어쩔 수 없이 갖추는 모습이었다.
‘다 내 잘못일 뿐이다.’
이 모든 게 과거의 못난 자신이 만들어 낸 당연한 결과일 뿐.
로건은 씁쓸한 눈으로 멀어지는 새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다 작은 한숨과 함께 돌아섰다.
* * * 대공자가 작은 공자와의 대련에서 졌다.
맥라인 성 내부에 소문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여느 귀족가나 무가(武家)라도 큰 화제가 될 이야기였지만, 맥라인 가문에서는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
맥라인 가문은 본래 4대 전 조상이 저지른 패악질과 무능력했던 전대 영주들 때문에 영지와 작위를 몰수당할 뻔했다.
그러다 현 가주인 패드릭 맥라인이 상급기사가 되면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그 후계자들의 무력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이공자가 고작 열네 살의 나이라는 것이 소문에 살을 보탰다.
단순히 이공자 로니안이 천재라는 소문에서부터 대공자 로건이 무능하다는 소문까지.
로건의 추문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방에서 짐을 정리하기 바빴다.
오히려 그와 함께 있는 이가 로건 자신보다 더 안달복달하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아이고! 공자님, 우리 공자님 어떡하면 좋습니까!”
“호들갑 떨지 마라. 로니안이 천재인 건 사실인데.”
“작은 공자님이 문제가 아니라 공자님이 천하의 등신으로 소문이 나고 있으니까 문제…… 흐압! 저, 저는 모르는 말입니다. 제 주둥아리가 멋대로…….”
피식.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신경 쓰지 말아라.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정작 해야 할 일을 못 한다.”
“폐관 수련이 해야 할 일입니까.”
“그래.”
“……정작 그게 도망치는 것 같이 보일 텐데요.”
릭은 끝까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 이런 녀석이었지.’
어렸을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가장 충실한 시종, 릭은 쓸데없이 말이 많고 간섭이 많았다.
물론 그중 대부분이 자신을 염려해서 하는 말이긴 했지만.
전생의 망가졌던 로건은 그 수많은 염려를 모조리 무시했다.
물론 지금은 그와는 다른 의미로 릭의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후우, 이 녀석한테도 빚이 많지.’
로건은 한숨을 쉬며 잠시 정리하던 짐을 내려놓고는 릭의 어깨를 두드렸다.
“도망치는 거 아냐. 그냥 믿어 봐. 앞으로는 꽃길만 걷게 해 줄 테니.”
전생에서 로건은 다음 공식 대련에서 릭을 시켜 로니안의 식사에 환각제를 타게 하고, 그다음에는 마비독까지 쓰게 했다.
그 결과 그는 후계자 자격이 박탈되고, 유폐에 가까운 장기간 근신 처분을 받았다.
일의 주동자임에도 근신 처분에 그친 자신과는 달리 릭은 가문의 직계에게 독을 쓴 죄로 그대로 사형당했다.
완전히 망가졌던 전생의 로건도 당시에는 양심의 가책으로 잠을 설쳤을 정도였다.
그 최악의 죄들을 저지르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온 것이 다행이었다.
좀 더 시기가 일렀다면 좋았겠지만, 그 전이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이제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말과는 달리 그 어떤 일이라도 충실히 자신을 도왔던 녀석.
이 녀석만큼은 확실히 챙겨 주고 싶었다.
마음의 빚을 졌던 대상은 단순히 동생이나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다만.
“……뭐 잘못 드셨어요?”
“크흠.”
그래, 이 녀석은 확실히 매를 버는 재주가 있었지…….
“앞으로는 무리한 일은 시키지 않을 거다. 그리고 가능한 잘 챙겨 주마.”
“……뭐라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한테 좋은 거겠죠?”
“……그래.”
도무지 진지해질 수가 없는 놈이었고.
“진짜 좀 변하신 것 같기도 하니 다행이네요.”
그래도 당사자 앞에서 그리 말하며 히죽 웃는 릭은, 로건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것은 확실했다.
“짐이나 빨리 챙겨!”
“아까부터 하고 있는데 괜히…….”
투덜거리며 움직이는 릭을 보며 로건은 피식 웃고는 잠시 땀을 닦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밝은 햇살과는 반대로, 아직 이 영지의 미래는 캄캄하기만 했다.
소문이야 어찌 나건, 누가 음모를 꾸미건 당장은 모두 의미 없는 일.
‘다시 돌아와 실력만 보여 줘도 소문은 바뀐다. 그리고 1년 뒤, 영지전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
그 재난을 무사히 극복하고 넘어가야, 비로소 진짜 미래를 논할 여유가 생긴다.
‘3개월……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해.’
내성 안쪽의 선산을 바라보는 로건의 붉은 눈동자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 * *
“그런데 왜 하필 선산에서 수련하십니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곳이 필요해. 그러면서 넓은 장소도.”
떠나오기 전 릭의 물음에 로건이 답했던 것처럼, 선산은 로건이 말하는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장소였다.
맥라인의 직계를 제외하고는 출입이 제한된 데다가, 얕고 넓은 산등성이도 있어 연무장 대신 사용하기도 안성맞춤이었다.
‘내 생각대로 된다면, 아직은 절대 누구에게도 보여 줄 수 없는 일일 테니까.’
선묘에 모셔진 선조들의 위패에 절을 하고 짐을 푼 로건은 불안한 마음 반, 기대 반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산을 올랐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로건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산을 오르기 전 마지막까지 확인했던 비전서의 내용을 떠올렸다.
신검(神劍)의 비전.
그것은 검술 이전에, 심장에 특정한 방향성을 가진 포스의 핵을 생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심장에 생성된 핵에서 뿜어진 포스가 피와 육체에 스며들어, 육체 자체를 개조하도록 한다는 발상.
다만 무형의 에너지인 포스를 유형화시켜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것 자체만으로도 보통의 재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생의 그였다면 이미 이 기본 단계에서 좌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해.’
왜냐하면…….
우웅.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포스보다 끈끈하고, 더 강하고, 보다 밀도 높은 에너지가 그의 의지에 즉각 반응했다.
회귀 이후부터 자신의 포스가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고 본질적인 진화를 이룬 느낌이었다.
‘이것이면 가능해.’
질적으로 차원이 달라진 포스가 로건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의 짐작대로, 진화한 포스는 생각보다 더욱 쉽게 비전서의 내용처럼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며 심장으로 모여들었다.
한 곳으로 모여든 포스는 짐작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순식간에 뭉쳐서 하나의 핵(核, core)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마치 당연히 그리되어야 하는 것처럼.
우우웅.
‘벌써?’
비전서에 이르기를 아무리 재능 있는 이라도 3일 밤낮을 노력해야 할 것이라 했건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거짓말처럼 쉽게 성공한 것이다.
너무 빠른 성취에 로건 스스로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이럴 수…… 음?”
우우웅.
포스가 심장에 뭉쳐 핵이 생성된 것과 동시에, 더욱 밀도가 높아진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며 온몸에 퍼졌다.
그러고는 어떻게 조절해 볼 틈도 없이 몸 구석구석을 자극했다.
쏴아아아.
가뭄 끝에 빗물을 받아들인 논밭의 느낌이 이러할까.
로건은 그 힘이 주는 짜릿한 자극과 변화에 일순간 모든 상황을 잊고 황홀경에 빠졌다.
자신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며 사방에 빛을 뿌리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 * *
“으음……?”
분명히 오전에 해가 떠오르며 시작한 수련이었는데, 어느새 석양이 지고 있었다.
시간의 괴리감을 느끼는 순간 짜릿한 느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갑자기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에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허?”
그러나 그것도 잠시.
꾸우욱.
지긋이 쥐어진 손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과 전신에서 감도는 활력은 그가, 아니 그의 육체가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음을 알려 주었다.
“생각보다 너무…….”
비전서에 적힌 내용보다 훨씬 과한 변화였지만, 긍정적인 변화였다.
짐작보다 더 강해진 것이 싫을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비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파아아앙!
한 번 거칠게 검을 휘둘러 본 로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가볍게 휘두른 검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힘이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좋아!’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단순히 힘이 강해진 정도가 아니다. 체질과 감각 자체가 확 달라졌다.
모든 것이 검을 휘두르는 데 적합한 방향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을 바꾸는 공부, 환인공(換人功)이라더니…… 정말이었어.’
확신할 수 있었다.
비루한 재능으로 열등감과 자괴감을 키워 가던 둔재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으하하하!”
전생에 가졌던 모든 열등감과 자괴감의 근원이 깨끗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날부터 로건은 침식을 거의 잊은 채로 열정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 * * 석 달 뒤.
‘이번엔 반드시…….’
로건은 비전서의 내용대로 심장의 핵을 쥐어짜 에너지를 증폭시켰다.
핵을 생성하고 체질을 바꾸는 포스 컨트롤도 대단했지만, 그것은 신검의 비전 중 가장 기초에 불과했다.
비전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검, 시공참(時空斬)’이라 거창하게 명명된 열 개의 검식이었다.
그리고 지금 로건이 시도하려는 것은 그중 한 개의 핵, 다시 말해 1성(星)의 코어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검식이자 1식.
물결 가르기, 파랑참(波浪斬).
‘……반드시 성공한다!’
확 달라진 감각과 육체로도 석 달 내내 실패만 거듭했던 비기.
하지만 그 실패의 과정이 쌓이며 서서히 감이 잡히고 있었다.
‘지금!’
일순간 증폭된 힘이 전신을 내달리고, 붉은 눈동자에서 황금빛이 뿜어지는 찰나의 순간.
“타아!”
로건의 검이 번개처럼 휘둘러지자, 검에서 뿜어진 황금빛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연달아 전면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앙!
사람 몸통보다 두꺼운 아름드리나무가 두 겹의 황금빛 파도를 맞고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으로 흩날렸다.
털썩.
“하악. 하악. 허, 허허…….”
창백한 안색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은 로건은 스스로 해낸 일을 보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범위는 고작 휘둘러진 칼끝에서부터 1미터가량. 포스의 파동도 고작 두 겹.
하지만 이제 막 각성한 포스 유저가 사용할 만한 기술은 절대 아니었다.
포스의 발출을 넘어 유형의 타격까지 입히는 것은 오러 유저 직전의 최상급기사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상식이었으니까.
비록 단 한 번으로 탈진한다 해도, 비장의 한 수로서는 넘치는 기술이었다.
“흐흐흐. 흐하하하하하!”
로건이 계획했던 3개월의 수련.
그는 생각했던 목표를 넘치게 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