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제정신인가?”
“그러게.”
“작센 대공이면…….”
전장의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오러유저가 결투를 신청하는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생명의 힘을 다루는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오러유저가 얼굴에 주름이 뚜렷할 정도라면, 이미 전성기가 지나 포스가 흩어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심지어 작센 대공은 몇 년 내로 수명이 다하지 않을까 하는 소문까지 나 있던 참이었다. 한데 이미 각국의 마도사들을 상대하며 그 실력을 입증한 각국의 신성들에게 결투를 청한 것이다.
그의 상태를 아는 사람들로선 노망, 혹은 자살행위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일 님. 실력을 보여 주시죠! 기선을 제압할 기회입니다!”
카릴을 비롯한 지휘부가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고.
“좋다.”
로건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선선히 앞으로 나섰다.
‘소문과 달리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다른 속셈이 있는 거겠지.’
수상하면 일단 지켜보는 게 맞겠지만, 그렇다면 그 수상한 자를 상대하는 것이 자신의 반려가 된다.
무시하고 군대로 밀어 버린다면, 기껏 가일의 모습으로 만들어 낸 영향력이 약해질 테니까.
하지만 테로난의 지휘부 역시 그들의 영웅을 재촉한 모양인지, 맞은편에서 에일렌이 분한 모습인 아머드가 말을 몰고 나서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눈이 마주친 부부의 입가에 헛웃음이 번지고, 이내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천천히 말을 몰아 홀로 요새 앞에 나와 있는 노기사에게로 다가갔다.
날카로운 인상의 노기사는 그런 그들을 호기롭게 맞이했다.
“연합의 신성 둘이 동시에 나오다니, 그럼 누가 먼저 나를 상대해 주겠는가? 순서를 정하기 곤란하다면 동시에 덤벼도 되네.”
그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무색하지 않게, 가까이서 본 작센 트럼블의 기세는 꽤 강렬했다. 주름진 얼굴은 그가 삶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기세는 전혀 달랐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 오러가 눈에 보일 정도.
그것을 본 로건과 에일렌의 눈빛에 감탄과 더불어 안타까운 기색이 스쳤다.
‘생명을 불태우는 건가.’
말 그대로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인 듯한 모습이었다. 제 수명을 깎아서라도 조국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각오에 경의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쪽도 물러설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제가 할까요, 가일 님?”
“……둘이 아는 사이던가?”
노기사의 어리둥절한 반문에 답을 하지 않은 채, 로건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아니, 내가 하지. 노장의 투혼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에 에일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서자 작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젊은이들이 자신감이 과하군.”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입장.
조국을 지켜야 하는 그로서는 이 자리에서 둘 모두를 끝장내는 것이 좋을 테니까.
“상대는 내가 정하겠네.”
치켜든 노기사의 창에서 붉은 오러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30m 넘게 치솟은 거대한 스피어 오러가 좌중을 압도하는 기세를 뿜어냈다.
“무슨 수를 써서건, 나는 조국을 지킬 것이다!”
처절한 각오가 서린 말에 로건의 안색이 굳어지는 순간.
“받아 보시게!”
콰콰콰콰콰.
솟구쳐 오른 스피어 오러가 폭발하며 전방에 무수한 빛의 파편이 쏟아졌다.
일순간에 범위 밖으로 물러난 로건.
그리고 반 박자 늦게 파편을 하나하나 튕겨 내며 바람처럼 움직이는 에일렌.
노기사의 첫 공격은 그렇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났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합!”
온몸에 이글거리는 불꽃 같은 오러를 피워 올린 작센이 어느새 에일렌의 눈앞에서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30여 미터의 공간을 단숨에 단축해 오는 움직임이 마치 몇 년 전의 검공을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연합에 이런 고수가 있었나.’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래 봤자 ‘몇 년 전’의 검공 정도라는 것.
그 인상적인 공격은 ‘지금’ 에일렌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콰아아아앙.
“하?”
깃털 처럼 두둥실 멀어지는 아머드. 그리고 느낌이 없는 손맛.
좀처럼 겪어본 적 없는 묘한 느낌에 작센이 멈칫하는 순간.
그의 옆으로 은빛 오러가 소리도 없이 파고들었다.
쩌어어엉!
“어딜!”
쾅!
뻐어억.
은빛과 붉은빛이 몇 번이고 교차한 끝에 두 사람의 몸이 서로 반대편으로 미끄러지듯 튕겨 나갔다.
창대에 옆구리를 격중당한 로건이 고통 속에 인상을 찌푸리는데.
예상치 못한 발길질에 안면을 강타당한 작센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이내 긴 한숨과 함께 자세를 낮춘 그가 붉은 오러가 타오르는 창을 로건에게 겨눴다.
“자만한 건 나였군. 둘 다 상식 밖의 실력이야. 실제로도 어려 보이는데.”
초인이 삶에 끝에 다다르면 통찰력이라도 생기는 걸까.
작센의 묘한 눈빛은 로건과 에일렌의 변장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에 로건이 쓴웃음을 흘리는데, 그 순간 공간을 단축하듯 사라진 작센이 어느새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타!”
번개처럼 전신으로 쏟아지는 창격이 무수한 잔상을 만들어 내며 로건의 전신을 두들겼다.
카가가가가강!
그그그그그극.
우우웅.
주변의 공기가 떨리고, 소리보다 먼저 퍼진 충격파가 사방의 지면을 뒤집어엎으며 자욱한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그리고 그 흐려진 시야 안에서.
“끝이다!”
극히 짧은 순간 수십 번의 부딪침 끝에 승기를 잡은 작센의 창이 로건의 머리를 꿰뚫는 듯한 잔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스슥.
콰아아아아앙!
어느새 슬쩍 옆으로 피한 로건의 검에서 피어오른 ‘황금빛’ 오러가 채찍처럼 휘어지며 작센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컥!”
끄으으.
비틀거리는 작센의 몸.
불꽃처럼 피어오르던 오러 역시 흔들렸지만 그것도 잠시, 작센의 오러가 다시금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야말로 모든 생명력을 쥐어짠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로건을 위협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실시간으로 늙어 가는 작센의 얼굴을 보며 그 각오에 감탄할 뿐이었다.
‘상급에 발을 걸친 실력. 확실히 과거의 스승님 못지않아.’
하지만 본 실력을 드러낸 로건은 언제나 동급 최강의 기사였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사방의 시야가 가려진 이 틈에.
그러나 기회를 보던 것은 작센도 마찬가지였다.
“타압!”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찬란한 빛을 뿌리는 붉은 오러가 거대한 창의 환영을 만들어 내며 로건의 전면으로 쇄도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합!”
짧은 기합과 함께 로건의 검에서 시작된 황금빛 광채가 쇄도해 오는 거인의 창을 깔끔하게 지워 버리며 소리도 없이 작센을 강타했다.
우우웅.
생의 끝까지 불타오를 것 같던 붉은 오러가 황금빛과 부딪치는 순간 그 기세를 잃었다.
오러의 근원, 생명의 힘 자체를 분쇄하는 신검 비전, 생명 가르기(生靈斬, 생령참)의 위력이었다.
털썩.
“이, 이럴 수가……. 이런 실력을 수, 숨기고 있었다고?”
숨을 헐떡이며 꺼져 가는 눈빛으로 로건을 바라보는 작센.
결투를 시작할 때보다 확연하게 늙어 보이는 그 얼굴은 늙은 초인이 정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웠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결투를 지켜보던 에일렌의 눈에도 안타까운 빛이 떠오를 정도.
그리고 그 광경은 자욱하게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가라앉는 순간, 전장의 모두에게 노출되었다.
“안돼!!!”
“대공 각하께서!”
요새의 성벽 위에서 비명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반면에.
– 우와아아아!
멀리서 지켜보던 연합군. 특히나 리버티군의 진영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검을 겨누고 있는 가일, 그 앞에 쓰러진 작센 대공.
누가 봐도 승패가 명확했으니까.
“그대의 투지에 경의를 표하오.”
로건이 그리 말하며 검을 집어넣는데.
“나, 난. 이대로 끝낼 수, 어, 없다.”
작센이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봤자 그 상태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로건과 에일렌은 그저 최선을 다한 노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품 안에서 작은 단검을 꺼낸 순간, 로건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무슨 재질로 만들었는지 모를 새까만 단검. 그 자루에 양각된 검은 뱀의 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확연하게 비쳤으니까.
“그건……!?”
곧 쓰러질 듯한 작센을 향해 한달음에 쇄도하는 로건.
하지만 마지막 힘을 남겨 두었는지, 작센이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단검을 자신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불길한 회색빛의 마력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달려들던 로건을 한 번에 튕겨 냈다.
“큭!?”
우우우웅.
화르르륵!
회색의 불길 속에서 타들어 가는 작센의 입에서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목숨을…… #&@$께 바친다.”
화르르륵.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회색 불길.
이를 악문 로건이 그 불길을 갈라 내려 검을 높이 쳐들었다.
‘아차. 이런…….’
그러다 쏟아지는 전장의 시선을 의식하고 주춤한 순간.
– 트리아여 영원하라!
완전히 재만 남아 무너지는 불길 속에서 작센의 고함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여러 갈래로 솟구쳐 오른 회색 불길이 요새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로건이 그 불길한 마력의 흐름을 똑똑히 눈에 담아 두고 있을 때.
“대공 각하의 유지를 받들자!”
“트리아여 영원하라!”
“침략자들을 물리쳐라!”
요새의 병사들이 갑자기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콰앙.
우당탕.
뻐어억.
기사도 아닌 일반 병사들이 20여 미터의 높이에서 뛰어내린 것이니 그 결과란 뻔했다. 그 소리조차 심상치 않았으니 대부분이 즉사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대로 피떡이 되어야 할 병사들이 갑자기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대. 공. 각. 하. 를. 위. 해.”
“트. 리. 아. 만. 세.”
우드드득.
흰자위까지 붉게 달아오른 시뻘건 눈, 얼굴에도 온통 검붉은 핏줄이 불거진 병사들의 부러진 팔다리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 침. 략. 자. 를. 물. 리. 쳐. 라!
이내 병사들이 소름 끼치는 음성을 내뱉으며 전면을 향해 번개같이 쇄도했다. 웬만한 포스유저 못지않은 속도였다.
사실상 1만여의 병사들이 괴물이 되어 돌진하는 모습.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전장의 곳곳에서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 저게 뭐야!?”
“악마의 술수다!”
“트리아 놈들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드높은 사기를 자랑하던 연합군의 진형에도 혼란이 이는 순간.
“빌어먹을!”
자신을 향해서도 쇄도하는 병사들을 서슴없이 베어 낸 로건이 병사들의 머리를 밟으며 요새의 성벽 위로 바람처럼 솟구쳤다.
그러고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회색빛 마력이 스며든 곳을 향해 서슴없이 검을 쑤셔 넣었다.
콰직.
검 끝에 닿은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을 느낀 로건은 성벽의 일부를 무너트리고는 그 안에서 가운데가 깨져 버린, 사람 머리통만 한 구슬을 꺼내 들었다.
“에일……, 큽. 아머드! 요새 성벽의 오른쪽을 무너트려!”
그 목소리를 들은 에일렌이 병사들의 머리를 밟고 도약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마력이 스며든 곳은 여섯 군데.’
그 위치를 보니 마법의 문외한도 한 번쯤은 들어 본 적 있는, 마법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그려졌다.
“육망성! 마법진이다! 내가 부순 위치를 보고 추정해!”
요새의 넓은 성벽 곳곳, 회색의 마력이 스며든 자리를 찾아 돌진한 로건이 연달아 그 일각을 부쉈다.
에일렌 역시 그 움직임을 따라 반대편의 일각을 무너트렸다.
그렇게 하나의 보석이 박살 날 때마다 눈이 뒤집힌 채 연합군을 향해 돌진하던 트리아의 군대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콰직.
그러다 마지막 구슬이 파괴되는 순간.
“끅!?”
“아, 아파. 내가 왜 여기……?”
“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는가 싶더니, 트리아의 병사들이 하나둘 머리를 움켜잡으며 쓰러졌다.
잔뜩 얼어붙은 채 방어 진형을 형성하던 연합군 진영에 일순간 침묵이 감도는데.
“전군 진격! 트리아의 마지막을 장식하라! 쓰러진 자들을 포박하라.”
살짝 비틀거리며 은빛 오러를 뿜어낸 로건이 전쟁의 끝을 알리는 고함을 터트렸다.
“우와아아아!”
뭐가 뭔지 제대로 파악조차 할 수 없던 싸움이었지만, 한껏 기세가 오른 연합군은 트리아의 군대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쉽게 끝나 버린 전쟁.
하지만 그 전쟁을 끝낸 두 초인의 얼굴에는 질린 기색만이 가득했다.
“이게 대체 무슨 수법이죠? 세상에 저만한 사람들을 다 어떻게…….”
에일렌의 말에 로건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람, 그것도 초인을 제물로 바쳐서 무언가를 도모하는 마법진이라니. 절로 전생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여전히 그 정체는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마력을 볼 수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기껏 변장까지 하고 전쟁에 끼어들어 보존한 연합의 저력이 박살 날 뻔했다.
다시금 검은 뱀의 문양을 쓰는 집단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 준 전쟁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