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전쟁이 끝났다.
불과 두 달 만이었다.
타히티의 변란에서 촉발된 연합 7국 전쟁의 결과는 호사가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로멘, 로메로, 타히티를 집어삼킨 리버티와 칼론을 평정한 테로난.
두 국가가 연합의 최강국이었던 트리아의 영토마저도 반으로 갈라 가진 것이다.
트리아의 수도 트레고니아를 테로난이 차지하는 과정에서 다소간의 잡음은 있었지만 결국 7왕국 연합은 2왕국 연합으로 바뀌었고, 두 국가의 새로운 초인 ‘사신’과 ‘수호자’는 동부 대륙 최대의 화제로 떠올랐다.
“둘 다 젊다지?”
“양국의 미래가 두 사람에게 달렸구먼.”
“이제 연합은 누가 주도하려나.”
“그거야 당연히 3국을 꿀꺽한 리버티 아니겠어? 테로난은 그래 봐야 칼론 하나 먹은 게 전부 아닌가.”
“어허, 해일의 마도사가 테로난에 투항했잖아. 초인만 셋인 거라구.”
“초인 수가 뭐가 중요해? 국력이 중요하지. 두고 봐, 10년 안에 리버티가 맥라인 따라잡을 테니까.”
“뭐 두 국가의 연합이면 지금도 크게 꿀릴 것 없지 않나. 초인만 다섯인데.”
피정복지의 불안한 영지민들을 제외한 본토의 백성들은 삼삼오오 모여 연합의 밝은 미래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나 전쟁에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 두 신성의 활약이 그들의 장밋빛 상상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만큼 전후 처리 과정에서 두 신성이 어떤 보상을 받을지에 대한 관심도 쏟아졌다.
그리고 각 왕실은 민중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논공행상 자리에서 화끈한 보상을 내놓았다.
“……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가일 슬레이어 공을 대공의 지위에 봉하고 기존 타히티 공국령 전체를 영지로 하사한다!”
리버티 국왕, 크란 3세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왕성의 대전에서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공국령을 통째로? 우와아!”
“축하드립니다, 대공 각하!”
“축하드립니다!”
“가일 슬레이어 대공 만세!”
보기 드물게 화려하게 꾸며진 대전에 나름 차려입고 참석한 이들은 이번 전쟁에 다 조금이나마 공을 세운 이들이었다.
특히나 전쟁의 주 전력이었던 기사들이 보내는 환호성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환한 웃음을 가면처럼 뒤집어쓰고 있던 크란 3세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이를 득득 갈았다.
‘이자가 누군지 알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눈앞의 ‘사신’ 덕분에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상황이다. 그에 걸맞은 배포를 보이지 않는다면 귀족들, 그중에서도 전쟁을 통해 완전히 이자에게 반한 기사들의 반발이 극심할 터였다.
‘타국의 초인에게 영지까지 하사해야 한다니.’
그나마 실제로 지배력을 행사할 생각은 없다고 한 말을 믿을 수밖에.
크란 3세는 복잡한 눈빛으로 눈앞의 초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을 읽은 로건은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꿇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일국의 왕인 그가 타국의, 그것도 자신보다 작은 왕국의 왕에게 무릎을 꿇는다.
어찌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치욕이었지만 실리가 우선인 로건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다.
까짓 무릎 한 번 꿇은 것치고는 성과가 너무 짭짤했으니까.
‘대외적으로 쓸 만한, 확실한 신분을 얻었군.’
당장 맥라인의 신분을 드러내면 날아갈 공국령 따위는 알 바 아니다.
그저 리버티의 대공이라는 신분이 중요할 뿐이었다.
‘리버티의 대공으로서 굳이 영지를 지배하거나 세금을 거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신분을 제외한 나머지 보상을 포기하는 대신, 리버티 왕국은 ‘가일 슬레이어 대공’이 앞으로 저지를 짓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권리를 포기했으면 책임도 없는 법이니까. 껍데기뿐인 신분 좀 써먹는다고 뭐라 할 수는 없을 거야.’
물론 크란 3세가 안다면 무슨 그런 억지가 다 있냐고 펄펄 뛸 생각이었다.
‘뭐, 아직은 가능성뿐이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이로써 연합에 온 목적은 전부 달성했다.
로건은 흡족한 표정으로 크란 3세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자리를 비운 지도 벌써 두 달이군……. 슬슬 돌아가야겠어.’
* * * 논공행상이 끝난 직후, 가일 슬레이어 대공은 뜬금없는 선언을 했다.
“조국의 위난도 끝났으니, 이제 나는 다시 수련에 매진할까 하오.”
“예?!”
“아니, 대공 각하! 그게 무슨?”
“재고하여 주십시오!”
모든 이가 그 폭탄 발언에 대경하며 대공을 뜯어말렸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전쟁에 나선 것은 조국을 위해서였을 뿐, 결코 나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몫을 다했으니, 다시 무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각하……!”
“소문을 듣자니 백성들이 전하보다 내 이름을 연호한다지? 신하 된 도리로 어찌 그런 불경을 참을까. 한동안 나를 찾지 마라.”
“예?”
가일의 말은 리버티의 정계와 사교계, 나아가 왕국 전역을 휩쓸었다.
대공의 지위를 얻은 사신이 전쟁에서 얻은 깨달음을 체화하기 위한 수련을 이유로 무기한 칩거에 들어갔다.
영문 모를 그의 행보에 이어 테로난에서도 비슷한 소식이 전해졌다.
수호자 역시 칼룬 군도의 지배권을 포기하고 수련행? 사신에 대한 경쟁심이 아닐까?
거창한 논공행상 끝에 각 국가에서 대공의 지위를 얻은 두 신성이 거의 동시에 공식 활동을 중지한 것이다.
그 소문은 연일 왕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다.
“설마 왕실에서 견제한 건가?”
“기존의 귀족들이랑 트러블이 있었대.”
두 영웅의 기이한 행보는 곧바로 수많은 소문을 양산해 냈지만, 각 왕실에서는 침묵을 고수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왕국의 역사에 새겨질 영웅들이, 사실 맥라인의 원군이라는 것을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 * *
“차라리 논공행상 때 제거하는 것이 낫지 않았겠습니까? 어차피 맥라인의 힘입니다.”
시종들을 물리고 둘만 자리한 집무실.
군터 대공의 섬뜩한 말에 리버티의 국왕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다.”
이 초인 동생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이유가 새삼 떠올랐다.
어찌 이리 단순할까.
“가일을 처리했다가는 맥라인 왕국이 침공할 명분을 주게 된다. 아직은 두 왕국이 연합해도 맥라인을 감당할 수 없어.”
물론 군터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과한 것을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그때 생각해 봐야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기존의 요구만으로는 별거 없으니까. 상호 방위 조약이라고 해 봤자 이제 동부 대륙에 적은 없어. 설마 제국이 침공하지는 않을 테고.”
제국의 검은 속내를 알 리 없는 그들에게는 형식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저 맥라인의 저력이 두려울 뿐이다. 알려지지 않은 초인 둘이 그리도 강력할 줄이야.”
“전장에서 소모되길 기대한 것이 어리석었습니다. 차라리 제가 나섰어야…….”
“이미 늦은 일이다. 맥라인의 태양이 건재한 이상, 그들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워. 후대를 기약할 수밖에.”
가일이 그 맥라인의 태양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왕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익……! 저는 이대로 승복할 수 없습니다!”
군터가 반발했지만 국왕의 한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한숨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진 통신에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물론입니다. 어찌 베푸신 호의를 잊겠습니까.”
[저야 물론 믿고는 있습니다만 국가 간의 일이 어찌 우리의 말만으로 끝나겠습니까?]맥라인의 태양. 그 젊은 군주의 말에 크란 3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말씀은……?”
[리버티의 후계자들을 맥라인으로 유학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이룩한 선진 문물을 가르치고 배우게 하여 다시 리버티에 돌려보내겠습니다.]리버티 국왕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런……!’
바보가 아닌 바에야 그 말의 진의를 모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1왕자를 준비시켜 보내겠습니다.”
[아아, 제 말을 오해하셨군요. 저는 후계자’들’이라고 했습니다만?]그 말에 크란 3세가 눈을 질끈 감았다.
통신구 너머의 붉은 두 눈이 아찔하게 자신의 눈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설마 왕자들 전부를 말씀하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직 어린 4왕자를 제외한 1, 2, 3왕자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그의 너스레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던 크란 3세의 얼굴에서 다시금 웃음기가 사라졌다.
“우리 왕국을 속국으로 삼으실 생각입니까?”
[말이 과하십니다. 사전에 말씀드렸듯, 맥라인이 원하는 것은 불가침과 상호방위조약뿐입니다. 그조차도 양국의 확고한 우호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죠.]“……그래서 저희가 얻는 것은 뭐가 있습니까?”
나름 그럴싸한 조건으로 보였지만, 나중에는 무엇을 더 요구해 올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애써 표정을 관리한 크란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테로난에도 비슷한 제의를 하실 것 아닙니까?”
[하하하, 당연하지요. 그럼으로써 대륙 동부의 항구한 평화를 약속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뻔뻔하기 짝이 없는 얼굴에 욕설을 내뱉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당장 자신의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저들의 초인 가일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말이다.
‘설마 군터가 질 줄이야.’
승복할 수 없다며 가일이라도 찍어 눌러 분을 풀겠다던 군터는 바로 그날 중상을 입고 몇 달을 기약하는 요양에 들어갔다.
그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덕에 소문이 되어 퍼지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적지 않았다.
적어도 왕실에서는 이 나라 최강자가 누구인지 확고히 알게 된 것이다.
그자가 생판 타국의 인물이라는 뼈아픈 진실은 아직은 왕과 군터 두 사람밖에 몰랐지만 말이다.
[어찌하시겠습니까?]“혹시 제가 거절한다면…….”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하지만 그의 붉은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크란 3세도 알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거절한다면, 리버티의 영웅 가일 슬레이어가 맥라인으로 귀화해서 왕국을 침략하는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마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맥라인과 리버티는 확고한 우방으로 운명을 함께할 것입니다. 드웨인?] [예, 폐, 폐하.] [다 들었겠지? 사신을 보내 조약을 준비하라.] [알겠습니다, 폐하.]테로난도 마찬가지겠지.
암담한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뱉는 크란 3세를 지켜보던 로건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릭 이 녀석, 생각보다 훨씬 연기 잘하는걸. 종종 맡겨야겠어.’
통신구 너머 허리를 숙이고 있는 털보 재무대신이 들었다면 경기를 일으킬 생각을 하며 로건은 씩 웃었다.
그리고 그날부로 리버티의 ‘사신’은 왕실에서 바로 모습을 감추었고, 테로난의 ‘수호자’ 역시 사라졌다.
당사자들로서는 당연한 행보였지만…….
전쟁의 두 신성이 동시에 실종되었다!
각 왕실의 유력한 후계자들이 맥라인으로 ‘유학’을 떠난다!
거의 동시에 각 왕국 전역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의 의미를 아는 이들은 두 왕국이 지레 겁을 먹고 숙적에게 굴종하는 길을 택했다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결과는 하나의 살벌한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영웅을 왕실에서 제거한 게 아닐까? 그들이 있는데 우리가 왜?”
“그러게 말이야. 빌어먹을, 왕국의 영화를 이끌 영웅을 그렇게 버려?”
“천년 영화가 왕의 욕심에 스러지는구나.”
애국심을 가진 지식인들에게는 그야말로 통탄할 일이었다.
정보의 한계가 불러온 묘한 소문이 한동안 두 왕국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을 때, 맥라인의 왕과 왕비는 석 달 만에 그들의 자리를 찾았다.
“연합을 성공적으로 끌어들이셨군요. 진짜…….”
“내가 해낸다고 했잖아.”
진실을 아는 소수에게는 조금 으스대기도 하고.
“쾌차하신 것을 감축드리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폐하.”
“아아, 고맙군. 다들 자리에 앉게.”
대외적으로는 오랜 부상에서 회복한 척을 하면서.
그러나 다시 공식적인 집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로건은 생각지도 못한 보고를 받게 되었다.
“제국에서 이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폐하.”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