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두두두두.
들판을 울리며 질주하는 기마들.
얼핏 보기에도 수천은 될 법한 엄청난 대군이 작은 불꽃의 깃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거창!
수천 기마대의 선두.
중갑으로 무장한 기사가 크게 외치자, 기마대의 가장 앞에서 질주하던 천여 명의 기사들이 일시에 뛰쳐나왔다.
돌진하는 기사들이 3m는 될 법한 랜스를 꺼내 드는 순간.
그들의 팔, 허리, 검 등에서 푸른빛이 번뜩이며 전신에 힘을 더하거나 창끝에 날카로움을 더했다.
기사단 전체가 일시에 푸른빛으로 물드는 그 놀라운 광경에 뒤따르던 석궁기마대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 우와아!
그것은 그 실효성 이전에 눈에 보이는 이펙트만으로도 아군의 사기를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콰과과과광!
푸른빛 거인의 창이 되어,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들을 초토화시키며 진격하는 기사단.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일부 허수아비들은 뒤따르던 석궁기마대에서 쏟아진 쿼렐의 비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멋지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붉은 머리, 붉은 눈의 중년인이 만연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바로 뒤를 따르고 있던, 오른팔에 기묘한 빛을 띠는 금속 의수를 단 중년인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원래 작전대로라면 리베라티오의 투하가 먼저겠지만, 아무래도 가격이 가격인지라 정기 훈련 때만 써 보는 것으로 조정했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하지만 아티팩트의 효과가 생각 이상으로 뛰어나군.”
“예. 기사당 하나의 아티팩트를 보급하는 체계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보시는 바대로 부가 효과도 상당하고요.”
“아군의 사기 증진을 말하는 건가?”
“예. 그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아티팩트의 효용 자체가 더욱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뭐?”
“기사들 말로는 처음에는 시각적 효과에 따른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명백한 차이를 보이더랍니다. 마병단에 의뢰해 사실 관계도 확인했습니다.”
“그럼 정말 능력치가 증대되었다는 것인가?”
“예. 클레이튼 공의 설명에 따르면 저희 군단의 기사들이 모두 같은 계열의 아티팩트를 받은 탓도 있고, 수많은 기사가 동시에 같은 종류의 마법을 발현하니 일종의 동조 효과가 발생해 효율이 배가 된 듯하다고 합니다.”
“호오.”
“클레이튼 공도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면서 고마워했습니다. 덕분에 폐하께서 의뢰하신 일에 진척을 보았다면서요. 저희 군단이 또 한 건 해낸 것이지요.”
“의뢰? 무슨 의뢰?”
“거기까지는 기밀이라면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하는 중년인, 헤인켈의 얼굴엔 다소 서운한 기색이 스쳤지만 패드릭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뭐, 로건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이제는 우리 영지만 챙길 입장이 아니지 않나. 서운해하지 말게.”
“아, 아닙니다. 서운해하다뇨. 제가 어찌 감히…….”
손사래를 치는 오랜 친우를 보며, 패드릭이 씩 웃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 녀석은 영지에 있을 때도 혼자서 진행한 일이 많았잖나. 왕이 되었다고 그 버릇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닌가 보네.”
“아…… 하긴 그렇지요. 제가 좀 주제넘었습니다.”
주제를 넘다니.
포스를 잃고 난 뒤의 자괴감을 이제는 완전히 떨쳐 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패드릭은 씁쓸한 표정을 들키지 않게 고개를 돌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 외에 다른 일은?”
“포스를 각성한 병사들이 이번 달에만 32명에 달합니다.”
“또?”
“예. 대공자님, 아니 폐하께서 초창기에 뽑았던 병사들 중 포스를 각성한 이들이 이미 300명이 넘었습니다. 그들도 현재 저기서 훈련에 참여 중이지요.”
어쩐지 기사 수가 많아 보인다 했더니 착각이 아니었다.
“이거, 우리 군단이 기사 수로는 압도적이겠어.”
패드릭은 만연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고, 보고를 하던 헤인켈의 얼굴에도 비슷한 미소가 번졌다.
“예. 왕실의 1군단과 저희 3군단을 제외하면, 새로운 기준으로 병사를 뽑은 지가 아직 몇 년 안 됐으니까요.”
“그래. 확실히 그렇겠지. 몇 년 뒤면 또 모르지만.”
“몇 년 뒤에도 똑같을 겁니다. 폐하와 함께 전쟁을 겪은 이들의 대다수가 1군단과 3군단 소속이니까요. 그런 경험은 단순히 훈련만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3군단에 대한 헤인켈의 자부심은 패드릭보다 더한 듯했다.
“그래. 그렇겠지. 우리야말로 맥라인의 진짜 정예니까. 하하하.”
그것이 기꺼웠던 패드릭은 이 오랜 친우이자 가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다 헤인켈의 어깨에서 딱딱한 질감을 느끼는 순간,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미안하군, 이거.”
“괜찮습니다, 주군. 언제까지 매번 그러실 겁니까? 자꾸 그러시면 제가 더 면목이 없습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난 절대 잊어선 안 되지. 나를 구하려다 잃은 팔을…….”
이대로면 그간 수없이 반복했던 대화가 또 시작될 것이다.
헤인켈은 어두워진 주군의 표정을 보며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가문의 문양은 어쩔 생각이십니까? 슬슬 결정한다고 하셨잖습니까.”
그 말에 패드릭이 작은 한숨으로 답했다.
맥라인의 불꽃이 이제는 왕국의 상징이 되었으니, 가문의 문양과 성을 바꾸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건의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들어오고 있었다. 문양을 작게 줄인 것만으로는 거슬리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바꾸지 못하겠어.”
“예?”
“그냥 이 가문을 물려받을 로니안 녀석에게 맡겨 버리려고.”
“각하…….”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헤인켈의 시선을 패드릭은 뻔뻔하게 웃어넘겼다.
큰아들이 왕이 되었으니, 가문의 문장을 바꾼다 해도 맥라인의 불꽃은 이 나라와 함께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한평생을 그 불꽃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영주이자 기사는 차마 자신의 손으로 가문의 문장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별 의미 없는 고집이라 해도 말이다.
“자, 이제 병사들 훈련을 점검할 때지?”
“예. 그리고 영주님은 저택으로 돌아가셔야 할 때고요.”
“뭐?”
“수도에 가셨던 작은 공자님이 오늘 중으로 도착한다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메리안 님께서 작게 파티를 열 계획이니 빨리 들어오시라고…….”
“아, 그 얘기는 이미 들었지. 그 사람도 참, 로니안이 돌아온 지가 언제인데 또 파티야.”
“그만큼 오래, 노심초사하며 기다리지 않으셨습니까. 아직은 이해해 주셔야죠.”
“허어? 자네까지 그 사람 편을 드는 건가? 거참, 늦둥이 봤다고 무조건 자식 편만 들어선 안 돼.”
“이게 왜 자식 편입니까? 부모 편이지. 하여튼 뒷정리는 제게 맡기시고 얼른 들어가 보시죠.”
“어허, 참. 알았네, 알았어.”
웃으며 돌아서는 시야 사이로 노을이 지는 하늘이 보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는 요즘.
7, 8년 전에는 상상치도 못했던 영화를 누리고 있는데도 가슴 한구석이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족 파티라……. 로건, 너도 함께했다면 더 좋았으련만.’
실없는 생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작은놈은 몇 년의 수련행 끝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큰놈은 이제 저 멀리 손조차 닿지 않는 곳으로 가 버린 지 오래라는 것을.
‘이럴 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 좀 살갑게 대해 줄 것을.’
어미를 잃은 아이를 더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거리를 두었던 것이 오늘따라 유독 씁쓸하게 느껴졌다.
맥라인의 태양이라 불리는 왕도 그에게는 그저 큰아들일 뿐이었다. 그것도 이제는 얼굴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아들.
문득 저 하늘 위에 자리하여 온 누리를 비추는 태양이 야속하게 보였다.
‘레이나…… 우리 아들이 너무, 너무 지나치게 잘 큰 것 같소. 허허…….’
사별한 전 부인이 유난히 떠오르는 날.
아버지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 * *
“군단의 훈련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은 물론, 확장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3군단인 맥라인 영지 쪽에서는 폐하께서 선발하신 병사 중에서만 벌써 300명이 넘는 인원이 기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병사를 뽑는 기준에 대해선 이제 모두가 확신하고 있습니다.”
“대량 생산 아티팩트의 1차 보급도 끝났습니다. 일시 발현에 따른 동조 효과의 발견으로, 기사단 전체 전력이 한층 향상되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좋군.”
가슴 뿌듯해지는 보고 그대로 맥라인 전력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군단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자경단 훈련도 이제 궤도에 올랐다는 파견 기사들의 보고입니다. 정식으로 집계된 자경단원 수만 해도 50만이 넘습니다.”
정규군의 두 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예비 병력까지.
새삼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에 로건은 지금까지 구축해 온 전력을 다시금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군단제는 이제 확실히 자리를 잡았어.’
영지별로 흩어져 있던 왕국의 전력을 군단으로 모아 그 병권을 한 손에 쥐었고, 혹시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동부의 연합들도 목줄을 채워 확실한 아군으로 만들었다.
전생에 제국 용병으로 참전했던 초인 중 하나는 아군으로 끌어들였고, 나머지는 참살했다.
그란디아 내부의 우환이었던 귀족학살자는 이제 자신의 충직한 호위무사가 되었고, 기존의 살아남은 초인들도 하나로 뭉쳐진 왕국에서 한 단계씩 성장했다.
가장 큰 걱정이었던 동생은 오히려 전생에는 없었던 수법까지 손에 넣으며 기대치보다 더욱 성장했다.
거기에 전생에선 1차 내전 당시 사망했던 에일렌까지 초인으로 각성했으니, 맥라인의 초인 전력은 이미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일단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했다.’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생각될 정도의 성과였다.
하지만 로건은 풀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다시 다잡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열세야.’
전생에 그란디아는 제국 동부 8군단 중 6개의 군단과 중앙군 일부만으로 궤멸적인 피해를 보고 제국에 합병되었다.
이번 생에도 제국의 전력에 변함이 없다면 어떻게든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리가 없지.”
“예?”
“아니, 아닙니다.”
로건은 상념을 깨는 목소리에 고개를 저으며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황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나올 리는 없었다.
‘아마도 제국 동부 8군단을 전부 동원할 테고, 황실의 중앙군도 전생보다 큰 규모로 파견할 것이다. 재수 없으면 서부 군단들도 참전할 테고.’
하나하나 늘어놓고 보니 다시금 막막해지는 마음뿐이라, 로건은 재차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그 부족함을 메워 줄 또 다른 대책으로 생각이 쏠렸다.
“클레이튼 공에게서 다른 보고는 없었습니까?”
“그 일은 폐하께서 직통으로 보고 받겠다고 하셨습니다만?”
재상, 로버츠 플로이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제 사위이자 군주를 바라보았다.
그에 멋쩍은 표정을 지은 로건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그랬지요. 그럼 오늘은 이만하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기, 폐하.”
“예?”
“공무가 끝났다면 사적인 입장에서 질문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 그러시지요, 장인어른.”
장인어른이라는 단어는 언제나처럼 로버츠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나온 말은 로건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일전에 저와 대신들이 드린 물건들 말입니다만. 효험을 보고 계신가 해서…….”
말끝을 흐리는 로버츠.
가늘게 떠진 눈이 무언가 의미심장하게 보였지만, 로건으로서는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다만 짐작되는 것은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의 일인가?’
하지만 중요한 일이라면 릭이나 드웨인이 따로 언급했을 터.
사사로운 일이라 생각한 로건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확실히 좋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조만간에 좋은 소식을 기대해 봐도 될까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영문을 알 수 없는 로건의 표정이 조금 어색해지는데.
그 순간, 집무실의 밖에서 그를 구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데미안 나달 공이 알현을 청하셨습니다.
“장인어른. 그럼 잠시…….”
“아, 예. 물러나겠습니다.”
데미안의 보고는 국왕의 직통이라 로버츠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느릿하게 돌아섰다.
이내 데미안이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로건이 그 이유를 묻기도 전에 데미안이 황급히 말을 쏟아 냈다.
“폐하. 제국의 소식입니다. 2황자가…….”